69 화
캐스팅 작전 (2) “임인권이 ‘광안리’에 출연한다?” 이규한의 눈살이 더욱 찌푸려졌다. 임인권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혹은 멜로 영화에 특화된 배우였다.
그렇지만 영화 ‘광안리’의 장르는 SF 재난 블록버스터.
임인권과 ‘광안리’라는 작품은 어 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이었다.
“왜 임인권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 을까?”
임인권을 캐스팅하려는 의지를 드 러낸 것은 김기현일 가능성이 높았 다. 그리고 김기현이 임인권을 캐스 팅하려는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팬층이 두터우니까!’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공동 제작을 맡으며 이규한이 경험 했던 김기현의 스타일은 주도면밀하 게 분석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만큼 임인권이라는 배우가 ‘광안리’라는 작품이 어울리는가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현재 가장 인기가 있고 주목받는 배우이기 때문에 캐스팅을 시도했을 확률이 높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10,121,457에서 9,670,043으로.
예상 관객수가 줄어든 것을 확인한 후,이규한은 무척 당황했다.
그 이유와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서 고민했지만,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던 이규한이 마침내 이 상황을 해결할 단초를 찾았다.
:빨리 움직이자!
기사를 확인한 만큼,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이규한이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사무 실.
이규한이 막 사무실로 들어서려 한 순간,투자팀 직원과 맞닥트렸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 스쳐 지나가는 직원 의 뒷모습을 이규한이 바라보았다. ‘또 변했네!’
예전에는 이규한이 투자팀 사무실 로 찾아가도 직원들은 아무도 관심 을 갖지 않았다.
속된 말로 투명인간 취급을 했었 다.
그렇지만 ‘과속 삼대 스캔들’의 성 공 후에는 대우가 달라졌다.
이규한이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 자팀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직원들 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먼저 인사까지 하기 시작했다.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 이 흥행했기 때문이겠지!” 실소를 머금고 있던 이규한이 사무 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출발하기 전,권지영 팀장에게 곧 찾아갈 것 이라고 문자를 보냈었다.
반갑게 맞이하는 권지영 팀장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얘기 좀 해.”
“차는 뭘로 드실래요?”
“됐어. 차 마실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이규한의 표정이 무척 다급하다는 것을 알아챈 권지영 팀장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회의실로 들어가세요.”
“오케이.”
이규한이 먼저 사무실로 들어가 있 자,권지영 팀장이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 두 병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 다.
“무슨 일 있으세요?”
“부탁 하나 하자.”
“무슨 부탁인데요?”
“‘광안리’ 캐스팅 진행 상황 좀 알 아봐 줘.”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팀장 인 권지영은 현장에서도 최일선에서
뛰고 있었다.
배우 캐스팅은 투자에 결정적인 영 향을 미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
이규한보다는 ‘광안리’의 캐스팅 진행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많은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규한이 권지영 팀장을 찾아온 이 유였다.
“갑자기 그건 왜요?”
“캐스팅이 겹쳐.”
“네?”
“기현이가 ‘광안리’에 임인권을 캐 스팅하려고 제안을 했고,임인권이 긍정적으로 출연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는 기사가 떴어.”
“그 말씀은… 이 대표님도 ‘수상한 여자’의 남자 주인공 배역에 임인권 을 캐스팅하려고 하셨단 뜻이에요?”
“맞아.”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권지영 팀장 의 표정이 굳어졌다.
“뭘 알아볼까요? 임인권이 ‘광안 리’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지 여부만 알아보면 되나요?”
“아니,전부 다 알아봐 줘.”
“전부 다라니요?”
“내 짐작에는 캐스팅을 제안 받은 게 임인권만이 아닐 수도 있어. 그 러니까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캐스팅 제안을 했던 배우들의 면면 을 다 알아봐 줘.”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좀 기다려 주세요.”
권지영이 휴대전화를 들고 회의실 을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약 반시간 뒤,권지영이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이 대표님,예상이 맞았어요.”
권지영이 상기된 얼굴로 덧붙였다.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임인 권에게 캐스팅 제의를 한 것은 사실 이에요. 그렇지만 아직 출연이 확정
된 건 아니래요.”
‘도장은 안 찍었구나!’
이규한이 내심 안도했을 때,권지 영이 서류 한 장을 앞으로 내밀었 다.
“이건 뭐야?”
“아까 대표님이 부탁하셨던 것이 요.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캐 스팅 제의를 한 남자 배우들이에 요.”
“총 세 명이네.”
변요섭,임인권,송태윤.
권지영이 건넨 서류에 떠올라 있는 남자 배우들이었다.
“변요섭,임인권,송태윤 순이에 요.”
“그러니까 1순위가 변요섭,2순위 가 임인권,3순위가 송태윤이었다는 뜻이지?”
“정확해요.”
세 배우들의 이름을 내려다보던 이 규한이 다시 물었다.
“왜 변요섭은 기사가 안 났던 거
지?”
“거절했어요.”
“그러니까 변요섭이 스카이 엔터테 인먼트 측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했 다는 거야?” “맞아요.”
“거절한 이유는?”
“아무래도 일정 때문인 것 같아 요.”
“촬영 스케줄이 겹쳤다?”
이규한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권지영이 알아내 온 정보 덕분에 현재까지의 상황을 대략적이나마 짐 작할 수 있었다.
김기현이 ‘광안리’의 남자 주연 배 우 1순위로 점찍었던 배우는 변요 섭.
그러나 그가 이미 계약을 마쳤던 다른 작품의 촬영 스케줄이 겹치는 문제 때문에 ‘광안리’ 출연을 고사 하자,김기현은 캐스팅 2순위로 염 두에 두었던 임인권에게 출연 제의 를 했으리라.
그리고 긍정적으로 ‘광안리’ 출연 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것 은 임인권과의 출연 계약에 근접했 다는 뜻이었다.
“임인권을 빼앗기면 안 되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규한이 답 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을 살피던 권지영 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꼭 임인권을 캐스팅해야 하는 이
유가 있나요?”
“응,있어.”
이규한이 지체 없이 대답하자,권 지영 팀장이 다시 물었다.
“대체 이유가 뭔데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백만 이상의 관객 동원력이 있거
드 ”
관객 동원력.
다른 말로는 티켓 파워라고 불리기 도 했다. 그리고 티켓 파워는 배우 의 몸값을 결정하는 지표 중 하나였 다.
어쨌든.
이규한이 임인권에게 백만 이상의 티켓 파워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들은 권지영 팀장이 고개를 갸웃했 다.
“물론 임인권이 괜찮은 배우인 것 은 저도 동의해요. 그렇지만 그 정 도의 티켓 파워를 갖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사실이야.”
이규한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 고 이규한이 이렇게 확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사무 실로 찾아가던 도중에 이규한이 불 쑥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시나리오 책을 집어들면 눈앞에 예 상 관객수를 의미하는 숫자가 떠오 르는 특수한 능력.
지금까지는 그 능력을 수동적으로 사용했다.
쉽게 말해,배우 캐스팅이나 감독 선임 등의 단계가 끝이 난 후에 감 정을 통해서 예상 관객수를 확인했 그러나 생각을 전환해서 좀 더 능 동적인 방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겠 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머뭇거리지 않고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남자 주인공: 임인권.
택시 안에서 펜을 들어서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 책에 정보를 기입 했다. 그리고 이규한의 예상은 적중 했다.
- 10,713,998.
아직 ‘수상한 여자’에 임인권의 캐 스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임인권에게 캐스팅 제의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인권을 ‘수상 한 여자’의 남자주인공으로 기입하 고 시나리오 책을 들어 올리자,눈 앞에 떠오르는 숫자가 바뀌었다.
더 놀라운 것은 바뀐 숫자였다.
9,670,043에서 10,713,998로.
남자 주인공 배역에 이정욱을 기입 했을 때에 비해서 임인권을 기입했 을 때의 예상 관객수는 무려 100만 명이 넘게 늘어나 있었다.
“임인권이 이 정도 티켓 파워를 갖 춘 배우였나?”
이규한이 두 눈을 치켜뜬 채 혼잣 말을 꺼냈다.
숫자만큼 정확한 것은 없었다. 9,670,043에서 10,713,998로.
임인권을 캐스팅할 경우 늘어날 예 상 관객수였다.
104만 3955명.
이정욱 대신 임인권을 캐스팅했을 때,늘어난 정확한 관객수였다.
이것이 아까 이규한이 임인권에게 100만 명 이상의 관객동원력을 갖 추고 있는 배우라고 말했던 이유였 다.
물론 권지영 팀장의 의심에도 일리 가 있었다.
이규한 역시 눈앞에 떠오른 숫자를 확인한 순간,과연 임인권이 이 정 도 티켓 파워를 갖춘 배우인가에 대 해 의구심을 품었으니까.
그리고 택시 안에서 그 이유에 대 해 고심한 끝에 이규한은 한 가지 가설을 찾아냈다.
‘캐스팅이 겹쳐서가 아닐까?’
임인권은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하는 ‘광안리’에 출연하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광안리’ 는 ‘수상한 여자’와 개봉 일자가 겹 쳤다.
‘만약 임인권이 50만 명의 티켓 파 워를 갖춘 상황이라면?’
두 작품에 모두 출연하는 것은 불 가능한 상황.
‘광안리’ 혹은 ‘수상한 여자’.
임인권은 두 작품 중 한 작품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광안리’에 출연이 불발되 면서 예상관객수가 50만 명이 줄어 드는 상황에서 ‘수상한 여자’에 출 연하면서 약 50만 명의 예상 관객 수가 늘어난다면?
‘수상한 여자’는 대략 100만 명의 예상 관객수가 늘어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규한이 택시 안에서 고심 을 거듭한 끝에 찾아낸 해답.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했지만,중 요한 것은 임인권을 ‘수상한 여자’ 의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데 성공한다면,예상 관객수가 1,000만 을 훌쩍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권 팀장.”
“말씀하세요.” “임인권이 어느 정도의 티켓 파워 를 갖춘 배우인가에 대한 논쟁은 일 단 접어 두자고. 지금은 그게 중요 한 게 아니니까.”
권지영 팀장은 수긍한 기색이 아니 었다.
또,아직 할 말이 더 남은 듯 보였 지만,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죠?”
“임인권을 ‘수상한 여자’에 캐스팅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자고.”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 다는 이야기,못 들어봤어? 그러니 까 서둘러 방법을 찾아야 해.”
“과연 방법이 있긴 할까요?”
권지영은 임인권 캐스팅이 어려울 거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더 설득하기 위해서 애쓰는 대신,이규한이 생각에 잠겼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 갔기 때문이었다.
“아까 변요섬이 스카이 엔터테인먼 트의 캐스팅 제의를 고사했던 것이
촬영 스케줄 때문이라고 했지?” “네,맞아요.” “변요섭이 출연하기로 했던 작품이 뭐지?”
“잠시만요. 아까 들었던 것 같은 데.”
잠시 기억을 더듬던 권지영이 무릎 을 탁 치며 말했다.
“기억났어요. ‘불굴의 소방관’이라 는 작품이었어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