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68화 (68/272)

68 화

캐스팅 작전 (1)

“이제 십오만 명 남았다!”

이규한이 시나리오 책을 내려놓으 며 호흡을 골랐다.

이제 십오만 명만 더 채운다면, ‘수상한 여자’를 천만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 단계는?”

천만 영화 제작에 한층 가까워졌다 는 생각에 치미는 흥분을 애써 억누 르며 이규한은 다음 단계를 떠올렸 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각색 작업에 들 어갈 차례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수상한 여자’의 각색 작업을 건너 뛰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그 이유는 시나리오 재고 작업이 워낙 잘됐기 때문이었다.

‘각색을 한다고 해서 시나리오가 더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여러 차례 각색 작업을 거친다고 해서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더 높아 지는 것은 아니었다.

각색 과정에서 시나리오가 삼천포 로 빠지면서 더 나빠지는 경우도 부 지기수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각색 작업을 건너뛰기로 정한 이규한은 바로 캐스팅 작업에 돌입하기로 결 정했다.

“심인경을 잡아야 해!”

이규한의 기억 속,‘수상한 여자’의 주인공을 맡았던 여배우는 심인경이 었다.

충무로의 주목을 받고 있던 심인경 은 원톱 주연으로 나섰던 ‘수상한 여자’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세 배 우로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리고 당시 심인경의 연기에 대한 평가도 무척 좋았다.

- 완전 귀여우면서 연기도 잘함.

- 코믹 연기 대박.

- 연기 잘하고,심지어 노래까지 잘함.

- 심인경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하지는 못했을 거 임.

몸에 맞는 옷이 있듯이 배우에게 어울리는 배역이 있었다. 그리고 심 은경에게는 ‘수상한 여자’에서 맡은 배역이 몸에 맞는 옷처럼 완벽하게

어울렸었다.

“강형진 감독을 만날 때가 됐어.” 이제 때가 됐음을 직감한 이규한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다시 만난 강형진 감독의 표정에서 는 비장함이 묻어났다.

“오늘 술값은 무조건 제가 계산합 니다.”

그가 술값 계산에 대한 비장한 각 오를 드러냈다.

‘그렇게 하시죠.”

지난번과 달리 이규한이 순순히 받 아들였다.

당시와는 상황이 또 달라졌기 때문 이었다.

일단 강형진 감독이 흥행 감독으로 확실히 입지를 굳히며 큰돈을 번 반 면,이규한은 집을 구입하느라 지금 까지 번 돈의 대부분을 쓴 상황이었 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 몇 가지 상의를 드릴 것 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일단 캐스팅입니다. 여주인공으로 감독님께서 염두에 두고 계신 배우

가 있습니까?”

“네,있습니다.”

“누굽니까?”

“심인경입니다.”

강형진 감독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수상한 여자’의 캐스팅 작업에 대 해서 강형진 감독과는 일절 논의를 하지 않은 채 만난 자리였다.

또,강형진 감독은 이규한과 달리 미래를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형진 감독은 ‘수상한 여자’의 여주인공으로 심인 경의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괜히 흥행 감독이 아니네!’

배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

감독의 능력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었다.

“저도 심인경을 염두에 두고 있었 습니다.”

제작자인 이규한과 감독인 강형진 이 의견 일치를 본 상황.

그렇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 다.

심인경을 이번 작품에 캐스팅할 수 있느냐 여부였다.

그래서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심인경과는 일면식도 없었다. 해서 그녀를 캐스팅하는 게 결코 쉽지 않 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였다.

“왜 한숨을 쉬시는 겁니까?”

강형진 감독이 물었다.

“심인경을 캐스팅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네요.”

이규한이 솔직히 답했을 때였다.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할 것 없습 니다.”

“왜입니까?” “인경이는 제가 잘 압니다.”

“그렇습니까?”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은 이 규한이 물었다.

“심인경과는 어떻게 아시는 겁니

까?”

“연출부 일을 할 때부터 아는 사이 였습니다. ‘비스트’라는 영화의 조감 독을 하던 시절에 인경이가 조연으 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그때 많 이 친해졌습니다.”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감독 입봉 전에 연출부 경험이 중 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 강형진 감독 역시 조감독으로 일했 던 기간이 길었다.

조감독 혹은 연출부 스랩으로 일하 면서 항상 배우들과 마주치기 마련.

자연히 친분이 쌓일 수밖에 없었 다. 그리고 배우들과 쌓인 친분이 홋날 감독으로 입봉을 할 때,캐스 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써니 걸즈’를 준비할 때,인경이가 찾아왔었습니 다.”

“감독님을요?”

“네,‘써니 걸즈’에 출연하고 싶었 는데 왜 자신을 캐스팅해 주지 않았 느냐고 하소연하면서 무척 많이 서 운해했습니다. 그때,인경이에게 약 속을 했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꼭 같이하자고.”

“혹시 그때 이미 ‘수상한 여자’의 캐스팅에 심인경을 염두에 두셨던 겁니까?”

“맞습니다.”

‘됐다!’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비록 구두로 출연을 약속한 것이라 하더라도 엄연한 약속.

강형진 감독이 이 정도로 자신감을 보이는 것으로 봐서 심인경을 ‘수상 한 여자’에 캐스팅하는 것은 거의 확정적 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강형진 감독에게 양해를 구한 이규 한이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펜을 든 이규한이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 책에 기입했다.

여주인공: 심인경.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숫자의 개수가 바뀌었다?’

이규한이 두 눈을 치켜떴다.

8자리로 숫자의 개수가 늘어난 의 미.

예상 관객수가 천만을 돌파했다는 것이었다.

‘부족하던 십오만 명을 채우는 데 성공했다!’

반사적으로 이규한이 양팔을 들어 만세를 불렀다.

영화 제작자에게 있어서 꿈의 숫자 라 할 수 있는 천만 관객.

마침내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찾아 왔다는 것이 이규한을 흥분케 만든 것이었다.

‘드디어 내가 천만 영화를 만든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렐 지경이었다.

양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던 이 규한이 강형진 감독의 시선을 뒤늦 게 깨닫고 슬그미니 팔을 내렸다.

“큼. 큼!”

멋쩍은 표정을 지은 채 다시 사무 실 소파로 돌아온 이규한이 헛기침 을 했을 때였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 강형진 감독이 물었다.

“네,있습니다. 좋은 감독님,또, 좋은 배우와 함께 작업을 할 수 있 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 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음 수순으 로 넘어갈까요?”

“다음 수순이요?”

“여자 주인공을 정했으니, 남자 주 인공도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강형진 감독이 다시 물었다.

“혹시 대표님이 점찍어 두신 배우

가 있습니까?”

“네,있습니다.”

이규한이 솔직히 대답하며,강형진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은요?”

“저도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이정욱입니다.”

강형진 감독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순간,이규한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술자리가 꽤 길어질 것 같습 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회의가 짧게 끝날 것 같으니까 요.”

이규한이 대답하자,강형진 감독이 말뜻을 이해하고 질문했다.

“대표님도 이정욱을 ‘수상한 여자’ 의 남주인공으로 점찍으셨던 겁니 까?”

“맞습니다.”

“좋네요.”

강형진 감독이 환하게 웃었다.

“뭐가 좋으신 겁니까?”

“대표님과 마음이 잘 맞아서 좋고, 회의가 일찍 끝나서 술자리를 오래 가질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강형진 감독의 대답을 듣고 마주 웃던 이규한이 재차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온 이규한이 펜을 들었다.

남자 주인공: 이정욱.

새로운 정보를 기입한 후, 이규한 이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 책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그 숫자를 확인한 이규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예상 관객수가 줄었지?’

‘일희일비하지 말자!’

새로운 기회를 얻고 난 후, 이규한 이 다짐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맥이 빠졌다.

제작자로서 첫 천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금세 물거품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규한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 하고 있을 때,강형진 감독이 물었 다.

“감독님,술은 다음에 마셔야겠습 니다.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요. 죄 송합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는 이야 기.

거짓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예상 관객수가 삼십만 명 가까이 줄어서 천만 영화 제작에 실 패하게 된 위기에 처한 상황.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이 강형진 감독이 먼저 떠난 후, 혼자 사무실에 남겨진 이규한이 다시 펜 을 들었다.

쫙짝악!

이규한이 조금 전 시나리오 책 앞 면에 기입했던 이정욱의 이름 위에 두 줄을 긋고 난 후,다시 시나리오 책을 들어 올렸다.

- 10,121,457.

이정욱의 이름을 지우자,예상 관 객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이정욱의 캐스팅이 예상 관객수가 줄어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 다.

‘이도빈!’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을 제작하던 당시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도빈을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 한 후에 감정했을 때,예상 관객수 는 반 토막이 났었다.

물론 이번에는 예상 관객수가 반 토막이 난 정도는 아니었다.

“이유가 뭘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케미였다. 여자 주인공 배역에 캐스팅이 확정 된 심인경과 남자 주인공 배역에 캐 스팅이 된 이정욱의 연기 호흡이 맞 지 않는 경우를 뜻했다.

“아니면,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감정 결과가 도출된 이유가 될 수 있는 가능성들.

워낙 다양했다.

그래서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는 것

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이유를 찾아내는 것을 포기한 이규한이 깍지를 꼈다.

비록 이유를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 지만,확실한 것은 존재했다.

바로 이정욱을 남자 주인공 배역에 캐스팅을 했을 때, 예상 관객수가 30만 명가량 줄어들었다는 결과였 다.

“남자 주인공을 맡을 배우를 바꿔 야 해!”

결론을 도출해 낸 이규한이 배우들 의 면면을 떠올렸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수상한 여자’의 남자 주인공에 어 울리는 연령대였다.

그 연령대의 배우들의 면면을 짚어 보던 이규한이 퍼뜩 떠올린 것은 임 인권이었다.

훈남 스타일의 외모와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톤, 그리고 깊은 눈빛이 돋보이는 준수한 연기 력까지.

임인권은 특히 여성 팬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30대 중반의 배우였 다.

“잘 어울리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규한이 컴 퓨터 앞에 앉았다.

포털사이트로 들어가서 검색어에 임인권의 이름을 기입한 후,검색 결과를 훌어보던 이규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배우 임인권,국내 최초 재난 영 화 ‘광안리’ 출연 제의 받고 검토 중.〉

임인권이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고 있는 영화 ‘광안리’의 출 연 제안을 받고 출연을 검토하고 있 다는 기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