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65화 (65/272)

65 화

접어야겠습니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 었다.

영화사 반딧불이에서 ‘젊어진 그 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기존 시나 리오 작가인 지인경에게 원고료도 지급하지 않고,그녀의 이름도 각본 크레덧에서 빼 버리려고 했던 것이 영화판에서 시나리오 작가들이 처해 있는 비극적인 현실이었다.

반면 드라마판은 상황이 많이 달랐 다.

작가에 대한 처우가 훨씬 좋았고, 당장 작가에게 지급되는 원고료부터 차이가 컸다.

기성 드라마 작가의 경우 최소 편 당 1,000만 원 이상의 원고료를 받 았다.

16부작 미니시리즈를 기준으로 잡 으면, 한 작품을 마쳤을 때 작가가 거두는 수익은 최소 2억 원 선이었 다.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었다.

작품이 끝이 나고,재방송을 할 때 도 작가에게 재방 원고료도 지급됐 다.

대략 원고료의 50% 선으로 알려 져 있으니 약 1억.

즉,편당 1,000만 원으로 작품 계 약을 한 경우,미니시리즈 한 작품 을 마치고 작가가 거두는 수익은 대 략 3억 원 선이었다.

거기에다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서 해외에 수출이 되거나 판권이 팔리 면 부가수익을 또 올릴 수 있었다.

‘이래서 영화판이 작가 구인난을 극심하게 겪는 거지!’ ‘좋은 작가가 없다!” 영화 제작자들이 틈만 나면 하는 하소연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 을 만든 건 영화 제작자들의 잘못이 컸다.

영화판의 작가 처우가 워낙 좋지 않으니,실력 있는 작가들은 기회만 있으면 드라마판으로 빠져나갈 궁리 를 했다.

또,영화판의 작가 처우에 환멸을 느끼고 작가 생활을 때려치우는 경 우도 다반사였고.

이건 작가들을 탓할 게재가 아니었 다.

그동안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정당 한 대우를 해 주지 않았던 기존 영

화인들과 영화 제작 시스템이 만든 문제였다.

어쨌든.

박한정 작가는 영화판의 작가 처우 에 환멸을 느끼고 드라마 작가로 방 향을 틀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그리 고 이규한은 그런 그의 마음을 돌려 야 하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마음을 돌리지?’

박한정 작가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숙제를 안은 이규한이 고민에 잠겼 다.

잠시 후,이규한이 질문했다.

“드라마 대본을 쓰고 나서,어떻게

드라마 작가가 되는 과정은 크게 셋이었다.

첫째는 방송국에서 열리는 드라마 대본 공모전에서 수상을 해서 편성 을 받는 것.

둘째는 드라마 작가 교육원에서 수 업을 받는 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내 서 드라마 피디 혹은 제작자와 연결 이 되는 것.

셋째는 영화가 흥행하고 난 후,작 가로서의 실력을 인정받고 드라마 제작자와 계약하는 것.

그렇지만 드라마 작가로 입봉하는 것.

절대 쉽지 않았다.

괜히 드라마 작가가 되는 것이 바 늘구멍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판은 작가 처우는 좋지만, 진입 장벽이 무척 높은 셈이었다.

“아직도 안 갔어요?”

박한정 작가는 이규한이 던진 질문 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영화판 사람들 집요하고 끈질긴 건 인정해야겠네. 내가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물론 없습니다.”

“그런데 왜 물어요?”

박한정 작가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퉁명스레 말했다.

“걱정이 돼서요.”

이규한이 지체 없이 대답한 순간, 박한정 작가가 비로소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걱정이요?”

“드라마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이규한이 대답하자,박한정 작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영화판이든,드라마판이든 글만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혼들었 다.

그의 이야기가 틀렸기 때문이다.

“박한정 작가님은 드라마판에서 성 공하기 어려울 겁니다. 아니,입봉하 는 것조차 어려울 겁니다.”

기분이 상한 걸까.

박한정 작가가 두 눈을 가늘게 뜨 고 이규한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 는 겁니까?”

박한정 작가의 목소리에는 반감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거짓말을 한 것 이 아니었다.

박한정 작가의 스타일.

선이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즐겨 썼다. 그러나 드라마판에서는 선 굵 은 남자들의 이야기보다 말랑말랑한 로맨스를 더 선호했다.

- 의학물은 의사들이 병원에서 사 랑하는 이야기.

- 법정물은 법조계 인사들이 법정 에서 사랑하는 이야기.

- 범죄물은 형사들이 경찰서에서 사랑하는 이야기.

이런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한국 드라마판에서는 로맨 스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증 거였고,드라마 작가들 중 대부분이 여성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박 한정 작가의 작품 스타일과 드라마 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규한은 판단한 것이었다.

“내 가족이 살해됐습니다. 범인은 재벌가 회장. 그러나 재벌가 회장은 용의선상에서 유유히 빠져나갑니다. 돈과 권력이 있기 때문이죠. 나는 가족을 잃었기 때문에 재벌가 회장 에게 복수를 해야 합니다. 복수를 위해서는 재벌가 회장의 주변으로 접근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재벌가 회장의 딸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 녀를 이용해서 재벌가 회장의 곁으 로 접근하려는 계획을 세운 거죠. 그런데 처음에는 그녀를 이용만 하 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진짜 사랑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이규한이 말을 하던 도중,박한정 작가가 끼어들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왜 말이 안 된다는 소리라고 생각 하시는 겁니까?”

“복수하기도 바쁜데 사랑에 빠지다

니요? 그것도 가족을 살해한 원수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 기가 차네요. 기가 차.”

박한정 작가가 혀를 찼다.

“기가 차죠? 그래서 박한정 작가님 은 드라마판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 다.”

‘......?'

“이게 얼마 전에 방영됐던 드라마 의 내용이거든요.”

이규한이 설명을 마친 순간,박한 정 작가가 표정을 굳혔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한정 작가를 살피던 이규한이 쐐기를 박

기 위해서 덧붙였다.

“드라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로맨스 가 있어야 합니다. 박한정 작가님은 복수를 미루고 로맨스를 넣을 수 있 겠습니까?”

“접어야겠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박한정 작가가 대답을 꺼냈다.

‘로맨스를 넣을 수 없다가 아니라, 접어 야겠다?’

예상 범위를 벗어난 대답이었다.

그로 인해 이규한이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박한정 작가가 한 글 파일을 닫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는 부족했는지 컴퓨터의 전원을 아 예 꺼 버렸다.

책상에서 일어난 박한정 작가는 캐 리어를 꺼냈다. 캐리어를 열고 옷가 지를 정리하기 시작해서 넣고 있는 박한정 작가를 살피던 이규한이 다 시 물었다.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접어 야겠다고.”

“뭘 접는다는 뜻입니까?”

“작가 생활 접으려고요.”

……?" 성화판에서 사람대접 못 받아서 드라마판으로 건너가려고 했는데, 그것도 힘들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 달았으니까 그냥 작가 생활을 접기 로 했습니다.”

박한정 작가가 헛헛한 웃음을 지은 채 대답했다.

‘이게 아닌데!’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당황했 다.

이규한이 아까 이야기를 꺼낸 목적 은 박한정 작가가 드라마판으로 건 너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작가 생활을 접게 만들 의도는 결 단코 아니었다.

그로 인해 마음이 조급해진 이규한 이 서둘러 입을 뗐다.

“박한정 작가님,제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더 무슨 이야기를 들으라는 겁니 까?”

“아까 영화판에서 사람대접을 못 받았다고 하셨죠? 제가 사람대접을 받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규한이 약속했다.

그렇지만 박한정 작가는 코웃음을 쳤다.

“어떻게요? 당신이 영화판 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까?” 박한정 작가가 불신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이유.

영화판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 문이었다.

시나리오 작가가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는 영화판의 구조를 당신이 바 꿀 수 있느냐?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사람대접을 받게 해 준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

‘헛공약!’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처럼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고 박 한정 작가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었 다.

그런 박한정 작가의 판단이 옳았 다.

이규한 혼자서 영화판 구조를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화판 구조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박한정 작가님이 사람대접 을 받게 만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 다.”

“무슨 수로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영화 감독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 다.” -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한 편의 영화가 개봉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두면,감 독이 모든 영광을 가져간다.

그래서 영화판에서 감독이 차지하 는 비중은 무척 컸고,당연히 대접 을 받았다.

“저더러… 영화감독을 하라고요?”

“맞습니다.”

“내가 왜 영화감독을 합니까?”

“아까 사람대접을 받고 싶다고 말 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내키지 않으십니까?” 박한정 감독이 잠시의 망설임도 없 이 대답했다.

“왜 내키지 않으시는 겁니까?”

“글을 쓰는 게 더 좋으니까요.”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쓰게 웃 었다.

인생이란 참 재밌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었다.

감독 입봉!

수많은 영화감독 지망생들은 감독 입봉을 목표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감독으로 입봉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쉽게 찾아오지 않는 그런데 박한정 작가는 이규한이 영 화감독을 만들어 주겠다고 먼저 제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켜 하지 않 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연출을 잘할 자신이 없습니다.”

“박한정 작가님은 영화감독으로서 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봤으니까!’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 속,박한 정 작가는 영화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한 후 영화감 독으로 전향해서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올랐 다.

그러나 이것은 이규한만이 알고 있 는 미래였다.

해서 이규한이 다른 대답을 꺼냈 다.

“제 안목을 믿습니다. 강형진 감독 님은 아시죠?”

“물론 알고 있습니다.”

“강형진 감독님이 ‘과속 삼대 스캔 들’의 연출을 맡기 전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강형진 감독님의 입봉 작이었던 ‘가위 소리’가 흥행에 참 패했기 때문에 그에게 ‘과속 삼대 스캔들’의 연출을 맡겨서는 안 된다 는 의견이 많았죠. 심지어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에서는 강형진 감독을 빼면 투자를 하겠다는 조건까지 제시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강형진 감독님을 믿 고 ‘과속 삼대 스캔들’의 연출을 맡 겼습니다. 강형진 감독님은 좋은 감 독이 될 거다. 이런 제 눈을 믿었던 거죠.”

일종의 비사(秘事).

전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박한 정 작가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규

“얼마 전에 제가 공동 제작을 맡았 던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 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 인 감독인 한성근 감독을 믿지 못하 겠다고 공동 제작을 맡았던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의 김기현 대표가 마뜩 찮은 기색을 드러냈죠. 김기현 대표 는 내심 감독 교체를 원했지만,저 는 한성근 감독을 믿고 밀어붙였습 니다. 그리고 한성근 감독은 제 기 대에 부응했습니다. 박한정 작가님 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감독님이 될 자질을 갖고 계시다는 판단을 내 렸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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