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62화 (62/272)

62 화

대형 사고 “순서가 잘못됐다니? 무슨 뜻이 야?”

“아직 공동 제작을 하자는 제안을 내가 수락하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제야 말뜻을 이해한 김기현이 의 아한 시선을 던졌다.

“설마 공동 제작을 거절할 생각이 야?”

“설마가 아냐.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에서 이미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서 공동 제작은 어려울 것 같다 고 계속 얘기했어.”

“그랬어?”

“다시 한 번 확실히 말할게. 난 참 여하지 않을 거야.”

이규한이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 혔다.

“지금 내린 결정, 후회할 걸.”

“왜 후회할 거라고 생각해?”

“이런 대작에 참여할 기회는 자주 안 오니까.”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이규한이 재차 확인해 준 순간,김 기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뜻대로 이규한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분노한 것이었다.

기분이 상한 걸까.

독한 술을 단숨에 비우고 내려놓는 김기현에게 이규한이 물었다.

“작품 제목이나 알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광 안리’가 유력해.”

‘제목이 ‘광안리’라고?’

김기현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의 제 목을 들은 이규한이 갈증을 느끼고 냉수를 들이켰다.

영화 ‘광안리’는 이규한도 알고 있 었다.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 속에서 ‘광안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대박나겠네!’

김기현이 준비하는 영화의 제목이 ‘광안리’임을 알고 난 후,이규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부럽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천만 영화를 제작하는 것.

모든 영화 제작자들의 꿈이었다.

그리고 김기현이 곧 그 꿈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다른 제작자가 천만 영화를 제작한다면?

부럽기는 하나,축하해 줄 터였다.

그렇지만 김기현은 달랐다.

김기현이 머잖아 천만 영화를 제작 할 거라고 생각하니 축하해 주고 싶 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대부분의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한 편의 영화를 제작했 다. 그렇지만 김기현은 달랐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김 대환을 아버지로 둔 덕분에 김기현 은 손쉽게 영화를 제작했다.

그런 그가 천만 영화까지 제작하면 서 커다란 성공을 거둘 것을 알고 나니, 불공평하다는 생각과 함께 자 꾸 화가 치밀었다.

벌컥.

이규한이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내가 열등감을 갖고 있는 건가?’

금수저와 흙수저.

김기현과 이규한의 신분 차이는 극 명했다.

그로 인해 은연중에 열등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이렇게 화가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왜? 혹시 생각이 바뀌었어?”

이규한을 유심히 살피던 김기현이 덧붙였다.

“아직 안 늦었어. 마음이 바뀌면 얘기해.”

솔깃한 제안이었다.

영화 ‘광안리’가 천만이 넘는 관객 을 불러들이며 흥행에 성공할 것임 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 을 한다면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으 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 그때, 김기현이 다시 말했다.

“이런 기회 자주 안 온다니까. 남 들은 나랑 친구라서 공동 제작을 하 는 것을 다 부러워하는데,왜 넌 자 꾸 튕기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또 한 잔의 술을 마셨다. 그런 이규한이 이도빈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김기현 대표님한테 들었어요. ‘그때 우리’라는 작품은 공동 제작 사가 있다고. 김기현 대표님과 대학 동창이시라고요? 성공하셨네요. 김 기현 대표님이랑 친하게 지낸 덕분 에 이번 작품에 공동 제작으로 참여 하시는 것 아닙니까?” 당시 이도빈이 웃으며 던졌던 이야 기.

이규한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었 다.

그렇지만 분명히 오해였다.

김기현이 이끌고 있는 스카이 엔터 테인먼트와 공동 제작을 하긴 했지 만,‘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 간’의 기획 개발을 도맡은 것은 블 루문 엔터테인먼트 였으니까.

그러나 방금 김기현이 던진 말을

듣고서 이규한은 확실히 깨달았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이 규한이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의 김기 현과의 친분 덕분에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는 것을.

‘만약 공동 제작을 계속한다면?’

이규한이 이끄는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가 공동 제작 과정에서 아무리 많은 역할을 맡더라도,이런 인식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더 깊이 박힐 가능성이 높 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이규 한이 입을 뗐다.

“생각이 바뀌었어.”

“잘 생각했어. 나와 앞으로도 쭉

“정면 대결을 하기로.”

도중에 말을 자르며 이규한이 덧붙 이자,김기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뜻이야?”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하 는 작품이 있다고 말했었지? ‘수상 한 여자’란 작품이야. 원래 을 겨울 성수기 시장에 맞춰서 개봉할 생각 이었는데,네 얘기를 듣고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 겨울 성수기 시장을 피해서 개봉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 는데,그러지 않기로 했어. 그냥 계 획대로 진행하기로.”

“‘광안리’와 ‘수상한 여자’란 작품 을 맞붙이겠다는 뜻이야?”

“맞아.”

“후회할걸.”

“왜 후회할 거라 생각해?”

“내가 준비하는 ‘광안리’에 완패할 테니까.”

김기현이 경고한 순간,이규한이 대답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이 지.”

김기현과 계속 함께 앉아 있는 것. 무척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이규 한은 호텔 바를 일찍 빠져나왔다.

부욱! 부우욱!

김기현이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었 다.

“건방진 건 여전하네.”

단숨에 잔을 비운 김기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과속 삼대 스캔들’과 ‘청춘,우리 가 가장 빛났던 순간’.

두 작품이 흥행에 성공을 거두며 이규한은 피디로서도,영화 제작자 로서도 나름대로 존재감을 부각시켰 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이규한이 두 편의 영화를 흥행시킬 수 있었던 데는 자신의 역할이 컸다.

아니,자신이 없었더라면 두 편의 영화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가능 성이 높았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경우 자신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를 들먹이며 도 움을 주었던 덕분에 로터스 엔터테 인먼트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경우도 자신이 이끄는 스카이 엔터 테인먼트와 공동 제작을 했기에 씨 제스 엔터테인먼트로부터 투자를 받 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자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두 작품 모두 투자를 못 받고 세 상에 나올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았 던 셈이었다.

이것이 이규한을 배은망덕한 놈이 라고 욕했던 이유.

“주제도 모르고 나와 붙어 보겠다

는 거지?”

김기현이 이규한에게 영화 ‘광안 리’의 공동 제작을 제의했던 이유는 그의 능력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능력 있는 아랫사람을 알아보고 잘 부리는 것. 그게 네가 할 일이 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꺼내시던 말 씀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을 계속 곁 에 두려고 했다.

이규한은 능력 있는 아랫사람이었 으니까.

그런데 이규한은 자신의 제안을 거 절했다.

한마디로 굴러들어 온 복을 제 발 로 걷어찬 셈이었다.

“감히 내 제안을 거절해?”

다른 제작자들은 김기현이 이끌고 있는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을 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래서 노소를 불문하고 김기현에 게 찾아와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 러나 이규한은 먼저 공동 제작을 제 안했음에도 거절했다.

그 뻣뻣함과 오만함이 김기현의 빈 정을 상하게 만들었다.

바텐더가 따라 준 술을 다시 비운 김기현이 각오를 다지듯 혼잣말을 꺼냈다.

“이번 기회에 네가 아무것도 아니 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 주지.” 택시를 잡기 위해서 도로변에 서 있던 이규한의 눈에 버스가 들어왔 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버스 옆면 광고판이 보였다.

- 당신의 곁으로 ‘행복한 장의사’ 가 찾아갑니다.

영화 ‘행복한 장의사’의 광고판에 적혀 있는 광고 카피 문구를 바라보 던 이규한이 휴대전화를 꺼내며 방 향을 바꾸었다.

근처 포장마차로 들어간 이규한이 꼼장어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캬아. 좋다!”

소주를 한 잔 마신 이규한이 희미 한 웃음을 머금었다.

로얄 살루트 21년산보다 소주가 더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태생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을 때,포 장마차 안으로 권지영이 들어왔다.

“권 팀장,왔어?”

“어느 분 호출인데 감히 제가 거절 하겠습니까?”

“너무 늦은 시간에 불러내서 미안 해.”

“아니에요. 저도 마침 한잔하고 싶 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거 든요.”

권지영이 빈자리에 앉으며 소주잔 을 내밀었다.

“한 잔 주세요.” 이규한이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워 줄 때,권지영이 물었다.

“그런데 어찐 일로 제 생각이 나셨 어요? 혼자 마시기 적적해서요?”

“택시 잡으려고 서 있는데 ‘행복한 장의사’ 광고판을 달고 있는 버스가 지나가더라고. 그래서 권 팀장 생각 이 났지.”

“영광입니다.”

“영광이 아냐. 쓴소리 하려고 불렀 으니까.”

“무슨 쓴소리요?”

“그 광고판의 카피 문구를 보고 있

자니 섬뜩하더라고.”

“왜요?”

“당신의 곁으로 ‘행복한 장의사’가 찾아갑니다. 장의사가 찾아온다는데 권 팀장은 섬뜩하지 않아?”

“듣고 보니 좀 섬쩟하긴 하네요.”

“그 광고 카피 만든 게 누군지는 몰라도 한마디 해. ‘행복한 장의사’ 가 망한 것에는 그 광고 카피도 한 몫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두 눈을 빛내며 충고를 듣던 권지 영이 허름한 포장마차 내부를 둘러 본 후,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포장마차에서 술을 드 세요?”

“포장마차가 어때서?”

“이번 작품인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 흥행해서 돈 많이 버셨잖아요. 좀 더 좋은 곳에서 “좀 전에 다 날렸어. 세 치 혀를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못 참 았거든.”

9”

“아직 수양이 한참 부족한 것 같 다.”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신세한탄을 했다.

그렇지만 권지영은 전혀 알아들은 기색이 아니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좀 전에 사고를 쳤어. 그것도 대 형 사고.”

“무슨 대형 사고를 치셨는데요?”

“기현이랑 정면 대결을 펼치겠다고 선언해 버렸거든.”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의 김기현 대 표요?”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열등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참기 힘 들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수상한 여자’를 다가올 겨울 성수 기 시장에 개봉해서 스카이 엔터테 인먼트에서 준비 중인 ‘광안리’와 맞불을 놓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는 두 영화의 스코어.

모두 흥행에 성공했었다. 그렇지만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은 것은 ‘광 안리’였다.

‘수상한 여자’는 대략 800만 명.

‘광안리’는 대략 1100만 명.

‘광안리’가 ‘수상한 여자’에 비해서 약 삼백만 명 더 많은 관객을 극장 으로 불러모았었다.

‘참았어야 했는데!’

이규한이 자책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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