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60화 (60/272)

60 화

착한 일을 해서인가?

“무슨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데?”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 반응 아주 좋던데요.”

권지영 팀장이 덧붙인 말을 들은 이규한이 참지 못하고 실소를 터트 렸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 흥행에 성공해서 케이크를 대접한

거로군.”

“이규한 대표님이 저와 저희 회사 에 더 중요한 인물이 되셨거든요.”

“고맙네.”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한 순간,권 지영 팀장이 두 눈을 빛냈다.

“최소 삼백만은 넘겠던데요?”

“그럴 것 같아?”

“잘하면 350만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규한이 개봉 전 예상했던 ‘청춘, 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관객수 는 대략 200만 명.

청춘물의 한계가 있기에 300만 관 객을 돌파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 다.

그렇지만 오판이었다.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탄 ‘청춘,우리가 가장 빛 났던 순간’은 흥행가도를 달리며 200만 관객을 이미 돌파했다.

향후 열흘간은 특별히 위협이 될 만한 경쟁작이 없는 만큼 권지영 팀 장의 예상처럼 삼백만 명 이상의 관 객을 불러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기대 이상!’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창립 작품인 만큼, 이규한에게도 의미가 깊었다.

또,향후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행보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기대 이상의 흥행에 만족스 러워하던 이규한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권 팀장 표정이 왜 그래?” “제 표정이 어떤데요?”

“좀 슬퍼 보이는데?”

“어머,표 났어요?”

“우리 영화가 안 되길 바랐나 보 지?”

“에이,그럴 리가 있나요?”

“그런데 왜 슬픈 표정을 지었던 거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 때문에 ‘행복한 장의사’가 죽을 줬 거든요.”

권지영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 했다.

‘행복한 장의사’는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보다 약 1주일 뒤 에 개봉했던 작품으로 로터스 엔터 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았 다.

그렇지만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 던 순간’의 흥행세에 밀려 흥행에 실패했다.

개봉 2주차에 박스 오피스 9위로 추락한 ‘행복한 장의사’가 극적으로 반등해서 흥행에 성공할 확률.

무척 희박했다.

그리고 이것이 권지영 팀장이 슬픈 표정을 짓는 이유였다.

“괜찮아요. ‘수상한 여자’로 천만 영화 만들면 되니까요. 그리고 ‘청 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흥 행이 다행인 점도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

“‘수상한 여자’의 투자 심사에 유 리한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700만 관객을 돌파했던 ‘과속 삼대

스캔들’의 프로듀서.

300만 관객 돌파가 유력한 ‘청춘, 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제작 자.

이규한의 작품 이력은 로터스 엔터 테인먼트에서 진행될 ‘수상한 여자’ 의 투자 심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 쳤을 것이었다.

아마 권지영 팀장은 윗선에 이 부 분을 집중적으로 어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보다 ‘젊어진 그녀’의 투자 심 사가 반려된 것,확실한 거지?”

“네,공식 루트 통해서 빅박스 측 에 질의했고,제작사인 반덧불이가 투자 심사 철회 요청을 해서 심사가 반려됐다는 것 확인했습니다.”

권지영이 똑 부러지는 어투로 대답 했다.

‘결국 접었네!’

이규한이 영화사 반덧불이의 양승 일 대표에게 주었던 시간은 사흘.

그리고 양승일 대표는 그 후로 정 확히 사흘째 되는 날에 빅박스 측에 ‘젊어진 그녀’의 투자 심사를 철회 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넘었다!’

이규한이 비로소 안도했을 때,권 지영 팀장이 물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쓰셨기에 양승일 대표가 ‘젊어진 그녀’를 포기한 거

죠?”

“영업 비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영업 비밀이라니까. 그리고 권 팀 장 입장에서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 요한 것 아냐? 이제 천만 영화가 될 ‘수상한 여자’ 투자에 걸림돌이 사라졌으니까.”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걸까.

권지영 팀장은 더 질문하는 대신 투자 협정서를 꺼냈다.

“서류를 검토하시기 전에 먼저 감

사 인사를 드릴게요.”

“감사 인사?”

“좋은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 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이야.”

“네?”

“사인은 뒤로 미루자는 뜻이야.” 이규한이 말하자,권지영 팀장이 당황했다.

“왜 미루자는 건데요? 혹시……

“혹시 뭐야?”

“양다리 걸치신 건 아니죠?”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니라

다른 투자 배급사와도 ‘수상한 여 자’의 투자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권지영 팀장의 말에 담긴 속뜻이었 다.

“권 팀장. 내가 양다리 걸칠 정도 로 나쁜 놈은 아니다.”

“그럼 대체 왜 뒤로 미루자는 건데 요?”

“투자 체결 전에 해결할 문제가 하 나 남았어.”

이규한이 덧붙였다.

“양아치는 되고 싶지 않거든.”

커피전문점 빈상트.

지인경 작가가 커피를 한 모금 마 신 후, 미간을 찌푸렸다.

“커피가… 쓰네요.”

그녀가 꺼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 이 대답했다.

“사는 게 힘드신가 보네요.”

그 대답을 들은 지인경 작가의 입 가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전에 이규한에게 건넸던 말을 그 대로 돌려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커피가 쓴 이유가 짐작이 갑니 다.”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상실감.”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지인경 작가 의 표정이 씁쓸하게 바뀌었다.

“정답인 것 같네요.”

그런 그녀를 이규한이 안쓰럽게 바 라보았다.

‘노파에서 처녀가 된 그녀’.

지인경 작가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 오였다.

물론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지만,핵심 소재를 발굴해서 하

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들였던 노 력에 어울리는 대가를 받지 못했다.

각본 크레딧을 황병기 감독에게 빼 앗겼고,각본료도 제대로 지불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노파에서 처녀가 된 그녀’는 아예 세상에 나와서 빛을 볼 수 없 게 됐다.

그러니 상실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왜 괜찮은 겁니까?”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지인경 작가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안 괜찮습니다.”

“네?”

“그 상실감을 채워 드리고 싶습니 다.”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지인경 작가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떻게 말인가요?”

“‘수상한 여자’의 각본 크레딧에 작가님의 이름을 올려드릴 생각입니 다.”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 때문 일까.

지인경 작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수상한 여자’라는 작품 을 쓴 작가분들이 이미 계시잖아 요?”

“네,안유천과 김단비,두 명의 작 가가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 작 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를……?”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규한이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 자팀장 권지영에게 ‘수상한 여자’의 투자 체결을 조금만 미루자고 했던 이유.

지인경 작가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은 안유천 작가와 김 단비 작가를 만나서 지금까지 벌어 졌던 일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 고 지인경 작가의 이름을 각본 크레 덧에 올려도 되는가 여부에 대해서 의견을 구했다.

안유천과 김단비.

두 작가가 모두 동의해야만 지인경 작가의 이름을 각본 크레덧에 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시죠. 저희도 작가이기 때문에 얼마나 억울하고 상실감이 클지 충분히 짐작이 가거든요.” 다행히 두 작가는 흔쾌히 그 부분 에 대해 동의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인경 작가의 두 눈에 눈물이 맺 혔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규한이 고개를 혼들며 덧붙였다.

“포기하지 마세요. ‘노파에서 처녀 가 된 그녀’라는 재밌는 작품의 아 이디어를 떠올렸다는 것,지 작가님

이 재능이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바닥에는 괜찮은 사람 도 간혹 존재하니까요.”

“이 대표님처럼요?”

“제 얼굴에 금칠을 한 셈인가요?”

이규한이 농담을 던진 순간,지인 경 작가가 말했다.

“금칠할 자격 있으세요. 이 대표님, 제가 이 바닥에서 만났던 분들 가운 데 가장 좋으신 분이니까요.” “잘했어.”

지인경 작가의 이름을 각본 크레딧 에 올리기로 한 결정을 하고 나서 이규한은 홀가분함을 느꼈다.

마음의 짐을 완전히 덜어 낸 느낌 이랄까.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안 잊겠습 니다.”

지인경 작가가 떠나기 전,구십 도 로 고개를 숙이며 건넸던 인사를 떠 올리던 이규한이 펜을 들었다.

각본: 김단비,안유천,지인경.

각본 크레딧에 지인경 작가의 이름 을 적어 넣은 이규한이 백팩에 넣기 위해서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그때 였다.

- 9,225,498.

이규한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그 숫자를 확인한 이규한이 두 눈 을 치켜떴다.

‘달라졌다!’

지인경 작가의 이름을 각본 크레딧 에 기입한 순간,예상 관객수가 달 라졌다.

이전보다 약 10만 명 가까이 예상 관객수가 늘어 있었다.

“왜… 늘었지?”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인경 작가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 리긴 했지만,‘수상한 여자’의 시나 리오 책의 내용은 전혀 변하지 않았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관객수가 약 10만 명가량 늘어나 있는 현 상 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이유가 뭐지?”

그로 인해 고민하던 이규한이 한참

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계속 고민을 해 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이규한이 픽 웃으며 혼잣 말을 꺼냈다.

“착한 일을 해서인가?” 딩 동.

사무실 벨이 울린 순간,이규한이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규한이 인사하자,배정훈 감독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자,안으로 들어오시죠.”

배정훈이 권한 자리에 앉자마자, 이규한이 미리 사 놓았던 아이스 아 메리카노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왜 믹스커피가 아닙니까?” 당연히 믹스커피를 대접할 거라 예 상했기 때문일까.

배정훈 감독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 다.

“귀한 손님이니까요.”

“제가요?”

“네,제게는 아주 귀한 손님입니 이규한이 재차 강조했지만,배정훈 감독은 순순히 그 말을 믿지 않았 다.

되려 불신 어린 시선을 던지며 입 을 뗐다.

“제게 미안한가 보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요.”

배정훈 감독이 말했다.

그 대답을 꺼내는 그의 목소리,또 이규한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일말의 기대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규한이 배정훈 감독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서 얻어 냈던 시간은 고작 열홀.

열흘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그사이에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상 황을 바꿀 수 있겠느냐?

이런 생각을 가진 채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로 다시 찾아왔기에 배정훈 감독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 이었다.

“그사이에 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게 미안할 테고,그래서 비싼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 아닙니

까?”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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