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화
부메랑 “방금 원윈이라고 하셨습니까?”
윈원 전략(win-win strategy). 일종의 경영 전략이었다.
경쟁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간 에 돕지 않으면 상대 기업뿐만 아니 라 자사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 할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해서 양측의 공조를 통해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공동 제작을 해 보는 게 어떠냐는 양승일 대표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이규한이 코웃음을 쳤다,
‘나름 열심히 머리를 굴렸네!’
양승일 대표가 갑자기 공동 제작을 하자는 제안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 다.
이규한이 소송을 하자고 얘기한 후,그 역시 소송에 대비를 했을 터 였다.
그 과정에서 저작권 등록을 한 시 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내고,지 인경 작가를 회유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 다.
“엿이나 쳐 드세요.”
지인경 작가가 이렇게 말하면서 양 승일 대표와 황병기 감독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 다.
그로 인해 마음이 조급해진 양승일 대표는 다른 방법을 찾았으리라.
가장 유력한 안은 핵심 소재가 겹 쳐서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감 수하고 ‘젊어진 그녀’의 제작에 돌 입하는 것.
그렇지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고 있는 ‘수상한 여자’의 시 나리오를 읽고 난 후 포기했으리라.
핵심 소재가 겹치지만 완성도 측면 에서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가 ‘젊어진 그녀’에 비해 훨씬 낫다는 이규한의 의견에 양승일 대표가 동 조했던 것.
빈말이 아니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 측면에서 현격 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젊어진 그녀’의 제작에 돌입해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더라도 숭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리라.
그래서 고심을 거듭하던 양승일 대 표가 찾아낸 해법이 바로 공동 제작 이었다. 그러나 이규한은 양승일 대 표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설령 영화사 반딧불이와 공동 제작 을 한다고 해도 블루문 엔테테인먼 트에 이득이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 었다.
“맞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신 생 제작사인 만큼 아직 감독을 못 구했을 테니 여기 있는 황병기 감독 을 추천하겠네. 자네도 알겠지만,황 감독은 이미 실력 검중이 끝났고 감 각도 있는 편이네. 그러니 황 감독 이 합류한다면 투자를 받기에 무척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지. 그리 고 촬영을 비롯한 후반 작업 쪽은 우리가 맡겠네. 자넨 시나리오를 비 롯한 기획 개발 쪽에 집중하기로 하 는 것,어떤가?”
“수익 배분은요?”
“공평하게 5 대 5로 하세.”
“5 대 5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기획 개발 만 맡으면 되는데 이 정도 수익 배 분이면 내가 많이 양보한 걸세.”
양승일 대표가 선심 쓰듯 말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영 탐탁찮은 표 정을 짓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서 둘러 덧붙였다.
“왜? 수익 배분이 마음에 안 드 나? 그럼 6 대 4로 하세.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가 수익의 6을 가져가는 거지. 이 정도가 내가 해 줄 수 있 는 최대의 양보……
“안 합니다.”
양승일 대표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이규한이 끼어들었다.
“뭘 안 한다는 뜻인가?”
“공동 제작이요.”
“왜 안 한다는 건가?”
양승일 대표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 냈을 때,이규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난번에 제게 이 바닥을 모른다 고 충고하셨죠? 그래서 제가 나름 공부를 했습니다. 덕분에 알게 됐죠. 아까 추천하신 황병기 감독의 평판 이 무척 나쁘다는 것을. 투자 유치 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 가 될 정도로.”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황병기 감독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를……
“한두 명이 아닙니다. 작가,피디, 투자사 직원들까지. 모두 한 목소리 로 황 감독님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는 것은 그간의 행실에 문제가 있다
는 뜻이죠.”
“누굽니까? 대체 누가 그런 악의적 인 소문을 퍼트린 겁니까?”
“진짜로 몰라서 내게 묻는 겁니 까?”
찔리는 구석이 많아서일까.
이규한이 되물은 순간,황병기 감 독이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매섭게 노려보던 이규한 이 양승일 대표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전에 좋은 충고를 해 주셨으니, 이번에는 제가 충고를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떤 충고인가?” “좀 더 괜찮은 감독과 작업하세요. 신인 작가 등쳐서 정당한 대가도 지 불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빼앗고,그 걸로 모자라 각본 크레딧까지 빼앗 는 한심한 감독과 계속 작업하는 것. 양 대표님에게도 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 요소가 될 겁니다.”
이규한이 작심하고 꺼낸 이야기를 들은 황병기 감독의 와락 표정을 일 그러뜨렸다. 그리고 양승일 대표의 표정도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 다.
방금 이규한이 꺼낸 이야기.
꼭 황병기 감독만을 타깃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황병기 감독 혼자서 이런 비열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와 ‘젊어진 그녀’ 작업을 함께하 고 있는 제작사 대표인 양승일의 묵 인 혹은 동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던 것이었다.
일타이피.
이규한은 방금 꺼낸 말을 통해서 황병기 감독은 물론이고 양승일 감 독에게도 일침을 가한 셈이었다.
“그리고 ‘수상한 여자’의 감독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벌써 감독이 붙었다고? 누군가?”
“‘과속 삼대 스캔들’을 연출했던
강형진 감독입니다.”
‘과속 삼대 스캔들’로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으며 강형진 감 독은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형진 감독이 차기작으로 준비하 고 있는 ‘써니 걸즈’의 시나리오가 잘빠졌다고 충무로에 소문이 자자한 상황.
‘써니 걸즈’ 역시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강형진 감독이 ‘수상한 여자’ 의 연출을 맡는다면?
황병기 감독이 연출을 맡는 경우보 다 투자를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 다.
또,‘수상한 여자’가 개봉을 했을 때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도 더 높았 다.
양승일 대표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로 인해 당혹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양승일 대표에게 이규 한이 선고하듯 말했다.
“절대 공동 제작은 없습니다.”
양승일 대표가 야심차게 준비한 패 는 공동제작이었다.
그렇지만 준비했던 패가 무위로 돌 아가자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 다.
그런 그가 황병기 감독을 힐끗 바 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황병기 감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까놓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젊어진 그녀’의 시나 리오를 쓴 작가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요?”
“네,지인경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 습니다.”
황병기 감독이 꺼낸 말을 들은 이 규한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 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인경 작가 에 대해서 입에 올리지 않았던 양승 일 대표와 황병기 감독이었다.
그들이 뒤늦게 지인경 작가의 존재 를 밝히는 이유.
양심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임 전가!’
이규한이 막 그렇게 짐작한 순간, 황병기 감독이 덧붙였다.
“저희도 엄연히 피해자입니다. ‘젊 어진 그녀’의 시나리오를 쓴 지인경 작가가 표절을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황병기 감독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 한 순간,이규한이 대꾸했다.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 ‘젊어진 그녀’의 각 본 크레딧에는 황병기 감독님의 이 름이 올라가 있던데요?”
“그건……
정곡을 찔려 버린 황병기 감독의 말문이 일순 막혔다.
그런 그를 매섭게 노려보면서 이규 한이 덧붙였다.
“지인경 작가가 쓴 각본의 크레딧 을 빼앗은 겁니까?” “빼앗았다는 표현은 좀 그렇군요.”
“그럼 뭡니까?”
“지인경 작가가 써 왔던 시나리오 는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 서 제가 다시 수정을 했고,그 과정 에서 환골탈태 수준으로 완성도가 좋아졌습니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 보신 대표님이 제 기여도가 더 크다 고 판단해서 크레덧에 제 이름을 올 렸던 겁니다.”
황병기 감독이 변명했지만,이규한 은 코웃음을 쳤다.
“그럼 원작자인 지인경 작가에게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 주었습니까? 금 전적인 보상은 해 주었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워낙 형편없 는 작품이라서……
“형편없는 작품을 왜 고치신 겁니
까?”
“제가 잘 고치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핵심 소재는 괜찮았 거든요.”
“그럼 핵심 소재에 대한 대가라도 지불하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차차……
“결국 멧은 거죠.”
“ ……?"
“힘없는 신인 작가에게 정당한 대 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식 같은 작품
을 빼앗은 것이 맞지 않습니까?”
이규한이 다시 물은 순간,황병기 감독의 낯빛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땅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이규한이 덧붙였다.
“부메랑이 된 셈이네요.”
“부메랑… 이요?”
“과정이 어떠했든 각본 크레덧에는 황병기 감독님의 이름이 올라가 있 습니다. 그러니 표절에 대한 책임도 감독님에게 있죠.”
이규한이 꺼낸 말뜻을 이해한 황병 기 감독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욕심이 과하면 독이 되어 돌아오
그런 그에게 충고를 한 이규한이 양승일 대표를 바라보았다.
점점 상황이 불리하게 홀러간다는 사실을 알아챈 양승일 대표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만 선택하시죠.”
“선택을… 하라니?”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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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모양새도 좋지 않고 서로 체면도 구기는 소송 전을 하던가, 그게 아니면 깔끔하게 ‘젊어진 그녀’를 포기하던가. 양자택 이규한이 최후통첩을 했다.
선택이 쉽지 않은 걸까.
양승일 대표는 대답을 미루고 황병 기 감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게 다 네 탓이다. 무명 신인 작 가인 지인경의 각본 크레딧을 빼앗 으려고 네가 욕심을 부린 탓에 상황 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이 아니 냐?’
이런 원망과 후회가 담긴 시선이었 다.
그렇지만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 은 법이었다.
“네.”
“후회할 걸세.”
“후회 안 할 자신이 있습니다.” 원하던 것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양승일 대표와 황병기 감독은 낭패 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흘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 나 대표실을 빠져나가려 했던 이규 한이 문 앞에서 멈추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죠. 대중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남의 꿈과
희망을 빼앗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양심에 부끄 러운 일은 하지 맙시다. 만약 제가 드리는 조언을 받아들이셔서 지금과 다르게 변하신다면 다시 좋은 인연 으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날 이 꼭 찾아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양승일 대표와 황병기 감독에게 인사한 이 규한이 문을 열고 나갔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회의 실.
이규한이 혼자 앉아서 기다리고 있 을 때,권지영 팀장이 들어왔다.
“커피 대령입니다.”
권지영이 이규한의 앞에 프랜차이 즈 커피전문점에서 포장해 온 아이 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았다.
“그건 뭐야?”
“맛있어 보여서 같이 사 왔어요. 드세요.”
권지영이 조각 케이크도 함께 앞으 로 내밀었다.
“좀 부담스러운데.”
이규한이 포크를 들지 않고 말하 자,권지영 팀장이 웃으며 물었다.
“왜 부담스러우신데요?”
“너무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서.”
“에이,고작 케이크 한 조각 갖고 부담스러울 것까지나요.”
“고작 케이크 한 조각을 전에는 왜 대접 안 했어?”
이규한이 지적하자,권지영이 멋쩍 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와 지금,상황이 달라졌으니 까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