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55화 (55/272)

55 화

한판 붙으려고 “지인경 작가를 만나러 갈 때 선배 가 같이 찾아가 줬으면 좋겠습니 다.” 이규한이 술자리에서 하태열에게 했던 부탁이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준 것에 대 해 고마운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지인경 작가에게 아직도 미 안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둘 중 어느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 도 하태열은 기꺼이 이규한의 부탁 을 들어주었다.

- 이제 들어오세요.

이규한이 문자를 보냈다.

딸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태열은 이 규한이 문자를 보내자마자 카페 안 으로 들어왔다.

“하 피디님!”

하태열을 발견한 지인경이 자리에 서 벌떡 일어났다.

“지 작가,오랜만이야.”

하태열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을 뿐 인데,지인경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미안해.”

잠시 후,하태열이 사과했다.

그렇지만 지인경은 고개를 힘껏 내 저었다.

“하 피디님이 왜 제게 미안하세 요?”

“내가 힘이 없어서 미안해. 내가 힘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지 작가가 그런 몹쓸 일을 당하지 않게 막았을 텐데.” “아니요. 하 피디님 잘못이 아니에 요. 진짜 나쁜 놈은 그 개자식이죠.”

지인경이 입에 올린 개자식.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바로 황병기 감독이었다.

“그래. 진짜 나쁜 개자식이지.”

“맞아요. 개자식.”

황병기 감독을 함께 욕하면서 웃던 지인경이 이내 정색한 채 입을 뗐 다.

“소식은 들었어요.”

“내 소식?”

“네. 많이 힘드셨죠?” “뭐,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지인경 작가를 비롯한 스텝들을 위 해서 황병기 감독과 충돌했던 하태 열이 백수 신세가 됐다는 것을 그녀 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인경이 안타까워하며 입 을 뗐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지 작가 때문이 아냐. 그러니까 신경 쓸 것 없어.”

“하지만……

“그리고 이제는 괜찮아. 나 취직했 어.” 하태경이 램프 엔터테인먼트에 입 사한 소식을 전하자,지인경의 표정 이 밝아졌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란 말을 연신 되뇌는 지인경 에게 하태열이 덧붙였다.

“여기 이 대표 덕분이야.”

그 이야기를 듣고서 지인경이 이규 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은 어떤 사이세요?”

지인경은 하태열에게 질문을 던졌 다.

그렇지만 대답을 꺼낸 것은 이규한 이었다.

“제 대학 선배님이십니다. 그리고

능력 있는 선배님이 황병기 감독이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능력 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 이 좋지 않아서 작은 도움을 드렸던 게 다입니다.”

이규한이 설명을 마친 순간,하태 열이 거들었다.

“괜찮은 후배야.”

" ‘?,’

“얼마 전에 개봉했던 ‘과속 삼대 스캔들’,지 작가도 알지? 그 작품 에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했었어. 그 리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라는 제작 사를 차려서 이번에 개봉하는 ‘청 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을 제 작했지. 실력도 있고,감각도 있고, 또 의리도 있어. 무엇보다 양심이 있어. 절대 뒤통수는 안 칠 녀석이 란 뜻이지.”

하태열의 지원사격은 효과가 있었 다.

이규한을 바라보는 지인경의 눈빛.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적의가 사라진 자리에 호의가 깃들 어 있었다.

‘이제 때가 됐다!’

지인경 작가와 대화를 나눌 여건이 조성됐다는 것을 알아챈 이규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제가 지 작가님을 찾아온 이유는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입니 다.”

“어떤 이야기죠?”

“일단 이걸 먼저 보시죠.”

이규한이 백팩을 열고 ‘수상한 여 자’의 시나리오 책을 꺼내며 말했 다.

“지 작가님이 영화사 반딧불이에서 준비하는 ‘젊어진 그녀’라는 작품을 집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니요.”

“아니라고요?

“‘노파에서 처녀가 된 그녀’가 제 가 쓴 작품입니다. 제게 상의조차 하지 않고 제목을 바꿨던 거죠.”

지인경이 언성을 높였다.

그런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다 시 강렬한 적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녀가 드러낸 적의 는 불특정 다수의 영화계 사람들에 게 향한 것이 아니었다.

지인경에게 양아치 짓을 했던 황병 기 감독과 영화사 반딧불이의 양승 일 대표에 대한 적의였다.

“그런데 그 얘기는 왜 꺼내시는 거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 중 인 ‘수상한 여자’라는 작품과 ‘젊어

진 그녀’의 핵심 소재가 겹칩니다.”

“제가… 표절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런 뜻은 아닙니다. 비슷한 시기 에 같은 소재를 떠올렸고,각자 작 품을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일단 직접 보시고 나면 상황에 대 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겁니 다.”

이규한이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 오 책을 내밀었다.

지인경이 그 시나리오 책을 받아들 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 반시간 후, ‘수상한 여자’ 시나 리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지인경 이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이 대표님 말씀이 사실이네요.”

“공교롭게도 그렇습니다.”

“좀,아니 많이 놀랐어요.”

“놀라시는 게 당연합니다.”

이규한 역시 영화사 반딧불이에서 ‘수상한 여자’와 핵심소재가 겹치는 ‘젊어진 그녀’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었다. 그래서 지인경 작가가 놀라는 게 당 연하다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네요. 제 가 놀란 이유는 ‘수상한 여자’라는

……?"

“전개방식과 디테일,그리고 코미 디와 신파의 적절한 조화까지. 제가 썼던 작품보다 훨씬 월리티가 뛰어 나네요.”

이규한이 지인경에게 새삼스런 시 선을 던졌다.

작가에게 있어 작품은 자식처럼 소 중한 존재.

당연히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쓴 작품이 다른 작 가가 쓴 작품에 비해 모자란다는 것

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 고,지인경은 순순히 인정했다.

‘좋은 작가가 되겠네!’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작가가 발전하는 것은 부족함을 인 정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인경은 현재 보다 미래에 훨씬 더 좋은 작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었다. 어쨌든.

이규한이 본론을 꺼냈다.

“지 작가님이 쓴 작품을 황병기 감 독에게 빼앗기는 것이 안타깝지 않 으십니까?”

“당연히 안타깝죠. 그렇지만 더 화 가 나는 게 뭔지 아세요?”

“무엇입니까?”

“제 작품을 다시 찾아올 방법이 없 다는 것이에요.”

이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 서였다.

그렇지만 작가는 을의 입장이었다.

‘황병기 감독이 영화사 반딧불이의 양승일 대표와 손을 잡고 작품을 빼 앗기 위해서 계약서에 장난을 쳤다 면?’

작정하고 속이려 드는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 다.

지인경 작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제가 다시 작품을 찾아드리겠습니 다.”

아마 지인경이 현재 가장 바라고 있는 대답일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에게도 그럴 자신 이나 능력은 없었다. 그리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아야 했다. 대신 이규한은 다른 약속을 했다. “지 작가님이 공들여 쓴 작품을 되

찾아 드리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건 해 드릴 수 있습 니다.”

“다른 것이라면?”

“지 작가님이 쓰신 작품으로 다른 사람들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 은 제가 막아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한가요?”

“네. 약속드리겠습니다.”

어느 편이 유리할지에 대해서 고민 하던 지인경이 잠시 후 대답했다.

“그 약속,꼭 지켜 주세요.” 15.8%.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티켓 예매 순위 2위로 출발했다.

- 감독 한성근.

- 주연 배우 도경민,차수련.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모두 신인급 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봉 첫날 예매율 2위로 출발한 것은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홍보의 힘!’ 예매율을 확인한 이규한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홍보는 내게 맡겨 둬.”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공동 제작자인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의 김기현 대표가 했던 호언장담이 었다.

김기현은 그 약속을 지켰다.

제작비 규모를 감안하면 과하다 싶 을 정도로 홍보에 치중했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이규한의 휴대전화가 진동했 전화를 건 것이 김기현인 것을 확 인한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다.

“마침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김기현에게 용건이 있었던 참이었다.

“무슨 일이야?”

“예매율,확인했어?”

“응. 확인했어.”

“아쉽지 않아?”

“뭐가?”

“1위가 아니라 2위로 출발한 것 말이야.”

김기현의 목소리에는 못내 아쉬운 기색이 묻어났다.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아.”

잠시 후,김기현이 말했다.

“무슨 실수를 했다는 거야?”

“감독이나 배우,모두 신인급을 기 용해서는 안 됐던 것 같아.”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홍보팀에 압 력을 넣어서 어지간한 대작 영화 못 지않게 열심히 홍보를 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청춘,우리가 가장 빛 났던 순간’의 예매율은 1위가 아니 라 2위로 출발했다. 그리고 이런 결 과가 나온 것은 아무래도 감독과 배

우 모두 신인급을 썼기 때문이다.

방금 김기현이 꺼낸 말의 요지였 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영화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이규한이 대표인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와 김기현이 대표인 스카 이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한 작 품.

그렇지만 분업이 확실하게 이뤄졌 다.

김기현은 투자와 홍보를 책임졌고, 이규한은 기획 개발을 도맡았다.

그 기획 개발 과정에서 감독 계약 과 주연 캐스팅을 했던 것은 이규한 이었다.

그리고 김기현은 지금 기획 개발을 맡았던 이규한이 실수를 했다고 은 근히 책임 소재를 떠넘기는 것이었 다.

‘이제 막 개봉했어. 좀 느긋하게 기다려.’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이규한 이 참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두고 봐. 곧 박스오피스 1위를 탈 환할 테니까.”

“날 믿는다면서?”

“그래. 기왕 믿은 것,좀 더 믿어 볼게.”

김기현이 대답한 순간,이규한이 화제를 돌렸다.

“양승일 대표,알지?”

“반딧불이의 양승일 대표?”

“그래.”

“당연히 알지. 일전에 공동 제작 건 때문에 사무실에 한번 찾아왔었 어.”

“혹시 연락처도 알아?”

“연락처? 그때 명함을 받아 뒀던 것 같긴 한데. 왜? 필요해?” “응. 좀 알려 줘.”

“무슨 일인데?”

“작품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어 서.”

“너 설마 ?”

“설마 뭐?”

“나 버리고 양승일 대표와 작품 같 이하려는 것,아냐?”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대체 이유가 뭔데?”

이규한이 대답했다.

“한판 붙으려고.” - 대한민국 영화의 메카 충무로.

이런 표현이 마치 당연하게 여겨졌 을 정도로 충무로는 한국 영화 산업 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그런 이유로 충무로가 주목하는 배 우,혹은 충무로가 주목하는 감독이 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사용됐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달 라졌다.

대한민국 영화의 메카라고 불리는 충무로에는 영화 제작사가 많지 않 았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영화 제작 사들이 충무로를 떠나 다른 지역에 사무실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충무로가 아니라 논현동이 나 강남,합정,상암동 등지에 새 영화 제작사들이 많이 생기는 추세 였다.

이런 변화가 발생한 원인은 영화 산업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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