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52화 (52/272)

52화

젊어진 그녀 “빈말이라도 고맙네.”

“빈말 아니거든요.”

정색하고 있는 권지영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뗐다.

“그래서 권 팀장에게 기회를 줄까 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할 좋은 작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

이규한이 대답하자,권지영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어떤 작품인데요?”

이규한이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 신,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손님 대접이 너무 박한 거, 아 냐?”

“네?”

“커피 한 잔은 대접해 줘야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회의 실.

이규한은 텅 빈 회의실에 혼자 앉 아 있었다.

약 십 분쯤 지났을까?

권지영이 회사 인근 프랜차이즈 커 피전문점에 들어서 포장해 온 아이 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회의실 로 돌아왔다.

“그냥 믹스커피면 된다니까.”

“에이,그럴 순 없죠. 드세요.”

이규한의 앞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를 내려놓은 권지영이 맞은편에 앉

마음이 급해서일까.

이규한이 빨대에 입을 대고 한 모 금 마신 순간,권지영이 질문을 던 졌다.

“어떤 작품인데요?”

“장르는 판타지 로맨스와 휴먼 드 라마가 섞인 작품이야.”

“오,벌써 재밌는데요.”

“권 팀장.”

“네?”

“오버다.” 권지영이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작 품,꼭 저희가 하고 싶거든요.”

“말만이라도 고맙네.”

“말만이 아닙니다. 진짜 저희가 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패를 꺼내 보세요.”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백팩에 서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 책을 꺼냈다. 그렇지만 바로 권지영에게 시나리오 책을 건네는 대신 뜸을 들 였다.

“세팅은 어느 정도 돼 있어.”

“시나리오는 재고까지 나온 상태인 데 내가 판단하기에 워낙 잘빠져서 수정이 많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아. 바로 윤색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 아.”

“그 정도로 자신 있으세요?”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세가 아니었다.

- 9,534,725.

이규한의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 오 책을 집어 들고 감정했던 결과였 다.

당장 제작해서 개봉하더라도 900 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다 는 감정의 결과가 나왔었다.

이것이 이규한이 자신감을 드러내 는 이유.

만약 예전이었다면 권지영은 순순 히 믿지 않았으리라.

또,속으로 코웃음을 쳤으리라.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흥행으로 인 해 권지영은 이규한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감독도 정해졌어.”

“누군데요?”

“강형진 감독.”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권지영이 박수를 쳤다.

“와우,최고네요.”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는 권지영 을 확인한 이규한이 못마땅한 기색 을 드러냈다.

“권 팀장,태세전환이 너무 빠른 것 아냐?”

“제가 뭘요?”

“일전에 ‘과속 삼대 스캔들’ 투자 심사할 때,강형진 감독을 빼는 것 을 투자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기 억 안 나?”

이규한이 지적하자,권지영이 머리 를 긁적였다.

“제가 그랬나요?”

“기억이 안 난다? 지금 정치인 코 스프레하는 거야?”

“제가 잘못했습니다.”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던 권지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혹시 말씀하신 건 아니죠?”

“뭘 말하는 거야?”

“당시에 강형진 감독님에게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를 하는 조건

으로 감독님을 빼는 것을 원한다는 이야기요.”

“왜? 겁나?”

“당연히 겁나죠. 요새 강형진 감독 님이 잘나가시거든요.”

“말 안 했어.”

“정말이죠?”

“그래.”

“제가 이래서 이 대표님을 좋아한 다니까요.”

비로소 안도한 권지영이 다시 입을 뗐다.

“홍보 카피가 벌써 떠오르는데요. ‘과속 삼대 스캔들’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대한민국에 웃음주의보를 내릴 작품……. 그런데 제목이 뭐

죠?”

이규한이 대답했다.

“수상한 여자!”

“제목도 기가 막히네요. ‘과속 삼 대 스캔들’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대한민국에 웃음주의보를 내릴 작 품,‘수상한 여자’를 주목하라. 어때 요?”

권지영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 답했다.

“두 가지가 빠졌어.”

“뭐요?” “눈물과 감동.”

" ‘……?"

“‘과속 삼대 스캔들’ 제작진이 다 시 뭉쳤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을 웃음과 감동,눈물을 선사할 ‘수상 한 여자’가 나타났다. 어때?”

이규한이 살짝 수정한 홍보 카피를 내뱉자, 권지영이 감탄사를 내뱉었 다.

“좋네요.”

“얼마나?”

“빨리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 로.” ‘그럼 봐」

이규한이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 오 책을 건넸다.

경건한 표정으로 시나리오 책을 받 아 든 권지영이 물었다.

“바쁘세요?”

“왜?”

“식사하고 가실래요?”

“저녁?”

이규한이 손목시계를 살폈다.

‘오후 네 시?’

저녁을 먹기에는 한참 이른 시간이 었다.

“이 대표님 시간만 괜찮으시면요.”

“별다른 약속은 없어.”

“다행이네요. 지금 읽어 보겠습니 다.”

“알았어.”

이규한이 허락하자마자,권지영이 마음이 급한 듯 바로 ‘수상한 여자’ 의 시나리오 책을 펼쳤다.

어느새 집중한 권지영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 올렸다.

‘이것도 다른 점이네.’ “두고 가세요. 나중에 보고 연락드 투자팀 직원들이 가장 흔히 하는 말이었다.

예전에 이규한이 찾아왔을 때도 마 찬가지 였다.

투자를 받기를 원하는 시나리오 책 을 두고 가면,나중에 검토를 해 보 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는 답변을 받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권지영은 ‘수상한 여자’ 시나리오 책을 두고 가라는 말 대신 지금 바 로 읽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무척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리라.

‘어떤 반응이 돌아오려나?’

이규한이 기대에 찬 시선을 던졌 다.

그렇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았 다.

기본적으로 투자팀 직원들은 냉정 했기 때문이었다.

흥행할 요소를 찾지 못한다면,바 로 태도가 돌변할 수도 있었다.

약 한 시간 후,권지영이 ‘수상한 여자’ 시나리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재밌네요.”

권지영이 감상평을 꺼냈다. 그러나 이규한은 환하게 웃지 못했다.

그녀의 반응이 기대와 달랐다. 재밌다는 평가를 꺼내면서도 고개 를 자꾸 가웃거렸다.

“왜 그래? 마음에 걸리는 게 있 어?”

“네.”

“뭐가 마음에 걸리는데?”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아서요.”

“들어본 이야기 같다고?”

이규한이 당황했을 때,권지영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더듬었 다.

잠시 후,그녀가 무릎을 탁 쳤다.

“얼마 전에 양승일 대표가 찾아와 서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 얘 기를 했어요. 그 작품의 줄거리가 ‘수상한 여자’와 비슷한 측면이 있 어요.”

“양승일 대표?”

양승일 대표는 이규한도 알고 있었 다.

중견 영화 제작사인 반딧불이의 대

표.

‘그 작품의 제목이 뭔데?’ 이규한의 질문을 받은 권지영이 바 로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기억을 더 듬었다.

“뭐였더라?”

그런 그녀가 잠시 후 기억을 떠올 리는데 성공하고 대답했다.

“젊어진 그녀.” ‘이건 기가 막힌 소재야. 세상 어 느 누구도 이런 기막힌 소재를 떠을 릴 수 없어!’

신내림을 받은 것처럼 기가 막힌

그때,작가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 다.

그렇지만 착각에 불과하다.

작가가 다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가 막힌 소재를 떠올렸다고 판단 한 순간,전 세계에서 수십 명이 동 시에 비슷한 소재를 떠올린다는 연 구 결과가 있었다.

‘이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수상한 여자’의 핵심 소재.

우연한 계기로 인해 나이 든 여자 가 젊어진다는 것이었다.

무척 특이한 판타지 소재였지만,

누군가는 이런 소재를 비슷한 시기 에 떠올렸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 다.

그 소재에 대해서 들은 영화사 반 딧불이의 양승일 대표가 흥미를 드 러내며 관심을 표명했으리라.

‘감각은 있는 양반이니까!’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는 양승일 대

표.

영화의 트랜드와 홍행에 대한 감각 이 있는 편이었다.

또, 추진력도 있는 편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

어쨌든 이규한으로서는 무척 당혹

스러운 상황이었다.

‘침착하자,침착.’

갑작스런 변수가 등장했음을 알아 챈 이규한이 침착하기 위해 애쓰며 권지영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뭘요?”

“양승일 대표 말이야. ‘젊어진 그 녀’라는 작품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 찾아왔던 거잖아? 투자를 결정했냐 고?”

“거절했어요.”

“왜?”

“두 가지가 걸렸어요. 우선 소재는 참신한 편인데 디테일이 너무 약했 어요. 그리고 감독이 마음에 안 들 었어요.”

“감독이 누구지?”

“황병기 감독이요. 혹시 아세요?”

“알아. 그것도 아주 잘 알아.”

이규한이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했 다.

‘돌고 돌아 같은 결말이네!’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에 개봉한 ‘수상한 여자’.

8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으 며 흥행에 성공한 ‘수상한 여자’의 감독이 바로 황병기였다.

- 각본,연출: 황병기.

당시 크레덧에는 황병기가 각본과 연출에 모두 이름을 올렸었다. 그리 고 이규한은 정확한 속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김단비라는 신인 작가가 각본을 썼 지만,정작 황병기가 각본 크레딧에 서 김단비의 이름을 빼고 자신의 이 름을 올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김단비는 현재 ‘수상한 여자’의 공 동 각본에 이름을 올렸다.

이규한이 김단비에게 ‘수상한 여 자’의 집필을 맡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황병기 감독을 머릿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김단비가 없으니,황병기 감독은 ‘수상한 여자’를 만들 수 없다.’

이규한은 이렇게 확신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동안 황병기 감독의 이름 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유였다.

그런데 확신이 빗나갔다.

황병기 감독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 순간,이규한이 재빨리 물었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됐어?”

“아마 빅박스 쪽으로 갔을 거예

요.”

“빅 박스?”

“양승일 대표가 빅박스랑 관계가 좋잖아요.”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 유 치에 실패한 양승일 대표가 평소 관 계가 좋은 빅박스를 찾아갔을 거라 고 권지영은 예상했다.

“현재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

이규한이 부탁한 순간,권지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어렵지 않은데. 왜 그러세 요?”

“이번 작품인 ‘수상한 여자’. 포기 할 수가 없거든.”

“왜요?”

이규한이 힘주어 대답했다.

“천만 영화로 만들 자신이 있어.” 천만 영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 게는 꿈이나 다름없는 단어였다. 그리고 천만 영화라는 단어에는 묘 한 중독성이 있었다.

권지영 역시 영화계에 종사하고 있 는 인물.

이규한이 천만 영화라는 단어를 꺼 낸 순간,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천만 영화를 만들 자신이 있 으세요?”

“자신 있어.”

이규한이 힘주어 한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천만 영화를 로 터스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만들고 싶어.”

“저희야 영광이죠.”

“권 팀장도 이제 승진해야지.”

“네?”

“이번에 천만 영화 하나 만들어 내 면 승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지 않을까?”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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