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50화 (50/272)

50 화

돈이 필요합니다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해요.”

안유천의 조언을 들었음에도 김단 비가 여전히 망설이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웃으며 말했다.

“저 녀석 말대로 해요. 만약 내가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실망하더라도 고기값을 뱉어내라고 요구하지는 않 을 테니까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의 김단비가 젓

가락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규한이 열심히 먹고 있는 두 사 람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였다.

지이엉. 지이잉.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자는 김미주.

“옹,미주 씨.”

“출근 안 하세요?”

“해야지. 내가 보고 싶어서 그새를 못 참고 전화했어?”

“대표님이 그렇게 매력이 철철 넘 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멋쩍게 웃은 이규한이 물었다.

“그런데 왜 전화했어? 무슨 일 있 어?”

“손님이 찾아왔어요.”

“손님? 누구?”

“배정훈 조감독이요.”

“배정훈 감독이 찾아왔다고? 언 제?”

“한 시간쯤 됐어요.”

“지금 뭐 하고 있는데?”

“믹스 커피를 벌써 네 잔째 마시면 서 대표님이 오길 기다리고 있어 요.” “무슨 용건으로 찾아왔대?” “몰라요.”

“왜 몰라?”

“대표님이 오면 직접 만나서 말하 겠대요.”

“그래?”

이규한이 급히 일어나며 물었다.

“배 감독,표정은 어때?”

“음,나라를 잃은 표정이에요.”

수심이 가득한 배정훈의 얼굴이 눈 앞에 떠오른 순간,이규한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때,김미주가 말했다.

“빨리 오세요. 둘이서 사무실에 있 으려니 답답해 죽겠으니까. 램프 엔 터테인먼트로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럼 안 되지.”

“삼십 분 드릴게요.”

“오케이. 지금 바로 들어갈게.”

이규한이 통화를 마치자마자,안유 천이 물었다.

“지금 들어가시려고요?”

“그래,급한 일이 생겼다.”

이규한이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 내서 안유천에게 내밀었다.

“받아. 고생했으니까 둘이서 고기 실컷 먹고 뮤지컬이라도 한 편 봐.” “이 신용카드로요?”

“그래.”

“혹시… 한도초과 된 카드는 아니

죠?”

“싫으면 말고.”

“에이,싫다고는 안 했습니다.”

안유천이 냉큼 신용카드를 받아 들 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덧붙였다.

“카드 쓴 내역. 내 휴대전화에 바 로 전송된다. 적당히 긁어라.”

끼이익.

이규한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 자,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김미주가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 왔어.”

“일찍도 오셨네요.”

“최선을 다해서 달려왔어.”

김미주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이규 한이 소파에 앉아 있던 배정훈 감독 의 앞으로 다가갔다.

“감독님.”

“오셨네요?”

“왜 미리 전화를 안 주셨습니까? 그럼 기다리지 않으셨을 텐데.”

“바쁘실 것 같아서요.”

“네?”

“제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 니까요. 그래서 그냥 기다렸습니다.”

배정훈 감독이 꺼낸 말을 들은 이 규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하네!’

자신감이 전혀 없는 모습은 지난번 과 그대로였다.

그런 배정훈 감독에게 이규한이 힘 주어 말했다.

“틀렸습니다.”

“뭐가 틀렸단 말씀입니까?”

“감독님은 아주 중요한 분입니다.”

r?,

“적어도 제게는 가장 중요한 분입 니다.”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배정훈 감독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도 잠시,배정훈 감독의 두 눈에는 이내 불신이란 감정이 깃 들어 있었다.

“제 말을 안 믿으시는군요.”

“솔직히 믿기 어렵네요.”

“왜 입니까?” “…계약을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배정훈 감독이 잠시 망설이다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뺨을 붉혔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배정훈 감독의 작품인 ‘스파이들’ 에 이규한은 관심이 있었다.

아니, 관심이란 말로는 부족했다.

이규한은 ‘스파이들’이란 작품을 꼭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 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은 배정 훈 감독과 계약을 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계약을 못 했다.

그 이유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 다.

3억 5천만 원.

‘과속 삼대 스캔들’이 흥행한 덕분 에 프로듀서로 참여해 지분 계약을 했던 이규한이 얻은 수익이었다. 그 러나 현재 이규한은 빈털터리 신세 나 마찬가지였다.

3억 5천만 원 가운데 2억 5천만 원은 여동생인 이규리에게 맡겼고, 나머지 1억은 강형진 감독과 계약을 할 때 계약금으로 지불했기 때문이 었다.

이규한이 배정훈 감독과 계약을 하 지 못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지

만,배정훈 감독은 자세한 속사정을 몰랐다.

그의 입장에서는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의 대표인 이규한이 계약을 제 안하지 않았다는 결과만이 중요할 터.

‘스파이들’이란 작품을 제작하려는 이규한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서운한 기색을 은연중에 드 러내고 있는 것이었고.

“곧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요?”

이규한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 설였다.

배정훈 감독과 계약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금.

그러나 자금이 언제 들어올지 확신 하기 어려웠다.

‘최소 삼 개월은 필요해!’

어제 시사회를 했던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개봉이 코앞으 로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 흥행에 성공해서 수익을 올릴 것이 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영화가 흥행에 성

공한다고 해서 바로 정산을 해서 입 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산을 거쳐서 제작사로 수익이 들 어오기까지는 대략 삼 개월의 시간 이 소요됐다.

그래서 이규한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삼 개월 정도만 기다려 주십시 오.”

“왜 하필 삼 개월입니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스카이 엔 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한 ‘청춘, 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란 작품 이 곧 개봉을 합니다. 그 작품이 흥 행에 성공해서 수익을 정산 받으면 바로 감독님과 계약을 할 생각입니 다.”

이규한이 차분하게 계획을 설명했 다. 그렇지만 그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정훈 감독은 마뜩찮은 표정이었다.

“만약 수익이 안 나면요?”

“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 란 작품이 흥행에 실패해서 손익분 기점을 넘기지 못하면 수익이 발생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럼 저와 의 계약도 불가능할 것 아닙니까?”

‘무조건 흥행합니다!’ 이규한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영화가 흥행해서 수익을 거둘 것이 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배정훈 감독은 이규한이 갖 고 있는 특수한 능력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설령 이규한이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순순히 믿지 않을 것이었 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로 인해 이규한이 고민에 잠겼을 때였다.

“…돈이 필요합니다.” 배정훈 감독이 어렵사리 입을 뗐 그 말을 들은 이규한이 고개를 들 었다. 그리고 배정훈 감독을 다시 살피던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에 비해서 배정 훈 감독의 낯빛은 더 어둡게 변해 있었고,얼굴도 푸석했다.

핏발이 선 흰자위를 확인한 이규한 이 물었다.

“왜 돈이 필요하신 겁니까?”

“감독으로 데뷔하겠다고 조감독을 관둔 지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카 드로 돌려막고 있지만,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팔려고 합니다.” 배정훈 감독이 꺼낸 말을 들은 이 규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파이들’ 시나리오에 관심을 가 지는 제작사가 있습니다. 제게 시나 리오를 팔라고 하더군요.”

“그 제작사에서 감독님께 연출을 맡기겠다고 제안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스파이들’의 시나리오만 넘기라고 했습니다.”

이규한이 비로소 상황을 파악했다. 제작사 가운데 한 곳에서 배정훈 감독이 쓴 시나리오 책인 ‘스파이 들’을 구매하고 싶어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출은 배정훈 감독이 아 닌 다른 감독에게 맡기려고 한다.

아직 입봉하지 못한 배정훈 감독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대표님께서 제 작품인 ‘스 파이들’에 관심을 드러내셨기 때문 에 시나리오 책을 다른 제작사로 넘 기기 전에 미리 알려드리는 것이 도 리라고 생각해서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로 찾아온 겁니다.”

배정훈 감독이 이규한을 찾아온 용 건을 밝혔다. 그리고 용건을 밝힌 그는 할 일을 마쳤다는 둣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이 조급해진 이규한이 서둘러 물었다.

“실례지만 얼마에 파시기로 했습니 까?”

“그게 왜 궁금하신 겁니까?“

“저도 ‘스파이들’에 관심이 있으니 까요.”

“삼천만 원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삼천만 원이요? 혹시 일시불입니 까?”

“아닙니다. 계약금 천만 원,투자가 확정됐을 때 천만 원,촬영에 들어 갈 때 천만 원. 이렇게 나눠서 받기 로 했습니다.”

이규한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총액은 삼천만 원이었지만,일시불 이 아니라 계약금 천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잔금은 투자가 확정됐을 때, 그리고 촬영에 들어갈 때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제작사는 어딤니까?”

“플러스 엔터테인먼트입니다.”

‘플러스 엔터테인먼트?’

이규한이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지만 플러스 엔터테인먼트라는 제작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신생 제작사일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이규 한의 눈앞에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배정훈 감독이 집필한 ‘스파이들’ 시나리오에 관심이 있어서 싼값에 구입하지만,신생 제작사인 플러스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아서 투자 를 받고 개봉할 확률?

무척 낮았다.

그럴 경우 배정훈 감독은 ‘스파이 들’이란 작품은 플러스 엔터테인먼 트로 넘긴 대가로 계약금 천만 원을 받는 게 전부였다.

‘고작 천만 원에 ‘스파이들’을 빼앗 긴다?’

너무 헐값이었다.

정작 당사자도 아닌 이규한이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그래서 이규한이 말했다.

“감독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은 연 출을 맡아서 입봉하시는 게 아닙니 까?”

“맞습니다.”

“그런데 왜 감독 계약을 포기하고 시나리오 책만 넘기시려는 겁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돈이 필요합 니다.” 배정훈 감독에게서 돌아온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총액 삼천만 원.

그가 ‘스파이들’ 시나리오 책을 플 러스 엔터테인먼트에 넘기기로 하고 받기로 한 금액이었다.

그렇지만 배정훈 감독이 손에 쥘 돈은 계약금 천만 원이 전부일 확률 이 높았다.

그런 사실을 배정훈 감독이 모를 까?

그럴 확률은 낮았다.

여러 영화들에 조감독으로 참여했 던 배정훈은 영화판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내리려는 것 은 그의 사정이 무척 급하기 때문이 었다.

‘비난할 수는 없어!’

각자 사정이 있는 법.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은 아쉬 움을 떨치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스파이들’이란 작품은 플러스 엔 터테인먼트의 것이 됐다. 그리고 작 품성을 인정받았던 배정훈 감독의 입봉작인 ‘스파이들’이란 작품은 아 예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묻혀 버릴 가능성도 컸다.

‘바뀐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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