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46화 (46/272)

46 화

주사위는 던져졌다 깜깜이 선거.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읽을 수 있 는 방편은 여론 조사 뿐이었다.

여론 조사 결과를 통해서 선거에 나서는 후보의 지지율이 얼마나 되 는지 알 수 있었고,그 지지율에 맞 춰서 선거 전략을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여론 조사는 허용되는 기

간이 존재했다.

선거의 공정성을 담보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선 거일로부터 6일 전에는 여론 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됐다. 그리고 여론 조사 공표가 불가능한 이 기간부터 선거일까지를 흔히 깜깜이 선거라고 불렀다.

여론의 향방을 알 수 없는 만큼, 선거를 앞둔 후보들의 불안감은 극 에 달했다. 그리고 지금 이규한의 심정이 깜깜이 선거를 치르는 후보 와 홉사했다.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예상 관객수를 볼 수 없게 된 지금

의 상황.

이규한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무기 를 잃어버린 셈이었다.

당연히 불안감도 커졌다.

“어차피 마찬가지잖아.”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다.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 때 눈앞에 떠오르는 숫자를 통해 예상 관객수 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것.

다른 영화 제작자들은 가지지 못한 이규한만이 가진 능력이었다. 그리 고 이규한이 이런 특수한 능력을 갖 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특수한 능력을 갖기 전까지는 다른 영화 제작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상 관객수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제작했었다.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듯 이규한이 다시 혼잣말을 꺼냈다. 그러나 좀처럼 불 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크게 난다는 속담.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특수한 능력 이 없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예상 관객수를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가 사라지자 더욱 불안

함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상 관객수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청춘, 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제작이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었 다.

투자를 받았고,감독이 정해졌고, 주연 배우들의 캐스팅까지 끝난 상 황.

아직 조연 캐스팅이 남았지만,이 규한의 경험상 조연들의 면면은 영 화의 관객수에 아주 크게 영향을 미 치는 요인이 아니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규한이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 던 순간’의 시나리오를 챙겨서 사무 실을 빠져나왔다.

“이규한!” “야,이규한. 내 말 안 들려?” 김기현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나서야 이규한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어?”

김기현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규한이 물었다.

“아까 왔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몰랐어?”

“응,몰랐어.”

“정신을 어디 팔고 있는 거야? 그 런데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어떤데?”

“한숨도 못 잔 얼굴인데?”

김기현의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그의 말처럼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표 나?”

“응,많이. 그런데 왜 못 잤어?”

“긴장돼서.”

오늘은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언론 시사회를 겸한 VIP 시 사회가 개최되는 날이었다.

마침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창 립 작품인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 던 순간’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 는 날.

또,영화의 성패를 가능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과속 삼대 스캔들’의 시사 회 때와는 또 달랐다.

- 7,352,234.

이규한이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과 속 삼대 스캔들’의 예상 관객수였 다.

이미 예상 관객수를 알고 있는 상 황이었던 만큼,‘과속 삼대 스캔들’ 의 흥행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 다. 그래서 시사회를 앞두고 딱히 긴장을 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때,우리’에서 ‘청춘,우리가 가 장 빛났던 순간’으로.

영화의 제목을 변경하면서 예상관 객수를 확인했던 것이 마지막이었

당시에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예상 관객수.

변수는 크게 둘이었다.

하나는 이도빈 캐스팅을 취소하고 새롭게 남자 주인공으로 낙점한 도 경민의 연기력이었고,나머지 하나 는 조연 캐스팅이었다.

그러나 일전에도 말했듯이 후자인 조연 캐스팅은 관객수에 크게 영향 을 미치는 편이 아니었다.

따라서 도경민이 이번 작품에서 어 떤 연기를 보여 주는가가 가장 큰 변수였다. 그리고 이규한이 밤잠을 설쳤을 정도로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왜 이래? 너답지 않게?”

김기현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이규한이 김기현을 바라보았다.

김기현은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 던 순간’의 공동제작자.

그 역시 완성된 ‘청춘,우리가 가 장 빛났던 순간’을 이번 시사회에서

처음 접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김기현의 표정은 이규한 과 달랐다.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흡사 자신이 제작한 작품이 아닌 지인이 제작한 영화의 시사회에 참 석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유로 웠다.

해서 이규한이 물었다.

“넌 긴장되지 않아?”

“전혀.”

“왜 전혀 긴장되지 않는데?”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잖 아.”

“앞으로도 계속 영화 만들 건데 일 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김기현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얼핏 들으면 옳은 이야기처럼 느껴 졌다.

그렇지만 한 편이라도 영화 제작을 경험해 본 제작자라면 방금 김기현 이 꺼낸 말이 얼마나 오만한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제작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바 로 실패자로 낙인이 찍히는 곳.

그래서 재기의 기회조차 얻기 힘든 바로 냉혹한 영화판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김기현의 경우는 달랐다.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인 씨제스 엔 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사인 김대환을 부친으로 두고 있는 김기현은 설령 제작한 영화 한 편이 흥행에 실패하 더라도 재기의 기회가 주어졌다.

아니,한 편이 아니라 몇 편의 영 화가 홍행에 실패해도 씨제스 엔터 테인먼트의 투자를 받아서 다시 영 화 제작에 나설 수 있었다.

‘역시 다르네!’

자꾸 깜박했지만,김기현과 이규한

은 인생의 출발점부터가 달랐다. 이규한이 새삼 그 사실을 다시 깨 달았을 때였다.

“긴장이 되기보다는 기대가 돼.” 김기현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기대?”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이규한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지 기대가 되 는 것은 어쩔 수 없네. 예상 관객수 는 얼마나 돼?”

“이백만 정도 예상하고 있어.” 도경민을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예 상 관객수는 220만 명 선이었다.

도경민의 연기력이라는 변수를 감 안하더라도 최소 200만 이상의 관 객을 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대답하자,김기현 의 입가에 떠을라 있던 미소가 짙어 졌다.

“이제야 이규한답네. 이 정도 자신 감은 있어야지.”

흡족한 표정을 짓던 김기현이 다시 입을 뗐다.

“참,오늘 뒷풀이 겸해서 술 사는 것,안 잊었지?”

“안 잊었어.”

“오케이. 벌써 기대가 된다.”

“뭐가 기대가 된다는 거야?” 김기현이 대답했다.

“잘난 이규한이 만나는 여자를 드 디어 볼 수 있으니까.” 뒤풀이를 겸한 술자리.

김기현이 이도빈을 캐스팅했을 때, 이규한은 술을 사기로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미루고 미루다가 ‘청춘, 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시사회 가 열리는 오늘 술을 사기로 한 약 속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

늘 이규한이 마련한 술자리에는 서 지연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때는 오빠가 만나는 여자분도 소개시켜 주세요.”

일전에 커피전문점에서 만났을 때, 서지연이 했던 부탁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고심 끝에 오늘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서지연과 송하윤.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의 인생에 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두 명 의 여인이었다.

그 미래에서 이규한은 서지연을 선 택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 다.

이규한과 서지연은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약혼까지 했지만 결국 파혼했기 때 문이었다.

서지연과 파혼을 경험하고 난 후에 이규한이 만난 것이 송하윤이었다.

물론 송하윤과의 결혼 생활도 순탄 치는 않았다.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며 끝내 이혼 에 이르렸으니까.

그런 결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규한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 고 길었던 고민의 결과는 송하윤이 었다.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불행한 결혼 생활이 반복되지 않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규한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리 고 아무 근거도 없이 한 생각은 아 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던 여동생 이 규리와의 관계는 회복되고 있었고,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던 엄마도 건강 검진을 일찍 받으신 덕분에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송하윤과의 미래도 바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송하윤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를 굳이 꼽자면 미안 해서였다.

송하윤은 좋은 여자였다.

만약 영화 일을 하는 자신이 아니 라,다른 평범한 남자를 만났다면 좋은 가정을 꾸려서 행복한 삶을 영 위했을 정도로.

그래서 송하윤을 불행하게 만들었 던 것이 못내 미안했고,빚을 갚고 싶었다.

“나는 아직 젊다.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당당히 맞설 것이다!”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남자주인공 배역을 맡은 도경민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박수 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가스! 가스! 가스!”

입대해서 화생방 훈련을 받느라 눈 물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된 도경 민이 침을 흘리며 소리치는 모습.

“넌 내가 만난 인생 최악의 쓰레기 야!”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 빨을 얻어맞는 도경민의 모습.

찌이익!

갓난아기의 기저귀를 갈다가 오줌 세례를 받고 눈물과 함께 오줌을 소 매로 닦아 내는 도경민의 모습까지.

에필로그 영상이 끝나고 나서야 이 규한이 기다리던 박수가 터져 나왔 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웃음소리도 터져 나왔다.

‘됐다!’ 객석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 온 순간,이규한이 불끈 주먹을 움 켜 쥐었다.

예전에 경험했던 ‘그때,우리’의 시 사회에서 영화가 끝나고 난 후의 반 응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영화가 너무 어둡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느낌!”

“잘 만들긴 했는데 돈 내고 보고 싶지는 않아!”

“웃을 타이밍이 하나도 없네.” 당시에 객석에서 홀러나왔던 관람 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화가 끝나자마자,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상업성을 보완하자!’

이규한이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 던 순간’을 제작하기로 결심하면서 세웠던 목표였다. 그리고 이 웃음소 리가 그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규한 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환호하는 대신 객석의 평가에 귀를 기울였다.

“간만에 볼 만한 청춘물 하나 나왔 네.” ‘요새 젊은 애들 현실을 심각하게

안 그려서 좋았어.”

“마땅한 경쟁작도 없고. 중박은 치 지 않을까?”

“신인 감독치곤 짜임새 있게 잘 만 들었다.”

“도경민이 아이돌 출신치고 연기를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 예 상보다 훨씬 잘하는데?”

객석에서 차례로 홀러나오는 평가 를 들은 이규한이 비로소 긴장을 풀 었다.

그 평가들 가운데 가장 기쁜 것.

도경민의 연기를 칭찬하는 평가였 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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