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45화 (45/272)

45 화

과욕은 금물 ‘일단 살펴보자!’ 이규한이 재빨리 시나리오 책의 책 장을 넘겼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까 ‘사랑이 운다’ 시나리오 책을 볼 때 와 달랐다.

‘무조건 내가 제작한다!’

이런 결심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스파이들’ 시나리오 책을 잔뜩 집 중한 채 정독했다.

그 정독을 마친 후,이규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달라!’

‘스파이들’이 개봉한 후 이규한이 극장에서 보았던 내용과,지금 시나 리오 책에 적힌 내용은 일치하지 않 았다.

각색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면서 내용이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그것을 확인한 순간,다행이란 생 각이 들었다.

수정의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바꾼다면?’ 송강오와 임동완.

각 세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들 을 주연으로 썼음에도 ‘스파이들’의 최종 관객수는 341만에 그쳤다.

물론 341만의 관객수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스파이들’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꽤 짭짤한 수익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계자들 은 ‘스파이들’이 기록한 341만 명이 란 스코어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규한 역시 아쉬움을 느꼈 었다.

그 이유는 송강오와 임동완이라는 최고의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드라마성을 더 강하게 풀었어야 맞지 않나?’

개봉했던 ‘스파이들’의 주 장르는 첩보 액션물.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에 치중하다 보니,드라마성이 약했다.

영화를 볼 당시 이규한은 그 부분 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어떻게 풀면 드라마성을 강 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도 찾아냈 다.

그렇지만 해답을 찾았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스파이들’은 개봉한 후였기 때문이었다.

또, 이규한은 ‘스파이들’ 제작과 무 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직 개봉하기 전인 ‘스파이들’의 시나리오 책을 읽고 나니 당시에 찾 아냈던 해답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 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소용 이 있었다.

‘스파이들’은 아직 개봉하기는커녕 제작에도 돌입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또,이규한이 ‘스파이들’의 제작을 맡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감독님!”

잔뜩 긴장한 채 평가를 기다리고 있던 배정훈 감독에게 이규한이 말 했다.

“이 영화,제가 제작하고 싶습니 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존재 영화 제작이란 작업도 마찬가지였 다.

현재 이규한이 제작에 눈독을 들이 고 있는 것은 총 네 작품.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과 ‘수상한 여자’,‘스파이들’,그리고 ‘반가운 고스트’였다.

이규한이 판단하기에 중요한 것은 순서.

네 작품 가운데 ‘청춘,우리가 가 장 빛났던 순간’을 가장 먼저 제작 해야 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실제로 ‘청춘, 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감독과 주연 캐스팅까지 거 의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지금 이규한이 고심하는 것은 차기 작을 무엇으로 선택하고 집중하느냐 였다.

그때 였다.

딩동.

벨이 울렸다.

이규한이 문을 열자,김미주가 서 있었다.

“어,미주 씨가 웬일이야? 출근은 다음 주부터잖아?”

“집에 누워 있으니까 심심해서요.”

“그래서 일찍 출근을 했다? 미주

씨 인생도 참

“재미없죠?”

“그래.”

“그럼 다시 집에 갈까요?”

“여기까지 온 김에 밥이나 먹자. 반주도 한잔하고.”

“낮술 좋죠. 어쩐지 자꾸 일찍 출 근하고 싶더라.”

김미주가 반색했다.

깜뽕과 탕수육을 시켜 놓고,이규 한은 김미주와 술잔을 기울였다.

‘혼자 먹는 것보다는 낫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둘이서 소주 병을 거의 비웠을 때,김미주가 물 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 어떤데?”

“부도 일보 직전에 처한 제작사 대 표의 표정 같은데요.”

“그래?”

“혹시 내 월급도 못 줄 정도로 회 사가 어려운 건 아니죠?”

“그 정도는 아냐. 차기작 투자도 받았고,이미 제작이 마무리 단계 야.”

“그런데 뭐가 걱정이에요?”

“그게……

이규한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멈

엄밀히 말하면 딱히 걱정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의 표정 이 어두웠던 이유는 마음이 조급해 서였다.

‘어서 성공하고 싶다!’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더욱 성공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다가 아니었다.

이규한은 이미 미래에 흥행에 성공 할 작품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 다. 그러다 보니 흥행할 작품들을 모두 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서 자꾸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이었 다.

‘과욕이야!’

이규한이 자책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왜 이 피디님,아니 대표님 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김미주가 불쑥 물었다.

“설마……

“설마 뭐요?”

“사랑 고백은 아니지?”

응수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한 걸 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김미주가 다시 입을 뗐다.

“이 바닥 인간들 중에 제일 인간적 이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인간적이야?”

“적어도 불쌍한 감독들과 작가들 뒤통수는 안 치니까요. 또,남의 것 을 탐내지는 않으니까요.”

이규한이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 갔다.

방금 김미주가 한 말을 요약하면 욕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규한은 자책을 할 정도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걸 간파했어!’

김미주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이규한이 욕심 때문에 너무 서두른 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란 생 각이 들었다.

해서 이규한이 새삼스런 시선을 던 지며 입을 뗐다.

“내가 회사 차리고 제일 잘한 일은 미주 씨를 영입한 것 같네.”

“그럼 연봉 협상 다시 할까요?”

“술 마시자.”

이규한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을 때 였다.

지이잉. 지이잉.

탁자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여보세요.”

“대표님,도경민입니다.”

“네,결정했어요?”

“이번 영화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 를 주셨으니까 오히려 제가 감사하

“그럼 자세한 계약 조건은 소속사 와 다시 협의할게요.”

“알겠습니다.”

“좋은 연기,기대할게요.”

도경민과의 짤막한 통화를 마친 후,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때였다.

“누구에요?”

김미주가 물었다.

“도경민이라고 아이돌 그룹인 “액스칼리버 리더 도경민이요?”

“미주 씨도 알아?”

“알죠.”

“미주 씨가 어떻게 알아?”

“집에 TV 있거든요.”

김미주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 그가 알고 있는 김미주는 아이돌 그룹에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 었다.

그런 그녀가 액스칼리버의 리더인 도경민을 알고 있다는 것이 무척 고 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이규한이 술잔을 마저 비우고 일어섰다.

책상 앞에 앉은 이규한이 ‘청춘, 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시나리 오 책을 꺼냈다. 그리고 펜을 들고 새로운 정보를 기입했다.

남자 주인공: 도경민.

이도빈을 대신해 도경민을 남자 주 인공으로 기입한 후,이규한이 시나 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얼마나 늘어날까?’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이규한의 표정이 이내 찌푸려 졌다.

예상 관객수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 었다.

이번에는 숫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왜 이러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인해 이규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숫자가 떠오르지 않지?’

무척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숫자가 떠오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 던 이규한이 일단 자세를 고쳐 앉았 다.

‘자세가 너무 불량해서 그랬을 수 도 있어!’

이렇게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초보운전자처럼 허리를 꼿꼿 하게 세우고 잔뜩 긴장한 채 이규한 이 양손으로 시나리오 책을 다시 음 켜 쥐었다.

이번에도 눈앞에 숫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자세가 문제가 아닌가?’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시나리오 책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이규한이 고개를 돌렸다.

‘다른 시나리오 책은?’

마침 배정훈 감독에게서 건네받은 ‘스파이들’ 시나리오 책이 눈에 들 어왔다.

이규한이 재빨리 손을 뻗어 ‘스파 이들’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 2,783,428.

다시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기 때문 이었다.

‘다른 건?’

여전히 안심하지 못한 이규한이 책 상 서랍을 뒤져서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 책을 꺼내서 집어 들었다.

- 2,235,897.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든 순간,눈앞 에 예상 관객수인 숫자가 떠오른다 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청춘,우 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안 보여!’

아까와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이규한의 눈앞에 숫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이유가 뭐지?’

이규한이 표정을 굳혔다.

다른 시나리오 책을 집어들 때는 눈앞에 예상 관객수를 의미하는 숫 자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청춘,우 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 시나리오 책을 집어들었을 때는 이규한의 눈 앞에 숫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이규한이 고심해 보았지만,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왜 이럴까?”

그래서 이규한이 혼잣말을 중얼거 리고 있을 때였다.

“뭐 하세요?”

김미주가 물었다.

시나리오 책들을 집어 들었다가 내

려놓기를 반복하는 이규한에게 김미 주는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 이 대답했다.

“감정하고 있어.”

“무슨 감정이요?”

“이렇게 시나리오를 집어들면 눈앞 에 숫자가 떠오르거든.”

“......?"

“그러니까 예상 관객수가 보인단 말이야.”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김미주 가 제안했다.

“내가 잘 아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

간혹 진실이 이상하게 들릴 때가 존재한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이규한은 진실을 말했다.

그렇지만 김미주는 순순히 믿지 않 았다.

오히려 이규한을 걱정스레 바라보 면서 정신병원으로 찾아가서 상담을 받아 볼 것을 권유했다.

‘어차피 안 믿을 줄 알았어!’

김미주가 진실을 믿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그녀를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규한에게 중요한 것 은 김미주가 보인 반응이 아니었다.

이전과 달리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음에도 눈앞에 숫자가 떠오르지 않는 현재의 상황이 중요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청춘,우리 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어 보았다. 그러나 상 황은 바뀌지 않았다.

이규한의 눈앞에 숫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 2,129,875.

이규한이 펜을 들어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시나리오 책을 마지막으로 감정했을 때,눈앞에 떠 올랐던 숫자를 적었다.

더 이상 숫자가 떠오르지 않는 이 유는 파악하지 못한 상황.

이제는 예상 관객수를 확인하지 못 한 채 영화 개봉까지 제작을 진행해 야 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규한이 퍼뜩 떠올린 것은 선거였다.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