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43화 (43/272)

43 화

스파이들 “진짜 감독이 돼 가고 있다는 뜻이 야.”

잔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비운 이 규한이 이규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결과 나왔어?”

이규한이 묻는 것.

어머니의 건강검진 결과였다.

“응. 나왔어.” “결과가 어때?”

“큰 문제는 없대.”

‘늦지 않았다!’

이규리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규한이 안도했다.

그렇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그래서 이규한이 다시 물었다.

“췌장 쪽도 괜찮대?”

“갑자기 그런 왜 묻는 거야?”

‘엄마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으니 까.’

이게 췌장 쪽도 괜찮으냐고 물었던 진짜 이유.

그러나 이규한은 다른 이유를 꺼냈 다.

“신문에서 봤어. 췌장암의 경우는 자각 증상이 없어서 진짜 무섭다고. 그래서 혹시나 하는 걱정이 돼서 물 어본 거야.”

“신기하네.”

“뭐가 신기하다는 거야?”

“실은 검사 결과 췌장 쪽에서 염증 이 발견됐거든.”

“그랬어?”

이규한이 표정을 굳혔다.

흔히 염증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불 렸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건강검진에서 발견됐던 염증의 존재를 몰라서 제 때 치료하지 못했던 것이 췌장암으 로 발전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이규한이 서둘러 물었다.

“의사가 뭐래?”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래. 처방한 약만 잘 먹으면 괜찮아질 거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이규한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리가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암도 아니고 염증.

처방받은 약만 먹으면 금방 나을 거라는 의사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너무 과한 반응이 아니냐?

이런 의미가 담긴 시선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

그렇지만 이규한은 이미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본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안도하는 것이었다.

그때 였다.

“고마워.”

……?"

“엄마가 오빠 만나면 이렇게 전해 달래.” 이규리가 전한 말을 들은 이규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를 찾아뵐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자꾸 연락을 피하다 보니, 어느덧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었다.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마주 앉아 있는 이규 리도 마찬가지였다.

남보다 못 한 남매 사이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지난 생과는 아주 많이 바뀌어 있다는 증 거였다.

‘다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규한의 생각이 지난 생의 아내였 던 송하윤에게 미쳤다.

다시 그녀를 만나 결혼한다면 불행 이 반복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까 술 한잔하자는 송하윤 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기 시 작했다.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와 현재.

자신이 내린 선택들에 따라서 아주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었다.

‘그러니 송하윤과의 결혼 생활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이규한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였다.

“작품 준비는 잘돼 가고 계십니

까?”

최호인이 물었다.

“작품 준비?”

“일전에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창 립 작품으로 ‘그때, 우리’라는 영화 를 제작 중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 니까?”

“바뀌었어.”

“뭐가 바뀌었단 겁니까?”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 으로 제목이 바뀌었다고.”

이규한이 대답하자,최호인이 의아

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제목을 바꾸셨습니까?”

“제목이 중요하거든. 내가 지난번 에 연출했던 ‘과속 삼대 스캔들’의 원래 제목이 뭐였는지 알아?”

“무엇이었습니까?”

“‘삼대 가족사’였어.”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최호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삼대 가족사’요?”

놀란 것은 이규리 역시 마찬가지였 다.

“엄청 촌스러운데? 인간 극장 느낌 이 팍팍 나.”

앞다투어 쏟아진 반응을 확인한 이 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내 판단에는 ‘삼대 가족사’에서 ‘과속 삼대 스캔들’로 제목이 바뀌 면서 관객 수가 50만 명가량 늘어 난 것 같아.”

“그렇게 많이요?”

“응,확실해.”

이규한이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하 는 것.

최호인이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규한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싶기 때문에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었다.

“지금 고민하는 것은 캐스팅이야. 남자 주인공 배역을 누구에게 맡기 는 게 좋을까? 여기에 대해 논의하 는 중이야.”

“청춘물이라고 하셨으니까 20대 중반 남자배우에게 주연을 맡겨야 하겠네요.”

“맞아.”

“쉽지는 않겠네요. 20대 중반 남자 배우 기근 현상이 심한 편이니까 요.”

최호인의 말이 정확했다.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고민하는 부 분이 20대 중반 남자배우 기근 현 상이었다.

“이도빈은 어떠십니까?”

현재 20대 중반 남자배우들 가운 데 가장 톱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이도빈.

그래서 최호인도 이도빈을 떠올렸 다.

“이도빈은 안 돼.”

그렇지만 이규한이 단칼에 잘랐다.

“스케줄이 안 맞습니까? 아니면, 개런티가 제작비에 비해 너무 비쌉 니까?”

“둘 다 아냐. 그렇지만 무조건 안

돼.”

이규한이 재차 강조하자,최호인이 입을 다물었다.

답답한 마음에 이규한이 소주잔을 들어올릴 때였다.

“도경민은 어때?”

이규리가 불쑥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의아한 시 선을 던졌다.

“웬일이야?”

“뭐가?”

“영화 쪽엔 전혀 관심이 없었잖 아?”

이규한의 직업은 피디 겸 영화제작

그렇지만 하나뿐인 여동생 이규리 와 영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기억 은 없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신기하 게 바라보자,이규리가 멋쩍게 웃으 며 최호인을 바라보았다.

“호인 씨 때문에 관심이 생겼어.”

“응?”

“호인 씨랑 대화를 하다 보니까 자 연스레 영화에 관심이 생기고 알게 됐다고.”

“서운하다.”

“좀 그런가? 미안!”

이규리가 혀를 쏙 내밀며 사과한

순간,이규한이 물었다.

“그런데 도경민이 누구야?”

“도경민,몰라?”

“처음 들어보는데. 배우야?”

“가수 겸 배우야.”

“가수 겸 배우라면… 아이돌이야?” “맞아. 엑스칼리버란 아이돌 그룹 멤버인데. 설마 엑스칼리버를 모르 는 건 아니지?”

“모르는데.”

“헐,어떻게 엑스칼리버를 모를 수 가 있어? 얼마나 유명하고 인기 있 는 아이돌 그룹인데. 도경민을 비롯 한 멤버들도 엄청 멋있고.”

이규리가 한심하다는 시선을 던졌 다.

그렇지만 그 시선으로 인해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기했다.

‘규리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

아이돌 그룹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흥미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최호인도 발끈했다.

“액스칼리버 멤버들이 그렇게 멋있 고 잘생겼어?”

“완전!”

“나보다 더?”

“왜 대답을 못 해? 나보다 더 멋 있다는 거야?”

‘좋을 때다!’

별것도 아닌 일로 발끈해서 사랑싸 움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 던 이규한이 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쓰잘데기 없는 사랑싸움을 계속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해서 이규한이 말했다.

“사랑싸음은 내가 안 보는 데서 하 고. 아까 이름이 도경민이라고 했 어?”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는 연기력이 부족하다.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규한의 표정이 영 마뜩찮은 것을 눈치챈 이 규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원래 배우였던 것처럼 잘해.”

“혹시 팬심이 평가에 영향을 끼친 것,아냐?”

“그건 확실히 아니거든.”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딱 잘라 지는 게 아냐. 그러니까 너도 모르 는 사이에 팬심이 평가에 영향

“반대야.”

“반대라니?”

“순서가 반대란 뜻이야.”

W ??

“드라마에 출연했던 도경민을 먼저 봤어. 와,저 배우 연기 잘한다. 그 때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한동안 잊 어버리고 있었어. 그러다가 엑스칼 리버란 아이돌 그룹을 알게 되고 난 후에 도경민이 가수 겸 배우라는 사 실을 알게 된 거지. 그러니까 팬심 이 영향을 끼쳤을 리가 없다는 뜻이 지.”

이규리의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술잔을 매만졌다.

‘도경민이라!’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 며 이규한이 술잔을 들었다.

건강검진 결과,엄마가 괜찮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라서일까.

술이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아이돌 그룹 액스칼리버의 멤버인 가수 도경민이 아니라,배우 도경민 으로 기억이 되고 싶습니다.” 이규한이 만났던 도경민이 밝혔던 각오였다.

그의 진지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 다. 그래서 이규한은 그에게 ‘청춘, 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시나리 오 책을 건넸다.

물론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다부진 각오와 진지한 모습만 보고 그에게 출연 제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이규리를 만난 후,이규한은 포털 사이트에서 도경민에 대해서 검색을 해 봤다.

그 검색 결과,도경민이 속해 있는 엑스칼리버란 아이돌 그룹이 예상보 다 훨씬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꽤 많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었고, 특히 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도경민 의 인기는 대단한 편이었다.

‘홍보에 도옴이 될 거야!’

이것이 도경민에게 출연 제의를 했 던 첫 번째 이유.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출연 했던 드라마를 보고 연기력이 나쁘 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 다.

솔직히 말하면 나쁘지 않다는 표현 으로는 부족했다.

오랫동안 연기를 공부한 배우 못지

않게 연기가 뛰어났다.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는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이미지였 다.

직접 만났던 도경민의 이미지.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탓에 반항적 인 느낌을 풍겼다.

그런 그의 반항적인 이미지가 ‘청 춘,우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극 중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와 딱 어울 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 연락이 오려나?”

도경민을 만나서 시나리오 책을 건 넸던 것은 어제였다.

아직 채 하루도 흐르지 않은 시점.

‘최소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도경민이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출 연 여부를 밝힐 때까지 최소 일주일 은 걸릴 것이라고 이규한은 판단했 다.

영화는 기다림의 예술.

혼자 마음이 급해서 서두른다고 해 서 진행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규한 이 오랜만에 TV를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이규한이 손을 멈추었다.

영화 채널에서 방송하는 것은 ‘괴 물,한강에 그놈이 산다’였다.

무척 오래간만에 다시 ‘괴물,한강 에 그놈이 산다’를 보고 있던 이규 한이 도중에 소파에서 등을 뗐다.

“이거 마취 주사인가요? 그럼 이거 만 맞고 내 딸한테 잠깐 갖다 올게 요.”

극중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배 우 송강오의 대사를 들은 이규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애드립은 대단해.” 분명 긴박하고 슬픈 장면임에도 불 구하고,송강오는 애드립을 구사했 다. 그리고 송강오가 구사한 애드립 은 한없이 우울하고 무거워질 수 있 는 극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었다.

명품 배우.

이런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것이 아 니었다. 그래서 송강오의 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이규한이 벌 떡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스파이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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