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40화 (40/272)

40 화

면접 볼래?

스옥.

이규한이 앞에 놓인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미운 정도 정이니까!’

만약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아까 이규한이 말했던 것처럼 램프 엔터테인먼트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부도가 날 가능성이 높았다.

박태혁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그래도 정이라는 것은 무서웠다.

해서 이규한이 결심을 굳히고 입을 뗐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잘 들으 세요. 영화판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조건 오래 버티는 거예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

“맞아요.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티려 면 고정 비용을 줄여야 해요. 사무 실 임대료와 인건비, 기획개발 비용 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뜻이죠.”

“그럼?”

“지금 있는 직원들은 다 내보내세 요.”

“전부 다? 그럼 기획은 누가 해?”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던 박태 혁이 이규한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시선을 느낀 이규한이 물었다.

“왜 그렇게 봐요?”

“다시 돌아오면 안 돼?”

“어디로요?”

“어디긴 어디야? 램프 엔터테인먼 트지.”

위기감을 느낀 박태혁이 선거를 앞 둔 정치인처럼 공약을 남발하기 시 작했다.

“내가 지분 많이 줄게. 법인 카드 한도도 두 배로 늘려 주고,기획개 발비 많이 쓴다고 잔소리 안 할게. 또,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게.”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요?”

“그땐 몰랐지. 네가 이렇게 소중한 존재인지.”

“버스 떠났어요.”

“응?”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들어 봐야

소용없다고요.”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난 후에 대답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난 후에 꺼낸 대답이에요.”

“아,더럽게 매정한 새끼.”

이규한을 램프 엔터테인먼트로 재 영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태혁의 수심이 깊어졌을 때였다.

“괜찮은 피디를 소개해 줄게요.”

“누구?”

“감각이랑 실력이 괜찮은 편이고, 양심도 있는 피디로요.” “역시 넌 의리 빼면 시체다.”

“잘해 주세요. 나처럼 떠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알았어.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다시 표정이 밝아진 박태혁이 자리 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김미주가 말했다.

“대표님,화장실 가는 거 아니에 요.”

“나도 알아.”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루가 더 지나면 그 하루만큼 임 금을 지급해야 했다. 그래서 박태혁 은 지금 해고 통보를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그냥 망하게 내버려 두지 그러셨 어요?”

“안됐잖아.”

“하여간 이 피디님은 마음이 너무 약해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김미주를 바라보던 이규한이 말했다.

“미주 씨.”

“왜요?”

“나 이제 이 피디 아니라 이 대표 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면접 볼 래? 곧 해고될 거야.”

이규한이 예언한 순간,김미주가

소주잔을 들어 비웠다.

“대표님 말이 맞았네요.”

“응?”

“일부러 악담하러 찾아온 게 맞잖 아요?”

김미주가 웃으며 물은 순간,이규 한이 픽 하고 웃었다.

“악담인가?”

“그럼 이게 축복인가요?”

“램프 엔터테인먼트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아냐?” 비로소 말귀를 알아들은 김미주가 두 눈을 빛냈다.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덧붙였다.

“태혁이 형,고지식한 사람이야. 그 건 미주 씨도 알지?”

“아주 잘 알죠.”

“아까 내가 지금 데리고 있는 직원 들부터 전부 내보내라고 했으니까, 아마 그 말을 충실히 따를 거야.”

이규한이 그려왔던 큰그림에 대해 년지시 알려 주자,김미주가 두 눈 을 빛냈다.

“나도 해고 대상이란 뜻인가요?”

“맞아.”

“이걸 슬퍼해야 하나요? 아니면, 좋아해야 하나요?”

김미주가 햇갈리는 표정을 지은 채

물었을 때,이규한이 대답했다.

“좋아해야 하지.”

“왜죠?”

“내 덕분에 탈출하게 됐으니까.”

이규한이 덧붙인 순간,김미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날 탈출시키기 위해서 대표 님한테 그런 충고를 했던 건가요?”

“역시 눈치가 빠르네.”

“헐. 내가 그 정도로 탐이 나는 인 재인가요?”

“미주 씨 정도의 인재라면 그럴 가 치가 있지.”

이규한이 빈 소주잔을 채워 주며

대답하자,김미주가 웃으며 다시 물 었다.

“그렇게 대단한 인재가 왜 면접까 지 봐야 해요?”

“형식적인 절차라고 생각해.”

이규한이 잔을 내밀며 덧붙였다.

“램프 엔터테인먼트 탈출을 앞둔 기념으로 건배 한 번 할까?”

“그러죠.”

채앵.

술잔을 부딪친 후,이규한이 단숨 에 잔을 비웠다.

역시 원샷을 한 김미주가 웃으며 말했다.

“기분이 좋으니까 술이 단 거야. 그럼 바로 면접을 시작할까?”

“아직이요.”

“왜?”

“하나 빠진 게 있잖아요.”

“뭐지?”

“연봉 협상.”

김미주가 대답한 순간,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무척이나 급박하게 전개되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미주는 가 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꼼꼼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 이 김미주의 가장 큰 장점.

이규한이 그녀를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로 스카웃하려는 이유이기도 했 다.

“변동 사항 없었지?”

“뭐가요?”

“내가 나간 후에 월급 액수 말이 야.”

“당연히 그대로에요.”

“그럼 거기에 백만 원을 더 얹어 줄게.”

이규한이 제안하자, 김미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만 원이요?”

“왜? 예상보다 많아?”

이규한이 웃으며 묻자, 김미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반대거든요.”

“반대라고?”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이번에는 이 규한이 두 눈을 크게 떴을 때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죠. 지금보다 월 급을 백만 원 올려 주려는 이유는 저한테 일을 더 많이 시키려는 거겠 죠. 보자, 기획피디 일까지 맡기려는 거,맞죠?”

김미주의 정확한 예측에 속으로 혀 를 내두른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 다.

“아직 끝이 아냐. 지분을 줄 거니 까.”

“지분이요?”

“그래. 프로젝트별로 제작사 수익 의 1%를 지급할 거야.”

이규한이 꺼낸 새로운 제안을 들은 김미주가 고민에 잠겼다.

잠시 후,김미주가 말했다.

“누구처럼 쪼잔하지 않아서 좋네 요.”

“무슨 뜻이야?”

“만약 순수익의 1%를 제안했으면 다른 데로 갔을 거예요. 이래 봬도 오라는 데가 아주 많거든요.”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란 거예요?”

“제작사 수익의 1%를 제안할까? 제작사 순수익의 1%를 제안할까? 마지막까지 갈등했었거든.”

픽 웃으며 대답한 이규한이 다시 물었다.

“어쨌든 이제 만족해?”

“만족해요.”

줄다리기 끝에 연봉 협상이 타결된

순간,이규한이 물었다.

“이도빈,알지?”

“물론 알죠.”

“청춘물인 영화의 주연으로 어떨 것 같아?”

“이게 면접 질문인가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김미주 가 되물었다.

“맞아. 면접 질문이야.”

“20대 중반의 남자 배우 가운데서 는 나쁘지 않은 편이죠. 팬충도 두 럽고,티켓 파워도 갖췄으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다는 얘기는 안 했어요.” “반반이에요.”

‘반반? 무슨 뜻이지?’

이규한이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 을 때,김미주가 설명을 덧붙였다.

“이도빈이 주연으로 나선 영화의 개봉 시기가 언제냐에 따라서 내 대 답은 달라진다는 뜻이에요.”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만약 이도빈이 출연한 영화가 지 금으로부터 삼 개월 이내에 개봉을 한다면 내 대답은 괜찮다, 예요. 그 렇지만 이도빈이 주연을 맡은 영화 의 개봉 시기가 그 후라면 괜찮지

않다가 내 대답이에요.”

“개봉 시기가 중요하다?”

“맞아요.”

“이유가 뭐지?”

이규한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이도빈의 입대였다.

이도빈은 아직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은 상황.

그가 입대를 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었다. 그리고 입대를 하고 나면, 이도빈은 잠시 팬들에게 잊혀질 터.

해서 이규한이 물었다.

“혹시 군대 간대?”

“이도빈 군대 안 가요. 면제거든

요.”

“면제라고?”

“목디스크로 신체검사 결과가 5급 나왔는데,재검 받고 결국 면제 받 았어요.”

“그랬어?”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도빈이 군 면제를 받은 만큼,이규한이 아까 떠올린 가능성 은 배제됐다.

‘그럼 대체 왜지?’

그로 인해 이규한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을 때였다.

“안 좋은 소문이 돌아요.” “안 좋은 소문? 이도빈한테?”

“네.”

“어떤 소문인데?”

“대마를 흡입한다는 소문이요.”

이것 역시 금시초문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두 눈을 치켜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주연 배우인 이도빈이 대마를 흡입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그때,우 리’는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을 것 이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소문이야?” “신빙성은 80% 이상이에요.”

“80% 이상이라고?”

이규한의 소주잔을 매만졌다.

김미주는 신중한 편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까지 확신에 차 있다 는 것을 그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게 사실일까?’

이규한이 팔짱을 낀 채 기억을 더 듬었다.

이도빈의 대마 흡입 관련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가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이규한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없어!’

잠시 후,이규한이 긴 숨을 토해 냈다.

이도빈의 대마 흡입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도빈은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 속에서 없었다.

장차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 나갈 유망주.

이도빈에 대한 현재의 평가였다.

20대 남자 배우 기근 현상에 오랫

동안 시달리고 있는 충무로였기에 이도빈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컸다.

그렇지만 이도빈은 그 기대를 충족 시키지 못했다.

그는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 가는 대신,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갑자기 스크린은 물론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이유에 대해 이규한은 정확 히 알지 못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이름이 잊혀졌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가만!’

이규한이 소주잔을 와락 움켜쥐었 다.

2,015,589에서 1,054,897로.

‘그때,우리’의 시나리오 책에 이도 빈을 남자 주인공으로 기입한 후에 감정했을 때,예상 관객수는 반 토 막이 났었다.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런 감정 결 과가 나온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속된 말로 이도빈이 극중에서 발연 기를 펼친다고 해도,관객수가 반 토막이 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 다.

그렇지만 만약 ‘그때,우리’가 개봉 하기 직전에 이도빈이 대마 흡입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도빈에게 실망한 팬들은 그가 남 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그때, 우리’를 외면하리라.

팬들만이 아니었다.

일반 관객들 역시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관람 보이콧을 할 가능성 이 높았다.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 오야.’

이규한이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을 때였다.

“면접은 끝났나요?”

김미주가 물었다.

“응,끝났어.”

“면접 결과는요?”

“합격이야.”

이규한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순 간,박태혁이 탁자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가 김미주에게 통보했다.

“너도 해고야.”

“알았어요.”

김미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 꾸하자,오히려 그녀에게 기습 해고 통보를 했던 박태혁이 당황했다.

“안 놀라?”

“별로 놀랍지 않은데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김미주가 이규한과 시선을 교환한 후 박태혁에게 덧붙였다.

“이렇게 해고해 줘서 고마워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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