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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39화 (39/272)

39 화

오래 못 갑니다 박태혁이 재차 언성을 높였음에도 피디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또,박태혁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피하기 급급했다.

‘내가 이런 한심한 새끼들에게 피 같은 내 돈을 월급으로 주고 있으 니!’ 박태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흥행 성공 덕분에 박태혁은 거액의 수익을 올 렸다.

그 돈으로 박태혁은 사무실을 널찍 한 곳으로 옮겼고,나름대로 여러 작품에 참여했던 피디들을 충원했 다.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돌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일의 진행은 지지부진했 다.

박태혁과 이규한.

둘이서 일을 할 때보다 진행이 훨 씬 느렸다.

비싼 임대료에 늘어난 인건비,게 다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 니 예전에 비해 몇 배로 드는 기획 개발비까지.

속절없이 아까운 시간만 흐르며 돈 이 줄줄 새고 있었다.

‘예전이 좋았어!’

박태혁이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 내서 입에 물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들어와.”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이규한이었다.

“이야. 사무실 널찍하니 아주 좋네 요. 예전엔 없던 회의실도 있고.”

“너!”

회의실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이 규한을 확인한 순간,박태혁은 반가 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박태혁 은 겉으로 반가운 표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며 입을 뗐다.

“네가 왜 여기 온 거야?”

“왜요? 제가 못 올 데 왔어요?”

“배신자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여 길 찾아온 거야?”

“에이,배신자란 표현은 좀 그렇다. 내가 형한테 무슨 해코지를 했어요?

돈 많이 벌게 해 주고 나갔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해서 박태혁의 말문이 막혔을 때였 다.

“저,안 보고 싶었어요?”

이규한이 다시 물었다.

‘보고 싶었어!’

박태혁의 솔직한 내심이었다.

‘과속 삼대 스캔들’을 끝으로 이규 한이 제작사를 차려서 독립하고 난 후에야 박태혁은 그의 빈자리가 무 척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규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새 로 피디들을 뽑았지만, 오히려 그의 공백이 더욱 크게 느껴졌을 뿐이었 다.

그렇지만 박태혁은 그 속내를 숨기 고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널 왜 보고 싶었겠어?”

“제 생각엔 보고 싶었을 것 같은데 요.”

“무슨 뜻이야?”

“저 없으니까 프로젝트 진행이 잘 안 되죠?”

그 질문을 받은 박태혁이 움찔했 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었다.

“너,혹시 내 뒷조사 하냐?”

“제가 그 정도로 할 일 없는 사람 이 아닙니다. 저도 바쁜 사람이에 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내 뒷조사 한 것 맞지? 그렇지?”

“거,의심 많은 건 여전하네. 진짜 바쁘다니까요.”

“그럼 대체 어떻게 알았어?”

박태혁의 질문을 끝나기 무섭게 이 규한이 대답했다.

“딱 보면 알죠.”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는 거야?”

“물론이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한 이규

한이 덧붙였다.

“기왕 여기 온 김에 충고 하나 드 릴까요?”

“무슨 충고?”

“오래 못 갑니다.”

“뭐가 오래 못 간다는 거야?”

“램프 엔테테인먼트요.”

“이런 식이라면 얼마 못 버티고 한 방에 흑 갑니다.”

박태혁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가 얼마 못 가 망한다는 예언을 듣고 기분이 좋은 대표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왜 남의 회사에 불쑥 찾아와서 악 담을 퍼붓고 지랄이야?”

“악담을 퍼붓는 게 아니라 충고하 는 거라니까요.”

“이거나 그거나.”

박태혁이 콧김을 거칠게 내뿜을 때,이규한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램프 엔터테인먼트가 망하지 않을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남자주인공으로 이도빈의 캐스팅이 확정된 후,이규한은 다시 ‘그때, 우

리’의 시나리오 책을 들어 올리고 감정을 했다.

‘최소 50만,최대 100만 가까이 늘 지 않을까?’

이도빈은 두터운 팬층과 티켓 파워 를 갖추고 있는 이십 대 중반 배우 였다. 그래서 감정을 하기 전에 이 규한은 당연히 예상 관객수가 늘어 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감정 결과는 예상과 달랐 다.

2,015,589에서 1,054,897로.

숫자가 줄었다.

그것도 그냥 줄어든 것이 아니었

무려 백만 가까이 예상 관객수가 줄면서 반 토막이 나 버렸다.

‘왜… 줄었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 결과로 인해 이규한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만도 반나 절 가까이 걸렸다. 그리고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이 남았다.

‘혹시 잘못된 게 아닐까?’

이런 의심으로 인해 이규한은 다시 시나리오 책을 들고 감정을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재감정 결과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이규한은 예상 관객수가 줄어든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 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은 이도빈에게서 답을 찾아야 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이규 한이 퍼뜩 떠올린 것은 김미주였다.

그래서 바로 램프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온 것이었다.

박태혁과 김미주,그리고 이규한.

술자리에 참석한 것은 세 사람이었 다.

램프 엔터테인먼트의 원년 멤버들 이 한자리에 모인 순간,이규한이 입을 뗐다.

“이렇게 모여 앉아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옛날 생각은 무슨. 얼마 안 됐거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그때가 좋았지?”

박태혁이 물었지만,이규한은 대답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리고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김미주도 마찬가지 였다.

김미주는 돼지갈비를 굽는 데만 집 중하고 있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박태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 좋았어?”

“별로였어요.”

“나도요.” 이규한과 김미주가 거의 동시에 대 답하자,박태혁의 미간이 더욱 찌푸 려 졌다.

“왜들 그래? 내가 잘해 줬잖아?”

“잘해 줬으면 제가 독립해서 제작 사 안 차렸죠.”

“야,딱 까놓고 내가 못 해 준 게 뭐야?”

“몰라서 물어요?”

“모르니까 묻지.”

“그럼 알려 드려야겠네.”

이규한이 소주를 마신 후 본격적으 로 입을 뗐다.

“감독이나 작가 만나서 법인 카드

로 5만원 넘게 긁었다고 다음 날 내내 들들 볶으면서 잔소리하고,돈 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감독 계약 못 했다고 엄한 나한테 화풀이를 했죠. 어디 그뿐인가. 내가 무조건 대박 난다고 작가 계약하자니까 계약금이 너무 세다고 안 한다고 하더니 그 영화가 진짜 대박 나니까 전부 내 책임이라고 뒤집어씌웠죠. 기억나 죠? 이걸로 모자라면 좀 더 할까 요?”

“됐다. 그만해라. 많이 먹었다 아이 가.”

“미안하긴 하죠?”

“그래서 갈비 사 주잖아.”

박태혁이 생색을 낸 순간,집게로 고기를 뒤집던 김미주가 끼어들었 다.

“입은 삐뜰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 시죠.”

“내가 뭘?”

“미안해서 사 주는 게 아니라 충고 들으려고 갈비 사는 거잖아요.”

“그게 그거지.”

“엄연히 다르죠.”

김미주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 따박 대꾸하자,박태혁이 언성을 높 였다.

“넌 누구 편이야?” “그게 중요해요?”

“중요하지. 너한테 월급 주는 게 누구냐? 나잖아. 그럼 당연히 내 편 을 들어야 하는 것 아냐?”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뭐? 너,방금 뭐라 그랬어?”

“정의의 편이라고 했어요.”

“정의의 편?”

“쥐꼬리만 한 월급에 양심을 팔지 않겠다는 뜻이죠.”

“너 그러다 잘린다?”

“그럼 자르시던가요.”

“됐다. 더 말을 말자. 아,내 인생

박태혁이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비 운 후 이규한을 바라보았다.

“자,이제 말해 봐. 왜 램프 엔터 테인먼트가 위험하다는 거야?”

“돈이 줄줄 새고 있으니까요.”

“무슨 뜻이야?”

“사무실 임대료에 인건비만 해도 장난 아닐 것 같던데. 그런 식으로 가다가 ‘과속 삼대 스캔들’이 흥행 해서 번 돈 고갈되는 것 금방입니 다.”

“이게 전부 투자야. 아까 봤던 피 디들,다 실력 있는 애들이야. 내가

엄선해서 뽑아 놓은 인재들이라고.”

“아닌 것 같던데.”

“뭐?”

“그 피디들이 뛰어난 인재라는 근 거가 뭔데요?”

“참여했던 작품이지.”

박태혁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셋 다 쟁쟁한 작품들에 피디로 참 여했어. 내가 확인했어.”

“어떤 작품인데요?”

“백진우 피디는 ‘씁쓸한 인생’,최 호정 피디는 ‘미녀는 힘들어’,장덕 수 피디는 ‘7일’에 참여했지.”

‘씁쓸한 인생’과 ‘미녀는 힘들어’,

그리고 "7일’까지.

방금 박태혁이 입에 올렸던 영화들 은 흥행작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규한 역시 당연히 알고 있는 영 화들.

그리고 이규한은 그 영화의 제작과 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 다.

해서 이규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 들며 입을 뗐다.

“형,‘씁쓸한 인생’의 크레덧에 이 름을 올린 피디들이 몇 명인지 알아 ‘모르지.’ “전부 일곱 명이에요.”

“일곱? 왜 그렇게 많아?”

“잠시라도 참여를 했던 피디 이름 은 다 넣어 주고,심지어 그냥 친분 이 있는 피디 이름도 넣어 줬기 때 문이죠.”

“왜 그렇게 하는데?”

“먹고 살라고요.”

“응?”

박태혁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이규한이 덧붙였다.

“‘씁쓸한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끌 어 간 건 황주현 피디예요. 백진우 피디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긴 했 지만,메인 피디는 아니었어요. 그런 데 형은 그걸 몰랐으니까 백진우 피 디가 ‘씁쓸한 인생’을 이끌어 간 메 인 피디라고 오해한 거죠.”

박태혁의 원래 직업은 건축업자였 다.

지방에서 다세대 빌라를 주로 지어 서 돈을 벌고 난 후, 박태혁은 그 돈을 자본금 삼아 영화 제작에 뛰어 들었다.

즉,박태혁은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제작자는 아니란 뜻이었다.

그래서 박태혁은 영화판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어설프게 알고 있다고 표현하면 될 까.

그리고 어설프게 아는 건 아예 모 르는 것보다 더 위험했다.

딱 사기를 당하기 좋았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박태혁은 ‘과속 삼대 스캔들’의 흥 행 덕분에 거액을 벌었고,좀 더 사 업을 키우기 위해서 피디들을 새로 뽑았다.

그 소문을 들은 위의 세 명의 피 디들이 박태혁을 찾아와서 마치 대 단한 작품에 참여했던 피디인 양 사 기를 치고 월급 도둑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날 속인 거야?”

“속인 건 아니죠. 엄연히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갔으니까.”

“조금만 참여해도 이름 올릴 수 있 다면서. 아니,그냥 친분만 있어도 크레딧에 이름 올릴 수 있다면서. 그게 사기지,뭐야?”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속은 형의 잘못이 더 커요.”

“내 잘못이 더 크다고?”

“형은 이 바닥을 너무 몰라요.”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박태혁이 램프 엔터테인먼트를 세 우고 영화 제작에 뛰어든 후 가장

잘한 일.

바로 이규한을 피디로 영입했던 것 이었다.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데다가, 이 바닥에서 보기 드물게 양심적인 이규한이 곁을 든든히 지키며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주었기 때문에 박태 혁은 그동안 사기를 당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또,‘과속 삼대 스캔들’의 성공으로 꽤 큰돈을 벌기도 했었고.

그렇지만 박태혁은 이규한의 마음 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가 영화 제작에 뛰어든 후 범한 가장 큰 실수.

바로 이규한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독립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 실수를 범한 대가로 박태혁은 여기저기서 이용을 당하면서 호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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