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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36화 (36/272)

36 화

대박 나무 타는 냄새 “어느 방향으로 수정을 할까? 아니 면 수정 없이 윤색을 거쳐서 촬영에 들어가도 될까? 어느 쪽이 옳은 방 향인가에 대해서 확신이 서질 않습 니다.”

강형진 감독이 각색을 마친 ‘써니 걸즈’의 시나리오 책을 갖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로 찾아온 이유를 밝혔 다.

“일단 제가 한번 읽어 봐야겠군 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궁금하던 차였습 니다.”

이규한이 강형진 감독이 탁자 위에 내려놓은 시나리오를 향해 손을 뻗 었다.

신중한 표정으로 시나리오를 들어 올렸던 이규한의 눈앞에 어김없이 숫자가 떠올랐다.

- 6,021,545.

‘얼추 비슷해!’

그 숫자를 확인한 이규한이 두 눈 을 빛냈다.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써 니 걸즈’의 최종 관객수였다.

그 최종 관객수와 지금 눈앞에 떠 오른 예상 관객수가 거의 비슷했다.

그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떠올린 감 정은 두 가지였다.

‘아주 막 쓴 건 아니었네.’

일단 안도감이 깃들었다.

강형진 감독에게 각색 작가로 안유 천을 소개했던 것이 이규한이었다. 그런데 만약 안유천이 각색을 엉망

으로 했다면?

이규한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 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안유천이 아주 막 쓴 것은 아니었다.

꽤 잘 고친 편이었다.

그래서 안심이 된 것이었다.

‘아쉽다!’

그와 동시에 떠올린 또다른 감정이 었다.

‘써니 걸즈’라는 흥행작을 놓친 것 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었다.

후우.

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던 이규한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 시선 들을 느끼고 상념에서 깨어났다.

강형진 감독과 최호인.

두 사람이 동시에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써니 걸즈’의 각색 시나리오를 건 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 기지 않고 집어들기만 한 채 웃다가 한숨을 내쉬기를 반복하는 이규한의 반응이 의아했기 때문이리라.

“죄송합니다. 제가 딴생각을 잠깐 하느라. 지금 바로 읽어 보겠습니 다.”

이규한이 본격적으로 ‘써니 걸즈’ 의 시나리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약 한 시간 후,시나리로 책을 모 두 읽은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 덕였다.

‘확실히 잘 고쳤네!’

아까 감정을 했을 때,괜히 600만 명이 넘는 예상 관객수가 떠오른 것 이 아니었다.

안유천은 각색을 잘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형진 감독이 애매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안유천 특유의 유머 코드가 시나리오 책 곳 곳에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미디가 너무 과하다고 판단해서 우려하는 거야!’ 강형진 감독이 우려하는 부분이 무 엇인지 파악한 이규한이 눈을 감았 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후,강형진 감독에게 물었다.

“만약 감독님이 다시 수정을 하시 면 얼마나 걸리실 것 같습니까?”

“음,최소 삼 개월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길다!’

그 대답이 돌아온 순간,이규한은 너무 오래 걸린다고 판단했다.

삼 개월의 수정으로 끝나는 게 아 니었다. 윤색을 거쳐야 했고, 주조연 캐스팅에도 당연히 시간이 걸릴 터 그러다 보면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훌쩍 지나갈 터.

그만큼 ‘써니 걸즈’의 개봉은 늦어 질 것이었다.

‘그때는 복고 열풍이 끝날 수도 있 어!’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는 ‘써니 걸 즈’의 관객수는 육백만 언저리였다.

당시 영화 관계자들이 가장 아쉬워 했던 부분.

영화의 완성도가 아니었다.

바로 개봉 시기였다.

“만약 ‘써니 걸즈’의 개봉이 육개 월만 빨랐더라면 천만 관객을 돌파 하는 영화가 됐을 수도 있다.” 복고 열풍이 끝물일 때가 아니라 복고 열풍이 한창일 때 개봉했다면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도 가능했 다는 아쉬움을 영화 관계자들이 토 해 냈던 것을 이규한은 똑똑히 기억 하고 있었다.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봉 을 서두르는 것!’

장고 끝에 이렇게 판단을 내린 이 규한이 입을 뗐다.

“전체적으로 시나리오가 들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마 안 유천 작가 특유의 유머 코드가 곳곳 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코미디 요소가 아주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코미디 요소는 살 리면서 들뜬 극의 분위기. 즉,톤 앤 매너를 살짝 다운시키면 될 것 같은데. 제 판단으로는 윤색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각색 작업을 한 번 더 거치지 않 고 바로 윤색 작업으로 들어가는 편 이 나을 것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최대한 촬영과 개봉을 서두르십시

“왜 서두르라는 겁니까?”

“인생은 타이밍이거든요.”

이규한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강형진 감독을 확인한 이 규한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를 한 번 더 믿어 보십시오.”

이미 한차례 경험이 있기 때문일 까.

강형진 감독은 더 질문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무슨 냄새요?”

“대박 나무 타는 냄새가 벌써 나는 것 같네요.”

이규한이 웃으며 너스레를 떨자, 강형진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직 갈 길이 법니다.”

이규한의 호평이 싫지 않은 듯 입 가에 웃음을 매달고 있던 강형진 감 독이 퍼뜩 떠오른 듯 물었다.

“그런데 아까 대표님도 부탁할 것 이 있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네,있습니다.”

“무슨 부탁입니까?”

이규한이 대답했다.

“저와 계약하시죠.”

이미 강형진 감독과 영화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더구나 문서로도 이미 작성을 해 두었다.

그래서일까.

이규한이 다짜고짜 계약을 하자는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강형진 감독은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규한이 계약 이야기를 먼 저 꺼내길 기다렸다는 둣이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규한에게서 감독 계약 제의를 받

“오히려 제가 감독님께 감사드려야 죠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과속 삼대 스캔들’이 운좋게 흥행에 성공 하긴 했지만,이제 겨우 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가 불확실한 제게 감독 계약 제안을 해 주시니 당연히 감사해야지요.”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

주로 야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종 목의 감독들에게 쓰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영화감독도 마찬가지였 다.

이규한이 믹스 커피를 한 모금 마 시며 일전에 흥행 감독인 유승원 감 독이 했던 인터뷰를 떠올렸다.

전작인 ‘베테랑들’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대박이 나면서,유승원 감 독의 주가는 한껏 치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임하 던 유승원 감독의 태도와 어조는 차 분했다.

必 ‘베데랑들’이 천만 관객을 돌파 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계 세요?

A) 똑같습니다. 재충전을 하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必 ‘베테랑들’의 홍행으로 돈도 많 이 버셨을 것이고,축하도 많이 받 으셨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이 생각 하시는 가장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A) 물론 돈도 좀 벌었고,주변의 축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건 생명이 하나 더 늘어 난 것입니다.

Q) 생명이 하나 더 늘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A)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다가 일 정 점수를 넘기면 보너스로 생명이 하나 더 생깁니다. 그것처럼 ‘베테 랑들’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감 독 유승원의 생명도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즉,다음 작품이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해도 한 번은 더 연출을 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점 이 가장 기뽑니다.

이규한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인 터뷰어와 유승원 감독의 인터뷰 내 용이었다.

전작인 ‘베테랑들’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유승원 감독조차도 언제든지 연출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했다.

이것이 영화감독이 파리 목숨이라 고 불리는 이유.

또,강형진 감독이 두려워하는 것 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듣고 있지?”

이규한이 고개를 돌려서 최호인에 게 물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최호인 이 움찔하며 대답했다.

“네,듣고 있습니다.”

“이게 영화감독의 삶이다. 어떤 것 같아?”

“제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호인이 솔직하게 대답한 순간, 이규한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하고 싶어?”

“네?”

“이렇게 힘든 길이라는 걸 알게 됐 는데도 계속하고 싶냐고? 아직 넌 젊어. 얼마든지 다른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어.”

잠시 고민하던 최호인이 대답했다.

“그래도 할 겁니다.”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온 순간,이 규한이 덧붙였다.

“그럼 하나도 잊지 말고 잘 기억 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니 까.” 최호인에게 충고를 건넨 이규한이

다시 강형진 감독을 바라보았다.

“죄송한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 다.”

“말씀하시죠.”

“계약금을 많이 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제작사를 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금에 여유가 없습 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강형진 감독에게서 잠시의 망설임 도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제가 드릴 수 있는 계약금 액수도 듣지 않으셨는데요?”

“상관없습니다.” “왜 상관이 없습니까?”

“이규한 대표님을 믿으니까요. 설 령 계약금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 대표님과 작품을 할 겁니 다.”

강형진 감독이 보내고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신뢰.

이규한과 강형진 감독 사이에 오가 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최호 인이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강형진은 ‘과속 삼대 스캔들’의 흥 행으로 주가가 치솟고 있는 감독.

그런 그가 이렇게 무조건적인 신뢰 를 보내는 것이 이규한에 대한 판단

최호인이 던지고 있는 시선을 느낀 이규한이 고개를 돌렸다.

“잠깐 나가 있어.”

“왜요?”

“계약 조건에 대해 얘기를 나늘 거 거든.”

“저도 여기서 같이 들으면 안 됩니

까?”

“응,안 돼.”

이규한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최호인에게 감독 계약은 꿈이나 마 찬가지였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감 독 계약이 진행되는지 곁에서 지켜

보고 싶으리라.

그런 최호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규한이 부탁을 거절한 이유 는 계약 조건은 철저하게 비밀로 유 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최호인이 아쉬운 기색으로 나가고 난 후, 이규한이 웃으며 입을 뗐다.

“감독님.”

“말씀하시죠.”

“제가 계약금도 드리지 않을 정도 로 양심이 없는 제작자는 아닙니 다.” “하하,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이 대표님을 믿는 겁니다.”

“연출료로 총 삼억,그중 계약금으 로 일억을 드리겠습니다.”

이규한이 조심스럽게 계약 조건을 꺼내 놓은 후,강형진 감독의 반응 을 살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너무 빨리 돌아온 승낙에 오히려 이규한이 당황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네,충분합니다.”

강형진 감독이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충분치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계약금도 얼마 못 드리는데 다른 부분을 맞춰 드려야지요.”

“다른 부분이라면?”

“지분 계약을 하시죠. 제작사 수익 의 10%를 드리겠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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