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35화 (35/272)

35 화

그냥 좀 아는 사이 “삼 년,아니,오 년 동안 고깃집 에서 불판 닦는 아르바이트를 할 자 신 있어?”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기 때문일까. 최호인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 설였다.

‘자신 없는가 보군!’

이규한이 막 이렇게 판단했을 때였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만약 그래서 입봉할 수 있다면, 또 홍행 감독이 될 수 있다면 오 년 동안 고깃집 불판을 닦겠습니 다.”

최호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 다.

그 대답이 돌아온 순간,이규한의 눈빛이 다시 바뀌었다.

‘나름 열정도 있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겉멋만 잔 뜩 든 영화감독 지망생이란 생각에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최호인에 대한 이규한의 생 각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안 해도 돼.”

“네? 하지만 아까는 분명히……

“최원태 감독,알지?”

“물론 압니다.”

“지금은 흥행 감독이 됐지만,감독 으로 입봉하기 전까지 m년 동안 시나리오 준비하면서 고깃집 불판을 닦았던 양반이야. 일전에 최원태 감 독과 우연히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 어. 그때 물어봤어.” 뛸 물어보셨다는 겁니까?” “고깃집 불판을 닦은 것이 흥행 감 독이 되는데 도움이 됐냐고?”

“도움이 됐다고 하셨습니까?”

“아니,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대 답하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까 고 깃집 불판 닦는 아르바이트 이야기 를 왜 꺼냈는지 이해가 안 가지?”

“솔직히 그렇습니다.”

“내가 진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각오야. 네가 영화감독으로 성공하 기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단단한 각오를 하고 있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최호인에게 이규한이 물 었다.

“바닥부터 구를 자신 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깃집 불판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는 촬영 현장에서 일을 하면 배우는 게 더 많을 거야.”

“혹시 조감독을 해 보라는 말씀이 십니까?”

비로소 말귀를 알아들은 최호인이 물었다.

“그래서 계약을 해 준다고 말씀하 셨던 거군요.”

“왜? 실망했어?”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실망했습 니다. 내심 감독 계약을 기대했거든 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최호인은 감추지 않고 속내를 드러 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물었다.

“어때? 해 볼 생각 있어?”

“제가 하고 싶다고 대답하면 조감 독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래. 내가 미리 부탁을 해 뒀거 “누구에게요?”

그때 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강형진 감독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감독님,오셨습니까?”

“대표님이 찾으시는데 당연히 와야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규한이 강형진과 악수를 나눈 후 말했다.

“인사드려. 나와 같이 ‘과속 삼대 스캔들’ 작업하셨던 강형진 감독님 이야.” “강형진 감독님이요?”

“그래.”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것이 바로 ‘과속 삼대 스캔들’을 연출했던 강 형진 감독임을 알아챈 최호인이 깜 짝 놀라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호인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형진입 니다.”

강형진 감독이 최호인의 앞으로 손 을 내밀며 말했다.

“저에 대해 어떻게 아십니까?”

최호인이 악수를 할 생각도 못 하

“이규한 대표님이 말씀해주셨습니 다. 좋은 조감독 후보가 있다고.”

“아!”

최호인이 새삼스런 시선을 던질 때, 이규한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끼 어들었다.

“감독님,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제가 무슨 거짓말을 했습니까?”

“좋은 조감독 후보라고 말씀드리지 는 않았습니다. 그냥 쓸 만한 조감 독 후보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나요? 하하.”

껄껄 웃는 강형진 감독에게 이규한

이 다시 말했다.

“어려운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 다.” “아닙니다. 마침 조감독이 필요했 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은 셈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이규한이 감사 인사를 마쳤을 때, 강형진 감독이 최호인을 빤히 바라 보며 이규한에게 물었다.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두 분은 어떤 사이입니까?” 최호인을 힐끗 살핀 후 이규한이 대답했다.

“그냥 좀 아는 사이입니다.”

“그냥 좀 아는 사이요?”

“말 그대로입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영화감독 되겠다고 아까운 시 간만 날리다가 머잖아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을 것 같더군요. 차라리 강형진 감독님 밑에서 이것저것 배 우는 게 불판 닦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부탁드린 것뿐입니다. 그 러니까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 껏 굴리셔도 됩니다.”

이규한이 설명을 마치며 최호인의 반응을 다시 살폈다.

이규한의 여동생과 교제하는 사이 라고 밝혀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 까.

최호인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일부러 그 사실 을 밝히지 않았다.

최호인이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강형진 감독은 부담을 느낄 것이 뻔했다.

그럼 최호인이 강형진 감독 아래서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할 터.

이규한은 최호인이 특별 대우 없이 바닥부터 구르면서 현장을 익히고, 강형진 감독에게서 최대한 많이 배 우기를 바라기 때문에 일부러 그 사 실을 숨긴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강형진 감독이 최호인을 향해 웃으 며 말했다.

“잘 부탁하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호인이 대답한 순간,강형진 감 독이 고개를 흔들었다.

“열심히 하는 건 필요 없네. 잘하 는 게 필요하지.”

“네? 네.”

“그리고 하나 더.”

강형진 감독이 덧붙였다.

“내가 현장에서는 무척 깐깐한 편 이야. 그러니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 하기 전에 단단히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걸세.”

“갑자기 어려운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랜만에 같이 술 한잔하시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이규한이 술자리를 제안했다.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대접하겠 습니다. 대표님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는 거니까요.” 강형진 감독은 오히려 본인이 술을 사겠다고 말했다.

“감독님.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명 색이 제작사 대표인데 감독님에게 얻어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규한이 재차 계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지만,강형진 감독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저도 예전의 강형진이 아닙니다. 대표님 덕분에 아주 좋은 조건으로 차기작을 계약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게 술 한잔 대접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술값 계산을 두고 이규한과 강형진 감독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을 때 였다.

그 대치를 지켜보던 최호인이 끼어 들었다.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뭘 처음 본다는 거야?”

“먼저 술값을 계산하겠다고 싸우는 것 말입니다.”

……?"

? …?"

“보통은 반대였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과 강형진 감독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 술값을 계산하겠다고 다투는 어렵다고 소문난 영화계에서는 진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강형진 감독이 다시 말했다.

“이렇게 하시죠. 제가 대표님께 드 리고 싶은 부탁이 있으니까 오늘 술 값은 제가 계산하게 해 주십시오.”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감독님 께 드리려는 부탁이 더 있으니까 오 늘은 제가 술값을 계산하겠습니다. 대신 다음에는 감독님이 사 주시는 걸로 하시죠. 어떻습니까?”

“휴우. 알겠습니다.”

강형진 감독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수긍했다.

마침내 의견 일치를 본 순간,강형 진 감독이 제안했다.

“여기서 이야기를 마저 마치고 기 분 좋게 술을 마실까요?”

“저도 원하던 바였습니다. 감독님 부터 먼저 말씀하시죠. 제게 하시려 는 부탁이 무엇입니까?”

이규한이 묻자,강형진 감독이 소 파 위에 내려놓았던 백팩으로 손을 뻗었다.

낡고 헤져 있는 백팩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참지 못하고 입을 뗐다.

“감독님,가방 하나 바꾸시지 그러

십니까?”

“제 가방이 너무 낡았나요?”

“네. 이제 흥행 감독이 되셨는데 새 가방 하나 구입하시지 그러십니 까?”

“안 됩니다.”

“왜요?”

“이번 작품은 흥행했지만,다음 작 품의 성적은 또 어떻게 될지 모릅니 다. 최대한 아끼는 게 맞다고 생각 합니다.”

강형진 감독의 차기작은 ‘써니 걸

즈,

개봉까지 아직 한참 남아 있었지 만,이규한은 ‘써니 걸즈’가 흥행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강형진 감독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음 작품의 흥행 여부에 대해 확 신을 갖지 못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 하는 것.

영화감독의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강형진 감독 역시 그 숙명의 굴레 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말을 마친 순간,이규한이 최 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갑자기 절 보시는 겁니까?”

이규한의 시선을 느낀 최호인이 물 “잘 기억하고 배워.”

“뭘 말입니까?”

“영화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또 영화감독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직업인지를 말이야. 영화는 사람들 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만,정작 영 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현실이거 든. 그것도 아주 지독히 냉혹한 현 실이지.”

혹자는 말한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거라고.

그러나 실패는 아프다.

가능하면 그 실패를 겪지 않고 성 공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이규 한이 평소와 달리 최호인에게 친절 하게 조언을 해 주는 이유는,그가 홋날 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 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충분히 전달된 걸까.

최호인이 대답한 순간,이규한이 다시 강형진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 리고 강형진 감독은 백팩에서 꺼낸 시나리오 책을 이규한의 앞으로 내 밀었다.

“이게 뭡니까?”

“차기작인 ‘써니 걸즈’의 각색고입 니다.” “벌써 각색고가 나왔습니까?”

이규한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대표님이 소개해 주신 안유천 작 가의 손이 무척 빠르더군요.”

강형진 감독의 말을 들은 이규한이 뺀질뺀질한 안유천의 얼굴을 떠올렸 다.

‘이 자식, 내가 힘 빼고 쓰라고 했 다고 해서 너무 막 쓴 거 아냐?’

불쑥 우려가 깃들었다. 그래서 이 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감독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 까?” 잠시 망설이던 강형진 감독이 대답 “그게… 좀 애매합니다.”

‘애매하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표현 그대로 애매한 대답이었기 때 문이었다.

‘잘 고쳤다? 혹은 못 고쳤다? 이분 법이 아니라 애매하다고? 이게 무슨 뜻이지?’

이규한이 의아한 시선을 던지자, 강형진 감독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입을 뗐다.

“못 고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글이 재밌어지고 생동감이 넘칩니 다. 그런데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진 달까요?”

마땅히 설명할 방법을 찾기 힘든 걸까.

강형진 감독이 머리를 긁적이는 순 간,이규한이 입을 뗐다.

“한마디로 감독님이 쓴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단 뜻이군요.”

“바로 그겁니다.”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이기 때문일 까.

강형진 감독이 무릎을 탁 쳤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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