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34화 (34/272)

34화

고깃집 불판과 입봉의 상관관계 32만 8000원.

소갈비집에서 나온 식대였다.

‘잘리고도 남았겠네!’

계산을 마치고 영수증을 확인하던 이규한이 문득 떠올린 생각이었다.

만약 램프 엔터테인먼트 소속 피디 시절에 법인 카드로 소갈비를 먹고 30만 원이 넘는 돈을 결제했다면?

램프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인 박태혁의 분노는 용암처럼 들끓었을 터였다.

모르긴 몰라도 다음 날 출근해서 온종일 잔소리에 시달렸을 터였다.

아니,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었 다.

법인카드를 빼앗기고 해고됐을 가 능성도 충분했다.

“대표가 되니 좋은 점이 있긴 하 네.”

이규한이 환하게 웃으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그때,우리’ 각색 시나 리오를 바라보았다.

- 1,827,236.

김단비 작가가 각색을 끝낸 시나리 오의 감정 (?)은 이미 마친 상태였 다.

그리고 김단비 작가는 기대를 배신 하지 않았다.

1,229,876에서 1,827,236으로,

무려 60만 명 가까이 스코어가 늘 어 있었다. 그래서 30만 원이 넘게 나온 식대가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 졌다.

‘한 번 더 읽어 볼까?’ 김단비 작가가 각색했던 ‘그때,우 리’ 시나리오 책으로 손을 뻗었던 이규한이 다시 내려놓았다.

더 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를 집어 든 이규한이 연락 처를 검색한 후,최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두 번째로 울렸을 때,최호인 이 전화를 받았다.

“형님, 어쩐 일로 제게 연락을 주 셨습니까?”

‘형님?’

최호인이 꺼낸 호칭.

여전히 신경에 거슬린다는 생각을

하며 이규한이 말했다.

“뭐 하고 있었어?”

“작품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어딘데?”

“한강 공원입니다.”

최호인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좋아 작품 구상이지,공원에 서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 을 최호인의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 졌기 때문이었다.

“오늘 바빠?”

“왜 그러십니까?”

“오늘 좀 만나지.”

“저를요?”

“그래.”

이규한이 용건을 밝히자,최호인이 물었다.

“왜 저를 만나시려는 겁니까?”

이규한이 대답했다.

“계약해 주려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느지막이 사무실로 출근한 이규한 이 소파에 앉아 있을 때,노크 소리 가 들렸다.

이규한이 문을 열자,최호인이 서 있었다.

“형님,안녕하셨습니까?” 서글서글한 인상의 최호인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있었다.

“진짜 착하고 좋은 사람이야. 너무 착해서 걱정이 될 정도로.”

여동생인 이규리가 최호인에 대해 말했던 평가였다.

눈에 콩깎지가 끼어서 잘못 본 것 은 아니었다.

최호인과 처음 만남을 가진 후,이 규한도 그냥 손을 놓고 있지 않았 다.

영화계 선후배들을 총동원해서 최 호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결과, 평가는 엇비슷했다.

- 사람은 착하고 좋다.

선후배들의 평가를 요약하면 다음 과 같았다.

‘이름 따라간다더니!’

호인 (好人).

좋은 사람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이름에 따라서 인생도 따라간다는 얘기를 떠올리던 이규한이 이내 정 색 했다.

사람이 착하고 좋은 것.

분명히 장점이었다.

그러나 문 앞에 서 있는 최호인을 바라보는 이규한의 표정은 좋지 않 았다.

만약 최호인이 생판 남이라면?

이렇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질 이유 가 없었다.

그렇지만 최호인은 자신의 여동생 과 교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매제가 되면서 가족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그래서 이규한은 최호인이 못마땅 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는 결 국 실속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 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속이 없는 남자와 결혼한 다면,여동생인 이규리가 고생할 것 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찌 최호인이 곱게 보일 까.

이규한만이 아니었다.

결혼 적령기의 여동생을 가진 오빠

라면 대부분 비슷한 심정일 터였다.

“들어와.”

“감사합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최호인이 두 리번거리며 내부를 살폈다.

그런 그가 잠시 후 입을 뗐다.

“형님,그런데 왜……

“형님 소리 좀 그만해.”

믹스 커피를 타고 있던 이규한이 정색한 채 말했다.

“네? 하지만……

“내가 아까 뭐라고 했어?”

“형님 사무… 아니,사무실에서 만 나자고 하셨습니다.”

“왜 만나자고 했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계약 때문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지금은 사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공적으로 만나는 거야. 그러 니까 호칭부터 정확히 하자고.”

“그럼… 대표님이라고 부를까요?”

“차라리 그 편이 낫겠네.”

“알겠습니다.”

최호인이 수긍한 순간,이규한이 종이컵에 믹스 커피 두 잔을 타서 돌아왔다.

‘아까 하려던 질문이 뭐였어?

최호인의 앞에 믹스 커피를 내려놓 으며 이규한이 물었다.

“대표님,좀 더 좋은 사무실을 얻 지 않고 왜 이런 곳에 얻으셨습니 까?”

“여기가 어때서?”

“너무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허름한 편이라서요. 솔직히 말 씀드리면 사무실을 찾는데 무척 애 를 먹었습니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성공으로 돈을 좀 버셨을 텐데 왜 이런 허름 한 사무실을 얻었느냐? 이 말이지?”

“네? 네.” “영화제작사의 사무실 외양이나 규 모는 중요하지 않아.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느냐? 또,이전에 어떤 작 품을 만들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해. 그러니까 너도 명심해. 번지르르한 사무실의 외양이나 회사의 규모에 속으면 안 돼. 그렇게 겉이 화려한 제작사일수록 실속이 없어서 오래가 지 못하니까.”

‘어쩌면 가족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일까.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이 바닥을 잘 모르는 최호인이 걱정이 됐다. 그래서 노파심에 충고를 건넸던 이 규한이 믹스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그런데 아까 계약하자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혹시 지난번에 제가 건 네드렸던 시나리오를 보시고 난 후 에 저와 계약을 하시려는 겁니까?”

최호인이 기대에 찬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속으로 코웃음 을 쳤다.

일전에 최호인이 가져왔던 시나리 오는 두 개.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와 ‘지구 너머의 낙원’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그 두 작품을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았다.

- 10,203.

- 4,569.

이미 감정을 통해서 스코어를 확인 한 상황.

상업성이 전혀 없는 두 편의 시나 리오를 정독하는 건 아까운 시간 낭 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규한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최호인은 여전히 기대에 찬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시선을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 다.

“감독 계약하고 싶어?”

“그야… 물론입니다.”

“왜 계약을 하고 싶지?”

“빨리 성공하고 싶어서입니다.”

“감독으로서 빨리 성공하고 싶다? 이름을 날리고 싶은가 보지?”

“그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 그럼 내 작품 을 빨리 세상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건가?”

이규한의 질문이 끝난 순간,최호 인이 대답했다.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입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흠칫했 다.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굳히며 명 성을 날리고 싶습니다.”

“내 작품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 게 선보이고 싶습니다.”

“딱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돈 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제작사와 작품 계약을 앞둔 신인 감독들이 밝히는 포부들이었다. 그 렇지만 최호인이 밝힌 포부는 일반 적이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해서 이규한이 다시 묻자,최호인 이 대답했다.

“형님,아니 대표님이 가장 우려하 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도 영화 쪽 일을 하고 계시니 영화를 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진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계 실 겁니다. 그래서 저와 교제하는 규리가 결혼 후에 생계 문제로 많이 힘들어할까 봐 우려하시는 것이지 않습니까?”

“잘 알고 있네.”

“그래서 더 빨리 성공하고 싶습니 다. 제가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굳

히게 되면 대표님도 우려를 덜고 저 와 규리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이규한이 최호인에게 새삼스런 시 선을 던졌다.

‘겉멋만 든 건 아니었네.’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는 최호인 의 생각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그러 나 이규한은 여전히 못마땅한 시선 을 던졌다.

책임감이 있다고 해서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영화판은 특히 더 그랬다.

‘만약 운이 좋아서 제작사와 계약 을 하고 영화를 찍어서 개봉한다 면?’

어느 눈먼 제작자를 만나서 감독 계약을 맺고,흥행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투자자를 운 좋게 꼬드겨 서 투자를 받아 내는 데 성공해 영 화를 찍고 개봉했을 경우,최호인의 미래는 눈에 불 보듯 뻔했다.

‘퇴출!’

일전에도 말했지만,제작사와 투자 배급사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바로 입봉작이 망한 중고 감독이었다.

이규한의 감정 결과,‘우리의 복수 는 범죄가 아니다’의 최종 관객수는 10,203명.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아주 거하 게 말아먹는 셈이었다.

그럴 경우 최호인에게 재기를 할 기회가 주어질 확률?

제로에 가까웠다.

자연스레 영화계 퇴출 수순을 밟을 것이었다.

‘그래선 안 되지!’

이규한의 예상 시나리오대로 상황 이 전개될 경우,최호인과 결혼한 이규리의 고생길이 훤히 열리는 셈 이었다.

물론 이규한은 그렇게 상황이 전개 되도록 손 놓고 지켜볼 생각이 없었 다.

이것이 최호인을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 사무실로 부른 진짜 이유.

이규한이 천천히 입을 뗐다.

“영화계 선배인 내가 경험한 이 바 닥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냐. 의욕 만 갖고 성공할 수 있는 바닥이 아 니란 뜻이지.”

“그렇지만……

“입봉작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유명 세를 타고 돈도 많이 번 감독들이 전부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 그 거 착각이야. 어지간한 감독들은 그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눈물 젖은 빵을 곱씹고 또 곱씹었어. 오 죽하면 고깃집 불판을 최소 삼 년은 닦아야 입봉 감독이 될 자격이 생긴 다는 말이 생겼겠어?”

“아까도 얘기했듯이 이 바닥은 의 욕만 갖고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 냐. 성공을 하려면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해.”

“어떤 단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규한이 대답했다.

“아까 내가 얘기했잖아. 고깃집 불 판을 최소 삼 년은 닦아야 상업 영 화 감독 입봉 자격이 생긴다고. 그

러니까 가서 고깃집 불판을 닦아.”

“진심… 이십니까?”

최호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고깃집에서 불판 닦는 아르바이트 를 하면서 삼 년을 버티면 감독 입 봉을 할 자격이 생기고,오 년을 버 티고 나면 감독의 입봉작이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꽤 높은 편이라고 하 더라고. 도 닦은 심정으로 고깃집 불판을 닦다 보면 감독으로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 지.”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 최호인 이 연신 눈을 낌벅였다.

여전히 진담인지 농담인지 헛갈리

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제게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해 보라는 말씀 이십니까?”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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