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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29화 (29/272)

29 화

감독지망생 최호인 -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기계음이 흘러나온 순간,이규한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동 중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하나뿐인 여동생 이규리 는 이규한의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 다.

“일부러 안 받는 거야!”

이규리의 결혼 문제로 인해 의견 충돌이 있었고,그로 인해 남매 간 의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

그래서 이규리는 자신의 전화를 일 부러 받지 않고 있을 확률이 높았 다.

이규한은 계속 전화를 거는 대신, 이규리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앞으 로 찾아가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 다.

약 이십 분쯤 흘렀을까.

퇴근을 서두르고 있는 사람들 틈에 서 여동생 이규리의 모습을 발견한 이규한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오랜만이다.”

이규한이 앞을 막아서며 인사하자, 이규리가 홈칫 놀랐다.

“오빠가 여긴 어떻게 왔어?”

“전화를 안 받아서 직접 찾아왔지. 꼭 할 얘기가 있거든.”

이규한이 용건을 꺼냈지만,이규리 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난 오빠랑 할 얘기 없어. 그러니 까 돌아가.”

차갑게 말한 후 이규리가 그대로 지나쳐 갔다.

그런 그녀의 등뒤로 이규한이 소리 쳤다.

“지금 이대로 가면 후회한다.” “네 인생이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거든.”

이규한이 덧붙인 순간,이규리가 걸음을 멈추었다.

빙글 몸을 돌린 그녀가 이규한의 앞으로 다가왔다.

“내 인생 망쳐 놓고 아직 할 말이 더 남았어?”

따지듯이 쏘아붙이는 이규리의 목 소리는 냉랭했다.

“응. 남았어.”

“대체 무슨 말이 더하고 싶은 건 데?”

“미안하다.”

이규한이 사과하자,이규리가 두 눈을 치켜떴다.

먼저 사과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리라.

“왜 이래?”

“뭐가?”

“왜 오빠답지 않게 갑자기 사과를 하는 거냐고?”

‘나답지 않다?’

그 이야기를 곱씹던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다시 태어난 셈이거든.”

“뭐라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 는 이규리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내가 틀렸던 것 같아.”

“뭐가 틀렸다는 건데?”

“그때 내 선택.”

이규한이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 했지만,이규리의 두 눈에 깃들어 있는 불신과 의심은 여전히 사라지

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래? 무슨 수작을 부 리려는 거야?”

‘쉽지 않네!’ 몇 마디 말과 사과로는 이규리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규한이 대답을 미루고 제안했다.

“오랜만에 같이 술 한잔할까?”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일까? 포장마차는 텅 비어 있었다.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

은 이규한이 소주병을 들어서 이규

리의 앞에 놓인 잔을 채워 주었다.

“많이 원망했지?”

자신의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르 며 이규한이 물었다.

“응.”

이규리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규리가 이규한을 원망하게 된 계

기는 그녀의 결혼 문제 때문이었다.

“나,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얼마 전,이규리는 결혼하고 싶다 는 의사를 피력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강하게 그녀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리고 이규리의 결혼을 극구 반대한 것은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이규리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남자의 직업 때문이었다.

영화감독.

아니,좀 더 엄밀히 말하면 남자의 직업은 영화감독이 아니었다.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당시에 이규한이 반대했던 이유는 영화감독으로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영화감독의 삶이 얼마나 불확 실한지도 알고 있어서였다.

“분명히 불행해질 거야. 그래서 나 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

이규한이 당시에 이규리에게 건넸 던 말이었다.

물론 이규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 다.

일단 그 사람을 한번 만나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봐 달라고 간곡하 게 부탁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냉정하게 그 부 탁을 거절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이 또 바뀌었 다.

그 이유는 이규한이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그 사람이랑 헤어졌어. 이제 속이 시원해? 내 인생 망쳐 놓고 나니까 아주 속이 시원하냐고?”

이규한과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부

딪쳐서 이규리는 그 남자와 끝내 헤 어 졌다.

그 남자와 헤어진 후,이규리는 핏 발 선 눈으로 이규한을 쏘아보면서 원망 가득한 말들을 쏟아냈다.

또,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 다고 선언했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서 그냥 해 본 말이겠거니 하고 여겼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그 일로 인해 가족들간의 관계가 틀어지며 사이가 소원해졌고,그 후 이규리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살았다.

혼자 살면서 부쩍 어두워지고 또 괴팍한 성격으로 변모해 가는 이규 리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이규한에게는 무척 괴로웠던 일들 중 하나였다.

자신의 선입견과 아집으로 인해 하 나뿐인 여동생이 불행해졌다는 죄책 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이규한이 알고 있는 이규리 의 미래.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내리 려는 것이었다.

“이름이 뭐야?”

“누구 말이야?” “네 남자 친구.”

이규한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묻 자,이규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 다.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이규한이 관 심을 드러낸 것.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리라.

또,그만큼 의외였기 때문이리라. “최호인이야.”

“최호인?”

이규한이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없어!’

잠시 뒤 이규한이 슬쩍 눈살을 찌

푸렸다.

이규인이 알고 있는 미래 속.

최호인이라는 영화감독의 이름은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최호인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

그가 영화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했 다는 증거였다.

그때 였다.

“갑자기 왜 이래?”

이규리가 재차 의심쩍은 시선을 던 졌다.

최호인과의 만남을 극구 반대하던 이규한이 갑자기 그에게 관심을 드

러냈기 때문에 의구심을 품은 것이 었다.

“네가 부탁했잖아.”

“......?"

“일단 한 번 만나봐 달라고.”

“그렇지만……

“좀 늦긴 했지만 네 부탁 들어주려 고.”

“방금 그 말,무슨 뜻이야?”

이규한이 대답했다.

“그 친구를 한번 만나 볼 생각이 ‘성격은 좋아 보이네!’

이규한이 받은 최호인의 첫인상이 었다.

이규리에게서 연락을 받고 급하게 뛰어온 탓일까.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포장마차 안 으로 들어온 최호인을 관찰하듯 빤 히 바라보던 이규한이 손을 내밀었 다.

“규리 오빠,이규한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최호인이 라고 합니다.” 최호인이 악수를 하면서 인사했다.

“일단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될까?”

“네.”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규리 의 곁에 앉아 있는 최호인을 바라보 았다.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

무척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 각이 들었다.

또,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 에는 애정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을 억지로 갈라놓았 으니!’

이규한이 한숨을 내쉰 후,입을 뗐 다.

“영화감독 지망생이라고 들었는데. 맞아?”

“네. 맞습니다.”

“연출부 경력은 있어?”

“아직 없습니다.”

“단편 영화는 찍어봤고?”

“한 편 찍었습니다.”

“제목이 뭐지?”

“‘대신동 목욕탕’입니다.”

“제목이 ‘대신동 목욕탕’이라고?”

“그렇습니다. 함께 대신동에 위치 한 낡고 오래된 목욕탕을 다니는 아 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최호인이 ‘대신동 목욕탕’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 지만,이규한이 도중에 잘랐다.

“혹시 대신동,살아?”

“아닙니다.”

“그럼 대신동에서 살았던 적은 있 어?”

“네,중학생 때까지 대신동에 살았 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아챈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동 목욕탕’이란 단편 영화, 네 이야기지?”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부분 그렇게 시작하거든.”

신인 작가 혹은 신인 감독의 경우, 자신의 이야기를 쓰거나 연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가장 쉽기 때문이다.

최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와 아버지가 함께 대신동에 있 는 목욕탕을 다녔습니다. 한 주에 한 번, 토요일 아침마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가는 시간을 저는 무 척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가 목욕탕에 데려갈 때마다 환타를 사 주셨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목욕탕 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던 적이 있 는데……

“됐어.”

“네?”

“자세한 내용은 말할 필요 없다는 뜻이야.” 최호인이 꺼내는 이야기를 이규한 이 또다시 도중에 잘랐다.

아무리 현직 피디 겸 제작자라고 해도 신인 감독들이 찍는 단편 영화 들에게까지 모두 관심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국내 및 해외의 유명 영화제에 출 품해서 수상한 단편 영화의 제목 정 도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재차 기억을 더듬 어 보았음에도 ‘대신동 목욕탕’이란 제목의 단편 영화는 영화제 수상 목 록에 없었다.

‘수상을 못 했군!’ 영화제 심사위원들의 눈.

의외로 정확한 편이었다.

최호인의 첫 단편 영화 연출작인 ‘대신동 목욕탕’이 단편 영화제에서 수상을 못 했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 가 있을 터였다.

그러니 굳이 자세한 영화의 줄거리 까지 들을 필요는 없다고 이규한이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보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 해야 할까?’

이규한이 고민에 잠겼다.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최호인의 포 지션.

직접 만나기 전,이규한이 막연하 게 예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 다.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 을 갖고 영화판에 뛰어 들긴 했지 만,아직 경험과 절실함이 턱없이 부족한 편이었다.

또,영화감독으로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 있는가 여부도 확실 치 않았다.

‘만약 평소의 영화제작자 이규한이 었다면?’

최호인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 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판단했을 것 이었다.

그래서 이미 진즉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리라.

그렇지만 잔뜩 긴장한 채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규리 때문에 라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는 알아?”

잠깐의 고민 끝에 이규한이 입을 뗐다.

“네,규리에게서 들었습니다. 현직 영화 프로듀서라고.”

“맞아. 혹시 내 이름 들어본 적 있 어?”

“못 들어봤습니다.”

“그럼 내가 가장 최근에 한 작품이

뭔지는 알아?”

“그것도 모릅니다.”

최호인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규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과속 삼대 스캔들’에 참여한 실력 있는 피디라는 것을 알고 일부 러 이규리에게 접근한 게 아닐까?’ 최호인을 만나기 전,내심 우려했 던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지만 괜한 기우에 불과했다.

‘하긴 모를 테니까!’

비록 남매지간이었지만,결혼 문제 로 심각한 갈등을 겪으면서 이규한 과 이규리는 근래 들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이규리는 이규한이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화 ‘과속 삼대 스 캔들’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사 실조차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이규한이 조금 안심한 표정 으로 입을 뗐다.

“내가 가장 최근에 한 작품은 ‘과 속 삼대 스캔들’이야.”

“방금… 무슨 작품이라고 하셨습니 까?”

“얼마 전에 개봉했던 ‘과속 삼대 스캔들’이라고 했어.”

이규한이 재차 확인해 준 순간,조 용히 앉아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규리가 참지 못하 고 나섰다.

“오빠가 ‘과속 삼대 스캔들’의 피 디를 맡았었다고?”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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