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7화 (27/272)

27화

파스타 말고 설렁탕 “반쪽짜리?”

“연기 열정이 없다고 표현하면 될 까?”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말 그대로야. 딱 자기한테 어울리 는 배역만 맡아. 기존의 연기틀을 쩔 수 있는 다른 배역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도 자꾸 도망 쳐.” 배민석이 차수련에 대한 험담을 늘 어놓았다.

“연기 열정이 없는데 왜 연극을

해?”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가 아는 건 하나야.”

“뭔데?”

“집이 좀 산다는 것.”

“그래?”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까 기회가 찾아와도 발로 뻥뻥 걷어차 버리는 것 아니겠어?”

불만이 쌓여서일까.

배민석이 부지불식간에 언성을 높 객석에서 연극을 보던 관객들의 시 선이 쏠려 있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 이 고개를 숙여서 사과했다.

“공연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

이규한이 다시 무대 위로 시선을 던졌다. 그렇지만 이미 차수련은 자 신의 연기를 마치고 무대에서 퇴장 한 후였다.

“원석!”

아쉬운 표정을 짓던 이규한이 작게 혼잣말을 꺼냈다.

소극장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 에 위치한 고깃집을 향해 걸어가던 중,배민석이 작은 목소리로 물다.

“진짜 삼겹살 살 거야?”

“아까 뒤풀이 시켜 주겠다고 약속 했잖아.”

“뒤풀이를 시켜 주겠다고 했지만, 삼겹살을 사겠다는 말은 안 했지. 우리 애들 먹성 좋다. 나중에 후회 하지 말고,지금이라도 다른 메뉴 정하는 게 어때?”

“한우 사겠다고 그랬으면 기절했겠 네.” “그랬으면 기절하는 게 아니라 춤 을 췄겠지. 그리고 넌 우리 극단 배 우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은인으로 남게 되겠지.”

“그럼 은인으로 남겨지게 소고기로 바꿀까?”

이규한이 제안하자, 배민석이 두 눈을 치켜떴다.

“너,혹시 로또 맞았냐?”

“로또 맞았으면 널 안 찾아왔지.”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민석아!”

“말해,

“삼겹살 한번 사는데 너무 추궁하 는 것 아냐?”

“그런가? 에이,모르겠다. 일단 먹 자.”

잠시 뒤,이규한과 극단 소명의 배 우들이 미리 예약한 고깃집으로 우 르르 몰려 들어갔다.

치르록. 치지직.

불판 위에 을라간 삼겹살이 맛있는 소리와 함께 익어 가고, 각자의 앞 에 놓인 술잔이 채워졌을 무렵,배 민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 주목!”

극단을 이끌고 있는 배민석에게 단 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여러분께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

내 대학 동기이자,현직 영화 피디 인 이규한이야. 그리고 오늘 회식비 를 쏘기로 약속한 장본인이기도 하 다.”

와아!

와아아!

이규한이 오늘 회식비를 계산할 거 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극단 소명의 단원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쏟아 냈 다.

그때,배민석이 말했다.

“일어나서 인사해.”

“무슨 인사씩이나.”

이규한이 손사래를 쳤지만,배민석 은 막무가내로 기어이 일으켜 세웠 다.

엉겁결에 일어선 이규한이 자신에 게 쏠려 있는 시선들을 일일이 바라 보았다.

호기심과 환대가 섞인 시선들을 살 피던 이규한의 시선이 멈춘 곳은 차 수련에게서였다.

아무런 관심이나 기대가 없는 차수 련의 시선을 확인한 이규한이 마음 을 고쳐먹고 입을 열었다.

“아까 소개받은 대로 민석이와 대 학 동창이자 얼마 전까지 영화 프로 듀서로 일했던 이규한이라고 합니 다. 가장 최근에 피디로 참여했던

작품은 ‘과속 삼대 스캔들’입니다.”

이규한이 ‘과속 삼대 스캔들’을 언 급한 이유는 차수련 때문이었다.

요 근래 영화계 최대 흥행작인 ‘과 속 삼대 스캔들’의 프로듀서를 맡았 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란 이규한의 계산은 적 중했다.

차수련의 무심하던 눈동자에 호기 심이 떠올라 있었다.

그때 였다.

“야,그게 무슨 소리야?”

배민석이 화들짝 놀라며 추궁했다.

“네가 ‘과속 삼대 스캔들’의 프로

듀서였다고?”

“그래.”

“왜 말 안 했어?”

“안 물어봤으니까.”

“안 물어보긴 했네.”

머리를 벅벅 긁던 배민석이 다시 물었다.

“그걸로 돈 벌어서 제작사 차린 거 구나?”

“뭐, 대충 그런 셈이지.”

“그래서 삼겹살도 사는 거고?”

이규한이 대답 대신 씩 웃었다. 그것을 확인한 배민석이 부러워 죽

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극단 소명의 단원들의 시선도 바뀌었다.

물주에서 잘나가는 영화 피디로 인 식이 바뀐 탓이리라.

“오늘 공연 잘 봤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언젠가 여러분들과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 니다.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 니다.”

이규한이 인사를 마치고 명함을 한 장씩 돌렸다. 그리고 차수련의 앞에 도착한 이규한이 명함을 건네며 말 했다.

“저와 작품 같이하시죠. 꼭 한번 연락 주세요.” 이규한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며 눈을 떴다.

“간밤에 술이 너무 과했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꺼내 벌 컥벌컥 들이켠 후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는 휴대 전 화를 확인한 이규한이 쓴 웃음을 머

금었다.

영화 제작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 도들 가운데 하나가 얼마나 많은 전 화가 걸려 오는가 여부였다.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 것은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니까.

또,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부재중 전화가 한 통도 없네!”

해가 중천에 뜰 동안 아무도 전화 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 제작자 이규한이 현재 처해 있는 현실이었 다.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이규한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 오를 다진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마치 위로라도 하듯이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액정에 떠올라 있는 낯선 번호를 확인한 이규한이 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이규한 대표님이시죠?”

“누구시죠?”

“차수련이라고 합니다.”

휴대전화를 쥐고 있던 이규한의 손 에 힘이 들어갔다.

“혹시 기억하세요?”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차수련이 일단 연락을 하긴 했지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간파한 이규한이 재빨리 이야기를 이어나갔 다.

“이렇게 먼저 연락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지금 어디세요?”

“지금이요?”

“네. 아직 점심 식사 전이죠?”

“그렇긴 한데.”

“같이 점심 식사나 하시죠.”

차수련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 다.

그 반응을 간파한 이규한이 덧붙였 다.

“삼십 분 뒤에 충무로에서 뵙죠.”

“네? 네. 그런데 안 바쁘세요?”

“바뽑니 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도 안 바빴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뻔뻔하게 거짓 말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차수련 씨를 만나 는 것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

“굳이 오늘이 아니더라도……

“아니요. 오늘 만나야 합니다. 그럼 있다가 뵙겠습니다.”

이규한이 통화를 마치고 주먹을 불 끈 움켜쥐었다.

차수련과의 만남을 서두른 이유.

이미 그녀의 성향을 어느 정도 간 파했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많은 타입!’

차수련은 좋게 말하면 신중한 편이 었고,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편 이었다.

이미 ‘그때,우리’에 차수련을 캐스 팅하기로 결심을 굳힌 상황.

그녀를 캐스팅하기 위해서는 정신 을 차릴 새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밀어붙이는 편이 맞다고 이규한은 판단했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친 이규한이 출발 전 고민에 잠겼다.

“그런데 뭘 먹지?” “설렁탕,어때요?”

파스타 전문점을 지나친 이규한이 설렁탕집 앞에서 물었다.

설렁탕을 먹자고 제안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일까.

차수련이 살짝 당황한 기색을 드러 냈다.

“별론가요?”

이규한이 다시 묻자,차수련이 대 답했다.

“실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 서요.”

“그럼 오늘 한번 드셔 보세요. 제 가 어제 과음을 했더니 속이 좀 쓰 려서요. 일단 한번 드셔 보시면 왜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는 것을 안 먹 었던 거지?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이규한이 차수련의 팔을 이끌고 설

렁탕집으로 들어갔다.

“설렁탕 특으로 두 개 주세요.”

잠시 뒤,주문한 설렁탕이 도착했 다.

“빨리 나오죠? 자,여기 있는 썬 파를 드실 만큼 덜어서 넣은 후에, 소금 간을 하고 드시면 됩니다.”

이규한이 설렁탕을 먹는 방법에 대 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한 후,시범 을 보이듯 썬 파를 넣고 소금 간을 했다.

“아,이제 좀 살 것 같네요.”

뚝배기를 들어 올린 이규한이 국물 을 쭉 들이켜고 난 후, 환하게 웃었 여전히 숟가락을 들지 않고 망설이 고 있는 차수련을 발견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댔다.

“차수련 씨,독 안 들었습니다. 다 른 사람들도 먹고 있잖아요. 설마 돈 받고 파는 음식에 독을 넣기야 했겠습니까?”

“그건 저도 알지만……

“일단 한번 드시고 나서 말씀하시

이규한의 재촉을 받은 차수련이 마 지못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뽀얀 설렁탕 국물을 숟가락으로 뜬

차수련이 망설임을 끝내고 입으로 가져갔다.

“어때요?”

“맛이… 생각보다 괜찮네요.”

차수련에게서 돌아온 대답을 꺼낸 이규한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파스타를 좋아하신다면서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민석이한테 들었습니다.”

“아,단장님이요.”

“아까 우리가 지나쳤던 파스타 가 게,맛집으로 꽤 소문이 난 곳입니 다. 그런데 왜 그냥 지나치고 설렁 탕을 먹으러 왔는지 혹시 이유를 아

시겠습니까?”

“어제 과음하셔서 속이 안 좋으시 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물론 그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 다.”

“어떤 이유죠?”

“일단 드시죠. 설렁탕은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니까요. 그 이유는 다 드시고 나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규한이 그 말을 끝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속이 아프고 배도 고팠기 때문에 허겁지겁 설렁탕 한 그릇을 해치운

이규한이 그제야 차수련을 살폈다.

설렁탕을 절반가량 비운 차수련을 확인한 이규한이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뭐가요?”

“생각보다 잘 드셔서요.”

“다 먹었습니다.”

“그럼 일어날까요?”

“또 어딜 가는 건가요?”

이규한이 계산서를 집어들면서 대 답했다.

“입안이 럽텁해서 커피 한 잔 마셔 야겠습니다.”

쪼오옥.

이규한이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아 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후,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제 해장이 좀 된 것 같네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잔 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 차수련을 향해 이규한이 물었다.

끼유가 궁금하시죠?”

“대단한 건 아닌데.”

“말씀해 주세요.”

“차수련 씨의 루틴을 깨 드리고 싶 었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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