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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26화 (26/272)

26화

명함 돌리려고 ‘아직이다!’

김단비의 대답을 통해서 아직 ‘수 상한 여자’를 구상하기 전이라는 사 실을 알게 된 이규한이 안도했다.

또 덕분에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 어 낸 이규한이 본격적으로 본론에 돌입했다.

“제가 김단비 씨를 찾아온 이유는 각색을 맡기고 싶어서입니다.” “각색이요?”

“‘과속 삼대 스캔들’을 끝으로 퇴 사해서 제가 새로운 제작사를 차렸 습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라는 제작사입니다. 아까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아무런 정보가 나오지 않 은 이유는 아직 회사를 차린 지 얼 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어쨌든 블 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각색을 김단비 씨에게 맡기 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각색 제안이 의외여서일까.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김단비가 물었다.

“왜 하필 저를 찾아오셨나요?”

“김단비 씨를 찾아오면 안 됩니 까?”

“그건 아니지만… 아까도 말씀드렸 둣이 저는 아직 크레덧도 없고,공 모전 수상 경력도 없는 신인 작가입 니다. 왜 제게 각색을 맡기시려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가서요.”

“왠지 잘하실 것 같은 느낌이랄까 요.”

“네?”

“실은 김단비 씨가 예전에 썼던 작 품을 우연히 읽었습니다. 그래서 김 단비 씨가 코미디에 강점을 갖고 있 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꼭 이번 작 품의 각색을 맡겨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당신이 ‘수상한 여자’라는 흥행 작 품의 원작 시나리오 작가라는 사실 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번 각색을 맡기 고 싶다.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그래서 이규한은 미리 준비해 온 거짓 대답을 꺼낸 것이었다.

다행이 김단비는 더 의심을 품지 않았다.

“어떤 작품인가요?”

“시나리오를 갖고 왔습니다.”

이규한이 가방에서 ‘그때,우리’의 시나리오를 꺼냈다.

그 시나리오를 김단비에게 건네기 전에 이규한이 말했다.

“두 가지는 약속드리겠습니다.”

“어떤 약속을 한다는 말씀이신가 요?”

“우선 시나리오 각색에 대한 정당 한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그리고 크레딧에 김단비 씨의 이름을 꼭 올 려 드리겠습니다.”

제작자 이규한이 현재 김단비에게

해 줄 수 있는 약속들이었다.

각색 작가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권 리.

그렇지만 당연한 권리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 영화계였다.

그래서일까.

놀란 표정을 짓던 김단비가 고개를 끄덕인 후,‘그때,우리’의 시나리오 를 건네받았다.

잠시 뒤,그런 그녀가 물었다.

“각본 작가는 누구인가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각본 작가는… 접니다.” ‘영화를 하고 싶다!’

이런 결심을 하고 연극영화과에 진 학했다. 그렇지만 정확히 어떤 포지 션을 택할 것인지를 정했던 것은 아 니었다.

연기,작가,감독,피디 중에서 무 엇을 할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표현하면 정확했다.

그중 가장 먼저 배제된 것은 연기 였다.

졸업 공연으로 연극 무대에 배우로 섰던 이규한은 연기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무대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그 뒤,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다.

작품성 있는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 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꿈을 꿨 던 것이었다.

당시에 이규한이 구상했던 시나리 오가 바로 ‘그때,우리’였다.

어떤 꿈도 없이 방황하듯 하루하루 를 보내는 청춘들의 이야기.

바로 이규한과 친구들의 모습이었 다.

질단 기다려야겠네!

‘그때,우리’의 각색 작업을 김단비 에게 맡기는 데 성공했다.

“영화는 기다림의 예술이니까.”

이제 김단비가 시나리오를 수정해 서 올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야 했다.

덕분에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이 규한은 영화 제작자였다. 그리고 영 화 제작자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었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규한이 휴대전화를 꺼내서 오래 간만에 배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이 피디!”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수화기 너머로 경박함이 묻어나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이 피디 아니다.”

이규한이 정정해 주자,배민석이 물었다.

“잘렸어? 아니면, 영화 관뒀어?” “둘 다 아니다.”

“그럼 왜 이 피디가 아냐?”

“앞으로 이 대표라고 불러.”

“이 대표? 너,설마 제작사 차렸 나?” “미친놈. 패가망신하려고 작정했네, 작정했어.”

이규한이 제작사를 차렸다는 사실 을 알리자마자,배민석이 악담을 퍼 부었다.

그렇지만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 다.

영화 제작사를 겁 없이 차렸다가 망하는 선후배들을 많이 보았기 때 문에 우려를 표하는 것이었다.

“돈 빌려 달라고 전화한 건 아니

지?”

“나도 양심은 있다.” “양심?”

“벼룩의 간을 빼먹지는 않는다는 뜻이야.”

배민석은 연극계에서 활동하고 있 었다.

극단 소명의 공동대표.

대학로에서 꾸준히 작품을 올리고 있지만,극단의 형편은 어려웠다.

워낙 연극계의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돈을 빌 려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이규한이 양심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럼 왜 전화했어?” “명함 돌리려고.”

“명함을 돌리다니?”

“대표 직함 박힌 명함을 새로 팠는 데 마땅히 돌릴 데가 없어서 말이 지. 명함이 아직 많이 남았네.”

“그래서 명함을 돌리러 찾아오시겠 다? 오지 마. 오늘 공연 있어.”

“알았어. 시간 맞춰서 갈게.”

“야,오지 말라니까.”

“밥 한번 살게. 아니다. 내가 뒤풀 이 한번 시켜 줄게.”

이규한이 제안하자,배민석의 태도 가 돌변했다.

“명함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긴 “기다려. 곧 확인시켜 줄게.”

배민석과 통화를 마친 이규한이 대 학로로 향했다.

끼이익.

소극장 문을 열고 들어간 이규한이 맨 뒷좌석에 앉았다.

연극 공연이 곧 시작될 소극장의 객석을 살피고 있던 이규한이 한숨 을 내쉬었다.

총 백 석 규모의 객석에 입장해 있는 관객은 쉰 명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 중에 유료 관객이 얼마나 될

까?’

역시 연극계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 고 있을 때,이규한의 옆자리에 배 민석이 털썩 주저앉았다.

“언제 왔어?”

“방금 왔다.”

“이렇게 만나니까 옛날 생각난다.”

“옛날 생각?”

“예전에 졸업 공연 하던 때 말이 야.”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졸업 공연 당시 배민석은 연출로, 이규한은 배우로 함께 작품을 준비 했었다.

“끔찍했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이규한이 입 을 떼자,배민석도 동조했다.

“정말 끔찍했지. 내 평생 그렇게 연기를 못 하는 배우는 본 적이 없 다.”

“무대공포증 때문이었다니까.”

“흥,핑계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좋은 경험이었어.”

“좋은 경험?”

“덕분에 연기에 소질이 없다는 것 을 알게 됐으니까.”

“하여간 참 긍정적이란 말이야.”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배민석을 힐끗 살핀 이규한이 말했다.

“공연 시작한다. 보고 얘기하자.”

극단 소명에서 제작한 연극 ‘한밤 의 소동’ 공연의 막이 올랐다.

연극 공연을 지켜보던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눈에 띄는 연극배우가 있었기 때문 이었다.

“별이 좋아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고? 아주 지랄들을 하세요. 용의선

상에서 벗어나려면 좀 제대로 된 변 명을 찾아오던가. 하여간 요새 용의 자들은 참 무성의해. 두 유어 베스 트란 말,몰라? 뭘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 아냐?”

‘목소리 톤도 좋고, 발성도 좋아. 연기도 자연스럽고.’

형사 배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던 이규한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박도원. 잘하지?”

“응,잘 하네.”

“마스크만 괜찮았으면 크게 됐을

녀석인데.”

배민석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 배역을 맡은 박도원의 마스

크.

결코 잘생긴 편은 아니었다. 그리 고 특색이 있지도 않았다.

배우로 성공하기에는 너무 무난한 마스크랄까.

“딱 여기까지야.”

배민석이 박도원에 대한 평가를 내 렸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생각은 조금 달

‘연극배우들이 영화계를 점령하는 날이 온다!’

연극계에서 연기력을 갈고 닦은 배 우들이 여러 영화들의 주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영화계를 접수하는 날이 머잖아 찾아왔다.

적어도 이규한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까 명함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실력 있는 배우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일부러 연극 공연을 보러 찾아왔던 것이었다.

‘박도원이란 이름을 기억해 두자!’

이규한이 다시 연극 공연에 집중했 다. 그리고 공연이 막바지로 향할 때쯤,이규한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대 위로 처음 등장한 여배우가 장후의 호기심을 끌어당겼기 때문이 었다.

“별은 졌어요. 밤하늘의 별도, 내 마음 속에 당신이라는 별도. 아침이 밝았으니 다른 별이 뜨길 기다릴 거 예요.”

대사는 길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배우의 흡입력은 대단 했다.

신비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규한과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저 여배우는 누구야?”

이규한이 참지 못하고 배민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련이?”

“저 여배우 이름이 수련이야?”

“그래. 차수련이야.”

“연기 잘하네.”

이규한이 칭찬하자,배민석이 고개 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 피디,감 많이 떨어졌네.” “이제 피디가 아니라 대표라니까.”

“아,네. 이 대표님. 그런데 이렇게 배우 보는 감이 떨어져서 사업 성공 하시겠습니까?”

“무슨 소리야?”

“차수련,반쪽짜리야.”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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