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5화 (25/272)

25 화

충무로역 인근에 위치한 패스트푸 드점.

딸랑.

이규한이 안으로 들어가자,점원이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건네는 점원의 앞으로 다가 간 이규한이 명찰을 살폈다.

‘찾았다!’

명찰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이규한 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막연히 짐작은 했지만,아직 입봉 하지 못한 무명 시나리오 작가 김단 비를 찾는 것은 짐작보다 훨씬 어려 웠다.

가진바 인맥을 총동원해서 김단비 란 이름을 가진 시나리오 작가를 알 고 있는 사람을 수소문했고,이틀 만에 겨우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단서를 알려 준 것은 피디나 감독이 아니었다.

이규한과 친분이 있는 피디와 잠깐 작업을 했던 적이 있던 시나리오 작 가가 김단비와 친구 사이였다.

덕분에 김단비가 이곳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사흘 만에 겨우 찾아온 것이었다.

“뭘로 주문하시겠습니까?”

김단비의 물음에 이규한이 대답했 다.

“치킨 버거 세트로 부탁합니다.”

“드시고 가실 건가요?” “주문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치킨 버거 세트 하나 주문하신 것이 맞습 니까?”

“맞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이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답 했다.

“더 필요한 게 있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을 말씀해 주십시 오.”

김단비의 요청을 받은 이규한이 망 설임 없이 대답했다.

“시나리오 작가 김단비!” ‘미친 놈!’ 시나리오 작가 김단비가 필요하다 는 대답을 꺼냈을 때,김단비는 황 당한 표정으로 이규한을 바라보았 다.

그런 김단비의 시선에 담긴 감정이 었다. 그리고 김단비의 매서운 시선 은 이규한이 주문한 햄버거를 먹는 동안에도 줄곧 떨어지지 않았다.

“교대 시간이 세 시라고 했나?”

아까 주문을 할 때,김단비에게 아 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떨결에 세 시라고 대답했었다.

‘얼추 다 됐군!’

오후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 손목시계를 확인했지만,이규한은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 어섰다.

이대로라면 김단비가 경찰에 신고 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깃들 었기 때문이었다.

주문하려는 손님이 없다는 것을 확 인한 이규한이 카운터 앞으로 다가 갔다.

“저,나쁘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닙 니다. 아까 드린 명함에 적힌 대로 영화 제작사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입니다.”

이규한이 경계심을 풀어 주기 위해 서 설명했지만, 김단비의 두 눈에 깃들이 있는 불신이란 감정은 사라 지지 않았다.

“명함은 봤어요.”

“그런데요?”

“포털 사이트로 검색해 봤는데 안 나오던데요.”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포털 사이트에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를 검색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 는 것이 당연했다.

아직 제작사를 새로 개업한 지 얼 마 되지 않은 데다가,직원도 없는 판국에 홈페이지를 만들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가짜 명함이죠?”

“무슨 뜻이에요?”

“가짜 명함 파서 영화 제작사 대표 인 척하면서 순진한 여배우나 작가 들 등쳐 먹는 사기꾼,맞죠?”

김단비가 던진 질문을 들은 이규한

이 웃으며 대답했다.

“의심이 많은 걸 보니,스릴러 장 르의 시나리오를 써도 잘 쓰겠네 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제가 경찰에 신고할 수도……

“‘과속 삼대 스캔들’ 봤어요?”

“그 영화는 당연히 봤죠. 그런데 왜 갑자기 ‘과속 삼대 스캔들’ 이야 기를 꺼내는 거예요? 설마……

“설마 월니까?”

“설마 ‘과속 삼대 스캔들’의 피디 라고 뻥 치려는 건 아니죠?”

“유감스럽게도 그 설마가 맞네요.” “내가 ‘과속 삼대 스캔들’의 피디 에요.”

“거짓말!”

“못 믿겠으면 확인해 봐요.”

“어떻게요?”

“포털 사이트로 들어가서 ‘과속 삼 대 스캔들’의 영화 정보를 확인해 보세요. 그럼 프로듀서에 이규한이 라는 제 이름이 떠 있을 테니까요.”

김단비가 시키는 대로 포털 사이트 로 들어가 ‘과속 삼대 스캔들’의 영 화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김단비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믿어요?”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물었다.

그렇지만 김단비는 고개를 흔들었 다.

“미리 정보를 확인하고 이규한이란 이름으로 명함을 판 거죠?”

그녀가 던진 질문을 들은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되물었다.

“그동안 속고만 살았어요?”

“수상하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면 믿으려나?”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휴대전화 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과속 삼대 스캔들’의 촬영 현장에서 주연배우 인 차태훈과 박보연,왕석훈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갤러리에서 찾아서 김 단비의 앞으로 내밀었다.

“자,이 정도면 믿을 수 있겠어 요?”

그 사진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김단비의 두 눈에 떠올라 있던 의심 이 사라졌다.

“진짜 ‘과속 삼대 스캔들’의 이규 한 피디님이세요?”

“네. 제가 그 이규한입니다.”

‘잘했네!’

이규한이 ‘과속 삼대 스캔들’을 하 기를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과속 삼대 스캔들’에 프로듀 서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사기꾼으로 몰릴 뻔했으니까.

‘이래서 작품이 중요해!’

아무리 입으로 떠들어 봐야 소용이 없었다.

가장 좋은 홍보 효과를 가진 것은 작품의 필모라는 것을 이규한이 다 시 한 번 깨달았을 때였다.

“그런데 왜 절 찾아오셨어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시나리오 작가 김단비 씨가 필요하다고.”

김단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지만 저는 유명 작가도 아닌 “유명 작가는 아니지만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작가죠. 자세한 이야기 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계속할까 요?”

“네? 네.”

“이상한 사람 아닌 것 확인했으니 까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됩니다.”

?百'

김단비가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확 인한 이규한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 다.

약 30분 후.

아르바이트를 마친 김단비가 옷을 갈아입고 이규한이 앉아 있던 테이 블 앞으로 다가왔다.

“나갈까요?”

“여기서 얘기하셔도 됩니다.”

“왜요? 여기가 편해요?”

“그게 아니라… 콜라는 공짜로 마 실 수 있거든요.”

김단비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이규한이 금세 알아챘 다.

영화 제작자는 가난하지 않느냐?

그러니 차값을 아껴야 하지 않느 냐?

이런 의미가 담긴 시선을 던지고 있는 김단비를 확인한 이규한이 희 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속으로 생각 했다.

‘영화하는 사람이 가난하다는 걸 아는 걸 보니 아주 초짜는 아니구 나!’

잠시 뒤,이규한이 자리에서 일어 났다.

“차 한 잔 사 드릴 여유는 있습니 다.”

“네? 네!”

엉겁결에 대답하는 김단비에게 이 규한이 덧붙였다.

‘그리고 계약을 해 드릴 여유도 있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한 뒤,이규한이 김단비와 마주앉았다.

지금의 상황이 어색해서일까. 김단비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혹시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게 있 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실은 아직도 이해가 안 가서요.”

“무엇이 이해가 안 간다는 겁니

“대표님이 절 찾아오신 이유요. 저 는 아직 크레덧도 없고,변변한 수 상 경력도 없는데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김단비가 망설이다가 꺼낸 이야기 를 들은 이규한이 웃으며 되물었다.

“불안하시죠?”

“네?”

“날 이용해 먹으려는 놈이 아닐까? 내가 가진 기가 막힌 소재를 빼앗아 가려고 찾아온 게 아닐까? 이런 의 심이 들어서 불안하신 것 아닙니 까?” “이해합니다.”

이규한이 직접 만난 김단비는 의심 이 많은 편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불편하게 느 껴졌었는데.

좀 더 대화를 나눈 후인 지금은 그런 그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 다.

방금 김단비가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이 이미 여러 차례 피디나 제작자 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속았기 때문 이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의심도 늘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시나리오 작가 김단비 는 성공하지 못했다.

‘수상한 여자’라는 한국 영화 역사 에 남을 흥행작을 썼음에도 불구하 고,그녀의 이름은 크레덧에 올라가 지 못했으니까.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김단비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이규한 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김단비를 측은하게 바라볼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 다.

“아까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 잖아요.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까요?”

그때,김단비가 질문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 질문에 답하 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 니다.”

“말씀하세요.”

“김단비 씨가 구상하고 있는 이야 기들의 소재에 관한 것입니다.”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김단비 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있어서 스토리

는 잠재적인 재산이었다.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스토리가 작품이 되는 순간,잠재적인 재산이 실제 재산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재는 스토리의 핵심.

그런 소재에 대해서 이규한이 이야 기를 꺼내자, 김단비의 경계심이 본 능적으로 발동한 것이었다.

꼭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서 물건 을 홈쳐야만 도둑질이 아니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작가 의 재산인 소재를 빼앗아 가는 것도 엄연한 도둑질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의 예상이 틀리지 않 다면,김단비는 이런 도둑질을 여러 차례 당한 경험이 있을 터였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느껴지는 의심 과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이 그 증거 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소재에 관한 이 야기를 꺼낸 목적.

김단비의 우려와는 달랐다.

이규한은 김단비가 머릿속에 갖고 있는 기막힌 소재를 훔쳐 가기 위해 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 다.

진짜 이유는 미안해서였다.

‘만약’ 수상한 여자‘를 김단비가 이

미 구상한 상황이라면?’

이규한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 다.

물론 똑같은 소재를 구상했다고 하 더라도 먼저 작품을 만들어서 내보 내는 사람이 위너라는 것은 사실이 었다.

또,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 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도의적인 부분은 분명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규한이 조심스럽게 물었 다.

“혹시 판타지 소재의 이야기를 구

상한 것이 있습니까?”

“판타지 소재의 이야기요?”

“예를 들면 타임슬립이나 타임리프 같은 소재요.”

“혹시 대표님이 찾으시는 이야기가 판타지 소재가 가미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잘못 찾아오신 것 같아요. 제가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 중에 판 타지가 가미된 이야기는 없거든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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