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화
코미디가 필요해 공동 제작은 영화계에서 무척 흔한 편이었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과정에는 무척 큰돈이 드는 편이고,시간도 무척 오래 걸리는 탓에 두 제작사 혹은 그 이상의 제작사들이 손을 잡 고 영화 제작에 함께 뛰어드는 것이 었다.
그러나 김기현의 경우는 달랐다.
투자 배급사인 씨제스 엔터테인먼 트가 든든하게 서포트를 해 주는 만 큼,굳이 공동제작을 할 필요가 없 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것부터 확실히 하고 가야 겠네.”
이규한도 이런 김기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계약서 초안을 준비해서 스카이 엔터테인먼 트로 찾아왔다.
“이거부터 봐.”
이규한이 계약서 초안을 건넸다.
그 계약서 초안을 받아들었지만, 김기현은 제대로 읽는 기색이 아니 “친구끼리 믿고 하자.”
“그럼 이대로 간다?”
“내가 서류에 약해서 그런데 간략 하게만 설명해 줘.”
“알았어. 잘 들어. 우선 중요한 건 수익 비율이야. 손익분기점을 넘기 고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오 대 오 로 비율을 나누자.”
“오 대 오?”
설명을 듣던 김기현이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왜? 너무 적어?”
이규한이 묻자, 김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마를 원하는데?”
김기현이 대답했다.
“칠 대 삼.”
‘칠 대 삼이라!’
김기현에게서 바로 돌아온 대답을 듣고서 이번에는 이규한이 슬쩍 미 간을 찡그렸다.
칠 대 삼의 비율.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공동 제작은 힘들겠네!’
이규한이 막 이렇게 판단한 순간이 었다.
“혹시나 착각할까 봐 해서 하는 말 인데,네가 칠,내가 삼이야.”
“뭐라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7, 스카이 엔터테인먼트가 3이라고.”
당연히 반대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규한이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왜 내가 칠이야?”
“아까 계약서를 슬쩍 살펴보니까 내가 할 일은 별로 없던데?”
“네가 할 일이 있어.”
“뭔데?”
“투자 유치!”
김기현에게 ‘그때,우리’의 공동 제 작을 제의했던 가장 큰 이유는 투자 때문이었다.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 을 하면,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투 자를 받는데 분명히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김기현과 생각이 달랐다.
투자 유치!
영화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어려운 부분이었다.
해서 김기현에게 수익 배분을 오 대 오로 나누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 “각자 입장이 다르잖아.”
그때,김기현이 말했다.
“입장이 다르다니?”
“네 입장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투자 유치가 가장 쉬 운 부분이야. 그러니까 삼만 먹는 게 맞지. 아닌가? 이것도 너무 많은 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김기현을 바 라보던 이규한이 더 입을 열지 않고 그냥 다물었다.
‘그때,우리’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 는 상황.
수익 배분을 많이 가져갈수록 유리 했다.
그러니 굳이 양보를 할 필요는 없 었다.
“그럼 수익 배분은 칠 대 삼으로 하고,기획 개발은 내가 주도적으로 할게.”
“오케이. 혹시 어렵거나 안 풀리는 부분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
“알았다.”
“그럼 대충 이야기 끝난 것 같으니 술 한잔해야지?”
김기현이 제안했지만,이규한이 고 개를 흔들었다.
“다음에!”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 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투자 문제는 해결했다!”
김기현이 대표인 스카이 엔터테인 먼트와 ‘그때,우리’의 공동 제작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투자 유치라는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물론 아직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투자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투자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시나리 오 수정과 감독 선정,배우 캐스팅 등을 통해 구색을 갖추면서 세팅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지만 투자 유치에서 유리한 고 지를 선점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다.
“다음 단계는 시나리오 수정이군!”
버스에 탄 이규한이 가방 속에서 ‘그때,우리’의 시나리오를 꺼내 들 었다.
- 983,569.
시나리오를 꺼내 든 이규한의 눈앞
에 떠오른 숫자였다.
“그대로네!”
‘그때,우리’의 최종 관객수와 정확 히 일치하는 숫자였다.
“당연한 거지!”
예전과 달라진 점은 현재까지 하나 뿐이었다.
바로 김기현이 대표인 스카이 엔터 테인먼트와 공동 제작을 한다는 점 이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영화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이규한이었다.
또,아직 ‘그때,우리’에 대한 씨제 스 엔터테인먼트의 투자도 확정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 최종 관객수가 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시나리오 수정과 캐스팅,개봉 일 자 등등.
여러 요인들에 의해서 최종 관객수 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이 규한이었기에,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우리’의 시나리오를 다시 가 방 속에 넣은 이규한이 아까 김기현 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나쁘지 않았어. 딱 네 스타일의 시나리오던데.” 시나리오를 읽었던 김기현이 내렸 던 평가였다. 그리고 김기현은 가식 이 없는 편이었다.
이게 솔직한 속내일 터였다.
‘만약 이대로 수정 없이 간다고 했 다면?’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해도,김기현은 오케이를 했으리라.
이규한의 영화에 대한 성향을 누구 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이규한 역시 절대 시 나리오 수정은 없다고 버렸으리라.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조건 수정 작업을 거쳐야 해!”
시나리오 수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 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수정 방 향에 대한 청사진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 내 인생도 심각한데 영화 속 캐 릭터들도 심각하다.
- 꼭 내 이야기를 보는 둣.
- 영화 보고 나서 기분이 급다운 됨.
- 이 시대 청춘들의 레알 현실 반 영 이야기.
‘그때,우리’이 개봉했을 당시,관 람객들이 남겼던 후기였다.
호평과 악평이 교차하는 후기들 가 운데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후 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 현실도 팍팍해 죽겠다. 과장되더 라도 현실의 팍팍함을 잊을 수 있도 록 좀 웃을 수 있는 지점들이 필요 이규한도 예전 이 관람 후기를 보 았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코웃음을 쳤다.
이규한이 영화 ‘그때,우리’를 제작 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우울 한 삶을 이어 가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의 현실을 극에 반영하는 것 이었다.
그런데 억지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과장한다면,극의 밸런스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리얼리티도 사라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치기!”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꺼냈다.
‘그때,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상 업영화였다. 그렇지만 당시의 이규 한은 오락성보다 작품성에 더 치중 했다.
결국 그게 ‘그때,우리’의 흥행 실 패로 이어졌던 것이었고.
“코미디가 필요해!”
리얼리티를 무시하는 한이 있더라 도,코미디가 필요하다.
이것이 이규한이 머릿속으로 그리 고 있는 ‘그때,우리’의 시나리오 수 정에 관한 청사진이었다.
“안유천이 딱인데!”
‘그때,우리’의 시나리오 수정 방향 이 정해진 순간,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안유천 작가였다.
안유천이 코미디에 강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이규한은 이내 고개를 흔들 었다.
안유천이 무척 바빴기 때문이었다.
‘수상한 여자’, 그리고 ‘써니 걸즈’.
이미 두 작품을 맡고 있는 안유천 에게 ‘그때,우리’의 각색까지 맡기 는 것은 너무 무리였다.
해서 이규한이 다른 시나리오 작가 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그 러나 딱히 떠오르는 작가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각색 방향이 코미디를 가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작가가 백이면 관객을 울릴 수 있 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흔아홉이다. 웃길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작 가는 백에 하나뿐이다.”
충무로에서 흔히 회자되는 말이었 다.
그만큼 코미디를 잘하는 작가가 드
물다는 뜻이었다.
“어렵네. ‘수상한 여자’ 정도의 톤 이 딱 좋을 것 같은데.”
답답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꺼내던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퍼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 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규한이 기억하기로 ‘수상한 여 자’의 각본을 쓴 것은 연출을 맡았 던 황병기였다.
크레덧에 그렇게 명시됐기에 일반 대중들은 ‘수상한 여자’가 황병기 감독의 오리지널 스토리라고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거기에 연루된 다른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 다.
“황병기? 개는 내가 잘 알아. 개 글 못 써. 이번에도 신인 작가 작품 뺏어서 지가 각본으로 이름 올렸다 고 하더라고. 완전 양아치 새끼야. 양아치!”
‘누가 했던 말이더라?’
워낙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정확 히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이런 이야기를 들 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시나리오 작가가 버젓이 있음에도 각본에서 이름을 빼 버리고 감독의 이름을 올 리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마치 관행 처럼 자주 벌어졌었다.
“그 작가 이름이 뭐였더라?”
‘수상한 여자’의 원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의 이름을 분명히 들었었 다. 그렇지만 막상 이름이 떠오르질 않았다.
‘누구더라? 언제 한번 같이 작업을 하려고 분명히 이름을 기억해 뒀는 데.’
이규한이 필사적으로 기억을 헤집 었다.
끼이익!
버스가 신호에 걸려 급정거를 한 순간,마치 기다렸다는 둣이 하나의 이름이 안개처럼 흐릿하던 기억 속 에서 툭 튀어나왔다.
“김단비!”
마침내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기 억해 내는데 성공한 이규한이 환하 게 웃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이규한이 한숨 을 내쉬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찾지?”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