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3화 (23/272)

23 화

공동 제작 “한번 맡겨 보세요. 후회하지는 않 을 겁니다.”

“네,알겠습니다.”

이미 한차례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강형진은 이규한에 대한 믿음이 확 고했다.

잠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제안을

수락하는 강형진에게 이규한이 부탁 했다.

“감독님, 어느 제작사와 계약을 맺 고 진행을 하실지는 모르겠지만,이 녀석의 원고료는 꼭 챙겨 주십시 오.”

‘과속 삼대 스캔들’ 덕분에 흥행 감독이 된 강형진의 위상.

예전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제작사와의 계약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게 당연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규한이 이런 부탁을 꺼낸 것이었다.

“이 대표님이 안 작가를 정말 많이 아끼시나 보네요. 대단한 실력과 잠 재력을 갖추고 있는가 봅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이규한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 대답을 들은 안유천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규한은 신 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냥 정이 가는 녀석이라서요.”

“그렇군요.”

“그리고 당연한 것이니까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나리오 작가가 원고 작업을 하 고 그 작업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규한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개진했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 는 것.

이게 영화계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이런 영화계의 불합리한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영화를 하면 할수록 가난하고 힘 들어진다!”

이런 하소연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 고,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들이 생 계 곤란으로 전업을 고민하거나,생 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 택을 종종 내리는 것도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님.”

“말씀하시죠.”

“제가 이래서 이 대표님을 좋아합 니다.”

강형진이 웃으며 말했다.

굳이 대답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았 다.

이 말 속에 답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지 말고 출마하시죠.”

“출마?”

“국회의원 출마하시면 제가 열심히 선거 운동하겠습니다.”

안유천은 한술 더 떴다.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하고 있는 안 유천에게 이규한이 핀잔을 건넸다.

“글이나 열심히 쓰세요.”

그때 였다.

“하여간 쪼잔하시다니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 를 돌렸던 이규한의 눈에 화환을 둘 러보고 있는 김기현의 모습이 보였 다.

“명색이 아들 친구 회사 개업식인

데 화려한 화환으로 보내셔야지.”

아버지이자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김대환이 보낸 화환 앞에 서 있던 김기현이 혀를 끌끌 찼다.

“왔냐?”

“일단 축하한다.”

김기현이 악수를 하며 말했다.

“ 일단?”

김기현이 건넨 축하 인사의 앞에 일단이라는 두 글자가 붙어 있는 것 이 이규한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 었다.

그렇지만 김기현은 그에 대해 해명 하는 대신,고개를 돌려서 사무실을

살핀 후 되레 질문을 던졌다.

“사무실이 왜 이래?”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너무 허름하잖아. 직원은?”

“없는데.”

“직원이 없다고?”

“아껴야 잘 살지.”

이규한이 당당하게 대꾸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영화 제작사를 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영화 제작사들이 새로 생기 지만,그만큼 폐업하는 영화 제작사 들도 많았다. 그리고 빨리 망하는 영화 제작사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겉으로 보여지는 외양에 신경을 많 이 썼다는 점이었다.

임대료가 비싼 고급 사무실과 구색 을 갖추기 위해서 직원을 여럿 뽑아 두는 영화 제작사는 절대 오래가지 못했다.

임대료와 직원 월급을 아껴서 시나 리오 작가 혹은 영화감독과 계약을 하는 것이 망하지 않고 최대한 오래 버티는 지름길이었다.

“너도 알잖아. 초반에는 직원이 필 요 없다는 것.”

“그건 나도 알지만.”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기현 이 물었다.

“박 대표랑 계약할 때 지분 못 받 았어?”

김기현이 입에 올린 박 대표는 램 프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박태혁이 었고,지분은 ‘과속 삼대 스캔들’의 흥행에 따른 런닝 개런티를 말했다. 그리고 이규한은 계약서를 수정해서 지분을 받기로 했었다.

“억지로 받아 냈어.”

“그럼 사무실을 좀 더 괜찮은 곳으 로 얻지 그랬어?”

“정산이 바로 안 나온다는 것,너 도 알잖아.”

‘과속 삼대 스캔들’이 흥행을 했다 고 하더라도,금방 정산이 되는 것 은 아니었다.

정산을 받기까지는 영화가 극장에 서 내려오고 난 후 약 삼 개월 정 도가 지나야 했다. 그리고 설령 미 리 정산금을 받았다 하더라도,이규 한의 선택은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 돈은 따로 쓸 용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나랑 같이 동업하자니까.”

김기현이 동업 제의를 거부하고 독 립해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를 차린 이규한에게 핀잔을 건넸다.

“동업은 절대 하지 말하는 아버지 의 신신당부가 있었다니까.”

“그렇긴 해도……

“대신 이렇게 하자.”

“어떻게?”

의아한 시선을 던지는 김기현에게 이규한이 대답했다.

“공동 제작을 하자.” ‘왜 실패했을까?’

레드문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이 었던 ‘그때,우리’.

최종 관객수는 98만 명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실패작이라고 부르 기는 어려웠다.

비록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는 못했 지만,영화계 관계자들의 예상보다 는 훨씬 선전했던 셈이었기 때문이 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때,우리’를 실패작으로 규정했다.

그 이유는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었 다.

그리고 이규한이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의 첫 작품으로 ‘그때,우리’를 선택한 것은 미련이 남아서였다.

물론 미련만 갖고 결심한 것은 아 니었다.

이규한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자 신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 이규한은 나름대로 분석을 했다.

1. 감독.

2. 배우.

3. 시나리오.

4. 투자 배급사.

5. 개봉 시기.

6. 홍보.

크게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분석을 거친 결과,이규한이 내린 결론은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제작자로서의 첫 작품이어서일까.

의욕만 앞섰을 뿐, 여러모로 미숙 한 점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움이 남았던 부분은 4번이었다.

바로 투자 배급사.

‘그때,우리’의 세팅은 최악에 가까 웠다.

신인 감독,신인 작가,신인 제작

당연히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됐을 리가 없었다.

여러 투자 배급사에서 거절을 당했 고,시나리오 수정에 수정을 거쳐서 간신히 투자를 유치해 내는데 성공 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 래 걸렸다.

또,메이저 투자 배급사도 아니었 다.

“만약 개봉 일자가 조금만 더 빨랐 다면?”

그랬다면 ‘그때, 우리’의 홍행 성적

이 많이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 다.

그리고 이것이 이규한이 김기현에 게 공동 제작을 제안했던 이유였다.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김기현이 세운 스카이 엔터테인먼 트는 강남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에 위치한 모던한 디자인의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임대료도 없었다.

본인 명의의 건물이었기 때문이었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영화는 단 두 편.

그 두 편의 영화 모두 손익분기점 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현이 이렇 게 좋은 사무실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속된 말로 금수저였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그런 김기현이 부러웠다.

어쩌면 이규한의 시기심 때문에 김 기현과의 관계가 더욱 엇나갔던 건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인생을 좀 더 살고 회귀했기 때문 일까.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 였다.

“이것도 저 녀석의 복이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 김기현 의 복이라고 생각하자,더 이상 시 기심이나 질투심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했다.

‘김기현을 최대한 이용하자!’

굳이 척을 지면서 일부러 거리를 벌일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김기현을 최대한 이용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잠시 후,이규한이 스카이 엔터테 인먼트 안으로 들어섰다.

열 명이 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규한이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 다.

‘저 사람은?’

예전에 술자리에서 한 번 만난 적 이 있었다.

당시 명함을 받았지만,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근무하는 곳이 어딘지는 알고 있었 바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였다.

‘투자 배급사 직원이 영화 제작사 로 찾아와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아니,일반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투자 배급사는 갑 인 반면,영화 제작사는 을이었다.

따라서 영화 제작사에서 투자 배급 사를 수시로 찾아가서 투자를 유치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 이었다.

그런데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에는 메이저 투자 배급사인 씨제스 엔터 테인먼트 직원이 찾아와 있었다.

“확실히 다르긴 하네.”

해서 이규한이 감탄하고 있을 때였 다.

“왔냐?”

김기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자.”

김기현이 이규한을 대표실로 이끌 었다.

“차는?”

“됐어. 일 얘기부터 하자.”

“하여간 성격 급한 건 여전하네. 시나리오는 읽어 봤어.” 공동 제작을 하기로 구두로 합의한 후,이규한은 김기현에게 ‘그때, 우 리’의 시나리오를 보냈다.

“시나리오 어땠어?”

이규한이 시나리오에 대한 평을 묻 자,김기현이 대답했다.

“나쁘지 않았어.”

그 평을 들은 이규한이 슬쩍 미간 을 찌푸렸다.

너무 두루뭉술한 대답이었기 때문 이었다.

“딱 네 스타일의 시나리오던데.” 그때,김기현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확해!’

그 평가를 들은 이규한이 쓰게 웃 었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서일까.

김기현은 이규한의 성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공동 제작할 생각 있어?”

“당연히 있지. 그런데……

“편하게 말해.”

“공동 제작은 처음이라 뭐부터 어 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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