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화
같이 잘 먹고 잘 살자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개업일.
이규한은 사무실에서 가까운 지인 들을 초청해서 개업을 기념해서 작 은 파티를 개최했다.
속속들이 도착한 화환들을 이규한 이 바라보았다.
〈네 덕분에 요새 잘 먹고 산다. 꼭
성공해라〉- 영화배우 차태훈.
〈피박에 광박,전판 나가리요. 나 가리 나지 마세요〉- 영화배우 박 보연.
〈꼭 성공하세요. 저 요즘 한가해 요〉- 영화배우 윤철현.
‘과속 삼대 스캔들’의 홍행 성공 덕분에 스케줄이 늘어난 차태훈과 박보연을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화 환을 보냈다.
또,평소 친분이 있던 배우들도 화 환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화환을 보낸 것은 배우들만
이 아니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로터스 엔터 테인먼트 대표이사 심훈.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 트 대표이사 김대환.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과 동업자라 할 수 있는 다른 영화 제작사에서도 개업 축하 화한을 보내 주었다.
“결국 화환을 안 보냈네!”
그 화환들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쓰
게 웃었다.
램프 엔터테인먼트의 박태혁 대표 가 화환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확 인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화환값도 아깝다고 판단했으 리라.
“잘 헤어졌어!”
덕분에 완전히 미련을 털어 낸 이 규한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제 진짜 시작이네!”
개업 축하 화환들을 바라보고 있자 니,영화 제작자로서 진짜 시작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였다.
“이 피디님,아니,이 대표님,축하 드립니다.”
첫 손님이 도착했다. 그리고 첫 손 님은 바로 강형진 감독이었다.
“감독님,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 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죠.”
“흥행 감독님이 찾아 오시기에는 너무 누추한 곳이라서요.”
“흥행 감독이란 말씀은 마시죠. 쑥 쓰러우니까요. 그리고 제가 만든 영 화가 흥행한 것은 다 이 대표님 덕 분인 걸요.”
강형진 감독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요즘은 어떠세요?” “이 대표님 덕분에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는 중입니다.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차기작 계약은 하셨습니까?”
“아직 안 했습니다.”
강형진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의 아한 시선을 던졌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최종 관객수 는 7,352,224명.
이규한이 시나리오를 통해 보았던 관객수와 일치했다.
물론 이규한의 기억 속 ‘과속 삼대 스캔들’의 최종관객수와 비교하면 약 100만 명가량 적었지만,이것으 로도 충분히 대단한 홍행 성공을 거 둔 셈이었다.
당연히 입봉작의 부진을 딛고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강형진에게 여러 제작사에서 러브콜이 쏟아졌을 터였 다.
그런데 강형진 감독이 왜 아직 차 기작 계약을 맺지 않았는지 잘 이해 가 가지 않았다.
그때,강형진이 덧붙였다.
“이 대표님과 함께 작품을 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이규한은 강형진이 아직 차기작 계약을 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감독님. 보다시피 저는 막 회사를 차린 입장입니다. 아직은 강 감독님 과 작품을 함께할 여건이 되지 않습 니다.”
“그래서 더 기다리면……
“아니요. 우선 차기작을 하고 다시 만나시죠.”
“네?”
“단,차기작을 꼭 성공하셔야 합니 다. 그래야 감독님 덕을 좀 볼 수 있으니까요.” 이규한이 꺼낸 말뜻을 이해한 강형 진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힘주어 대답하는 강형진 감독을 바 라보던 이규한이 잠시 망설였다.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는 강형진 감 독의 차기작은 ‘써니 걸스’.
그리고 ‘써니 걸스’는 마침 불어닥 쳤던 복고 열풍의 끝물을 타고 500 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불러 모았 다.
‘과속 삼대 스캔들’에 이어 ‘써니 걸스’의 연타석 흥행 덕분에 강형진 은 흥행 감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그때도 마음이 지금과 같을까?’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강형진 감독을 믿었다.
그래서 결심을 굳히고 충고를 건넸 다.
“아직 차기작 시나리오 작업 중이 시죠?”
“디테일한 부분들 중에 마음에 걸 리는 것들이 많아서요.”
“그만하세요.”
“네?”
“시나리오 수정 작업 그만두시라고
“감독님의 차기작은 개봉 타이밍이 중요할 것 같아서요.”
“타이밍이요?”
“머잖아 복고 열풍이 불어닥칠 겁 니다. 그 타이밍에 영화를 개봉해야 만 홍행에 파란 불이 켜질 겁니다.”
강형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써 니 걸스’.
작품성이나 오락성 면에서는 크게 홈 잡을 부분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쉬웠던 점은 개봉 시기 였다.
복고 열풍이 거의 사그라들 때쯤 개봉했기 때문에 ‘써니 걸스’는 흥 행에 가속이 붙지 못했다.
‘만약 제대로 복고 열풍에 편승한 다면?’
‘써니 걸스’는 더 많은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 단했기에 이규한이 이런 충고를 건 넨 것이었다.
“저기,이 대표님.”
“말씀하시죠.”
“그런데 제 차기작이 무엇인지 아 십니까?”
‘써니 걸스’를 준비하고 계시지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직 시 나리오가 완성이 되지 않아서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었는데 요.”
이규한이 강형진 감독의 차기작인 ‘써니 걸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 유는 이미 개봉한 영화를 보았기 때 문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릴 수는 없는 상황.
해서 이규한이 다른 대답을 꺼냈 다.
지난번에 말씀하셨습니다.’
“제가요? 언제요?”
“술자리에서 차기작에 대해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랬었나요?”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일까.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강형진 감독 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덧붙였다.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손에서 놓 기 힘드시면, 저 녀석에게 맡기셔도 됩니다.”
각본 / 감독 ???.
한국 영화를 보면 대부분 이런 식 으로 크레딧이 떠오른다.
즉,감독이 촬영과 편집뿐만 아니 라 시나리오 작업도 함께했다는 뜻 이었다.
실제로 충무로에는 이런 이야기가 돈다.
수상 경력이 변변치 않은 신인 감 독이 입봉을 하기 위해서는 투자 배 급사 직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 들 정도로 기가 막힌 자기 시나리오 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개소리!’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면 서 관행처럼 굳어져 버린 이야기가 이규한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규한은 분업을 중시하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영화감독은 바빴다.
현장의 책임자로서 촬영을 하고 편 집을 비롯한 후반 작업,거기에 각 종 흥보를 비롯한 인터뷰까지.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았 다.
그런데 시나리오 작업까지 굳이 감 독이 할 필요는 없었다.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업이 괜히 있
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
이것이 이규한이 가진 생각이었다.
특히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안착한 강형진 감독의 경우 더욱 그랬다.
시나리오 작업은 시나리오 작가에 게 맡기고,촬영과 편집 등의 작업 에 집중하는 것이 더 옳았다.
이것이 이규한이 안유천을 강형진 감독에게 소개하려는 이유였다.
“오늘 메뉴는 뭡니까? 뷔페입니 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개업 축하 인사도 건너뛰고 안유천은 메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뷔페 맞다.”
“먼 걸음 한 보람이 있네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환하게 웃는 안유천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입을 뗐다.
“인사부터 해. 강형진 감독님이야.”
“강형진 감독님이요?”
안유천 역시 ‘과속 삼대 스캔들’ 의 윤색 작업에 참여했다.
비록 러닝개런티 계약은 하지 않았 지만,당연히 ‘과속 삼대 스캔들’의 홍행 여부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을 터였다.
그래서일까?
바지춤에 손을 쓱쑥 닦은 안유천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저는 시나리오 작가 안유천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감독 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 다.”
수식어가 너무 과하기 때문일까.
강형진 감독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 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원래 저런 녀석이니까요. 아마 영화감독을 처 음 만났기 때문에 저러는 걸 겁니
시나리오 작가,특히 안유천처럼 무명작가일 경우,감독을 직접 만나 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할리우드와 달리 대한민국 영화계 는 분업화가 잘되어 있지 않기 때문 이었다.
그로 인해 시나리오 작가들은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었고,은연중에 감 독들은 작가들을 무시하기 일쑤였 다.
“맞지?”
안유천이 부인하지 않고 순순히 수 긍한 순간,이규한이 다시 말했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윤색을 맡 았던 것이 이 녀석입니다.”
“그렇습니까?”
이규한의 설명이 끝나자,안유천을 바라보던 강형진 감독의 눈빛이 달 라졌다.
그 역시 안유천이 작업했던 ‘과속 삼대 스캔들’의 윤색고에 만족감을 드러냈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이 대표님이 왜 안 작가님에 게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맡기라고 말씀하셨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강형진 감독이 말을 마친 순간,안 유천이 다시 두 눈을 빛냈다.
“역시!”
“역시 뭐?”
“이 피디,아니,이 대표님은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듀서답게 제 능 력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계시네요.”
‘찜!’
이규한이 입맛을 다셨다.
안유천을 탓하기도 귀찮았다. 그리 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까 강형진 감독에게 안유천을 추 천했던 이유.
‘써니 걸즈’의 장르가 휴먼 코미디 였기 때문이었다.
코미디에 강점을 갖고 있는 안유천 이라면 ‘써니 걸즈’를 잘 수정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을 내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같이 잘 먹고 잘 살자!’
이규한의 지난 삶은 불행했다. 그 리고 불행은 전염성이 있었다.
이규한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삶 도 불행했었다.
이규한은 그것이 싫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