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8화 (18/272)

18화

지금 하정후를 무시하는 겁니까?

이규한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다섯 살인 왕석훈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왠지 겸연쩍었 기 때문이었다.

“피박에 광박에 전판 나가리요.”

그때,왕석훈이 이규한이 시킨 대 로 따라 했다.

무심해서 더 시크하게 느껴지는 표 정으로 왕석훈이 던진 대사를 확인 한 이규한이 감탄을 마지 못했다.

딱 원하던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감독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입니다.” 강형진도 감탄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왕석훈을 캐스팅 하는 것뿐이다!’

이규한이 왕석훈의 엄마를 바라보 았다.

왕석훈의 나이는 다섯 살.

그러니 우선 보호자의 허락을 얻어 야 했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기 때 문일까.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 는 왕석훈의 엄마에게 이규한이 말 했다.

“석훈이를 저희 영화의 주연으로 참여시키고 싶습니다.”

“네?”

“아역 배우들 가운데에서는 최상급 의 출연료를 지급하겠습니다. 그리 고 석훈이의 컨디션과 스케줄을 최 대한 배려하겠습니다. 석훈이의 컨 디션에 따라서 촬영 분량을 조절하 고, 절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촬영 스케줄을 짜겠습니다.” 이규한이 장담했지만,왕석훈의 엄 마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 다.

“말씀은 감사한데 대체 왜 우리 석 훈이한테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건가 요? 우리 석훈이는 그냥 평범한 아 이에 불과한데.”

“석훈이의 연기에 대한 재능이 우 리 영화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 다.”

“그렇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왕석훈의 엄마를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좋은 추억이 될 겁니다.” “추억… 이요?”

“계속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가지 않 더라도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영화 에 출연했다는 것은 먼홋날 석훈이 가 컸을 때 틀림없이 좋은 추억이 될 겁니다.”

그제야 왕석훈의 엄마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애 아빠와 상의를 해 봐야겠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보겠습니 다. 그렇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석훈이의 의사를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아들이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자식에게 아역 배우를 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이 급격히 늘 었다.

그중 대부분은 아이의 의사와 상관 이 없었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연기 학원을 보내고 오디션에 참가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왕석훈의 엄 마는 달랐다.

아역 배우로 데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눈앞에 불쑥 찾아와 있었지 만,덤석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의사를 존중했다.

‘좋은 부모네!’

이규한이 감탄한 순간이었다.

“아들.”

? ? "

“연기하고 싶어?”

이규한이 혀를 내밀어 바싹 마른 입술을 축였다.

왕석훈의 대답 여부에 따라 캐스팅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

또,‘과속 삼대 스캔들’의 운명도 바뀔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이규한이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왕석훈이 입을 열었다.

“응,할래.”

“왜 하고 싶은 건데?”

왕석훈이 대답했다.

“사람은 괜찮아 보이네.” 설마나 올라갈까?”

이규한이 크게 한숨을 내쉰 후,시 나리오를 집어들었다.

- 7,352,234.

잠시 뒤,이규한의 눈앞에 당연하 다는 듯이 숫자가 떠올랐다.

“늘었다!”

지난번 예상 관객수는 6,816,577. 이번 예상 관객수는 7,352,234.

50만 명이 넘게 예상 관객수가 늘 어나 있었다.

“석훈이를 캐스팅하는데 성공한 것 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 거야.”

이번 영화에서 왕석훈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중거였다.

“그래도… 여전히 차이가 있네!”

이규한이 재차 고민에 잠겼다.

크랭크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 임에도 불구하고,여전히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는 ‘과속 삼대 스캔들’ 의 최종 관객수와 예상 관객수는 차 이가 존재했다.

“약 80만 명 정도 차이가 나! 그런 데… 이젠 모르겠다!”

이규한이 그 이유에 대해서 더 고 민하는 대신,촬영이 무사히 끝나기

를 바랐다.

잠시 뒤,이규한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꺼냈다.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미팅 룸.

이규한이 박태혁과 설전을 벌였다. “2월은 안 됩니다.”

이규한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박태혁도 고집을 꺾으며

물러나지 않았다.

“2월이 딱이야.”

“글쎄,안 된다니까요.”

이규한과 박태혁이 설전을 벌이는 이유.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후반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 ‘과속 삼대 스캔 들’의 개봉 일자에 대해 이견을 드 러냈기 때문이었다.

이규한은 2008년 연말인 12월 초 에 개봉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반면, 박태혁은 2008년 2월에 개봉하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2008년 연말에 개봉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 속 삼대 스캔들’의 개봉일이 2008년 연말 무렵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안 된다는 건데?”

박태혁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 은 순간,이규한의 말문이 막혔다.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왜 안 되냐니까? 어떤 근거를 대 야 할 것 아냐?”

이규한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 뭇거리는 것을 확인한 박태혁이 더

욱 다그쳤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장르가 휴 먼 코미디이니까요.”

잠시 뒤,이규한이 대답을 꺼냈다.

“가족 관객들을 얼마나 불러모으느 냐에 따라서 영화의 흥행 성패가 갈 린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니 크리스 마스와 방학 시즌에 개봉하는 것이 영화의 흥행에 있어서 가장 유리하 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씀은 아닌데요.”

권지영도 이규한에게 호응해 주었 다.

그렇지만 박태혁은 코웃음을 쳤다.

“2월도 봄방학 시즌이야. 대학생들 방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게다가 설 연휴도 끼어 있어. 그러니까 가 족 관객들을 충분히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어.”

박태혁의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 었다.

그래서일까.

“대표님 말씀도 맞는 것 같은데 요.”

권지영이 다시 호응했다.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를 반복하는 권지영을 매섭게 노려보던 이규한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대표님이 2월 개봉을 고집하 는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뭡니까?”

“대진운이 좋잖아.”

마치 이런 질문이 던져지길 기다렸 다는 둣이 박태혁이 곧바로 대답했 다.

“대진운이 좋다고요?”

이규한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영화의 홍행에 있어서 대진운은 중 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였다.

어떤 영화와 극장에서 맞붙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운명이 갈리기도 하

기 때문이었다.

“2월에 개봉일이 잡힌 영화들 면면 을 봐. 다들 비리비리하잖아.”

박태혁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국내 영화와 외화를 합해서 약 열 편 정도가 2008년 2월 개봉을 확정 한 상황.

그렇지만 영화 관계자들과 팬들이 크게 주목하면서 기대하는 영화는 없었다.

비슷한 생각인 걸까.

권지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만약 2월에 개봉한다면 경쟁이 덜 한 건 사실입니다. 굳이 꼽자면 외 화인 ‘점퍼팬’과 국내 영화인 ‘7년째 열애 중’이 위협적이긴 하지만,‘점 퍼맨’의 경우는 홍보가 약한 편이 고,‘7년째 열애 중’은 시나리오가 너무 착하고 심심하게 나왔다는 소 문이 돌고 있어서 크게 걱정할 필요 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점퍼맨’과 ?년째 열애 중,.

권지영은 두 편의 영화를 경쟁작으 로 꼽았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생각은 달랐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복병이 숨 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복병은 바로 영화 ‘추적자’였다.

김윤식과 하정후.

두 남자 배우가 주연으로 의기투합 한 ‘추적자’ 역시 2008년 2월 중에 개봉일이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위협이 될 영화가 있습니다.”

“무슨 영화?”

“추적자요.”

이규한이 대답했지만, 박태혁은 코 웃음을 쳤다.

“그게 무슨 위협이 된단 말이야? 신인 감독에 소재도 우중충한 연쇄 살인,게다가 티켓 파워를 가진 배 우도 출연하지 않잖아.”

“지금 하정…… 이규한이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 하정후를 무시하는 겁니까?”

원래 이규한이 하려던 말이었다.

이규한이 기억하는 하정후는 최고 의 영화 배우였다.

관객들이 가장 신뢰하는 배우 투표 에서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으면서 최고의 티켓 파워를 가진 하정후는 분명 위협적인 존재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이 입을 다문 이유는 지금이 2018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신인 배우 하정후!’

아직 하정후는 자신의 이름을 대중 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리기 전이었 다.

‘추적자’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분한 하정후는 광기를 뿜어내는 섬뜩한 연기를 펼치면서 대중들에게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니 박태혁이 이런 반응을 드러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렵네!’

이규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개봉을 연말 로 미루고 싶지만,그게 쉽지 않았 마땅한 이유를 대기 어려웠기 때문 이었다.

게다가 박태혁은 ‘과속 삼대 스캔 들’을 제작한 램프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다.

개봉 일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박 태혁의 입김이 이규한의 입김보다 강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도움을 청하듯 권 지영을 바라보았다.

홍보 및 배급을 맡고 있는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의 권지영 팀장만이 ‘과속 삼대 스캔들’의 개봉 일자를 앞당기려는 박태혁을 막을 수 있었

기 때문이었다.

“권 팀장 의견은 어때?”

해서 이규한이 권지영을 슬그머니 끌어들였다.

“두 분 말씀 다 일리가 있다고 생 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과속 삼대 스캔들’의 개봉을 앞당겼으면 해요.”

“역시 권 팀장이 센스가 있어!”

박태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 다.

반면 이규한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 다.

“개봉을 앞당기려는 이유가 있어?” “저희 사정이 좀 급해서요.” “사정이 급하다니?”

“이 피디님도 잘 아시잖아요. 얼마 전에 개봉했던 ‘피의 누각’ 스코어 가 참혹할 정도로 형편없었다는 것 이요.”

‘피의 누각’은 로터스 엔터테인먼 트가 투자한 영화들 가운데 가장 최 근에 개봉했던 영화였다.

제작비는 약 50억.

‘피의 누각’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측은 흥행 중 박 이상을 노렸었다. 그러나 막상 개봉한 ‘피의 누각’은 전혀 인기 몰 이를 하지 못했다.

혹평 세례 속에 50만 관객도 동원 하지 못한 채 쓸쓸히 극장에서 사라 졌다.

잇따른 흥행 실패로 인해 권지영을 비롯한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윗선이 궁지에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실패를 만회해야 했 고,그래서 촬영을 마친 ‘과속 삼대 스캔들’의 개봉을 서두르는 것이었 다.

“사정 좀 봐주세요.”

권지영의 부탁을 들은 이규한이 머 리를 긁적였다.

제작사 대표인 박태혁과 투자와 배 급을 맡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측 이 동시에 ‘과속 삼대 스캔들’의 2 월 개봉을 원하고 있었다.

이규한으로서도 더 막을 수는 없었 다.

“어쩔 수 없죠.”

잠시 뒤,이규한이 내키지 않는 표 정으로 입을 뗐다.

‘이게 어떻게 변수로 작용할까?’

이규한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변했 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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