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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4화 (14/272)

14화

개자식을 다시 만나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의 본사는 서 초동에 위치해 있었다.

“오셨어요?”

이규한이 영화 투자 팀 사무실로 들어서자 평소 친분이 있던 권지영 팀장이 손을 들었다.

“권 팀장,오랜만이야.”

“너무 오래간만이라 얼굴 까먹겠네 권지영의 나이는 서른하나.

아직 미혼이었고,비교적 젊은 나 이에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 팀 장 직책에 오른 편이었다. 그리고 권지영이 일찍 팀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워커 홀릭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얘기하실래요,아니면 나 가서 하실래요?”

“그냥 여기서 하지.”

“네. 커피 괜찮죠?”

“아이스커피로 부탁해.”

권지영이 커피를 준비하러 간 사 이,미팅 룸에 혼자 남겨진 이규한 이 머릿속으로 바쁘게 계산을 했다.

“연락이 빨리 온 편이야.”

보통 투자 배급사에 시나리오를 넣 으면 검토를 마치고 답이 돌아오는 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편이 었다.

물론 여기에도 분명한 차이는 존재 했다.

유명 감독이 연출하기로 결정이 난 시나리오,또는 메이저 제작사에서 제작하기로 한 시나리오의 경우는 우선순위를 앞에 두고 더 빨리 검토 하기 마련이었다.

즉 검토를 마치고 회신이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이 짧았다.

그렇지만 ‘과속 삼대 스캔들’은 유 명 감독이 연출하는 것도 아니었고, 제작사인 램프 엔터테인먼트는 메이 저 제작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흘 만에 검토 를 끝내고 연락을 해서 미팅을 잡은 것.

무척 빠른 편이었다.

“고무적이야!”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다.

투자 배급사에서 검토를 마치고 빨 리 연락이 왔다는 게 의미하는 것.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기대에 부풀었을 때,권지 영이 아이스커피 두 잔을 들고 미팅 룸으로 돌아왔다.

“자,드세요.”

권지영이 커피를 권하면서 자신의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어때?”

이규한이 대뜸 묻자 권지영이 대답 했다.

“맛있는데요.”

“커피 말고.”

“그럼? 아,시나리오요?”

“그래. 어땠어?”

“반반이요.”

“반반?”

“의견이 갈려요.”

권지영의 가장 큰 장점은 솔직하다 는 것이었다.

괜히 헛된 기대를 품도록 빙빙 돌 려 말하지 않고,시나리오에 대한 투자 팀 내부의 반응을 솔직하게 전 달하는 편이었다.

“어떻게 의견이 갈리는 거지?”

“투자 팀 젊은 직원들은 찬성 쪽이 압도적이에요. 그런데 윗선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와요.”

“윗선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뭐야?” “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요.”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흥행이 안 될 것 같다는 뜻이야?”

“그게 아니라… 설정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빠 와 딸이 미혼부이고,미혼모라는 설 정. 한국 정서에 맞지 않을 거라고 우려해요.”

이규한이 표정을 굳혔다.

시나리오의 구성이나 내용에 부정 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에는 수정 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 다.

그렇지만 설정에 대해 부정적인 반 응을 드러내는 경우는 달랐다.

아빠는 미혼부,딸은 미혼모.

‘과속 삼대 스캔들’의 핵심 설정이 었다.

‘그런데 이 설정을 건드리면?’

영화는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수밖 에 없었다.

해서 이규한이 답답한 표정으로 다 시 물었다.

“어떻게 하길 원해?”

“시나리오 수정을 원해요.”

권지영이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 다.

“수정을 원한다?”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강형진 감독이 각본을 쓰고,안유 천 작가가 윤색한 현재의 시나리오 는 가까운 미래에 개봉했던 ‘과속 삼대 스캔들’과 거의 똑같았다.

즉 이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찍어도 8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대 박이 났다.

그런데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 팀 윗선에서는 시나리오의 수정을 원했다.

‘이러니까 투자한 작품들이 계속 망하지!’ 이규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 다.

근래 로터스 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배급을 맡은 영화들이 고전하는 데 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래 직원들을 아무리 바꾼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인 물은 썩기 마련.

투자 배급의 결정권을 움켜쥐고 있 는 윗선이 바뀌지 않으니 계속 고전 을 면치 못하는 것이었다.

“권 팀장 의견은 어때?”

“저는 좋아요.”

“좋다고?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진부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면이 분명히 있어요. 한국 관객들에게 익 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 그만 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는 장점 이죠. 그리고 캐릭터와 갈등,코미디 까지 균형이 잘 잡혀 있어요. 그래 서 개인적으로는 투자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제 의견이 별로 중요치 않 다는 것은 이 피디님도 아시잖아 “윗선에서 표면적으로 투자를 위해 서 시나리오 수정을 요구하지만,제 생각엔 강형진 감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감독이 불안하다? 그럼 투자 전에 감독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겠네.”

권지영은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 았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눈치가 빨랐다.

침묵의 의미가 긍정임을 금세 알아 챘다.

“가능하겠어요?”

이번에는 이규한이 대답을 미루었 다. 그리고 권지영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이규한의 침묵을 재빨리 해석해 냈 다.

역시 어렵겠죠?” 이규한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고민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 삼대라는 설 정을 빼고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것 이 과연 득일까? 그리고 강형진 감 독을 교체하라는 요구에 응하는 게 맞는 일일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 되겠어.”

이규한이 대답하자,권지영이 예상 했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요.”

“머잖아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될 거 이규한이 한마디를 덧붙인 순간이 었다.

덜컹.

노크도 없이 미팅룸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그리고 안으로 불쑥 들어 온 남자는 이규한도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김기현?’

김기현을 발견한 이규한이 두 눈을 치켜떴을 때였다,

“김 대표님!”

권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김기 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에이,권 팀장. 아직 어색하니까 자꾸 대표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 냥 예전처럼 김 피디라고 불러.”

“에이,그래도 그러면 안 되죠. 호 칭은 정확하게 해야죠.”

“권 팀장 고지식한 건 여전하네.”

“그런데 어찐 일이세요?”

“대표님한테 인사하려고 들렀어.”

“아,네.”

권지영과 짧은 대화를 나눈 김기현 이 이규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야,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이규한,오랜만이다.”

김기현이 반가운 표정을 지은 체

인사를 건넸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웃지 않았다. 대신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속 으로 소리쳤다.

‘개자식!’ 영화 ‘만월’.

제작했던 영화들의 잇따른 흥행 부 진으로 궁지에 몰릴 대로 몰렸던 이 규한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제작 했던 마지막 영화였다.

그렇지만 ‘만월’은 흥행에서 참패

를 기록했다.

최종 관객수 25,511명.

만월은 독립 영화가 아니었다.

순제작비만 30억 이상 투입했던 엄연한 상업 영화였다.

그런 만월의 흥행 참패로 이규한은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회사는 물론 가정까지 풍비박산 나 면서 인생이 무너졌다.

당연히 이규한도 실패의 원흉을 찾 아갔다.

제작비 40억짜리 예술 영화를 찍 은 장본인인 김대만 감독을 찾아가 서 먹살을 틀어쥐고 이유를 추궁했 다.

그리고 김대만에게서 들었던 이야 기는 충격적이 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김기현 대표가 찾아와서 ‘만월’을 망하게 만들라고 협박했거든요. 만약 지시 대로 안 하면 영화계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만들어 주겠다고 협박하 는데 무서웠어요. 대표님도 아시잖 아요. 김기현 대표 아버지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걸. 게다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는 영 화 두 편을 바로 계약해 주겠다고도 말했어요. 저도 처자식이 있는데 먹 고 살아야죠. 또,영화 만드는 걸 누구보다 좋아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

김대만은 나쁜 놈이었다.

그렇지만 더 나쁜 놈은 김기현이었 다.

“대체 나한테… 나한테 왜 그런 거 냐?”

그날,이규한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쳤었다.

‘개자식!’

김기현을 다시 만난 순간,마치 당 연하다는 듯이 그때의 기억이 떠올 랐다.

또,당연하다는 듯이 분노가 치밀 었다.

파악!

해서 이규한이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던 두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김기현을 한 대 후려치기 위해서였 다.

그때 였다.

“근데 규한이 네가 왜 여기 있어?

설마 투자 때문에 찾아온 건 아니

지?”

김기현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물었 다.

‘무슨 수작이지?’

김기현의 속셈을 알지 못한 이규한 이 미간을 찌푸렸을 때였다.

“맞는데요.”

권지영이 끼어들었다.

“규한이가 투자 때문에 찾아온 게 맞다고?”

“네. 그런데 무슨 문제 있어요?”

“당연히 문제가 있지.”

“무슨 문제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탐내는 프로젝트거든.”

“네?”

“못 들었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에서 규한이네 회사에서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탐내고 있다고.”

‘무슨 개소리야!’

이규한이 인상을 구겼다.

‘과속 삼대 스캔들’은 아직 다른 투자사에 넣은 적이 없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 처음 넣은 것이었다.

즉,씨제스 엔터테인먼트는 ‘과속 삼대 스캔들’의 시나리오를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과속 삼대 스캔들’ 을 탐낸단 말인가.

그렇지만 전후사정을 알지 못하는 권지영은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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