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대체 불가 “야,숨부터 좀 돌리고 나서 본론 으로 들어가라. 뭐가 그렇게 급해?”
차태훈이 핀잔을 줬지만,이규한은 박보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박보연 씨를 꼭 여주인공으로 캐 스팅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급하네요.”
박보연이 이규한의 시선을 슬그머
니 피한 순간,차태훈이 나섰다.
“보연아.”
“네,오빠.”
“내가 규한이랑 십 년 넘게 알고 지냈는데,이런 모습 처음 본다. 그 정도로 널 캐스팅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긍정적인 방향으 로 생각해 줘.”
차태훈이 지원사격을 끝낸 후,한 쪽 눈을 찡긋했다.
이제부터는 이규한의 몫이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편하게 물으셔도 됩니다.”
“저 말고 다른 여배우들도 많잖아 요.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 역으로 굳이 절 캐스팅하시려는 이유가 있 나요?”
“물론 있습니다.”
“어떤 이유인가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박보연 씨가 아니면 누구도 소화 할 수 없는 배역이니까요.”
대체불가!
다른 배우는 할 수 없다.
오직 당신만이 이 배역을 맡아서 해낼 수 있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가장 듣기 좋은 말일 터였다. 그리고 이규한이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박보연을 꼭 캐스 팅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만이 아 니었다.
파르르.
가늘게 떨리는 박보연의 눈꺼풀을 바라보며 이규한이 그녀가 한 잡지 인터뷰 내용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하면,배우로서 자신이 없었어요. 제가 특출 나게 예쁜 편 도 아니고,연기를 아주 잘한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내 가 계속 여배우로서 살아남을 수 있 을까? 치열한 경쟁을 이겨 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 질 때마다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연기를 그만둘 생각도 했었어요.” ‘과속 삼대 스캔들’의 흥행 성공으 로 주가가 치솟으면서,향후 충무로 를 이끌어 갈 주연 여배우로 입지를 다진 박보연이 한 잡지의 인터뷰에 서 말한 내용이었다.
이규한은 그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박태혁에게 박보연을 캐스 팅할 수 있다고 이규한이 장담한 이 유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득해야 해!’ 차태훈을 비롯해 연예 관계자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틀렸다.
박보연이 최근 영화나 드라마 출연 이 뜸했던 이유.
소속사와의 갈등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이 너 무 까다로워서도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계속 배우 생활을 해 야 할까에 대한 고민에 휩싸여 있었 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고민을 이미 알고 있 었기에 이규한은 차태훈에게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저는 배우를 보 는 눈이 있는 편입니다. 제가 머잖 아 성공할 거라고 점찍은 배우들은 대부분 스타가 됐죠. 태훈이 형이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왜 그런 말씀을 꺼내시는 거죠?”
“제가 보기에 박보연 씨는 최고의 스타, 또 최고의 배우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래의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해서 특출 나게 예쁜 편도 아니다. 그리 고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서 연기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생 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잃
은 것 아닙니까?”
속마음을 들켜서일까.
박보연이 두 눈을 치켜뜬 순간,이 규한이 말을 이었다.
“저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합니 다. 박보연 씨는 다른 여배우들은 절대 따라오지 못하는 본인만의 매 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대중이 박보연 씨를 사랑하는 이유죠. 그런 박보연 씨의 매력을 폭발시킬 수 있 는 작품을 만난다면,지금까지의 고 민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겁 니다.”
이규한이 열변을 마친 순간,박보 연이 물었다.
“그게 이번 작품인가요?”
“네. 시나리오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번 작품의 여주인공 배역은 오직 박보연만이 할 수 있다. 이렇게 판 단했습니다. 그래서 박보연 씨를 찾 아온 것이죠.”
“정말… 그렇게 될까요?”
박보연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대답했다.
“저를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제 가 책임지고 그렇게 되도록 만들겠 습니다.”
-남자 주인공: 차태훈 -여자 주인공: 박보연
안유천이 윤색을 마친 시나리오 완 성고에 이규한이 캐스팅을 마친 두 주연 배우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변할 거야!’
차태훈과 박보연의 캐스팅에 성공 했으니 시나리오를 집어 들었을 때 예상 관객수가 또 달라질 것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으니 예상 관객수가 바뀌는 것은 분명할 터였 ‘얼마나 변할까?’
이규한이 관심을 가진 것은 예상 관객수가 얼마나 바뀌는가의 여부였 다.
“백만? 이백만?”
-6,212,349.
안유천이 윤색한 시나리오를 집어 들었을 때 이규한의 눈앞에 떠올랐 던 예상 관객수였다.
5,221,004에서 6,212,349로 6일에 걸친 윤색만으로 무려 백만 가까이 예상 관객수가 늘어났었다. 남녀 주인공 캐스팅을 마쳤으니, 얼마나 예상 관객수가 늘어났을지 기대가 됐다.
“최종 관객수에 근접하지 않을까?”
이규한이 기억하는 ‘과속 삼대 스 캔들’의 최종 관객은 800만대 초반.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규한이 시나 리오를 집어 든 순간이었다.
-6,523,457.
이규한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짐작한 대로 예상 관객수가 바뀌기
는 했다.
그런데 이규한의 기대에는 한참 미 치지 못했다.
“삼십만?”
‘과속 삼대 스캔들’의 최종 관객수 에 근접하거나 똑같을 정도로 늘어 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남녀 주인공 캐스팅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예상 관객수는 크게 늘어 나지 않았다.
고작 삼십만 명 정도 늘어난 것에 그쳤다.
“왜… 이러지?”
이규한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 ‘뭐가 문제지?’
영화의 제목,시나리오,감독,캐스 팅까지.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는 ‘과속 삼 대 스캔들’과 달라진 것은 거의 없 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
까?’
이규한이 시나리오를 손에 든 채 망부석처럼 얼어붙었을 때,박태혁 이 곁으로 다가와 핀잔을 건넸다.
“고사 지내냐?”
“모르겠네요.” 이규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 거렸다.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 속 삼대 스캔들’의 최종 관객수와 예상 관객수가 이백만 가까이 차이 가 나는 이유.
계속 고민해 봤지만,답을 찾기 어 려웠다.
“당연히 모르지. 투자자들의 마음 을 누가 알까?”
박태혁이 동문서답을 했다.
“자신 있어?”
“무슨 자신이요?”
“투자사의 마음을 얻을 자신?” “무조건 부딪쳐 봐야죠.”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박태혁이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갈 거야?”
“일단 로터스 쪽을 접촉해 보려고 요.”
“로터스? 왜 하필 로터스야?”
“휴먼 코미디 장르를 선호하거든 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빅박스,로터 스 엔터테인먼트,그리고 NEXT 엔 터 테 인먼트.
대한민국 4대 투자 배급사였다. 현재 영화계에서는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해 개봉하기 위해서는 4대 투자 배급사 중 한 곳의 투자를 무조건 이끌어 내야 했다.
그리고 4대 배급사는 각기 성향이 달랐다.
우선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 문에 대작의 투자와 배급을 선호하 는 편이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특수를 노린 제작비 100억대 이상의 블록버스터 영화에 주로 투자해서 재미를 보았 다.
빅박스 역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와 성향이 비슷했다.
방학 특수를 노린 대작을 선호하지 만,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다른 점 은 제작비가 70?80억대의 작품에 투자해서 중박을 노리는 작전도 자 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다음으로 NEXT 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들어 급부상한 투자 배급사였 다.
신생답지 않게 NEXT 엔터테인먼 트의 투자는 무척 과감했다.
실험적인 장르의 시나리오에 무모 하리만치 과감한 투자를 했고,결과 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다.
잇따른 흥행 성공으로 NEXT 엔 터테인먼트는 명실 공히 메이저 투
자 배급사의 위치로 뛰어올랐다.
마지막으로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는 애매했다.
모그룹의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 로 잇따라 대작 영화에 투자했지만, 줄곧 흥행 참패를 맛봤다.
그 후,중박 영화를 노리는 전략을 수립했지만,그조차도 여의치 않았 다.
투자가 계속 실패로 이어지면서 로 터스 엔터테인먼트는 직원들이 계속 바뀌었고,자연히 현재 직원들은 투 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소극적으로 바뀐 상태였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씨제스 엔 터테인먼트, 빅박스,NEXT 엔터테 인먼트,로터스 엔터테인먼트 순이 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이 ‘과속 삼대 스캔들’의 투자 배급을 받기 위해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의 문을 우선 두드린 것은 전략적인 선택이 었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장점은 두 가지.
우선 제작비가 크지 않다는 것이었 다.
또 하나는 근래 들어 거의 제작하 지 않는 휴먼 코미디 장르의 작품이 라는 점이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는 예전부터 휴먼 코미디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 었다. 그리고 투자했던 영화들의 잇 따른 흥행 실패로 투자 기조가 소극 적으로 변한 것도 ‘과속 삼대 스캔 들’의 입장에서는 호재였다.
지이잉,지이잉.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 ‘과속 삼대 스캔들’의 시나리오를 넣은 지 사흘 후.
마침내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