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2화 (12/272)

12화

영화배우 차태훈 영화배우 차태훈.

그는 비교적 평탄한 연기 인생을 걸어온 편이었다.

영화와 브라운관을 오가면서 단역 과 주조연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 던 차태훈이 스타덤에 오른 것은 ‘엽기적인 그 여자’에 출연하고 나 서였다.

전지연과 함께 ‘엽기적인 그 여자’ 에 출연했던 차태훈은 절정의 코믹 연기를 펼치며 영화의 흥행을 견인 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차태훈은 그 후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다. 그렇지 만 차태훈이 출연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야,요새는 영화 찍는 게 무섭다.” “왜요?”

“계속 망하니까,또 망할까 봐.”

차태훈이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난 형이 부러워.”

“내가 부럽다고? 왜?”

“망하는 것도 영화가 개봉해야 가 능하니까.”

이규한의 대답에 차태훈이 코웃음 을 쳤다.

“능력 있는 프로듀서가 왜 이렇게 엄살이 심해?”

“아직 멀었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웬 겸손? 너 대학 다닐 때부터 난놈이었잖아.”

“에이,그 정도는 아니었죠.”

이규한이 손사래를 쳤다.

차태훈과 이규한은 대학 동문.

차태훈이 1년 선배였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친한 사이였 고,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덕분에 이규한은 차태훈에게 바로 연락해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겸손 떠는 것 보니 더 수상 하네. 나한테 부탁할 게 있는 거 지?”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눈치 구 단이다. 그 시나리 오 그냥 보낸 거 아니지?”

이규한은 차태훈에게 ‘과속 삼대 스캔들’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그렇

지만 출연을 제의한 것은 아니었다. 모니터링을 해 달라며 보냈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시나리오 읽어 봤거든. 딱 날 염 두에 두고 썼던데?”

“역시 형은 속일 수가 없네요. 시 나리오는 어땠어요?”

“재밌었어.”

배우의 입에서 나온 재밌다는 표 현.

일반인의 평가와는 달랐다.

그 이유는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볼 때,전체적인 스토리나 내용보다 극 중 캐릭터에 더 비중을 두기 때문이 었다.

따라서 배우의 재밌다는 말은 극 중 캐릭터가 직접 연기해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뜻이었다.

‘됐다!’

차태훈의 승낙을 받는 데까지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였다.

“그런데 난 안 하고 싶은데.”

차태훈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왜요,재밌다면서요?”

“그게……

“스케줄이 안 돼요?”

“그건 아냐. 요새 한가해. 영화를 하도 말아먹었더니 시나리오도 잘 안 들어오거든.”

“그럼요?”

“실은 연기 변신을 해 보고 싶거 든. 코믹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소모되는 것 같아서 말이지.”

차태훈은 방송에서 밝고 쾌활한 이 미지였다. 그리고 실제 성격도 방송 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도 배우였다.

배우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 민,그리고 배우로서 변신에 대한 고민을 갖는 것은 배우의 숙명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차태훈 을 탓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규한 은 차태훈을 ‘과속 삼대 스캔들’에 꼭 캐스팅해야 했다.

그래서 이규한이 잠시 고민한 후 입을 뗐다.

“만약 형이 연쇄살인범 역할을 했 다고 쳐요. 그럼 대중이 좋아할까 요?”

“솔직히 모르겠어.”

“제 짧은 생각으로는 오히려 배신 감을 느낄 것 같은데요.”

“배신감?”

“동네 좋은 형 혹은 오빠 이미지가

무너질 테니까요.”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걸까.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차태훈이 술 잔을 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는 고뇌가 느껴 졌다. 그리고 이규한은 차태훈의 고 뇌를 덜어 줄 방법을 이미 알고 있 었다.

“난 반대로 생각해요.”

“반대라니?”

“지금까지처럼 코믹한 캐릭터를 계 속 맡아 연기하는 게 형의 이미지를 소모하는 게 아니라고 봐요.”

“그렇지만… 스코어가 중명하고 있 “형이 출연한 영화들의 스코어가 부진한 건 비슷한 캐릭터를 답습해 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배우 차 태훈의 이미지가 소모되는 것이 아 니라 ‘엽기적인 그 여자’에 출연했 던 건우의 이미지가 소모되면서 대 중이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인 거죠. 형은 코믹에 강점이 있는 배우예요. 그러니까 연기 변신을 할 것이 아니 라 더 깊이 파야 하지 않을까요?” “더 깊이 파라니?”

“난 ‘엽기적인 그 여자’에 출연했 던 형이 베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아 요. 다른 작품에서 더 좋은 코믹 연

기를 보여 줄 수 있다고 확신해요.”

“그게 ‘과속 삼대 스캔들’이다?”

“형이 판단해 보세요. 기존에 배우 차태훈이 했던 역할과는 다르잖아 요.”

“그래,많이 다르긴 하지.”

“배우는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 해요. 형에 대해서 대중이 갖고 있 는 이미지를 쭉 지켜 나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다른 길도 열릴 것 같아요.”

“다른 길?”

“친근한 이미지 덕분에 예능 프로 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혹시 알아요,형이 연말 시상식에서 예능 대상을 받을지?”

“설마!”

차태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회귀한 이규한은 알고 있 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 을.

“남자 예능인 부문 최우수상 차태 훈.”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후,차태훈

은 연말에 열리는 방송국 시상식에 서 남자 예능인 부문 최우수상을 수 상했다.

이규한이 TV를 통해 중계된 시상 식에서 차태훈이 남자 예능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그러니 언젠가는 예능 대상 수상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차태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그런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쪼르륵.

이규한이 술병을 들어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 다.

최선을 다해 설득한 상황.

지금은 차태훈이 결심할 때까지 기 다려야 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30분에 가까 워졌을 때,차태훈이 앞에 놓여 있 던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며 입을 뗐다.

“해 보자.”

“너 믿고 하는 거다!”

긴 망설임 끝에 차태훈이 출연을 승낙한 순간,이규한이 탁자 아래 두었던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만약 태훈이 형이 끝내 거절했다 면 제작이 어렵지 않았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차태훈을 제외 하면 ‘과속 삼대 스캔들’의 남자 주 인공을 맡을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 다.

그래서 더욱 차태훈이 고마웠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하고 싶었다.

“형,고마워요.”

“고맙긴,내가 공짜로 일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출연료 에 대해 논의할 때 러닝 개런티를 최대한 많이 받으시는 쪽으로 진행 하세요.”

“왜?”

“이번 영화,무조건 대박 납니다.”

어차피 박태혁과는 이번 영화를 마 지막으로 인연이 끊길 터였다.

반면 차태훈은 계속 얼굴을 볼 사 이였다.

그래서 이규한이 힘주어 말한 순 간,차태훈이 특유의 사람 좋은 웃 음을 지었다.

끼제야 이규한답네.”

“자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뜻 이야.”

술병을 들어 이규한의 빈 잔을 채 워 주며 차태훈이 물었다.

“그런데 내 딸은 누구야?”

“네?”

“이번 영화에 내 딸로 출연할 배우 로 누구를 생각하고 있느냐고.”

“박보연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연이?”

뜻밖의 캐스팅이라고 판단한 걸까. 차태훈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긴장했다.

배우들은 무척 민감하고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다.

자신에 비해 급이 너무 멸어지는 상대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면 출연을 취소하는 경우도 잦았다.

‘기분이 상한 건가?’

이규한이 차태훈의 표정 변화를 유 심히 살피고 있을 때였다.

“생각해 보니 괜찮네. 케미가 잘 맞을 것 같아.”

차태훈의 말을 듣고 이규한이 안도 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그런데 보연이가 하려고 할까?”

차태훈 역시 박보연의 캐스팅에 회 의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그 역시 최근 박보연의 영화 출연 이 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 문에 이런 우려를 표한 것이었다.

“요새 소속사랑 갈등이 있어서 힘 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데.”

차태훈이 덧붙인 말을 들은 이규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탁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형이 자 리 한번 마련해 줄 수 있어요?”

“무슨 자리?” “형은 박보연과 예전에 같이 작품 을 진행한 적이 있어서 친한 편이잖 아요. 그러니까 저와 자연스럽게 만 날 수 있는 자리를 한 번만 마련해 주세요.”

“직접 만나서 캐스팅을 시도해 보 겠다?”

“부탁 좀 할게요.”

이규한이 재차 부탁하자 차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내가 약속 잡고 나서 연 락할게.” 차태훈을 캐스팅하는 데 성공하면 서 ‘과속 삼대 스캔들’은 개봉까지 또 하나의 난관을 넘은 셈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 있었다.

주연 여배우로 점찍어 둔 박보연을 캐스팅하는 것이었다.

“어,왔어?”

크게 숨을 내쉰 이규한이 약속 장 소인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서자 미 리 도착해 박보연을 만나고 있던 차 태훈이 손을 들었다.

“인사해. 여긴 내 대학 후배 이규 한. 현재 영화 피디로 일하고 있어.”

“안녕하세요, 박보연입니다.” “보연이는 알지? 굳이 소개 안 해 도 되지?”

“물론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이 규한입니다.”

“전해 주신 시나리오는 잘 읽었습 니다.”

박보연이 건넨 말을 들은 이규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태훈에게 부탁해 박보연에게 ‘과 속 삼대 스캔들’ 시나리오를 전달했 다.

‘어쩌면 아예 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규한이 가장 우려한 부분이었다.

다행히 조금 전의 대화를 통해 박 보연이 시나리오를 읽고 이 자리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출연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 니라는 증거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

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여주인공 역할에 박보연 씨를 캐스팅하고 싶 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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