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7화 (7/272)

그런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규한 이 덧붙였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최고의 계 약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

인생은 타이밍 각본료 4,000만 원.

연출료 6,000만 원.

총액 1억.

이규한이 제시한 이번 계약의 조건 이었다.

“어떻습니까?”

이규한의 물음에 강형진이 놀란 기 색을 드러냈다.

예상보다 많은 액수에 놀랐기 때문 이리라.

“실수령액은… 얼마나 됩니까?”

잠시 후 강형진이 조심스럽게 물었 다.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영화계의 오랜 관행 때문이었다.

각본 계약이나 연출 계약을 할 때, 일정 금액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그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분할해서 지급했다.

가장 일반적인 케이스가 세 차례에 나누어서 지불하는 것이었다.

계약금으로 1/3을 지급하고, 투자 를 받을 경우 또 1/3을 지급하고, 크랭크인에 들어가면 나머지 1/3을 지급하는 식이었다.

얼핏 듣기에는 합리적인 계약처럼 보일 터였다.

투자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작가, 감독,제작자가 함께 나눠 지는 구 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맹점이 숨어 있었다.

우선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할 확률 이 극히 낮다는 점이었다.

“100편이 제작에 들어가면,개봉하 는 영화는 서너 편뿐이다.”

최근 영화계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 내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었 다. 그리고 경쟁이 치열한 만큼,투 자를 받는 것도 그만큼 어려웠다.

만약 투자를 받는 데 실패한다면?

작가나 감독은 원래 계약 금액의 1/3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었 다.

또 하나의 맹점은 시간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영화 제작은 지

난한 작업이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하고,주연배 우 캐스팅,오디션을 거치면서 투자 승인을 받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 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짧게는 1년,길게는 수년이 걸렸 다.

만약 투자를 받는 데 3년이 걸린 다면?

아까 제시한 금액의 1/3을 받고 3 년을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생계가 유지될 가능성은 낮았다.

좀 전에 강형진이 실수령액이 얼마 나 되는지 물었던 것은 이런 영화계 의 관행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었 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시죠.”

강형진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루고,되레 이규한이 질문을 던졌 다.

“돈이 급하십니까?”

그 질문을 받은 강형진이 잠시 머 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네,사정이 좀 급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 겠습니까?” “그게… 빚이 좀 있습니다. 대출을 갈아타다가 카드 빚까지 지게 돼서 이자가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솔 직하게 말씀드리면,아이 학원도 끊 고 싶은 심정이지만,애 엄마가 그 것까지는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본인의 치부를 다른 사람에게 꺼내 놓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강형진은 내성적이고,자존 심이 강한 편이었다.

그가 이 말을 꺼낼 때까지 얼마나 고심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최대한 많이 받으시는 편이 유리 하겠군요.”

“부끄럽지만,그렇습니다.”

“그럼……

이규한이 운을 땐 후 잠시 망설였 다.

‘날 죽이려 들 텐데!’

박태혁이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렇지만 이규 한은 애써 박태혁의 화난 모습을 머 릿속에서 지웠다.

강형진의 사정이 워낙 딱해서가 아 니었다.

그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였다.

‘지금이야 이런 대우를 받고 있지 만,나중에는 돈을 싸 들고 찾아가 도 계약할 수 없는 대감독이 될 테 니까.’

당장의 돈 몇 푼을 아끼는 것보다 는 강형진의 마음을 얻는 것.

이규한은 그편이 훨씬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내 돈도 아니잖아!’

엄밀히 말하면 지금 강형진에게 지 불하려는 돈은 이규한의 것이 아니 었다.

램프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박태혁 의 돈이었다.

‘몇 배로 돌려줄 테니,너무 화내 지 맙시다.’

마침내 결심한 이규한이 멈췄던 말 을 이어 나갔다.

“일시불로 드리겠습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각본료와 연출료,모두 일시불로 지급하겠습니다.”

“정말 일시불로 1억을 주신다는 말 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쉬이 믿기지 않는 걸까.

두 눈을 깜박이고 있던 강형진은 불신이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이런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리라.

“제 말을 믿기 힘드신가 보네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럼 계약서를 쓰시죠. 계약서만 큼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요.”

이규한이 계약서를 꺼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계약서를 바라보던 강형진이 물었다.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겁 니까?”

“믿거든요.”

“누구를요?”

“감독님을요.”

“하지만……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감독님은 아주 뛰어난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연출력도 무척 뛰어나신 편입 니다. 다만 감독님이 갖고 계신 역 량을 발휘할 기회가 지금까지는 없 었을 뿐이죠. 제가 감독님께 그 역 량을 발휘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 피디님.”

강형진이 이규한의 손을 덤석 잡았 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기세

인 강형진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약속을 하나 해 주십시오.”

“무슨 약속이요?”

“나중에 저와 함께 꼭 작품을 하신 다는 약속이요.”

“이 피디님과요?”

“머잖아 제가 제작사를 하나 차릴 겁니다. 그때,강 감독님과 함께 작 품을 꼭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어 떻습니까?”

“저야… 당연히 좋죠.”

예상치 못한 제안이기 때문일까.

살짝 당황한 기색이던 강형진이 흔 쾌히 대답했다.

‘나중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 지!’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화장실 가기 전과 갔다 온 후의 마음이 달라질 정도로 인간은 간사 한 동물이었다.

훗날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지 말 이 바뀔 수 있었다.

“그럼 계약서를 미리 쓸까요?”

“계약서를 또요?”

“하하,그냥 한번 해 본 말입니다.

저야 감독님과 꼭 같이 작업하고 싶 지만,아시다시피 아직 회사를 만들 지 않은 상황이라 계약서를 쓸 도리 가 없네요. 제 입장에서는 너무 아 쉬워서 드려 본 말씀입니다.”

이규한이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않 고 말하자 강형진이 고민에 잠겼다.

잠시 후 그가 입을 뗐다.

“계약서는 못 써도 문서 정도는 남 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서요?”

“네. 펜을 다시 빌려주시겠습니 까?”

이규한이 펜과 종이를 건네자 강형

진이 빈 종이에 일사천리로 글을 적 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감독 강형진은 이규한 피디가 영 화사를 세우면 꼭 한 작품을 함께하 기로 약속한다. 약속의 신빙성을 증 명하기 위해 이 문서를 작성하는 것 이며,약속의 효력은 서명이 이뤄지 는 즉시 발효된다.

두 장의 종이에 같은 내용의 문구 를 적은 강형진이 서명했다.

“자,피디님도 서명하시죠.”

“알겠습니다.” 두 장의 문서에 사인을 마친 이규 한이 환하게 웃었다.

‘인생은 타이밍!’

사인을 마친 순간,이규한의 머릿 속에 퍼뜩 떠오른 말이었다.

강형진 감독이 가장 힘든 시기에 도움을 준 덕분에 장차 그와 작품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비록 지금은 종이 쪼가리처럼 보이 는 이 한 장의 문서는 최소 수억에 서 많으면 수십억의 가치로 변해 돌 아올 확률이 높았다.

“자,그럼 일어나시죠. 계약을 맺은 기념으로 한잔하셔야죠.” “그럴까요?”

“제가 뭘 들고 왔는지 아십니까?

구"

“법인 카드를 들고 왔으니 맘껏 드 시죠.”

이규한이 미리 챙겨 온 법인 카드 를 전장의 보도처럼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아,갈증 나 죽겠네!”

이규한이 냉장고 앞으로 비틀거리

며 걸어갔다.

벌컥벌컥.

생수통을 꺼내 단숨에 비워 버린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밤 강형진과의 술자리.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졌다. 계약을 하고 긴장이 풀려서일까.

강형진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은 것이 이규한도 마찬가 지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의기투 합해 마시다 보니,술자리는 쉽게 끝나지 않고 5차까지 이어졌다.

“출근 시간이 따로 없는 건 좋네!”

비록 램프 엔터테인먼트 소속 직원 이긴 했지만, 이규한은 출퇴근 시간 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몇 시나 됐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바닥에 떨어 져 있는 휴대전화를 들어 올린 이규 한의 눈에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 넘게 와 있는 게 보였다.

박태혁이 건 게 열다섯 통.

김미주가 건 게 일곱 통.

그때 였다.

지이잉,지이잉.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규한의 휴 대전화가 진동했다. 그리고 이규한

에게 전화를 건 것은 김미주였다.

“어,미주 씨!”

“어디세요?”

“아직 집인데,왜? 회사에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죠.”

“무슨 일?”

“사고 친 당사자께서 모른 척하시 면 곤란하죠.”

“사고? 내가?”

“이 피디님이 강 감독님과 계약하 셨잖아요.”

“아,그래서 대표님이 화가 났구 나!”

그제야 이규한이 상황 파악을 마치 자 김미주가 충고했다.

“기왕 늦은 거,천천히 오세요.”

“천천히 오라고?”

“지금 오시면 이 피디님 목숨이 위 태로울 수도 있어요. 대표님이 조금 진정됐을 때 출근하시는 편이 유리 할 거예요.”

“따뜻한 충고 고마워.”

“그리고 약속부터 잡으세요.”

“약속?”

“사무실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중 요한 약속을 미리 잡고 나오시란 말 씀이 에요.”

“명심,또 명심할게!”

김미주와의 통화를 마친 이규한이 서둘러 가방을 뒤졌다.

“어디 뒀더라?”

잠시 후 이규한이 책장 속에 반으 로 접어 끼워 두었던 종이를 찾았 다.

이규한이 영화사를 설립하고 난 후,작품을 함께하겠다는 강형진 감 독의 약속이 적혀 있는 문서.

비록 정식 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아니었지만,쌍방 간에 서명한 만큼 분명히 효력이 있는 문서였다.

문서를 다시 살피던 이규한이 스스 로를 칭찬했다.

이런 문서를 작성한 것이 대견했기 때문이다.

“자,그럼 사우나 하고 욕먹으러 가 볼까?”

이규한은 근처 목욕탕을 들렀다가 회사로 출근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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