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6화 (6/272)

6 화

숫자가 보인다 (2) 이규한이 먼저 정독한 것은 기존의 시나리오였다.

즉 4,582,546이란 숫자가 눈앞에 떠올랐던 시나리오였다.

‘조금 달라!’

이규한이 기존의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었다.

이미 이규한은 완성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약 10년 전에 보았기 때문에 기억 이 완전하지는 않지만,대략적인 이 야기의 흐름과 포인트 대사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던 영화의 내용과 지금 읽은 시나리오는 차이가 조금 있었 다.

‘그래서 관객수가 달라진 건가?’

이규한은 다음으로 강형진 감독이 수정해 온 시나리오를 펼쳤다.

기존 시나리오와 수정한 시나리오.

대체 어느 부분이 달라졌는가를 꼼 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무려 50만 명 가까이 관객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문 하나, 토씨 하나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이규한이 강형 진 감독이 수정한 시나리오의 정독 을 마쳤다.

‘뭐지?’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수정된 시나리오를 읽기 전의 예상 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규한의 눈치를 살피던 강형진이 입을 뗐다.

“혹시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까?”

“네,이상하네요.” “어느 부분이 이상합니까? 설정이 나 개연성에 오류가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크게 달라진 게 없 네요.”

기존의 시나리오와 강형진 감독이 고친 수정된 시나리오.

꼼꼼하게 정독해 보았지만,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물론 강형진 감독이 시나리오 수정 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 다.

계약이 필요한 강형진 감독은 나름 열심히 수정했다.

그래서 지문이 한결 간결해지면서, 읽는 맛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이 고개 를 갸웃한 이유는 지문을 수정한 게 50만의 관객 차이를 불러올 만한 요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기자 캐릭터를 좀 더 강렬하게 바꿔 봤는데,제 의도가 먹히지 않았나 보네요.”

“아니요,분명 더 괜찮아졌습니다.”

강형진 감독이 이번 시나리오 수정 에서 공들인 부분은 크게 두 가지.

지문과 극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기자의 캐릭터였다.

덕분에 시나리오가 조금 더 좋아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부분들을 모두 감안한다고 해도 50만이라는 관객수 차이를 만들어 내기에는 역 부족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럼… 대체 이유가 뭘까?’

정답을 찾지 못한 이규한이 팔짱을 낀 채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이규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이었다.

‘삼대 가족사’와 ‘과속 가족 스캔

tz,

기존의 시나리오와 수정한 시나리 오는 제목이 달랐다.

‘어쩌면… 이것 때문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규한이 깍 지를 꼈다.

"한번 확인해 보자!’

“감독님,제목을 바꿔 볼까요?”

“제목을요?”

뜻밖의 제안이어서일까.

강형진이 당황한 듯한 기색으로 물 었다.

“이번에 제가 바꾼 제목은 별로입 니까?”

“아니요,훨씬 나아졌습니다.” 기존의 제목인 ‘삼대 가족사’에 비

하면 ‘과속 가족 스캔들’이 훨씬 느 낌이 좋았다.

‘삼대 가족사’가 올드한 느낌이 풀 풀 풍긴다면,‘과속 가족 스캔들’은 좀 더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규한은 만족하지 못했 다.

더 나은 제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시나리오의 핵심이 빠 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핵심이요?”

“과속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는 것은 좋습니다. 스캔들이라는 영단 어를 쓴 것도 올드한 느낌을 없애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렇지만 가족 이란 단어가 너무 식상하다는 느낌 이 들었습니다.”

“왜입니까?”

“노골적으로 가족 영화라고 홍보하 는 느낌이 들어서요.”

“흐음.”

“물론 영화의 주제가 가족애와 관 련 있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 다. 그렇지만 가족이란 단어가 노골 적으로 들어가면서,가족 영화라고 명시해 버리니 오히려 흥미가 반감 되는 느낌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강형진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순 간,이규한이 재빨리 말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편하게 말씀하시죠.”

“가족 대신 삼대를 쓰는 게 어떨까 요?”

“삼대요?”

“영화의 핵심 설정이 미혼부 젊은 아빠와 미혼모 어린 딸 그리고 손자 가 한집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것 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목에서 부터 삼대를 부각시키는 것이 꼭 필 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제목이 어떻게 바뀌는 거

“‘과속 삼대 스캔들’로 바뀌죠.” “과속 삼대 스캔들.”

“어떻습니까?”

연신 되뇌던 강형진의 표정이 밝아 졌다.

“좋은 것 같습니다. 영화의 핵심 설정을 놓치지 않은 데다 입에도 짝 달라붙는 느낌입니다.”

“그럼 이렇게 제목을 바꿔도 되겠 습니까?”

“네,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바꾸시죠.”

“지금이요?” “여기 있습니다.”

이규한이 시나리오 수정고와 볼펜 을 내밀었다.

강형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겁니까?”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 다.”

“알겠습니다.”

강형진이 시키는 대로 볼펜을 집어 들었다.

확?확사

가족에 빗줄을 친 강형진이 그 위 에 ‘삼대’라는 두 글자를 적어 넣었 다.

‘과속 삼대 스캔들’.

이규한과 합의한 대로 제목을 바꾼 강형진이 물었다.

“됐습니까?”

“네,이제 제게 주시면 됩니다.” 이규한이 제목이 바뀐 시나리오 수 정고를 받아 들었다.

그 순간,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5,221,004.

영화의 홍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 시나리오의 완성도,감독의 연출력, 배우의 연기, 개봉 시기 등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서 영화 흥행의 성패를 좌우했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도 마찬가지였 다.

어떤 제목을 붙이느냐에 따라 관객 들의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제작자들은 제목에 민 감한 편이었다. 그리고 이규한 역시 제목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제목이 홍행하는 데 이렇 게까지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은 이

규한도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삼대 가족사’에서 ‘과속 가족 스캔 들’로 제목을 바꾼 후,예상 관객수 는 무려 50만 명 가까이 늘어났다.

물론 이 경우에는 온전히 제목의 영향 때문만이 아니었다.

강형진 감독이 수정한 지문과 극 중 악역으로 등장하는 기자 캐릭터 를 수정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과속 가족 스캔들’에서 ‘과속 삼대 스캔들’로 바꾼 경우는 또 달랐다.

단지 제목 두 글자를 바꾼 게 다 였다.

그런데 이규한의 눈앞에 떠오른 숫 자가 달라졌다.

5,083,825에서 5,221,004로 바뀌었 으니,무려 15만 명 가까이 예상 관 객수가 늘어난 셈이었다.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이규한이 비로소 눈앞에 떠오르는 숫자의 비밀들을 어느 정도 알아냈 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나리 오의 내용을 바꾸거나 제목을 바꿨 을 때,예상 관객수가 달라졌다.

아마 이 두 가지 요인이 다가 아 닐 터였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어떤 요 인들이 달라지면 예상 관객수가 앞 으로도 계속 달라질 확률이 높았다.

‘이거 진짜 엄청난데.’

이규한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숫자를 통해 예상 관객수를 확인할 수 있는 것.

엄청난 능력이었다.

특히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더 욱 그랬다.

흔히 영화는 수정의 예술이라고 불 린다.

그 이유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워낙 지난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서 수없이 시나리오를 고치고,좀 더 좋은 영상을 잡기 위해 수많은 반복 촬영과 편집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제작자가 가장 힘든 부분은 확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부분을 수정했을 때, 시나리오 가 더 좋아지는 건가?’

‘이 설정을 바꿨을 때, 관객들이 더 좋아할까?’

‘이 배우를 캐스팅했을 때,극 중 배역에 어울리는가?’ ‘제작비 초과를 무릅쓰고 재촬영을 했을 때,극의 완성도가 더 올라갈 까?’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제작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 해져 있지 않았다.

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개봉하지 않은 영화의 흥행 여부를 알 수 없 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제작자들의 고민이 깊어 지는 것이고.

그렇지만 예상 관객수를 볼 수 있 다면?

그 고민을 덜 수 있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예상 관객수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 문이다.

“이 피디님.” “저기,이 피디님,괜찮으세요?”

강형진이 아까부터 우려 섞인 시선 을 던지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이규 한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딴생각을 했네요. 그런데… 언제 이렇게 어두

워진 겁니까?”

이미 어둑하게 변해 있는 밖을 확 인한 이규한이 깜짝 놀랐다.

“지금 몇 시나 됐습니까?”

“7시 10분 전입니다.”

“벌써요?”

당황한 이규한이 재빨리 말했다.

“시장하시죠? 같이 식사하러 가시

“저기……

“왜 그러십니까? 선약이 있으신가 요?”

“그게 아니라… 그 전에 계약 여부 를 알고 싶습니다.”

강형진이 한참 머뭇거리다가 어렵 사리 꺼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강형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 여부였다.

그로 인해 초조함이 극에 달해 있 는 강형진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 도록 방치한 셈이었다.

“죄송합니다.”

이규한이 그 부분에 대해 사과한 순간,강형진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 워졌다.

벽시 그렇군요.

“저녁은 됐습니다. 입맛이 없네요.”

강형진의 반응을 의아해하던 이규 한이 뒤늦게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독님, 오해하신 것 같네요.”

“무슨 오해를 했다는 겁니까?”

“제가 사과드린 것은 빨리 답변을 드리지 못해서입니다. 저희와 계약 하시죠.”

“그게… 정말입니까?”

너무 쉽게 원하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강형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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