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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5화 (5/272)

5 화

숫자가 보인다 (1)

‘생각하자. 생각해야 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미팅을 핑계로 사무실 근처 커피 전문점에 들른 이규한이 커피를 앞 에 두고 생각에 잠겼다.

눈앞에 숫자가 떠오른 것.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때도 숫자가 떠올랐었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행인과 어깨 가 부딪쳐 가방이 떨어지며 내용물 들이 도로에 쏟아졌었다.

그 내용물 가운데 영화 ‘만월’의 시나리오를 집어 든 순간,눈앞에 처음으로 숫자가 떠올랐었다.

-25,511.

당시 눈앞에 떠오른 숫자였다.

그 숫자는 영화 ‘만월’의 최종 관 객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왜… 까닿게 잊고 있었지?”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면 최종 관 객수가 눈앞에 떠오르는 것.

분명 충격적인 경험이자 사건이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은 그 사 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회귀해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더 충 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탓에 그 사실 이 묻혔기 때문이다.

“다시 들어 보자.”

이규한이 가방에 넣어 두었던 ‘삼 대 가족사’의 시나리오 책자를 꺼내 집어 들었다. 그 순간,어김없이 눈 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4,582,546.

눈앞에 떠오른 숫자.

아까와 끝자리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왜 바뀌었지?”

이규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450만 명의 관객도 결코 적 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 이 알고 있던 ‘과속 삼대 스캔들’의 최종 관객수와의 차이는 컸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최종 관객수 를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800만대 초반이었던 것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관객수가 거의 반 토막 난 셈이었다.

이규한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이 유에 대해 고심했다. 그렇지만 마땅 한 답을 찾지 못하고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커피 전문점으로 강 형진 감독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강형진이 인사를 건넨 후에야 이규 한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강형진 을 발견한 이규한이 놀란 표정을 지 었다.

“감독님, 왜 벌써 오셨어요?”

“제시간에 도착했는데요.”

“네?”

이규한이 손목시계를 살폈다. 강형진을 만나기로 한 건 오후 2 시.

그리고 지금은 오후 2시 5분 전이 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어?’

이규한이 커피 전문점에 들어온 것 은 정오 무렵이었다.

잠깐 앉아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두 시간 가까이 홀러 있었다. 시간이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이 고민한 셈이었다.

“감독님, 어디 아프세요?”

“왜 그러시죠?”

“낯빛이 많이 안 좋으셔서요.”

강형진의 안색이 창백한 것을 확인 한 이규한이 물었다.

“잠을 좀 설쳤습니다.”

“왜요?”

“그게,전화 받고 나서 걱정이 돼 서요.”

" ……?" “시간이 좀 애매하더라고요.”

‘시간?’

이규한은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었 다.

강형진과의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원래대로라면 강형진에게 ‘삼대 가 족사’의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건네려고 잡은 약속이었다.

그리고.

강형진의 말처럼 오후 2시는 애매 한 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기도,저녁을 먹기도 어 중간한 시간.

보통 오후 2시에 약속을 잡는 이 유는 식비를 아끼기 위한 경우가 많 았다.

즉 어차피 계약을 할 게 아니니 식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오 후 2시라는 애매한 시간에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비록 신인급 감독이지만,강형진도 조감독 생활이 길었다. 그래서 이런 영화계의 생리를 잘 알았고,오후 2 시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듣고 감독 계약이 어려울 것이라 미리 짐작하 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괜한 걱정이었다.

예전과 지금의 상황은 백팔십도 달 라져 있었으니까.

이규한은 ‘삼대 가족사’의 시나리 오를 쓴 강형진과 각본 계약은 물론 이고 감독 계약도 맺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강형진은 초조한 기색 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냈다.

“일단 차부터 시키……

“이거부터 한번 보시죠.”

강형진이 가방에서 시나리오를 꺼 내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제가 한 번 더 수정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또 수정하셨다고요?”

“일단 수정고를 읽어 봐 주십시 “그 후에 결정해 주시면 안 되겠습 니까?”

강형진의 눈빛은 무척 간절했다.

홋날에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 되지만,현재의 강 형진은 입봉작을 거하게 말아먹은 신인급 감독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황이리라.

그런 강형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규한이 그가 탁자에 올려놓은 시 나리오책을 바라보았다.

〈과속 가족 스캔들〉 시나리오 책의 제목이었다.

‘제목이 바뀌었다?’

‘삼대 가족사’애서 ‘과속 가족 스캔 들’로.

강형진이 수정을 거치면서 영화의 제목이 바뀌어 있었다.

“제목이 바뀌었네요.”

이규한이 두 눈을 빛내며 말하자 강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이 너무 인간극장 느낌이 난 다는 평이 많아서. 이상한가요?”

“아니요, 전보다 더 낫습니다.”

“그렇습니까?”

“일단 한번 보겠습니다.”

이규한이 탁자에 놓여 있던 시나리 오책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이규한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5.083.825.

‘또… 바뀌었다?’

이규한이 마른침을 꿀끽 삼켰다.

강형진이 수정해 온 시나리오를 집 어 든 순간,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그런데 숫자가 분명히 바뀌어 있었 다.

‘약 50만 차이!’

4,582,546에서 5,083,8255..

숫자가 늘어나 있었다.

그것도 작은 차이가 아니었다.

무려 50만 가까이 차이가 났다.

‘이 숫자가 내 짐작대로 관객수라 면… 강형진이 시나리오를 수정한 후 약 50만 가까이 관객수가 늘어 난 셈이로군!’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뭐가 달라졌지?’

아직 수정된 시나리오를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 이규한이 알고 있는 차이는 제목이 바뀌었다는 게 다였다.

“감독님,잘 고치셨네요.”

“네?”

“수정을 잘하셨다고요.”

시나리오 수정을 한번 거친 덕분에 관객수가 50만 가까이 늘었다.

이게 시나리오 수정이 잘됐다는 중 거.

해서 이규한이 칭찬을 건넸지만, 강형진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어두워졌다.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수정이 잘됐는지 아시는 겁니까?”

“그건……

“수정고를 읽어 볼 가치도 없는 겁 니까?”

강형진이 억눌린 음성을 토해 냈 다.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분노와 자괴 감이었다.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며 수정한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이

펼쳐 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이었다.

물론 강형진은 지금 단단히 오해하 고 있었다.

“감독님.”

“말씀하시죠.”

“당연히 수정고를 볼 겁니다. 오늘 바쁘세요?”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 까?”

“제가 여기서 수정고를 살펴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여기서요?”

“왜 사무실에서 보시지 않고?”

“어떻게 바뀌었을지 너무 궁금해서 요.”

빈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바뀌었기에 관객이 50만이나 늘어난 거지?’

강형진이 다시 수정해서 가져온 시 나리오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 서 미칠 지경이었다.

“진심이십니까?”

“물론 진심입니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강형진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수정고를 확인할 거라는 이규한의

말이 진심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이규한이 ‘삼대 가족사’에 관심 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리 라.

“아직 제 질문의 답을 안 주셨습니 다.”

“어떤 질문이요?”

“오늘 바쁘시냐는 질문 말입니다.” “안 바뽑니다. 시간 아주 많습니다.” “그럼 차부터 시키시죠.”

“차요?”

이규한이 덧붙였다.

“시나리오를 보는 동안 시간이 좀, 아니 많이 걸릴 것 같거든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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