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4화 (4/272)

4 화. 넌 양심도 없냐?

“나는 회귀를 했습니다. 그래서 미 래를 알고 있습니다. 내가 본 미래 에서 ‘나의 새로운 파트너’는 손익 분기점을 훨씬 못 미칠 정도로 흥행 참패를 겪는 반면,‘삼대 가족사’는 속된 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이렇게 박태혁을 설득하는 것은 불 가능했다.

그래서 이규한이 고심 끝에 찾아낸

방법은 시나리오의 완성도였다.

“일단 영화의 흥행 공식이라 할 수 있는 3막 8장 구조가 딱 들어맞습 니다. 기승전결이 잘 구분되어 있다 는 뜻이죠. 게다가 한국 사람이 가 장 좋아하는 요소들이 시나리오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뭐?”

“웃음과 감동.”

이규한이 판단하는 ‘삼대 가족사’ 시나리오의 최대 강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를 차 용해 잘 버무린 덕분에 한국인의 정 서에 딱 맞는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박태혁은 쉽게 마음을 바 꾸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까였을까?”

“무슨 소리예요?”

“‘삼대 가족사’ 시나리오 말이야. 그동안 숱한 제작사에 시나리오가 들어갔지만,아무도 제작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잖아.”

박태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삼대 가족사’는 여러 제작사에서 이미 거절당한 시나리오였다. 그래 서 ‘삼대 가족사’가 대박 난 후,영 화를 제작하기까지 너무 힘들었다고 울먹이던 강형진 감독의 인터뷰가 아직도 이규한의 기억 속에 생생하 게 남아 있었다.

“후져.”

박태혁이 잘라 말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 다.

“보는 눈이 없는 거죠.”

“나한테 한 말이야?”

“이 시나리오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다른 제작사 대표들이요.”

“너무 구닥다리야.”

“옛것이 좋은 것이다.”

“이런 말 못 들어 보셨어요?”

“요새 영화 트랜드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데.”

“유행은 돌고 도는 거죠.”

박태혁의 말문이 막히자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형,요새 힘들죠?”

“뭐,당연히 힘들지.”

박태혁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만 힘들겠냐? 요새 다 힘들어. 우리 형 갈비집 하는 거 알 지? 거기도 손님이 없어 죽으려고 그러더라. 동생은 아직 마흔도 안 됐는데,언제 회사 잘릴지 몰라서 벌벌 떨고 있고.”

“바로 이겁니다.”

이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 다.

“뭐가 바로 이거라는 거야?”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 판국인 데,누가 우울한 영화를 굳이 극장 까지 찾아가서 보겠습니까?”

“그래서 코미디 영화가 먹힐 거 다?”

“그렇죠.”

“그렇지만……

“저 한번 믿어 주세요. 이번 영화

흥행에 목숨 걸게요.”

“자신 있어?”

“자신 있습니다.”

당연히 이규한은 자신이 있었다.

이미 ‘삼대 가족사’가 대박 날 것 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넘어왔다!’

박태혁의 표정을 통해 속내를 파악 한 이규한이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김미주에게 도움을 청했다.

“미주 씨,시나리오 둘 다 읽어 봤 지?”

“네.” ‘만약 미주 씨가 관객이라면 어떤

영화를 볼 거야?”

“둘 다 안 볼 건데요.”

김미주가 특유의 시크한 표정을 지 은 채 대답했다.

“왜 안 볼 거야?”

“‘나의 새로운 파트너’는 재미가 없고,‘삼대 가족사’는 제목이 너무 촌스럽잖아요.”

“제목이 촌스럽다고?”

“뭐랄까,약간 인간 극장 느낌?”

김미주가 덧붙인 말을 들은 이규한 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제목을 바꾸면 극장에 가서 보겠다?” “뭐,그럭저럭 재미는 있더라고요.”

김미주의 회사 내 역할.

경리 업무와 잡일만이 아니었다.

시나리오 일반인 평가단 역할도 맡 고 있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보는 김미주의 눈은 무척 정확한 편이었 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박태혁도 아 까부터 아닌 척하며 김미주의 평가 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형,미주 씨 평가 들었죠?”

“그럭저럭이라잖아.”

“그럭저럭 재밌다는 건 미주 씨 입 장에서는 극찬이라는 거 형도 알잖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마지막 으로 갈등하던 박태혁이 마침내 결 단을 내렸다.

“그럼 한번 해 보자.”

“오케이. 남아일언중천금입니다.”

“남아일언중천금?”

“나중에 말 바꾸기 없습니다.”

“알았어.”

마침내 박태혁을 설득하는 데 성공 하자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 다.

그렇지만 아직 기뻐하기는 일렀다.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 “형,계약 다시 합시다.”

이규한이 제안했다.

그 제안을 들은 박태혁이 난색을 표했다.

“갑자기 왜 계약 얘기를 하는 거 야? 돈 필요하다는 건 아는데,나도 죽을 지경이야. 그러니까 빨리 투자 를 받아서……

“형 사정을 제가 모를 리 있습니 까?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말해 봐.”

“기획 개발비 절반으로 줄일게요. 아침 특가 세일 하는 커피숍에서 사 람들 만나고,식대는 일인당 오천 원 넘지 않게 조절하면서 제가 최대 한 아껴 쓸게요.”

“정말 그럴 수 있겠어?”

기획 개발비를 절감하겠다는 이야 기를 들은 박태혁이 반색했다.

“당연하죠.”

“그 대가로 원하는 게 뭐야?

“지분을 주세요.”

이규한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박태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분? 무슨 지분?”

“‘삼대 가족사’ 홍행 수익 지분이 요.”

“갑자기 웬 지분 타령이야?”

“아까 제가 자신 있다고 했잖아요. 이번 영화 대박 나면 저도 돈 좀 벌고 싶어서요.”

“그래서 지분을 달라고? 얼마나?”

이규한이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2퍼센트? 그 정도야 해 줄 수 있 지.”

박태혁이 선심 쓰듯 말한 순간,이 규한이 고개를 혼들었다.

“2퍼센트 아닌데요.”

“그럼?”

“0 하나 더 붙여 주세요.” “0 하나 더 붙이면 20퍼센트?”

박태혁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 었다.

“순수익의 20퍼센트를 네가 가져 간다는 게 말이 돼?”

잠시 후 박태혁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이규한은 이번에도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제가 원한 건 순수익의 20퍼센트 가 아닌데요.”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손익분기점 을 넘기는 시점부터 본격적인 정산 이 시작된다.

그때부터는 관객이 더 많이 들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였다.

물론 수익이 난다고 해서 모두 제 작사의 몫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투자 배급사와 제작사가 수익을 나 누어야 한다.

일반적인 수익 분배 비율은 7 대 3.

수익의 7할을 투자 배급사가 가져 갔고,나머지 3할을 제작사가 챙겼 다.

‘나쁜 새끼들!’

이규한이 투자 배급사에 적의를 드 러냈다.

실질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제작사다.

투자 배급사가 하는 일은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엿보고,투자를 하고, 배급을 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수익의 7할을 가져가는 것 은 너무 과했다.

불합리한 수익 배분 구조.

5 대 5.

이규한이 생각하는 적정 수익 배분 비율이었다.

그렇지만 당장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제작사가 수익의 3 할을 받는다고 해서 온전히 제작사

의 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사용한 기획 개발비 초과분을 포함해 각종 부대 비용들을 모두 제하고 난 후부터 진 짜 수익이 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제작사의 순수익.

그리고 아까 박태혁은 순수익의 20퍼센트를 달라는 이규한의 제안 을 듣고 말도 안 된다며 일축한 것 이었다.

‘쉽지 않겠네!’

이규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제작사 순수익의 20퍼센트를 달라 는 요구에도 박태혁은 펄쩍 뛰면서

난색을 표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진짜 원하는 것 은 그게 아니었다.

순수익이 아니라 제작사 수익의 20퍼센트를 받길 원했다.

“너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아는구나.”

“말도 안 되죠. 차,포 떼고 나면 쥐꼬리밖에 안 되는 순수익의 20퍼 센트 받아서는 성에 안 차거든요.”

"  ?"

“그러니까 순수익 말고 수익의 20 퍼센트를 주세요.”

너무 황당해서일까?

박태혁의 말문이 막혔다.

“야,넌 양심도 없냐?”

한참 후에야 박태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 그의 반응은 무척 격렬했 다.

만약 탁자 위에 던질 게 놓여 있 었다면 아마 집어 던졌으리라.

그렇지만 이규한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순수익의 20퍼센트냐, 수익의 20퍼 센트냐?

한 글자 차이였다.

그렇지만 한 글자 차이로 엄청난

액수 차이가 발생한다.

“투자라고 생각하세요.”

“투자라니?”

“형이 손해 볼 건 없잖아요. 기획 개발비 아끼는 대신 제가 받을 지분 좀 올려 달라는 건데. 형은 고정 지 출비 아껴서 좋고,영화 성공하면 수익 늘어나서 더 좋고. 안 그래 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까놓고 말해서,영화가 흥행할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그 리고 망하면 지분 계약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그건 그렇지.”

“이번 영화로 형이 돈 많이 벌 수 있게 진짜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당장 계약서 새로 쓰죠.”

“지금 당장?”

“쇠뿔도 단김에 빼야죠.”

이규한이 새로운 계약서 작성을 서 두르는 이유는 두 가지.

일단 계약서만큼 확실한 것이 없었 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태혁이 제대 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함이 었다.

잠시 후 박태혁이 새로운 계약서를 가져왔다.

“됐냐?”

특약 조항에 제작사 수익의 20퍼 센트를 지급한다는 문구가 삽입된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꾸욱!

이규한이 환하게 웃으며 도장을 찍 었다.

‘이게 대체 얼마야?’

이규한의 기억에 의하면,‘삼대 가 족사’의 최종 관객은 ■ 만이 넘었 다.

비록 아쉽게 천만을 돌파하지는 못 했지만,워낙 제작비가 적었기 때문

에 수익은 더욱 많이 났다.

‘못해도 수억은 되겠구나!’

이규한이 머릿속으로 대략 계산을 마쳤을 때,박태혁이 ‘삼대 가족사’ 의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죽을힘을 다해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하던 것을 모두 얻은 상황.

이규한이 목청껏 대답하면서 시나 리오 책자를 받았다.

그 순간,그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 랐다

-4,582,546.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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