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3화 (3/272)

3 화

삼대 가족사

램프 엔터테인먼트.

램프처럼 은은한 빛을 세상에 내뿜 는 좋은 작품들을 제작하겠다는 포 부와 함께 박태혁이 세운 영화 제작 사였다.

사무실의 위치는 필동.

영화의 메카라고 불리는 충무로 인 근이었다.

“저 왔습니다.”

이규한이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 한 램프 엔터테인먼트 문을 열고 안 으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왔냐?”

두 눈이 충혈된 박태혁이 사무실로 들어온 이규한을 힐끗 바라본 후 손 을 들었다.

‘밤 꼬박 새셨네!’

박태혁의 충혈된 눈과 푸석한 얼굴 을 확인한 이규한이 짐작했다.

‘나의 새로운 파트너’와 ‘삼대 가족 사’.

두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지 고민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한 둣 했다.

“미주 씨,커피 한 잔 부탁해!”

경리 업무와 잡일을 맡고 있는 직 원인 김미주에게 커피를 부탁한 이 규한이 박태혁이 앉아 있는 소파 맞 은편에 앉았다.

“결전의 날이네요.”

“그래,우리 회사의 운명이 걸린 날이지.”

“말은 정확히 합시다. 우리 회사가 아니라 형 회사죠.”

“하여간 애사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가 없어요.”

핀잔을 건네던 박태혁이 의아한 시 선을 던졌다.

“근데 너, 무슨 좋은 일 있냐? 표 정이 밝은데?”

“좋은 일 있죠.”

“뭔데? 복권이라도 당첨됐냐?”

“비밀입니다.”

“비밀? 진짜 복권 당첨된 거 아 냐?”

박태혁이 추궁하자 이규한이 서둘 러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결정했어요?”

“대충!”

“어느 쪽이요?”

“나의 새로운 파트너.”

이규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태혁의 선택이 예전과 다르지 않 았기 때문이다.

“이유는요?”

“‘나의 새로운 파트너’가 확실히 투자받을 가능성이 높잖아.”

그리고 박태혁의 선택을 비난하기 는 어려웠다.

‘나의 새로운 파트너’는 이미 세팅 이 어느 정도 끝난 상태인 반면, ‘삼대 가족사’는 세팅이 전무한 상 태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팅이라 함은 감독과 배우 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떤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했느 냐?

어떤 배우가 출연하기로 결정했느 냐?

이것을 흔히 세팅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세팅은 무척 중요했다.

감독과 배우의 면면은 투자를 받는 데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새로운 파트너’와 ‘삼대 가족 사’.

두 작품 모두 감독은 신인급이었

그렇지만 같은 신인이라고 해도 급 이 달랐다.

‘나의 새로운 파트너’의 시나리오 를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으려는 이 해성 감독은 아직 상업 영화 연출 경험이 없었다.

그렇지만 단편 영화 연출 경험이 풍부했다.

이해성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들 은 작품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충무로가 주목하는 젊은 감독들 중 한 명.

투자 배급사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 보는 신인 감독 중 한 명인 만큼,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 았다.

반면 ‘삼대 가족사’의 감독인 강형 진은 조감독 생활을 거치며 경험을 쌓은 후 이미 입봉한 적 있었다.

그의 상업 영화 입봉작은 ‘가위 소 리’.

장르는 공포였다.

공포 영화 특수라 할 수 있는 여 름 시장을 노리고 개봉했지만,관객 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공포 영화인데 하나도 안 무섭 다!” 공포 영화 입장에서는 최악의 혹평 을 받으며 흥행에 참패했다.

영화 ‘가위 소리’의 최종 관객은 3 만 1,500여 명.

강형진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연출 한 입봉 상업 영화는 망작이 됐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가장 꺼리는 감 독이 바로 입봉작을 말아먹은 감독 이었다.

당연히 투자 배급사에서는 강형진 감독에게 불신 어린 시선을 던질 터 그리고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캐스팅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아직 주연배우의 캐스팅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나 의 새로운 파트너’는 국민 배우 안 상기가 출연을 검토 중이었다.

아니,거의 출연이 확정된 상황이 나 마찬가지였다.

투자 배급사는 물론이고,충무로가 주목하는 젊은 감독 이해성에 대한 믿음이 안상기가 출연을 결심한 배 경.

물론 안상기도 나이가 들면서 예전 같은 티켓 파워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인지도는 절대 무시 할 수 없었다.

그가 출연을 확정한다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 게 높아졌다.

반면 ‘삼대 가족사’는 주연 캐스팅 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것이 램프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인 박태혁이 두 시나리오 가운데 ‘나의 새로운 파트너’를 선택한 이 유였다.

“넌 고민 좀 해 봤냐?”

이규한은 박태혁의 질문을 받고 상 념에서 깨어났다.

“당연히 고민해 봤죠.”

“그래서 네가 내린 결론은?”

이규한이 잠시 대답을 미루고 기억 을 더듬었다.

“나의 새로운 파트너로 하시죠.”

예전 그가 내놓은 대답이었다.

당시 박태혁과 이규한의 의견은 일 치 했었다.

덕분에 일사천리로 제작에 돌입했 그게 패망의 지름길인지도 모른 채.

“‘삼대 가족사’로 하시죠.”

이규한은 예전과 다른 대답을 꺼냈 다.

예상치 못했기 때문일까.

“왜 그걸 선택한 거야?”

박태혁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왠지 대박이 날 것 같은 느낌이랄 까요.”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박태혁은 ‘나의 새로운 파트너’.

의견이 갈린 만큼 조율이 필요했 다.

“야! 영화가 장난이냐? 영화 한 편 제작해서 개봉하는 데 들어가는 돈 이 최소 수십억이다. 거기에 수백 명의 인력이 몇 달 동안 달라붙어야 하고. 그런데 왠지 대박이 날 것 같 다는 네 직감만 믿고 ‘삼대 가족사’ 를 선택하자는 거야?”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 태혁이 살짝 언성을 높였다.

‘답답하네!’

이규한이 ‘삼대 가족사’를 선택한

진짜 이유.

직감 때문이 아니었다.

미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새로운 파트너’와 ‘삼대 가족 사’.

두 영화의 희비는 극명하게 갈렸 다.

한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모든 관계자가 놀랄 정도로 깜 짝 흥행 신화를 쓰면서,말 그대로 대박이 난 반면,다른 한 영화는 흥 행 부진을 겪으며 손익분기점에 훨 씬 미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둘 중 대박이 나는 영화는

물론 대박이 난 영화의 제목은 ‘삼 대 가족사’가 아니었다.

제작 과정을 거치며 제목이 바뀌었 다.

그 영화의 제목은 ‘과속 삼대 스캔

드,

그렇지만 문제는 박태혁에게 마땅 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회귀,그러니까 미래에 서 죽고 난 후 다시 과거로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면?’

이규한이 이렇게 솔직히 고백하면 박태혁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순순히 믿어 줄 가능성은 낮았다.

되레 어제 마신 술이 아직 덜 깼 냐는 핀잔을 들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 설득해야 하지?’

해서 이규한이 고민에 잠겼다.

물론 이규한이 대단한 애사심의 소 유자는 아니었다.

지금은 박태혁이 세운 램프 엔터테 인먼트에서 프로듀서로 몸담고 있지 만,이미 머잖아 퇴사를 결심한 후 였으니까.

그리고 이규한이 퇴사를 결심한 이 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대표인 박태혁과 잘 맞지 않 영화계에 몸담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박태혁이지만,그는 그 짧은 사이 안 좋은 것만 배웠다.

속된 말로 양아치 짓만 배운 셈이 었다.

신인 작가에게 고료를 제대로 지급 하지 않고 시나리오의 핵심 아이디 어만 빼오거나 계약서에 불리한 약 관을 잔뜩 집어넣어 신인 감독이나 작가들의 눈물을 쏙 빼 놓는 짓거리 를 밥 먹듯이 했다.

더 큰 문제는 박태혁이 자신의 잘 못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런 양아치 짓을 영화계의 오래된

관행이라고 여기며 당연시했다. 하지만 이규한은 생각이 달랐다.

“줄 돈은 주고,대우도 제대로 해 주자!”

이것이 영화 제작자 이규한의 철학 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의기투합이 될 리 없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자신의 이 름을 건 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싶다 는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확 망하게 내버려 둘까?’ 어차피 회사에 애정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박태혁에게 인간적인 애정도 없 었다.

그러니 박태혁이 원하는 대로 ‘나 의 새로운 파트너’를 제작하도록 내 버려 둘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 다.

“너도 어제까지 ‘나의 새로운 파트 너’를 선택하자고 했잖아? 빨리 투 자를 받는 게 너한테도 좋을 테고.”

그때,박태혁이 다시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규한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예전 이규한이 ‘나의 새로운 파트 너’를 제작하자고 선택한 이유는 박 태혁과 비슷했다.

이해성 감독에 안상기 배우.

이런 조합이라면 투자를 받기에 용 이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니,용이한 게 아니라 투자를 받 는 게 거의 확정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 었던 이규한은 돈이 필요했다.

당시 이규한은 프로듀서를 맡은 영 화가 투자를 받아야만 페이를 받을 수 있는 형태의 계약서를 작성한 상 태.

그래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 다.

물론 지금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회사를 차릴 준비를 하고 있는 이규한은 돈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당시와 지금.

이규한의 선택은 달랐다.

‘일단 대박을 내자!’

‘삼대 가족사’를 제작해서 대박이 나면 가장 좋은 것은 램프 엔터테인 먼트의 대표인 박태혁이었다.

그다음이 ‘삼대 가족사’에 투자한 사람들.

그리고 ‘삼대 가족사’를 연출한 감 독과 ‘삼대 가족사’에 출연한 배우 들에게도 커다란 혜택이 돌아갈 것 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입장에서도 나 쁠 것은 없었다.

최종 관객수가 무려 천만에 육박한 영화 ‘삼대 가족사’를 발굴하고 기 획해 낸 프로듀서 이규한.

이런 타이틀이 생긴다면 이규한의 위상이 달라질 테니까.

또 이규한을 스카우트하려는 영화 사가 늘어나며 자연스레 몸값이 올 라갈 터였다.

‘일단 설득부터 하자!’

마침내 결심한 이규한이 입을 다.

“시나리오의 월리티가 ‘삼대 사’ 쪽이 훨씬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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