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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화 (1/272)

1억 관객 제작자

1화

-1 억 관객을 동원한 국민 배우 유해전!

간혹,아주 간혹이긴 했지만 1억 관객을 불러 모은 배우들이 등장했 다.

그렇지만 1억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 제작자는?

단연코 없다.

그 이유야 여럿이다.

한국 영화 시장이 워낙 협소한 탓 도 있고,영화 제작자의 수명이 짧 은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아,혹시 착각할지 모르니 정정한 다.

여기서 말한 수명이 짧다는 것.

영화 제작자라는 직업군의 평균 수 명이 특히 짧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 제작자로서,험난하고 치열한 영화계에서 버티는 기간이 무척 짧 다는 뜻이다.

한 작품 혹은 두 작품 정도는 어 쩌다 흥행에 성공할 수 있지만,꾸 준히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을 세상 에 내놓기는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 다.

이것이 1억 관객을 불러 모은 영 화 제작자가 아직 대한민국에 등장 하지 않은 진짜 이유다.

불가능!

모두가 1억 관객을 불러 모으는 영화 제작자는 대한민국에서 나올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모두가 불가능하다 고 말한 것에 도전하는 영화 제작자 다.

내 이름은… 이규한이다.

인생 잘못 살았네 “내 일상은 여전히 평화롭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번 영화 ‘만 월’의 남자 주인공 배역을 맡은 김 범준의 독백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이런 개자식!’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한 순 간,이규한이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대만 감독을 노려보았 다.

순수 제작비 30억.

거기에 홍보비까지 포함하면 영화 ‘만월’의 제작비는 40억에 육박했다. 그런데 언론 시사회를 겸한 이번 VIP 시사회에서 최초로 공개된 영 화 ‘만월’은 상업 영화의 탈을 쓴 예술 영화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상업 영화와 예 술 영화의 경계선에 서 있달까.

물론 이규한이 예술 영화에 대해서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 다.

인간의 심리 묘사를 극한으로 추구

하는 것이 예술 영화.

그런 예술 영화는 충분히 존재 가 치가 있었다.

그렇지만 세상 어디에도 제작비 40억짜리 예술 영화는 없다.

“김 감독.”

“네,대표님.”

“영화가… 영화가……

너무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 지 않았다. 그래서 이규한이 더듬거 리고 있을 때,김대만이 말했다.

“영화가 나름 괜찮게 빠졌죠?”

이규한이 김대만을 매섭게 노려보 았다.

영화가 끝난 후,시사회의 반응. 이규한의 예상대로 싸늘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덧이 올라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관객석에 서 박수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박수 대신 곳곳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일까.

김대만은 아까부터 고개를 돌리며 이규한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왜 달라?”

“뭐가 말입니까?”

“제작 시사회 때 봤던 영화와 지금 영화 너무 다르잖아.” “그게… 제가 좀 바꿨습니다. 영화 가 너무 싼티가 나는 것 같아서 후 반 편집 과정에서 손을 좀 봤거든 요.”

이규한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럼 나한테 먼저 보고를 했어야 지.”

“죄송합니다.”

‘죄송? 지금 이게 죄송하다면 해결 될 문제야?’

단순히 사과하는 걸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제작 시사회 때 봤던 영화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 상업 영화로서 수작이라고 부르기 에는 많이 부족했지만,지금처럼 예 술 영화 냄새는 물씬 풍기지 않았 다.

그런데 김대만 감독이 고친 이후 영화는 말 그대로 최악으로 변했다.

‘망했다!’

이규한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감 추기 위해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 다.

‘울고 싶다. 아니,죽고 싶다!’

이규한이 죽상을 하고 있을 때,김 대만이 서둘러 일어났다.

“전 인터뷰가 있어서 먼저 일어나

겠습니다.”

‘영화를 이딴 식으로 찍어 놓고 인 터뷰를 해? 이 양심도 없는 개자식 아!’

김대만의 멱살을 틀어쥐고 버럭 소 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이규한은 간 신히 참았다.

오늘 시사회장에 기자들이 여럿 모 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확 도망쳐 버릴까?’

이규한이 한숨을 푹 내쉬며 한 생 각이 었다.

이규한이 이번 영화 ‘만월’의 연출 을 신인 감독인 김대만에게 맡긴 이 유는 그가 찍은 단편 영화들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툴루즈 단편 영 화제에 출품했던 작품이 본심에 올 라 심사위원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탄탄한 연출력을 갖췄기 때문에 신 인 감독인 김대만에게 연출을 맡기 는 모험 아닌 모험을 한 것이었다.

반면 이규한은 영화계에서 나름 잔 뼈가 굵은 제작자였다.

‘만월’은 이규한이 제작에 관여한 여섯 번째 영화.

제작한 영화들이 개봉할 때마다 시 사회를 개최했고,이규한은 당연히 매번 시사회에 참석했었다.

해서 시사회에 참석한 기자나 영화 관계자들의 반응을 보면 대충 영화 의 성패에 대한 감이 왔다.

그렇지만 이런 싸늘한 반응은 이규 한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어쩌지?’

이규한은 눈앞이 캄캄했다.

‘만월’은 그간 제작한 영화들의 잇 따른 흥행 부진으로 궁지에 몰린 이 규한이 재기를 꿈꾸며 모든 것을 쏟 아부은 영화였다.

자존심 따윈 내팽개치고 투자사에 근무하는 후배들에게 사정해 가면서 간신히 투자를 받았고, 촬영 중 제 작비가 모자랄 때는 자신의 집을 담 보로 은행 대출까지 받아 제작비를 충당했었다.

‘이번 영화만 성공하면 다 해결할 수 있어!’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주택 담보 대출까지 받아 영화 제작에 모 두 쏟아부은 것이었다. 그러나 VIP 시사회를 통해 최초 공개된 영화 ‘만월’을 보고 난 후,이규한의 희망 은 무참히 깨졌다.

‘관객이 10만은… 들까?’ 영화 ‘만월’의 손익분기점은 대략 130만 명.

과연 얼마나 큰 손해를 보게 될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직… 포기하지 말자!’

잠시 후,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 다.

아직 ‘만월’은 개봉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떤 영화가 흥행하는가의 여부는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알지 못한 다.

개봉도 하기 전에 벌써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

이 들었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

이규한이 각오를 다지며 자리에서 일어설 때였다.

“규한아!”

천만 관객이 든 영화를 두 편이나 제작한 이력이 있는 대한민국 최고 의 제작자 양동현이 이규한의 앞으 로 다가와 있었다.

“선배님!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이규한이 질문한 후,마른침을 꿀 꺽 삼켰다.

양동현이 천만 관객 영화를 두 편 이나 제작한 것은 운이나 우연이 절

대 아니었다.

엄연한 실력이었다.

특히 영화의 흥행 성패를 점치는 양동현의 직감은 무척 뛰어나다고 충무로에 소문이 자자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이규한 이 잔뜩 긴장한 채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양동현이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라.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까.”

“크으,달다.”

인생이 너무 써서일까.

손님이 아무도 없는 포장마차에 혼 자 앉아 안주도 없이 소주를 물처럼 마시던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다.

“선배님이 틀렸습니다.”

‘만월’의 시사회장에서 양동현이 한 말은 틀렸다.

이규한에게 다음 기회는 없었다.

잇따라 부진을 면치 못한 영화들을 제작한 데다, ‘만월’로 흥행 참패를 기록한 이규한에게는 ‘무능하고 실 패한 제작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계는 무능하 고 실패한 제작자에게 재기의 기회

를 줄 정도로 따스한 곳이 아니었 다.

반면 이규한은 틀리지 않았다.

‘만월’의 최종 관객은 2만 5,511명.

관객이 10만 명도 들지 않을 것이 란 이규한의 예상은 적중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를……

예전 유행가 가사를 흥얼거리던 이 규한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영화 ‘만월’의 최종 관객이 10만도 되지 않을 거란 예상만 적중했던 것 이 아니었다.

‘회사는 부도가 날 거야. 투자자들 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욕을 해 대 면서 매정하게 등을 돌릴 것이며, 대출을 받을 때 담보로 한 집은 결 국 은행에 넘어갈 거야.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와이프는 이혼 을 요구할 테지.’

‘만월’의 VIP 시사회가 끝나고 이 규한이 떠올린 자신의 미래였다.

그 예상들은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했다.

이규한은 오늘 아내가 내밀었던 이 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고,내일부터 는 아직 갚지 못한 빚 때문에 사채 업자들에게 시달릴 터였다.

물론 이규한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 닫는 것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 다.

투자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무릎까지 꿇고 읍 소했고,대출을 갚기 위해 지인들에 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규한에게 도 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인생 잘못 살았네!”

촉망받는 젊은 제작자에서 무능하 고 실패한 제작자로.

이규한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바 뀌어 있었다.

“크으!”

또 한 잔의 술을 마신 이규한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까부터 이 규한을 바라보는 것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주인아주머 니 였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게……

“술값으로 낼 돈은 있습니다.”

이규한이 주머니를 뒤질 때,주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술값 못 받을까 봐 걱정돼서 본 거 아냐.”

“그럼요?”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죽지 마. 이 악물고 버티다 보면 분명히 다시 좋은 날이 올 거야.”

주인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이 규한이 웃픈 표정을 지었다.

이 악물고 버티다 보면 다시 좋은 날이 올 거란 뻔하디뻔한 이야기가 위로가 됐다. 그렇지만 주인아주머 니가 자살할 것을 걱정할 정도로 자 신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는 게 이 규한이 처한 현실이었다.

그때 였다.

“규한아!”

황진호가 포장마차로 들어왔다. 황진호 역시 영화 제작자.

장후가 이 바닥에서 유일하게 자신 의 등을 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게 황진호였다.

그리고 장후와 황진호에게는 공통 점이 하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실패한 영화 제작자 라는 것이었다.

“어,선배.”

“너,왜 전화 안 받아?”

“배터리가 다 됐어요. 그런데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낮부터 계속 찾아다녔어.” “헐! 왜요?”

“술 한 잔 사 주려고.”

“위로주요?”

“그래. 너도 나한테 위로주 여러 번 사 줬잖아.”

“이놈의 위로주 인생,지긋지긋하 네. 우린 언제 축하주 마셔 보죠? 아니,축하주를 마실 수 있긴 한 건 가?”

이규한이 콕콕,웃으며 소주병을 들어 황진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언젠가는 마셔야지.”

“언제요?”

“머잖아. 그러니까… 나쁜 마음 먹

무거운 침묵 속에서 술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이제 그만 마셔. 그래야 내일도 투자자들 만나지.”

“그래야죠.”

이규한이 대답했다.

물론 실패한 제작자를 만나 줄 투 자자는 없었지만,이렇게 대답해야 황진호가 안심할 터였기 때문에 꺼 낸 대답이었다.

“또 보자. 혼자 마시지 말고,술 마시고 싶으면 연락해.”

황진호가 떠난 후,이규한이 주머

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아까 황진호가 떠나기 전에 기어이 주머니에 넣어 두고 간 것이었다.

봉투를 확인하자 5만 원권 지폐 두 장이 들어 있었다.

10만 원.

결코 많은 돈은 아니었다. 그렇지 만 이규한은 봉투에 든 10만 원을 확인한 순간,코끝이 찡했다.

황진호의 어려운 형편을 잘 알기 때문에 이게 그에게 얼마나 큰돈인 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내가 갚을게. 이자 제대로 쳐서 꼭 갚을게.”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는 황진호가 걸어간 방향을 향해 이규한이 소리 쳤다.

다시 혼자 남겨진 이규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살고 싶다.”

부지불식간에 혼잣말을 꺼낸 그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질 리 없었다.

“내일은… 뭘 하나?”

마땅히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 이 규한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잠이나 자자!”

이규한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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