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결말
"혜주야!!... 어딨어?!!!"
병원에서 퇴원하고 지금은 집에서 요양 중인 혜주다... 사실... 혜주가 아픈지도 잘 모르겠다...
병원을 다녀왔지만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의사의 말대로 아프다니까...아픈가보다 한다...
정말로 죽을병에 걸려 있다는 몸 자체가 의심스럽도록 혜주는 더 활발하게 생활하며 이전보다도 더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어렵게 데려올 수 있었던 동생들을 뒤에 몰래 숨겨 두고 놀래켜주기 위해 난 문을 열어 혜주를 부르는데... 있어야 할 혜주가 없다...
집안에 들어가 방까지 확인을 했는데... 역시 보이질 않는 혜주다...
금방이라도 혜주에게 경찰들과 동행하여 들이 닥쳤을 때의 그 작은아빠란 놈의 얼굴표정을 설명하고 싶은 나인데... 혜주가 없다.
황급히...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문밖에서 혜주의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는 동생들이 기거할 옆집을 또 닦고 있었는지...걸레를 손에 들고는 두 동생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혜주다...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이 머쓱해진 난... 가만히 그 앞에 서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날 알아차린 혜주가... 눈물을 훔치며 웃음 지었고, 내게 손을 내밀어 잡고는 동생들과 함께 옆집으로 향했다...
이미 가구는 동생들이 앞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혜주와 같이 고민을 여러 번 반복하여 맞춰놓은 상태였고,,, 휴학을 한 혜주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과 옆집을 닦고 정리를 한다.
오늘도 또 닦았는지 입을 벌리며 서있는 동생들의 너머에 가구들에 윤기까지 흐르고 있었다...
"뭐야... 누워 있으라니까..."
"하나도 안 아파요..."
"안 아프긴..."
"누나 아파?"
고생을해서 그런지 고1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작은 놈이 혜주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한다...
둘째 동생에게는 혜주의 상태를 이미 말을 해 놓은 상태다... 아니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혜주에게 닥쳐올 힘든 순간에... 나와 함께 힘이되어줘야 할 동생들이고...언제까지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둘째에게만은 언지를 해 놓은 상태다...
셋째가 혜주의 품에 안겨 떨어질 줄 몰랐고... 둘째는 그런 셋째를 나무란다...
"누나 피곤하데... 우리 누나 쉬게 해주자..."
"싫어...누나하고 떨어지기 싫어..."
"하하하하... 오랜만에 상봉한 가족인데... 오늘은 여기서 잘 거지? 그럼 난 회사 좀 다녀올게..."
"아저씨..."
"걱정 마... 열심히 일해야지... 그럼 다녀올게..."
"..."
혜주를 뒤로하고 가족상봉의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라고 난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다...
그리고 회사대신 병원으로 향한다... 일주일에 두 번... 혹시나... 뇌사자의 폐를 이식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빼먹지 않고 확인하는 나의 일과다...
뇌사자의 가족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느끼는 나였지만... 그렇다고 혜주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그렇게 내 일과가 되어버린 대기자 확인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 국내에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은 폐 이식이라는 어려운 수술자체가 폐쇄적인 한국에서는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혜주만큼이나 폐가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어버린 난... 애써 냉정한 척...그리고 이기적인 남자로 돌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첫 번째 입원 후 두 달이라는 시간은... 가슴앓이 하는 날 몰라준 채 서운하게도 너무 빨리 지나갔다...
아무것도 준비된 것 없이... 하루하루를 허비하는 나였고,, 혜주와의 소중한 시간조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직장을 다니면서도 사방으로 돌아다니던 난... 이식에도 여러 가지 조건과 적합여부가 존재한다는 걸 배우게 되었고... 좌절하게 되었다...
병이란 것이... 알지 못했을 때에는 그냥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알고 나니... 더 빠르게 진행되어지는 거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혜주는 조금씩 살이 빠져간다... 날 만나 겨우 어렵게 찌운 살이... 날 병원에서 만났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말라갔고, 배만 볼록하게 솟아오른다... 이게 말로만 듣던 복수에 물이 찬 것인지... 나는 애써 부정하려 해보지만... 이제는 혜주가 기침과 함께 헛구역질까지 하게 되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혜주가 헛구역질을 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에... 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날이 밝자 곧바로 혜주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 나다... 밤에라도 혜주를 응급실로 데려가고 싶은 나였지만... 끝끝내... 혜주의 거부로 날이 밝자마자 혜주를 데리고 움직인다.
혹시나 가장 무서운 합병증이 온건 아닌지...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진찰을 마친 의사의 앞에 앉아 있게 되었다...
"이게...참..."
"왜요? 뭐가 잘 못 됐나요?"
나는 혜주를 내보내려 했지만... 혜주는 자신의 몸에 대한 일인데... 날 통해 듣고 싶지 않다는 말과 함께 끝까지 의사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다...
혜주는 항상 내게 짐이 되기 싫은가보다... 짐이 되어도 그것마저 행복인 것을...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했는데 말이다...
그런 혜주를 보며 의사는 어렵게...입을 연다.
"임신하셨습니다..."
"예??"
혜주가 놀란 듯 날 바라본다... 물론... 전혀 뜻밖의 의사 말에 얼이 빠진 듯 혜주를 쳐다보게 되었다...
"그...그게 무슨 말이...죠...?..."
"아마도 병원 검사 결과 나오기 전에... 폐 쪽 검사와 혈액 검사 때 임신초기라서 안 나온 거 같은데...정확한 날짜는 산부인과에서 알려주겠지만 아마도 그때 임신되신 거 같은데... "
"..."
"이런 말씀 죄송스럽지만 우선 낙태.를..."
"안돼요!!!"
의사의 입에서 나온 '낙태'라는 단어에 혜주가 배에 손을 얹고는 소리를 지른다...
"혜,,혜주야..."
"안 돼요! 죽어도 안 돼요...아...아기가 지금 제 뱃속에 있는 거잖아요... 그. 그건 안 돼요!"
"장혜주씨... 지금 아기가 문제가 아니라... 아기라는 존재로 산모분의 몸 상태가 얼마나 위독해 질지 저희도 장담을 못합니다."
"알고 있어요!...그래도 안 돼요..."
억지를 쓰며 선생에게 덤벼들기라도 할 기세였기에 우선 진정을 시켜야한다는 생각에 혜주의 손을 잡고 꾸짖듯 혜주에게 말을 한다.
"장혜주!!. 지금 선생님이 말씀 중이잖아!..."
"...그래도 안 돼요..."
"우선 신중히 생각을 하시는 게... 태아로 인해 몸이 더 안 좋아 질 수가 있습니다...그러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집에 가서 설득을 할게요..."
"...싫어요... 집에 안가요."
"혜주야... 우선 진정하고..."
"싫어요!... 집에 가면 똑같은 소리 할 거잖아요! 안가요!"
"그럼 여기서 살던가!! 자꾸 고집 부릴 거면 집에 오지 마!"
"...아...아저씨..."
혜주의 억지에... 결국 나도 소리를 치게 된다...
"김민호씨... 우선 진정하시고..."
"지금 진정하게 됐습니까?! 자기 몸 상태 뻔히 알면서... 저렇게 고집을 부린다는 게..."
"..."
혜주가 눈물을 흘린다...
요즘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선 눈물을 많이 보이지 않는 혜주였는데...아니... 나 몰래 숨어서 눈물짓던 혜주였는데... 지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나보다...
고집을 부리는 혜주를 놔두고 큰문소리를 내며 진료실에서 나와 버린다...
그런데 혜주가...울면서 날 따라 달려온다... 꼭... 버림을 당하기라도 하듯... 버림 받는걸 극도로 무서워하며 몸서리치듯 혜주가 서럽게 울며 걸어가는 내게 달려와 힘주어 내 팔소매를 잡는다...
"아...아저씨..."
"놔!... 지금 고집 부릴 거면 아예 따라오지 마..."
"아저씨...아기래요... 제 뱃속에 아기가 있데요..."
"그게 지금 문제야?!!"
"..."
계속 울기만 하는 혜주였고,, 속상한 마음에 화를 낸 나였지만... 혜주를 달래야 한다는 생각에 천천히...그리고 음성을 낮춰서 얘기를 하게 된다.
"혜주야... 아기는 또 가질 수 있잖아... 네가 몸 추스르면 충분히 또 가질 수 있는데 지금 무리할 필요 없어...알았지?"
"아는데요... 제가 죽으면요..."
"..."
"아기는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자꾸 바보 같은 소리 할래?!! 네가 죽는데 아기가 무슨 소용이야!. "
달래고 얼래도... 혜주는 내 소매를 잡고는 끝까지 고집을 꺽질 않는다.
이미 자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을 다잡았는지... 더 이상의 말을 잇지 않고는...그대로 고개 숙인 채 울며 서 있었다.
혜주를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난 조용히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곤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혜주와 택시에 올라탔다. 내 아이가 혜주의 뱃속에 생겼다는데... 얼마나 기쁜 마음일 텐데...지금은 기뻐할 수 없는 내 처지가 원망스럽다...아니... 신이 원망스럽다.
혜주와 집에 도착해 동생들과 식사를 하고나서... 동생들의 학교문제를 해결하려 나간 혜주를 뒤로하고 난 그 비보를 처음 내게 전했던 동네 의사에게 달려가 여러 가지를 묻고 알게 되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혜주의 태아가 태어나려면 최소 10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뱃속에서 혜주의 생명을 갉아 먹으며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아니 갉아 먹는다는 말이 잘못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혜주의 몸상태상으론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고 그만큼 혜주에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이 검사일로부터 대략 3개월이 지났으니... 앞으로 7개월이라는 시간으로 단축이 되었지만... 임신 자체가 환자에게는 엄청난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말에 한 번 더...한 번 더 좌절하게 만들었다.
결국 낙태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에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는다... 힘없는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온 난... 그렇게 혜주를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주가 동생들을 데려와 감사인사를 시킨다... 모든 게 나로 인해 이뤄질 수 있는 꿈같은 삶이라는 듯... 동생들에게 내 자랑을 또 한다...
혜주는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새로 생긴 집과 학교에 신나하는 막내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엄마처럼 다 큰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 그리고 저녁을 한다며 동생들을 옆집으로 가게하곤... 내가 앉아 있는 거실로 걸어
들어와 내 바로 앞에 앉아선 내 손을 꼭 부여잡는다...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고 있었기에 들으려 하지 않는 내 고개 돌림을 웃음으로 무마하며 혜주가 내게 말을 건다.
"아저씨... 저 행복해요."
"...뭐가?! 뭐가 행복한데?. 이상한 말하려면 밥이나 해라... 난 마음 굳혔어!"
"아저씨... 우리 아기가 커서요... 유치원에 들어가고 아빠 찾으면서 졸졸 아저씨 꽁무니 따라 당기는 모습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아세요?"
"..."
"그 모습을 보면서 아저씨가 미소 짓는 얼굴로 팔 벌리는 상상을 하는데... 눈물이 났어요..."
"듣기 싫어!"
"옆에 같이 누워서 아저씨하고 똑같은 자세로 자는 거 상상하니까... 미소 짓게 되더라고요...거실에서 대자로 누워서 말예요."
"싫다고!!"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결혼식장에서 사람들 환영을 받으면서...웃는 아이 모습에 또 흐뭇해지더라고요."
"야!! 싫다고 몇 번을 말하는데!. 난 그런 거 다 모르겠고!... 혜주야... 우선 몸 추스르고 하나든 둘이든... 아니 넷 낳자!! 우리 네 명 낳아서..."
"아저씨..."
"왜? 너 하고 싶은 말만 다 하고 땡할려고?!! 지금 내가 얼마나 속이 쓰린지 모르겠..."
"아저씨 마음을 왜 제가 몰라요... 그러니까...아저씨가 절 정말 사랑한다면... 평생 동안 아저씨 곁에 있게 해주세요."
"..."
"전... 아저씨 곁에서 평생 있고 싶어요... 비록 이 몸이 얼마 못 간다고 해도... 이 아기라면... 제 분신이라면 아저씨 곁에서 아저씨를 보살펴 줄 수 있는데..."
"뭐가 분...신이야..."
눈물이 흐른다...
설득을 해야 하는데... 내게 달래듯 말을 조곤히 전하는 혜주의 목소리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앉은 채 눈물만 흘리게 된다...
그런 날 혜주는 무릎을 꿇고 다가와 가볍게 안아준다...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게 하며...오히려 아이를 달래듯... 날 품에 안고 머리를 어루만지며 등을 토닥이던 혜주가 또 조곤히 얘길 이어간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혜주의 힘찬 심장소리는 자신이 살아 있다고 내게 들려주고 있는데... 혜주의 약간 떨리는 음성은 그 고동마저 지워버릴 듯 서글프게 들려왔다...
"에고... 우리 다 큰 애기를... 오래 살면서 옆에서 보살펴야 하는데...어떻게 하냐..."
"..."
"맨날 부담 만 주고... 이렇게 큰 선물만 덩그러니 던져놓고... 어떻게 아저씨 곁을 떠나야 할지...걱정이네..."
"떠나지마... 왜 떠난다는 말을 해..."
"제 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헤헤... 참...삶이 부질없다고 하더니... 아저씨한테는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게 없네요..."
"혜주야... 우리 아이는 나중을 기약하고...제발 내 말 좀 들어..."
혜주가 내 얼굴을 부여잡은 채 몸을 떨어트렸다...
이미 혜주의 눈에선 눈물이 쏟아지듯 흘러내리고 있었고, 날 찬찬히 바라보는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진짜... 나한테 왜 이러니...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 사랑해요."
"..."
혜주는 그대로 내게 입맞춤을 해준다...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사랑이라는 말을 하면서 내 얼굴을 잡고 진한 키스를 해준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전해지는 감촉을 그대로 얼굴에 느끼며... 난 혜주의 키스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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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의 애절한 부탁으로 인해 의사선생님의 허락을 받게 된다...
아니... 이미 의사선생도 혜주의 간절한 부탁에 수긍을 한 듯 보였다. 다만... 이제부터는 병원에서의 생활이 불가피하다는 의사의 말에 혜주도 아기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각오했다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그렇게 혜주와의 병원 생활이 이어지게 된다.
정말 지긋지긋한 병원인데... 지금은 기댈 곳이 이 장소밖에 내겐 없었다...
난 또 회사에 휴가를 신청했다. 잦은 신청으로 회사가 받아들여 줄지는 모르겠지만... 난 상관없었다... 지금 혜주 옆에 있어주질 못한다면... 난 평생 동안 후회와 고통을 안고 살아갈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휴가 신청을 냈고,.,,, 부장에게만 혜주의 얘기를 하게 되었다.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부장은 최대한 시간을 보장 할 테니 휴가신청대신에 조퇴신청을 하라는 말로 날 돌려보냈다... 병가와 조퇴를 알아서 내 줄 테니 회사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난 혜주가 있는 병실을 향해 집에서 챙겨온 용품들을 들고 회사를 나선다...
고마운 삼구가... 기약없는 혜주의 병실 값을 일부 미리 지불해 놓은 상태였기에... 혜주는 또 일인실에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병원에서의 길어질 시간을 느끼며... 병실에서의 첫 날밤을 잠 못 이룬 채... 환자복을 귀엽게 입고 있는 혜주와 같은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아저씨..."
"응?"
"아저씨는 아들이면 좋겠어요? 딸이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아이면 다 예쁠 텐데..."
"그래도요... 첫...째는...아들이 좋겠죠?"
"...확실한건 둘째건 셋째건 딸은 꼭 있어야 돼."
"왜요?"
"너 닮으면 얼마나 예쁘겠냐?!!!. 그러니까 꼭 딸은 있어야지."
"피~~"
"..."
"음~~~ 그럼 딸로 해요."
"뭘?"
"지금 뱃속에 있는 아가요... 딸로 해요."
"큭... 그게 맘대로 되나?"
"기도하면 되죠..."
"기도? 내 기도는 하나도 안 들어주더라..."
"..."
"..."
말을 해놓고... 나도 모르게 병실에 침묵을 이끌어 냈다...
수없이 혜주를 살려달라고... 그리고 계속 내 옆에 있게 해달라고... 수도 없이 기도를 한 나였지만...어느 하나 들어주지 않는 존재는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 일거라는 생각에 무심코 던진 말이었는데...
그런데 혜주도 기도를 하나 보다...
가만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혜주의 눈에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모른 채하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혜주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르는지... 가만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기에... 손으로 눈물을 훔쳐 준다...
"어... 눈물이 왜 나지..."
"바보..."
"크크... 아저씨한테 바보라는 말 들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
"...그거 욕인데?"
"그런가?...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
"풋...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웃어... 내가 말했잖아... 넌 웃는 게 정말 예쁘다고..."
"크크... 에고~... 저 잘래요..."
"피곤해? 그래... 내려갈게..."
"아...아뇨... 옆에서 같이 자면 안 돼요?"
"불편하잖아..."
혜주가 고개를 젓는다...그리고...
"무서워요..."
"..."
혜주는 눈을 감은 채... 내 손을 놓지 않는다.
난... 천천히 혜주의 머리에 팔베개를 해주며 눕게 되었다...
당연히... 당연히 무서워할 거라는 걸...이제야 깨달게 되는 나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혜주는 전혀 내게 내색하지 않았기에... 나도 그렇게 대하면 안 될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제 겨우 스물 둘인데...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여자아이는 지금 내게 엄마로서...그리고 부인으로서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태연하게 보여줬기에... 가끔 잊게 된다...
혜주가 어린 여자 아이란 걸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잠을 애써 청하는 혜주에게... 지금 순간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팔베개 밖엔 없었다...
내 존재자체가... 너무 나약하고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기에... 난 입술을 깨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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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아기를 포기 못하는 혜주였기에... 이미 말기까지 도달한 혜주의 폐로 하루하루가 힘이 든가보다.
폐라는 기관자체가 호흡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기관이었기에 혜주의 건강은 날이갈 수록 나빠지기 시작했다. 잦은 기침과 함께 숨쉬기도 힘들어 하는 혜주를 보는 내 마음은 당장이라도 아기를 낙태하게 만들고 싶었다. 심장에 혈액을 생성해 공급하는 가장 첫번째 기관인 폐인데... 그것도 제대로 공급이 안되는 듯... 숨쉬기가 힘들어 밥도 잘 못먹는... 그렇게 혜주의 몸은 날이 갈수록 말라간다... 귀엽게 빠지지 않고 있던 볼 살마저 다 빠져서... 내 가슴을 점점 찢어놓고 있었다...
의사가 25주 만 넘기자고... 아니 최소의 태아 생존확률을 높일 꿈이라도 꿀 수 있는 24주 만 넘기자며 혜주의 손을 잡고 용기를 넣어주던 말에... 혜주는 완전히 결심을 굳히게 된다...
임신이라는 큰 무리가 혜주의 몸을 더 병자로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며... 오히려 날 위로하는 혜주의 목소리에 난 매일 어렵고... 서럽게 눈물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이식을 해야 하는 몸이면서... 하루 중 거의 호흡기용 마스크를 입에 달고 사는 혜주인데도... 혜주는 어렵게 내게 우리 아기에 대해 자랑을 한다...
이제 겨우 20주째인데... 가장 조심해야하는 혜주의 몸인데 말이다... 병원 침대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의 환자복마저 혜주에게 커 보일 정도로 마른 모습으로... 내게 자신은 건제하다는 모습을 연신 보여주려는 듯 미소를 지어준다...
앞으로... 4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혜주의 목숨과도 깊게 연관되어진 시간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였고, 본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혜주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뱉어내게 되는 내 설득을 무시하고, 반박한다...
도저히 스물둘이라는 나이의 여자아이...아니 엄마이기에 더 내게 강하게 결심을 말한다...
"혜주야... 나 도저히 안 되겠어...아기는 또 가지면 된다고 선생님도 말했잖아... 그러니까 우리 포기하고... 응??"
"..."
혜주가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혜주야... 아기도 중요하지만... 난 혜주... 네가 더 중요하다는 거 몰라?"
"아저씨..."
마스크를 손으로 내리며...
혜주가 날 바라본다...
"우리 아기가 들어요...쉿!~"
"...혜주야..."
"후... 힘들다... 저 좀 잘게요..."
"..."
사실 지금 당장 이식할 폐를 구하지도 못한 우리지만...
처음 순번대기 22번이라는 번호표 아닌 순번을 받게 되어 한참을 잠 못 이룬 밤을 지세운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이미 포기 아닌 포기를 한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혜주는... 이미 자신보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가장 소중하다는 듯 모든 행동과 생각을 아기를 위해 맞추고 있었고, 그때의 다짐에 억지로라도 말렸어야 했다는 내 후회를 곱씹게 된다. 내가 연신 부탁하듯 혜주를 설득하려 하면... 혜주는 피곤하다는 말로 내 말을 흘려 넘겨버리곤 그대로 돌아눕는다...
그러나 잘 땐 꼭 말라서 뼈까지 도드라지게 보이는 혜주의 손이 날 찾듯 내밀길 반복한다...
난... 그 손을 꼭 잡아 줄 수밖에 없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런 것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염없이 마른 혜주의 손을 잡고 있는데 눈물이 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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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주째... 혜주의 몸은 이제 보기에도 애처롭게 그전보다 더 말라 있었다...
수이가 혜주의 손을 잡고는 바보라는 말만 연신 뱉어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 부탁에 수이가 아기에 대한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지만... 역시 혜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버린다...
눈물을 닦는 듯... 손을 올려 환자복의 소매를 잡고는 보여주지 않는 얼굴을 닦아낸다...
수이의 설득에도 꼼짝 않는 혜주였기에... 화를 내며 돌아가 버린 수이를 보며...혜주도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동생들은 병실로 찾아오질 않는다... 정확히 말해 혜주가 오지 말라고 둘째에게 신신당부를 해 놨다.
자신의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꼭 아버지와 닮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런 모습을 동생들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혜주였고... 일주일중 몸 상태가 좋아졌을 때만... 전화를 걸어 동생들을 만났던 혜주였다.
부모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혜주였기에... 그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동생들마저 거리를 둔다...
지금은...
보미와 삼구가 내 집에서 동생들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의사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제 폐가 이식이 안 될까요?"
"김민호씨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어느 병원에 가셔도 그런 부탁은 안 들어주실 겁니다...뻔히 보이는 결과에 누가 팔 걷고 나서겠습니까?..."
"선생님... 저 담배도 아예 끊었습니다...그리고 동네 엑스레이 결과도 ... 아주 깨끗하게 나왔고요...당장이라도 혜주에게 준다면 혜주도 충분히 살 수..."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국내에선 아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하다못해 부분이식도 실패로 다 끝을 냈는데...일측 이식이 성공할리 없잖습니까..."
"...저도 조사해봤습니다... 보통 기증되는 뇌사자 폐는 장기간 호흡기에 의존해서 그 기능이 20%도 못 미친다는 걸요... 그런 폐를 이식받는다고 해도 혜주가 얼마나 더 살 수 있겠습니까?...그렇다면 건강한 폐 이식이
훨씬 수술 후에도 경과가 좋을 거 아니에요?...그러니까... "
"...김민호씨 몸은요? 온전한 장기 중 가장 중요한 폐를 내준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행동인지 모르시겠습니까?"
"알죠...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드리는 거 아니겠어요..."
"하여튼 저희 병원 아니...국내 의료 방침에 위배되는 의료행위라서... 전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인내를 가지시고 기다리세요."
"..."
수도 없이 들었던...기다림과 인내라는 단어는 이제는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의사의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똑같은 말조차... 내겐 그저 되돌아가는 테이프처럼 느껴질 뿐... 이제는 더 이상의 분노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알아볼수록 혜주의 병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그리고 절실한 것인지 알게 되었기에... 오늘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게 된다...
------
이제는 익숙해진 혜주의 병실의 간의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낯선 인기척을 느끼며 눈을 뜨게 되었다. 간호사였다...
간호사를 확인하고 침대를 올려다보는데... 있어야 할 혜주가 보이질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는데... 어느 곳에도 혜주를 느낄 수 없었기에... 나는 일어나 발을 옮겨 복도로 나가게 되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문득 여자 화장실로 발을 옮기게 되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흐느낌에... 난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의 입구에 서있는 채... 나는 안에서 서럽게 들려오는 혜주의 울음에...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열려 있는 입구에 혜주의 링거 봉이 보였다... 그리고... 혜주의 선명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심장이 멈출 거 같았기에 차마... 더 이상 가까이 다가 갈수가 없었다.
흐느낌이 약해진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 내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여기까지 걸어와 울고 있다니...
힘이 든 듯 혜주의 앙상한 손이 문을 잡고는 천천히 몸을 간의문밖으로 내미는 혜주를 보게 되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혜주는... 황급히 남아 있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려 했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다가가 혜주를 꼭 끌어안아주게 되었고., 애써 참고 있던 혜주가 다시 눈물을 터트리게 되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통곡하듯 울고 있는 혜주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내 귀에 들려 왔다.
"아저씨... 죽...죽기 싫어요...저...저... 이제 겨우 행복한데...왜 죽어야 돼?...주,,죽기 싫어..."
"네...네가 왜 죽어... 죽긴 왜 죽냐고..."
"죽으면 어떻게 해요... 매일 생각해봐도... 자꾸 죽는다는 생각만 들어요...용기를 내려고 해도... 우리 애기 때문에 몇 번이고 용기를 내는데도... 자꾸 몸이 아파요...어떡해요..."
".,..."
"저...저 좀 살려주세요... 아저씨는 제 부탁은 다 들어주잖아요..."
"혜주야..."
"어떡해요... 저 어떻게 해야 되요..."
"...지금이라도 우리 아기 포기하자... 그리고 수술 받으면 날 수 있다고 했어..."
"..."
울던 혜주가 억지로 눈물을 삼킨다...
내 말에... 또 눈물을 참으며 혜주가 내게서 떨어진다...
"바보야!!! 둘 중에 하나밖에 못 산다면 당연히 너여야 되잖아!!."
"..."
"왜 살 수 있는데 못 죽어서 안달이야!... 아기가 중요하다고 해도, 왜 나한테는 네가 더 소중하다는 거 모르냔 말이야!!!"
내 고함에도... 혜주는 날 지나 병실로 돌아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런 혜주를 다시 붙잡아 세우게 된 나다.
"뭐?!!! 너도 무섭잖아!! 죽기 싫다며! 그런데 왜 죽으려고 하는 거냐고!."
"아...아기잖아요... 우리 아긴데 어떻게 버려요... "
"네가 없는데 아기가 무슨 소용이냐고...내 생각은 안 해봤어? 너 이렇게 이기적이었어?!! 나 혼자 남겨두고 너 떠나면... 내가 아기를 돌볼 수 있을 거 같아? 너 죽이고 태어난 아기를?!!"
"아...아저씨...아저씨 왜 그래요!... 아저씨가 그러면 전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해요..."
"혜주야... 정말로 소중한 게 뭔지 모르겠어?...아기는 또 가지면 되잖아..."
"지금 제 뱃속에 있는 아기가... 저한테 몇 번이고 말을 걸어요... 웃으면서 살아 있다고 말을 한다고요..."
"..."
"그래요... 저도 무섭고 아파요... 그런데...저 살자고 아기 버리라고요?!,,."
"... 혜주야... 네가 얼마나 힘들었니?...응? 생각해봐... 너희...너희 부모님 그렇게 무심히 가시고. 네가 얼마나 힘들었냐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있잖아요..."
"..."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열심히 살자고 생각하고... 몸조리 잘하면... 아기도 무사히 낳을 수 있다고..."
"..."
"가요... 저 힘들어요. 눕고 싶어요...또 팔배게 해줘요..."
혜주는 오늘도 말없이 침대에서 눈물을 참으며 흐느낀다...
그런 혜주를 보며... 난 있지도 않는 신을 원망하게 된다...
드디어...
보미에게 부탁한 웨딩드레스가 도착했다...
결혼식도 못 올린 우리 부부였기에...당연히 결혼사진도 없다... 혜주의 고집을 꺾지 못한 나였기에... 이런 작은 선물이라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혜주의 망가진 자신의 몸으로 완강한 거부에도... 무리하게... 진행을 한다.
난 보미에게 부탁해 드레스부터 준비했고, 지금은 다음날 시작할 결혼식을 위해 혜주의 몸을 씻겨주려 욕실에 빌려온 간이 욕조에 물을 받고 있다...
혜주는 마른 몸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걸어와 내게 몸을 기댄다...
"휴~... 진짜... 아저씨 미쳤어..."
"크크크... 미친 거 이제 알았냐? 너한테 미쳤잖아."
"...어휴~...아저씰 어떻게 놔두고 가냐..."
"가긴 어딜 가?"
"..."
"우선 씻자... 내가 씻겨줄게..."
"..."
혜주가 가만히 날 내려다 봤고... 난 일어나 천천히 혜주의 옷을 벗긴다...
그렇게 아름답던 혜주의 몸인데... 지금은 너무 말라 안타깝게만 보인다... 그리고 볼록 나온 배만이 임신 중임을 내게 표현하려는 듯 보여주고 있었다...
"...징그럽죠?"
"뭐가? 아름다워..."
"후훗~... 치~~ 거짓말도 잘 못하면서..."
"얼마나 예쁜데... 임신 중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안고 싶다...뭐."
"...저도 다시 한 번 아저씨한테 안기고 싶은데..."
"크크크 그건 나중을 기약하고...우리 아기가 들으면 놀래요!... 얼른 욕조에 들어가."
"..."
혜주가 내 손에 부축을 받으며 따뜻한 물속으로 들어간다...
가만히 출렁이는 물에 몸을 맡긴 혜주였고... 나는 조심스럽게 손으로 혜주의 팔을 들어 닦기 시작한다...너무도 가늘어진 팔의 굵기에 아픈 가슴과 눈물을 숨기며 애써 웃음 짓는다.
"씨~~ 넘 섹시하잖아..."
"풋...음~~ 느낌 좋다~~"
"크... 중년 아저씨처럼..."
"...아저씨..."
"응?"
"만약에요...만약에 제가 죽으면요..."
"또!!"
"만약이라고 했잖아요..."
"..."
"그러니까 만약에...제가 죽으면... 우리 아기 이름을 혜주라고 해주세요..."
"...바보냐?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잖아."
"딸이에요..."
"..."
"전 알아요... 그러니까... 혜주라고 이름 붙여주세요..."
"왜... 혜주야?"
"... 그럼... 제가 살아 있는 거잖아요..."
"...그럼... 난 계속 널 부르는 거야?"
"그러니까요...제가 죽어도... 제 분신이 아저씨 곁에서 행복해 하며 살아가는걸 보고 싶어요..."
"안 죽는다니까..."
"만약이라니까..."
"그런 말 하지 마..."
"만약에라도... 전 영원히 아저씨 곁에 입고 싶은데... 안 돼요?"
"안되긴... 그럼 우리 집에 혜주가 두 명이니까... 큰 혜주... 작은 혜주라고 이름 붙여야겠다..."
"그런가...헤헤헤~~..."
혜주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내 손에 몸을 맡긴다...
"기분 좋다..."
"어이~ 큰 혜주...여기서 자면 안 돼..."
"음~~ 졸리다..."
"..."
혜주를 욕조에서 안아 침대로 옮긴다...
잠이 들기 시작한 혜주는 요즘... 그렇게 자는 시간이 길어진다...아마도 쉬기 힘든 숨의 아픔을 잊기 위해 잠을 자는가보다...
그렇게 조용히 침대에 눕히곤 몸을 닦아주며 산소마스크를 씌워준다...
아침이 됐고, 난 이미 턱시도를 입고 있다...
혜주도... 보미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눈부신 천사처럼 하얀 드레스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혜주였고,,,,이런 혜주가 내게 있어줘서 행복한 나다...
그리고 우리는 산소통이 달린 휠체어로 혜주와 함께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삼구에게 건네준 주례사와 함께 삼구 앞에 나란히 서 있게 된다... 평일 오전이라 목사님을 모시고 올 수가 없었기에... 가장 친한 친구인 삼구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삼구의 어색한 몸짓에 혜주가 미소 짓는다...
"...이거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부탁할게..."
"자신 없다..."
"괜찮아 읽기만 해라..."
삼구는 붉어진 눈을 비비며 건네준 쪽지를 연신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댄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남편의 색에 물들라는 의미인 새하얀 웨딩드레스의 순결과 검은색 턱시도의 색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신부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아침에 농담으로 넘기듯 얘기한 보미의 말을 되새기며 서로를 바라보며 삼구의 주례사를 듣는다...
"오늘 여기에 서 있는 연인이 서로의 연을 이어...가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늘의 축복과 함께 서로를 사랑하라는 의미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지금부터 한 치의 거짓 없이...제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시길 바랍니다... 신랑... 김민호군은 신부 장...혜주양을 맞이해 모...목숨이...목숨...이... 씨... 이런 걸 왜 날 시키냐고!...나보고... 이런 걸 어떻게 읽으라고..."
울먹이며... 삼구가 종이를 던져 버린다...
남의 결혼식에 초를 치는 건지... 삼구를 바라보며 노려보지만... 이미 눈물을 흘리며 물러나는 삼구였다...혜주가 안타까움과 함께... 미안하다는 감정을 눈에 실어 바라봤기에... 내가 입을 연다...아니 입을 열게 된다... 이 결혼식은 꼭 마무리를 지어야 했기에 내가 주례까지 하게 된다...
"나...신랑 김민호는...이 목숨 다 할 때까지 장혜주양을 신부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아끼고 보살피며 아플...때도 사랑하고...혜주가 화를 낼 때에도 사랑하고.,.투정을 부릴 때에도 사랑하며... 오로지 사랑만을 할 것을 맹세하며 이 자리에서 장혜주양의 신랑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장혜주양은...삶이 힘들어도...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신랑을 바라보며 언제나 신랑 곁에서 신랑만을 위해 평생토록 사랑을 줄 것을 맹세합니까?"
"..."
"무...뭐해... 맹세 안 해?"
"신부... 장혜주양은 아저씨를... 정말로 사랑하고...사랑하고...사랑합니다...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더라도... 죽어서도...아저씨만을 사랑할 것을 지금 여기서 하늘에 맹세...합...니다..."
"끝까지...아저씨냐..."
"...아저씨...사랑해요..."
"나도...사랑해..."
혜주의 입술에 입맞춤을 한다...
서로의 눈물이 뒤섞여... 짜면서도 달콤한 키스에 담긴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그렇게 계속 키스를 이어갔다...
하얀 웨딩드레스에 눈물이 방울을 그리며 맺혀 떨어질 때도...그리고 검은색 턱시도에 자국을 내며 응어리를 질 때까지도...입맞춤은 이어졌다.
다음날... 삼구가 급하게 뽑아온 결혼식 사진을 혜주가 가슴에 안고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린다...
연신 사진을 들쳐보며... 꼭 소중한 보물인 냥... 가슴에 품었다가...
천천히 배로 옮겨 내려놓는다...
그리고... 마스크 속에 숨어 있는 입으로 천천히 어렵게 중얼거리듯 말을 한다...
"우리 아기 혜주야... 이게 네 아빠고... 엄마야... 보이니??...우리 둘 은 정말로 널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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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주째에서 이틀이 모자란 아침을 맞게 된다...
혜주가 호흡기를 달고 있는데도 숨쉬길 힘겨워 한다...
의사도 더 이상 혜주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아기의 생명은 장담 못하지만 우선 꺼내자는 낯설고 차가운 말로 우리를 절망 어리게 한다.
며칠만 더 버텨보겠다며 연신 고개를 젓는 혜주였지만... 이내 내 허락으로 의사가 준비를 하게 되었고,,, 누워서 서럽게 울고 잇는 혜주를 뒤로 한 채 매몰차게 느껴질 정도로 병실을 떠나게 된 나다...
혜주가 날 힘겹게 부르지만... 혜주를 본다면 내 결심이 굳어질지 무너질지 몰랐기에 차라리 피하게 된다...
내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너무도 많은데 이렇게 혜주를 보낼 순 없었다...
한참을 숨어 기다리자 혜주의 침대가 수술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겁을 먹은 게 분명한 듯... 혜주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 흐느낌에 당장이라도 혜주에게 달려가 손을 잡아 주고 싶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간호사까지 전부 사라진 문을 뒤쫓듯 숨어들어간 난 가장 먼저 보인 탈의실에서 찾아낸 조금 작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향하게 되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혜주는 내 적합여부검사까지도 완강히 거부했었기에...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나였다...
그렇게 혜주로 인해 목숨을 끊으려 했던 순간 역시 하늘이 다시 살린 이유를 찾게 된 나였다...
이미 각오하고 연습까지 했다. 알아보지도 못할 전문의료지식서적을 보고 또 봤고, 여러 병원을 다니며 더 공부를 했다.
나는 삭막해 보이는 수술실중 찾아낸 혜주가 들어간 수술실로 어렵지 않게 숨어들어 갈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쓴 낯선 의사의 등장에 막 수술을 준비하려던 방안의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날 거의 동시에 바라보게 되었다... 멍한 시선들을 받으며 나는 유유히...걸어 들어가 섬뜩해 보이는 작은 메스를 들고는 다시 구석자리로 들어가 선다... 다행히... 혜주는 마취를 막 끝냈나 보다... 눈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용히 낯선 곳에서 누워 있었다.
"누구세요? 오박사님...은 아니신데..."
"..."
"누구세요?!!"
"혜주 남편입니다..."
"..."
"..."
"보호자분이 여길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요!! 얼른 나가세요!"
"선생님..."
나는 말을 하며 천천히 수술복의 상의의 끈을 풀고는 옷을 바닥에 떨어뜨리게 되었다...
"무...뭐하시는 거예요?"
"지금이 아니라면... 혜주가 더 이상 버틸 체력이 없다는 걸...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폐전문의 말을 직접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마지막 부탁 좀 들어주세요..."
"무슨 말씀이세요!... 환자가 간염 될지 모르니 밖으로..."
"선생님!!!!!"
"..."
"거기 움직이지 마!... 한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나도 내가 어떻게 칼을 휘두를지 모르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오던 사람을 향해 나는 소리를 치며...누굴 위협하는지도 모른 채 잡고 있는 메스를 가슴에 가져다 댔다... 날카로운 칼날이 피부에 닿기만 했는데 선명한 상처를 내며 핏방울이 메스를 타고 흘러 내렸다.
이미 공부했고 수업이 연습한 폐 수술 절개법의 그 위치에 정확히...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메스를 대고는 선명히 흘러나오는 피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의사를 바라보며 말을 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런 무례를 범할 수밖에 없는 절 용서해주세요...혜주가 제 말을 죽어라 안 들어서요...그리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고요..."
"당신 미쳤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그리고 어쭙잖게 공부한 걸로 뭘 하려고?!! 난 산부인과 의사야!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말씀드렸잖아요...이렇게 하지 않는다면...빌어먹을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도 완강히 거부했고 결정적으로 혜주가 제 이식에는 이미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기에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폐 이식으로 저명한 김박사님도 지금 병원 안에 계신 걸 확인하고 왔습니다...언제 기회가 올지 모를 폐 이식 순번을...이러면 정말 간단하고 어느 누구한테도 혜주가 미안해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미...미쳤군...미쳤어..."
"그리고 선생님... 몇번의 죽을고비를 넘기고도 제가 살아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혈액형하고...이식적합여부까지... 검사받아보니 최적의 확률이란 걸 듣을 수 있었는걸요...아마...혜주를 위해서 죽지 말라고 했나봅니다..."
"..."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생체 폐 이식은요... 얼마나 어려운 수술인지...그리고 성공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그러니까... 제가 실험체가 되겠다는 겁니다..."
"...이봐요...김민호씨..."
"제가요... 우리 혜주를 정말로 사랑하나 봅니다... 이렇게 날카로운 칼이 전혀 무섭지가 않네요..."
"...지.진짜 왜이러십니까?... 당신 그러다 죽을 수 있다는거 몰라요?!!!"
"그러게요... 죽을 지도 모르는데..."
말을 끝내고 들고 있는 칼끝에 힘을 준다...
태어나 느껴보지 못한 섬뜩한 감촉을 피부로 느끼며 흘러나와 손에 묻어나는 피를 다시 고개 숙여 보게 되었다...
하나도 안 아프다면...거짓말이겠지만... 지금 난 전혀 아픔을 못 느낀다...피를 흘리며 천천히 혜주의 곁으로 걸어간다...의사도...그리고 간호사도 뒷걸음질을 치며 날 피한다...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메스를 수술실 바닥에 소리 나게 떨어트리곤 혜주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난 마지막 힘을 짜내 의사를 보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제발요...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
"미. 미쳤군... 미쳤어!!... 김간호사 얼른 김박사 당장 불러요!... 다...당신 잘 못 돼도... 우리 책임 없는 거야 알았어?!!"
그제야 나는 어렵게 바지춤에 숨겨 놨던 이제는 피 묻은 편지를 의사에게 건넨다...
"이...이거... 각서입니다... 그런 걱정 마세요...그런데 좀... 어지러운데..."
별 상처 아닌 듯 느꼈던 나였는데... 메스가 보통 날카로운 게 아니었나 보다...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 않게 되었다...
나중에야 쇼크로 인한 혼절이라는 걸 알게 된 나였지만 지금은 그저 혜주의 얼굴을 단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노력하며 멀어지는 의식에 간호사와 의사가 내게 달려와 부축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누워 있는 혜주의 얼굴에... 천사 같은 미소가 보이는 듯 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혜주는 내 사랑에 반응하듯 미소를 지어 준다...
그리고 나도 웃으며 눈을 감게 되었다...
뭐라고... 내 의식이 전하지 않는 말을 나도 모르게 웃으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크크크크...지금 보고 계신가요?? 어디 한번 해보시죠... 저한테 혜주를 뺏어 갈 수 있는지...데려가려면 같이 데려가란 말...입...니..."
흐려지는 시선으로 혜주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보며 기억을 잃게 되었다.
"사...사랑해 혜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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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통증에 눈이 떠진다...
링거가 보이고... 익숙해지기 싫은 천장의 네모난 불빛을 보게 되었고...내 입에도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환한 불빛이... 눈을 아프게 했기에 다시 눈을 감는다...
며칠을 잤는지... 겨우 의식을 차렸을 땐... 한 무리의 의사들이 웅성거리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입속이 타들어갈듯 갈증이 느껴지지만...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날 바라보는 의사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눈을 감게 된다...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내 정신은 온전하지 못한 채... 그냥 멍하기만 하다...
꼭 혜주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꾸고 있는 듯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며... 이제는 아주 조금 아문 상처로 짧은 거리의 이동을 허락받아 난 삼구가 이끄는 휠체어를 타고 태아집중치료실로 향하고 있다.
혜주의 몸에서 나와... 세상의 고통부터 알게 된 작은 혜주는 지금 힘겹게 삶을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
너무도 작은 아이인데...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큰 감옥과도 같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주사와 목에 튜브를 꽂은 채 힘겹게 살아가려 애를 쓰고 있다...
눈물이...난다...
살아줘서...
고마워서...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내 아이가 저렇게 아파하는데... 정작 난 안아주지도 못하고... 휠체어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가슴에 느껴지는 고통은 이미 잊은 채... 난 어렵게 손을 올려 그 인큐베이터위에 올려 얹는다... 고맙고...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작은 혜주에게 힘을 내라는 듯 주먹을 쥐어 눈도 못 뜨고 있는 아기에게 보여주려 한다... 아기를 살릴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었는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삼구에게 들어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저 작은 생명이 갇혀 있기엔 너무 무서운 곳인 곳이 인큐베이터라는 생각을 끝내 떨치지 못한 채... 끝난 면회 시간을 아쉬워하며 집중치료실을 나오게 되었다...
병실로 이동하는 내내...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혜주가 얼마나 저 아이를 보고 싶어 했는데...먼저 봐서 미안한 감정과... 대견한 감정이 교차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짓게 만들었다...
한 달 동안의 내 치료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갔다...
의사에게 미친 짓이라는 말로 꾸중과 함께 훈계를 몇 번이나 들으면서도... 난 내 행동에 단 한 번도 후회를 한적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혜주도 내 옆에 누워 있으니까...
비록 가슴에 나와 똑같은 큰 1자의 상처가 생겨버렸지만... 7시간이라는 엄청난 고통과 고비를 넘기고
수술 후에도 몇법이나 고비를 넘긴 중환자실에서 이제야 막 옮겨진 혜주가 살아 숨 쉬며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 행동에 후회라는 단어를 말끔히 지워버린다...
몇 만분의 일인지도 모를... 확률을 뒤로하고 혜주는 고맙게도 살아줬고,, 내 옆에서 나와 같은 공기를 내 몸에 있는 것과 똑같은 폐로 마시며 누워 있다...
어느덧 어두워진 병실에 눈을 감고 누워 있는데... 옆에서 혜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
눈물이... 내 앞을 가린다...
하루 종일 자고 있는 혜주를 실컷 바라봤는데... 혜주의 목소리에 오던 잠도 날아갔고... 꿈이 아닌지...눈물부터 흘리게 된다...
고개를 돌려 흐릿하게 변해가는 시선으로 혜주를 보는데... 혜주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렵게... 내게 원망을 한다.
"미...미쳤어... 정말 미쳤어..."
"..."
"진짜... 저보고 어떻게 살라고... "
"좀 괜찮아?"
'...진짜... 진...짜...어떡하라고..."
"음~... 혜주야... 나 옆에 누워도 돼?"
"..."
어렵게... 그리고 천천히 서럽게 울고 있는 혜주의 옆에 눕는다... 온 몸에 혜주의 작은 몸이 닿았고... 정말로 살아줬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렇게 내 옆에서 혜주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행복한지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는... 혜주의 눈물도 닦아준다...
"울지 마라... 이제 열심히 살 일만 남았는데... 왜 이렇게 울어?"
"...미쳤어..."
"울지 말라니까..."
"아저씨 바보에요?.,...의사선생님한테 다 들었어요... 이게 뭐에요..."
혜주가 어렵게 손을 올려... 단 한번도 놓지 않은 듯 얼마나 쥐고 있었는지... 약간은 찢어지기까지 한 종이를 내게 건넨다...
각서다...
내가 내 몸에 자해를 하고 의사에게 건넸던... 그 각서다...
"이거 보고... 저보고 어떻게 죽으라고...겨우 의식을 차렸을 때... 의사선생님이 제일 먼저 전해준 게 이거였어요...그리고... 아저씨 폐를 제게 주려고 수술실까지 숨어 들어와서 자기 몸에 칼자국 냈다고... 선생님이 고비때마다 살아줘야 된다고,., 꼭 살아줘서 아저씨 같은 사람한테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리고 기적이란게 존재한다는 걸 확인시켜야 한다고 말예요... "
"... 미안."
"아저씨가...뭐가 미안해요..."
"...그냥... 괜히 걱정했지?"
"...그리고 이게 각서에요? 달랑... '같이 있자... 혜주야 사랑한다.'... 이거 써놓고... 이게 무슨 각서에요..."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진짜..."
"우리 열심히 살자..."
"..."
"네가 있으니까... 나도 살 수 있는 거야... 바보..."
우리는 그렇게 몇시간동안 아픈 몸에도 서로 끌어안고는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한참을 울었는데도... 계속해서 눈물이 서로의 얼굴에 흘러 내렸고 겨우 진정이 된 혜주가 내 품에 안겨 속삭이 듯 얘기를 한다.
"...아저씬... 제게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인가 봐요..."
"...하늘이 선물을 어떻게 주냐?"
"...전 믿을래요... 저 살아 있는 거 보면 알잖아요...아저씨도 믿어요!"
"참나..."
"그런데... 안 무서웠어요?"
"안 무섭긴... 미쳤었다니까... 다시 하라고 해도... 죽었다 깨어나도 아마 다신 못할 거야...그런데 어떡하냐... 내가 너한테 배운게 이런건데...
사랑하는 방법이란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 줘야 한다는걸 알게 됐는데... 어떻게 하겠어..."
"...바보... 나보고 맨날 바보라고 하면서..."
"잘 만났네... 바보끼리..."
"...멍충이..."
가만히 숨을 몰아쉬며 혜주가 눈을 감는다...
혜주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나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혜주에게 우리가 인연이 아닌 필연인 것을 속삭이 듯 얘기하기 시작했다.
"만약 하늘이 있다면... 아마도 11살 차이나는 널 내게 보내준 게 가장 큰 선물일거야."
"...그놈의 11살은..."
"근데 이상하지 않아? 이봐라...내 가슴에 난 상처도... 네 가슴에 난 상처도 합쳐놓고 보면... 11 이라는 숫자잖아..."
"..."
"거기에... 수술한 달이 우리 만난 지 11개월째야... 계산해봐... 처음 네가 나한테 온 게...얼마 전인지...그리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적합여부 검사 받는데... 같은 A형에 폐 비대 비율도 딱 내께 11% 크다는 거야... 보통 10~20%정도 큰 폐를 이식해야 가장 성공률이 높다던데..."
"정말요?..."
"응... 의사가... 아무리 그래도 나보고 미친 거 아니냐고 말을 하는데... 솔직히 기쁘더라... 다른 사람한테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부담 없이 혜주와 하나씩 나눠가질 수 있잖아..."
"폐가... 무슨 쌍쌍바에요? 나눠 갔게?
"크크크크크... 쌍쌍바??? 그 두개 달린 아이스크림???..."
"큭~..."
"아!! 그리고... 확률이 1100만분의 1이라네... 우리 둘 다 살 확률이..."
"거짓말..."
"크~~ 이건 티 많이 났니? 하하하...하여튼 그거 빼고도... 우린 여러 가지로 운명이란거지..."
"치~~...그런데... 저 앞으로 얼마나 살지도 모르잖아요,,,"
"내 폐잖아... 네 몸속에 있지만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아니!! 의사보다도 더 잘 알아...의사한테 들었지? 우리 부적합률이 1.1%도 안 된데...오!! 그러고 보니 여기도 11이라는 숫자가..."
"..."
"5년 후가 될지...10년 후가 될지... 같은 한 몸에 있던 거니까...한명의 폐가 멈추면... 다른 쪽도 멈추는 거야...그러니까... 서로 위하면서 계속 같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아저씨..."
"그러고 보니... 11살 차이라는 게... 1더하기 1이라서 11살 차이인가 보다..."
"풋~ 잘도 갔다 붙여요..."
"나만 그렇게 느끼면 된 거지..."
"...고마워요..."
"고맙긴... 내가 고맙지...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중환자실에서... 몇 번이고 위험했다는 거 다 알아... 그리고 열심히 이겨냈다는 것도... 정말 고마워 혜주야..."
"...숨이 넘어갈 때마다... 아저씨가 불렀어요...분명히 옆에 없을 텐데... 아저씨 목소리가 절 깨웠어요..."
"...나도... 혜주 꿈만 꿨는데..."
"..."
"아!!!!!!!!!"
갑작스럽게 놀란 나는... 소리 지르고 나서 가슴을 한번 움켜잡는다...고통 때문이기도 하고... 약간은 창피함에 말을 잇지 못한다.
"왜...왜요? 많이 아파요?"
"그게 아니고... 폐가 아프면... 우리 그거...그거 할 때에 힘들려나?"
"?...예???"
"그렇잖아... 이제 막... 느끼기 시작한 넌데... 그리고... 나 병원 퇴원하자마자... 안을 생각에...헉!!... 이거 커졌다..."
"아...아저씨~~!!..."
"으응~~~~어떡해... 지금..."
"...변태..."
"크크크크크크크크크... 내일은 울 아기 같이 보러가자... 너무 예뻐... 이름은 진짜 혜주로 하면 되겠더라..."
"딸이죠?"
"못 들었어?"
"...예. 저 제대로 정신 차린 지 별로 안 됐어요...제 성격 안다고... 일부러 아기 얘기도 안해주고...얼마나 궁금했는데..."
"너 쏙~~ 빼닮은 딸이더라... 정말로 대화라도 해봤니? 어떻게 알아 맞춘 거야?"
"훗~... 예뻐요?"
"응!... 비록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선생님이 심장도 튼튼하고 폐도 튼튼하데... 약간 미성숙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 있지만... 예정보다 빨리 퇴원할 수 있겠다고 아빠 엄마 닮아서... 정말로 삶에 욕심이 많은 거 같다고 하더라..."
"그렇구나..."
혜주는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제는 슬픔이라는 단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눈물이 내게 보여진다...
혜주는 설레는 듯... 내 가슴에 어렵게 몸을 비비며 쏙 들어와선... 눈을 감고는 속삭인다...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병실인데... 혜주의 존재만으로도 따뜻하고 평온한 방이 되어버린다.
아픈 가슴도 잊은 채 혜주를 안고 눈을 감는다. 혜주가 내 품에 안겨 흐느끼며... 조용히 속삭인다...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 사랑해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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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저씨...간지러워요..."
"가. 가만히 좀 있으라... 오늘은 좀..."
"혜주 깨요...얼른 잠이나 자요..."
"씨!! 안 돼... 작은 혜주는 지금 세상모르고 잠만 잘 자는구먼..."
"윽...자...잠깐..."
병원에서 퇴원할 때까지...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기적의 부부라는 호칭을 수여받고 신문에도... 그리고 의학 관련 잡지에도 수도 없이 게재 되었다.
물론 난... 세기의 로맨티스트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한동안의 관심을 집중 받았지만... 곧 혜주의 미모가 알려지면서 묻히게 된다... 내 소중한 혜주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온 잡지사의 기자들과 신문기자들은 혜주의 얼굴만 대서특필하며 난 그렇게 사랑에 목숨을 건 남자로 이름만 알려지게 되었고,, 혜주에게 투정까지 부리게 되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혜주는 나만을 사랑해 줬기에 그다지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육체적인 접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