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가족
막상 출근을 하긴 했는데...혜주 생각으로 도저히 손에 일이 잡히질 않는다.
충남이라는 멀고도 가까운 도시에 혜주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회사를 접고 쫓아갔어야 하는 내 자신을 지금에 와서 후회하고 반성하며 건성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몇 번이고 혜주에게 전화를 걸려고 단축번호를 누르려던 나는 오랜만에 동생들과 만나는 혜주를 방해라도 할 거 같다는 생각에 또 망설이고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 놓는다. 그렇게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연신 반복적인 행동을 하던 나는 핸드폰에 찍혀 있는 시계가 11시가 조금 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겨우 3시간이 조금 넘게 지났는데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은...
점심도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먹은 건지 잘 생각도 나지 않는...계속 잡히지 않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기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막 4시가 지났을 무렵 나는 부장에게 거래처에 다녀온다고...물론 그 거래처의 대출건은 당연히 내가 운영하고 있는...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삼구이름으로 되어있는 내 매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간단히 몇 장의 은행입출금 서류를 빼내어 부장에게 들고 가 보여준다. 비약적인 성장을 한 시점을 가장 윗장에 올려놓고 말이다.
물론 오케이를 받아낼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서둘러 은행을 빠져나오게 된다.
그리고... 은행 바로 옆에 있는 렌트카점으로 가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도 모른 채 운전대를 놓은 지 몇 년 만에 차를 한대 급하게 빌려 무작정 충남으로 향하게 되었다.
운전이란 게...보기에는 쉽고 익숙해지면 편한데...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으니 십 사리 감을 잡지 못해 애를 먹는다.
하지만 내 안위보다 더 걱정이 되는 혜주라는 존재로 서슴없이 액셀을 밟고 있는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고, 무식하면 이긴다고 했던 말대로 깜박이를 켜지도 않고 끼어들기에 과속까지... 여하튼 서울을 빠져나갈 수 있는 고속도로에 올라타고 나서야 난 핸드폰을 들어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누른다.
몇 번의 신호음이 들렸고, 하루도 아닌 헤어진 지 몇 시간이 겨우 지난 혜주의 반가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혜주야? 지금 가는데...충남 터미널로 가면 되지?"
[예?? 어딜 오세요?]
"충...남..."
혜주의 깜짝 놀란 목소리에 반가움도 잠시 오히려 당황하게 되는 나다.
물론 예고 없는 방문이지만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전혀 예상 못한 나였기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한손은 운전대를 잡고 한손은 핸드폰을 들고는 멍하니 액셀을 밟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얼른 다시 회사로 돌아가세요...]
"싫어..."
[예??...]
"싫다고...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이제 돌아가 봐야 은행 문도 닫을 텐데... 그냥 데리러 갈 테니까! 충남 터미널로 가면 돼?"
[...]
"왜?,, 그렇게 내가 동생들 만나게 하는 게 싫어?"
[...]
"싫구나..."
[아저씨... 화 안내실거죠? 정말로 화 안내신다면...]
"화? 동생들 만나는데 무슨 화를...너 혹시...지금 다른 남자 만나니?"
가슴이 자동차 속도만큼 빠르게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나...지금 동생들과 작은아빠라는 그놈을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달리 다른 남자라도...
운전을 하며 이내 머릴 젓는다... 혜주가 날 속이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남자를 만날 리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핸드폰 너머의 혜주 목소리에 집중을 한다.
[화...나셨어요?]
"알았어...충남터미널로 가면 되는 거지?"
[수...원 역이요...]
"응? 수원역??? 갑자기 무슨 수원역이야?"
[지금 30분정도면 수원역에 도착할거 같아요...도착해서 전화주세요.]
"갑자기 무슨 수원역이냐고?!!"
[화...화 안내신다면서...요...]
"...후~~~ 알았어...그럼 우선 만나서 얘기하자..."
다행히 길을 잘 몰라 무작정 들어선 경부고속도로의 초입에서 나는 그대로 가면 수원이 나온다는걸 알았기에 액셀을 밟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밀려드는 차들로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마음은 이미 수원에 도착하고도 남았는데... 경부고속도로의 톨게이트가 아직도 몇Km나 남았는지 표지판도 보이질 않는 지점에서 수많은 차들에 차가 멈춰 움직이질 않는다...
오늘은 금요일에 초여름이라는 걸 알게 되서야...차가 아닌 기차를 택할 거라는 아쉬운 생각을 해보지만...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나는 충남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초조하게 앞차의 뒤 꼭무니만 쳐다보게 된다...
창문을 열고 담배에 연신 불을 붙이게 되는 난 한참을 여러 가지 잡생각으로 이제는 머리까지 아파온다.
갑자기 수원이라는 혜주의 말에 수원에 도대체 혜주와 관련된 누가 있기에 이런 비밀스러운 만남을 하는 것인지 유추해보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과 추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답을 얻을 수 없는 나였다.
끝내 엄청나게 밀리는 차들 사이에서 다시 핸드폰을 들어 수이에게 전화를 건다.
수이라면...나보다 혜주와 낮 동안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혜주의 비밀에 대해서 혹시나 알고 있지는 않은까해서 말이다...
"나야. 수이야."
[...지금 강의시간이에요. 30분후에...뚜~~뚜~~~]
끊어진 전화기를 거칠게 옆 좌석에 던지는 나다...
꼬이려면 전부 틀어진다고 하더니... 계속해서 움직일 줄을 모르는 차들 사이를 열려있는 창문으로 머리까지 내밀어 정체가 시작되어지는 보이지 않는 시작점을 향해 시선을 옮겨본다.
아무리 봐도...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차들은... 내 답답한 가슴 조임을 알아주지도 않는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시계를 본다...이미 5시가 훌쩍 넘어 23분을 가리키고 있다...
혜주는 벌써 도착했을 텐데...
핸드폰이 울린다... 수이다. 30분후에나 통화가 가능할거라던 혜주가 10분도 지나지 않아 고맙게 전화를 걸어준다...
"여보세요."
[교수님이 생각보다 일찍 끝내주셨네요...왜요?]
"수이야... 혹시 수원에 혜주 아는 사람 있니?"
[수원이요?...수원에는 아무도 없는 걸로 아는데...]
"그래?... 그런데 왜 갑자기 왜 수원을 간 거지?..."
[혜주가요?? 글쎄요... 전화해서 함 물어볼게요...]
"아. 아니야... 지금 가고 있으니까..."
[어딜요? 수원을요??]
"응..."
[허~~ 아저씨 의처증이에요? 지금 혜주 수원 간다고 거길 쫓아가는 거예요? 일도 때려치우고??]
"아...아니야... 충남에 동생들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갑자기 수원이라고 하니까 걱정이 되서 그렇지..."
[동생들...아!~~~...그렇지 않아도 동생들 만나고 누구더라...]
"응??!! 누구?"
[몰라요...자세히 말은 안하던데 중요한 사람 만난다고만...]
"안 물어봤어?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는데도?..."
[혜주 잘 알잖아요...그 계집애가 한번 마음먹으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거... 갔다 와서 자세히 말해준다고 했으니까...그런가보다 했죠...근데 그게 수원인줄은 정말 몰랐죠...]
중요한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지...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혜주와 관련 되어 있는 중요한 사람은 동생과...동미장...그리고 수이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는 나였다...
통화를 끊고 한참을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며 차를 운전하던 나는 겨우 톨게이트를 볼 수 있었고, 톨게이트를 지난 차는 그나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시계는 6시를 지났고,, 조급한 마음과 달리 이제 막 속도를 내고 있는 자동차였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겨우...
차가 수원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핸드폰을 들어 단축번호 1을 길게 누른다.
[도착하셨어요?...여...여보...]
"여보?,...앞에 누구 있니?"
[예...]
"어디야..."
[여기 수원역 삼거리에 다방이요...]
"다방???"
[예...]
"알았어... 거의 도착했으니까... 금방 갈게..."
[예...]
혜주가 날 부르는 호칭은 '여보'라는 단어와 함께 목소리도 약간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낀 나는 상황의 심각함과 그 중요한 사람에 대한 의구심과 조바심으로 차를 급하게 삼거리를 향하던 나는 마땅히 주차장을 못 찾고 인도에 차를 주차하게 만든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금세 혜주가 말한 다방이라는 곳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계단을 올라 이층의 다방으로 들어가 테이블들을 살피던 중 창가의 저녁노을이 마지막 끝자락을 잡고 늘어지며 혜주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긴장이 확연히 들어차있는 얼굴로 곱게 앉아 있던 혜주가 두리번거리던 날 발견하곤 손을 들어 반긴다.
난 혜주를 발견하곤 미소를 지으며 바로 혜주 앞에 앉아 있는 어딘지 낯설지 않은 뒷모습의 남자에 시선을 둔다...
혜주는 뭐가 창피한지 홍조 띤 얼굴을 하고는 나에게 반가운 인사를 했고, 그 행동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남자는...
내 형이다.
앞서도 말을 했지만... 나이차가 많이 나고...내 전의 무기력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생활에 비해 너무도 잘 풀린 케이스의 운만 믿고 산다며 날 못마땅해 하는 형님이었고 그래서 나도 별로 연락을 하지 않는 형님이었기에 지금 혜주의 앞에 앉아 있는 내 형님이 너무도 낯설게 보였다.
지금 형님을 만나기 전까진... 수원에 형님이 산다는 사실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연락을 하도 안한 원인도 있었지만... 전혀 예상 못한 형님의 출연에 정작 정말로 당황하게 되는 나였다.
"왔냐..."
"...예."
혜주의 옆에 앉아 형님을 마주 바라보게 된 난 형님의 인사에 어색하게 답인사를 한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고 이 어색함이 신기하고 웃긴지... 혜주가 긴장서린 얼굴에서 웃음을 짓는다...
"아저...아니...여보는 왜... 어색해해요? 형님이신데..."
"..."
"..."
"크크크크...이상해요 두 분..."
"그런 넌... 갑자기 왜 형님을 만난 건데?"
"왜요? 제가 아주버님 만나면 안 돼요?"
"아...아주버..."
"아니에요?"
"..."
"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애교 많은 어린 제수씨를 맞이할 줄...전혀 예상도 못해서 조금은 당황스럽네..."
"...애교가...많긴 하죠..."
"아주버님... 저 그렇게 안 어려요..."
"몇 살인데요?"
'스물둘이요..."
"스물둘? 허~~... 민호야... 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예?...무슨 짓이라뇨..."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어린 신부를 여태껏 숨기고 연락도 없을 수 있냔 말이다."
"그래도...오랜만에 만나서 동생한테 무슨 짓이라니..."
"하하하...오랜만인건 알고? 어쩜 그러냐...연락도 없고..."
"...그런데 넌 어떻게 내 형님을 알고 만난거야?"
"...제 방...아니 아저씨 방에 있던 서랍을 정리하다가 서류들 봤어요..."
"서류?..."
문득 생각난...내 어머니에 대한 형님의 편지가 떠올랐다...그 편지와 함께 동봉되어 있는 서류를 떠올린 나는...
너무 안일하게 보관했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신경도 안 썼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날 버리고...우리 가족을 버리고 간 어머니를 굳이 다시 찾아 연락이라도 해보라는 형님의 말에 콧방귀도 끼지 않는 나였고,, 이미 연락을 하고 있는 듯 보인 형님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나였다...
"너 누가 마음대로 남의 물건 뒤지라고 했어!!!!!!!!"
형님이 옆에 계신대도...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 큰 고함소리에 다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 테이블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놀란 형님과 그보다 더 크게 놀란 혜주가 눈이 크게 동그랗게 변해선 어버버 입을 벌린 채 날 쳐다본다.
그리고... 혜주의 눈에 맺히는 눈물은 정말로 내 고함에 혜주가 놀랐다는 걸 알 수 있다.
"민호야!..."
"..."
"제수씨가 얼마나 마음이 곱냐... 어린데도 생각이 이렇게 깊은 줄은 몇 번 통화하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훨씬 착하고 심성이 고운데...다 너 생각해서 그런 건데 왜 소리를 지르냐."
"형님은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민호야..."
"혜주...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냐고..."
"민호야... 이제 그만 잊고 용서할 때도 안됐냐...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는데..."
"누가 신경이나 쓴답니까?!... 그럴 고생할 정도면 애초 우릴 버리지 말았어야죠!... 남자가 아무리 좋다고..."
"민호야!!!"
이번에는 형님이 큰소리를 낸다...
내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천상 선비 같은 형님이 소리를 지르자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 나다.
"일어나!... 집에 가자."
"아저씨..."
"일어나라고!... 그리고 형님도 이런 일로 우리 혜주 만나지 마세요...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
"..."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먼저 다방에서 나왔다...건물을 빠져나온 난...양복안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혜주 행동은 너무 나댔다는 생각을 하며 혜주가 내려오길 기다린다... 오늘따라 담배가 왜 이리 쓴지... 한 개비를 거의 다 피는 대도 혜주가 내려오질 않는다.
내 고함소리에 겁을 먹었을까?...기다려도 혜주가 내려오질 않는다.
다시 올라가지도 못한 채... 담배를 한 개비 더 입에 물었을 때... 힘없이 계단을 내려오는 혜주의 모습에 미안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런 개인의 비밀까지도 마음대로 행동한 혜주라는 생각에 애써 굳은 표정을 다잡게 된다.
입구에서 내 눈치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듯 서 있는 혜주는 내게 선뜻 다가오질 못한다...
"가자고..."
"..."
"왜! 또 무슨 일이 남았어?!"
"..."
"...알았으니까... 가자..."
"...화내지 말아요..."
"..."
머뭇거리며 혜주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린다...
"...알았으니까... 가자..."
"..."
"왜?!"
"아...아주버님이 아직..."
"뭘 기다려... 됐어."
"어떻게 그래요..."
"..."
형님의 다리가 보인다.
계단을 내려온 형님은 혜주의 어깨를 토닥인다... 왜 혜주를 위로하듯 어깨를 토닥이는지 이해하지 못한 나는 형님인데도... 경계를 하며 쳐다보게 되었다.
"참나... 잘하면 한대 치겠다..."
"..."
"진정 좀 하고... 넌 왜 평소에는 순딩이면서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그만하세요..."
"... 알았다... 그럼 이왕 온 김에 자고가라...울 제수씨도 더 보고 싶고 얘기도 나누고 싶구만..."
"아니요... 몰고 온 차가 렌터카라서 올라가야 합니다."
"...허어...민호야, 어머니 얘기 안 할 테니까... 그만 속 좀 풀고... 니 형수가 네 걱정 얼마나 하는지 알고 있잖아...이렇게 예쁜 색시를 맞았으면 인사라도 하고 가는 게 도리지...네 형수가 널 얼마나 챙겼냐..."
"..."
"제수씨 내일 학교 안가죠? 토요일인데."
".예..."
"너도 출근 안하지?!...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
"아닙니다... 오늘 저녁에 저희 매장에 알바하고 약속이 있어서요..."
"야! 민호야... 너 또 올라가면 연락도 안할게 뻔한데... 이렇게 내가 널 보낼 수 있겠냐?! 그리고 제수씨 감기 걸린 거 안보여? 지금 열도 나는데!..."
"..."
그제야 난 혜주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된다.
형님의 말대로 혜주의 얼굴은 이제는 코까지 조금 빨개진 채 얼굴 전체가 약간의 홍조를 띠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 띤 홍조가 이 감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된 나다.
혜주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대는데 생각보다 뜨거운 열기에 흠칫 놀라게 되었고...손을 땠을 때... 손바닥엔 식은땀까지 묻어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차에 형님과 혜주를 태우고, 형님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날 반갑게 맞이해주는... 형수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본 (4년인지...5년 전인지 잘 생각은 나질 않지만...) 그때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살도 좀 붙었고, 거기에 얼굴에 주름도...
형님의 나이는 39이다... 나보다도 6살이나 많은 터울이 많은 형제인데...거기에 형수는 형님보다도 3살이나 많은 연상이니 벌써 42살이다... 20대에 사고를 쳐서 결혼한 형님은 차라리 잘됐다며 일찌감치 가족을 이루고 지금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무리 못난 부모도 부모라는 형님의 생각에 도저히 동의를 못하는 나와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정말로 반갑게 내게 인사를 나눈 형수는 오랜만에 만난 나보다도 혜주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더 챙긴다.
잠시 어색한 인사시간을 갖은 우리는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가는 형수를 도와준다며 쫓아간 혜주였지만 이내 홍조띤 얼굴의 혜주를 주방에서 쫓아낸 형수였다.
생각보다도 많은 열이 난다는 걱정에 나는 형수에게 온도계를 부탁해 혜주의 입에 물렸다...
열이 38도를 훌쩍 넘어...38.5도를 넘기고 있었다...
결국 형님의 강제적인 권유로 혜주는 한 달 전에 군대에 들어간 우리 장남의 방에 있는 싱글침대에 눕게 되었다...
형님이 자리를 비워 주었고,, 나는 감기약과 함께 해열제를 먹고 있는 혜주의 옆에 앉아 준비해준 물수건을 손으로 적당히 짜며 앉는다...
"죄...죄송해요..."
"..."
"아저씨..."
"뭘 죄송한데?"
"..."
"죄송하긴 하냐? 일은 일대로 다 벌려놓고는,...근데 왜 감기에 걸리고 난리야...생전 아프지도 않더만..."
"큭... 전 사람 아닌가... 요즘 아저씨가 넘 잘해줘서 몸이 헤이해졌나봐요..."
"...아프지마..."
"약 먹었으니까... 괜찮아 질 거예요."
"열이 안 내린다... 병원에 갈까?"
"풋...큭큭...아저씨... 약 먹은 지 5분도 안 지났거든요..."
"..."
"화... 많이 났어요?"
"...응!..."
"..."
"왜 남의 물건을 뒤지냐?!"
"...남...이였어요?"
"...아무리 부부라도 프라이버시란 게 있는 거야..."
"전... 그런 거 몰라요..."
"..."
"부부면... 서로에 대해서 다 알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알아가면서 알콩달콩하게 사는 거지... 너무 빨리 알아버리면 권태기도 일찍 온다더라."
"...아저씨는 우리도 권태기 올 거 같아요?"
"그. 그건 아니지만..."
"음~~ 아저씨도 난중에 바람피우겠구나..."
"참나... 지금 그게 문제냐?!...왜 삼천포로 빠져?!"
"...아직도 화낸...다..."
"..."
"도저히 용서가 안 돼요?"
"...그럼...난 솔직히 형님을 이해 못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용서를 할 수 있는 건지..."
"아빠잖아요...아주버님은 이제 부모잖아요..."
"..."
부모라는 혜주의 말에 난 잠시 말을 잇질 못한다... 문득 나와 혜주가 앞으로 꾸려갈 가정을 생각해봤고, 거기에 우리의 아이가 생긴다면...만약 아이를 키우다보면 사랑에 굶주려 가정을 버린 어머니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 용서라는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비록 아저씨를 버린 엄마라고 하지만...그래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엄마신데..."
"혜주야...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용납이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왜 모르니?"
"우리... 사랑하는 사이 맞아요?"
"...뭐?"
"아저씬... 단 한 번도 저한테 얘기 안 해줬잖아요..."
"내...내가?"
"..."
"꼭 말로 해야 아냐? 내가 얼마나 널...하옇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또!... 용기가 없어...그리고... 왜 담배 폈어요?!!"
"으.응??..."
얼굴에 홍조를 띤 채 혜주가 골을 낸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 얼굴로 혜주가 내게 애교와 투정을 섞어 골을 내고 있다...
"안되겠다... 병원에 가자!... 열이 내리긴 커녕 더 오르는 거 같아..."
"아니에요... 아까보단 덜 아파요..."
"혜주야..."
"음~~ 그것보다 아저씨..."
"응?"
"저 좀 안아주세요..."
"뭐??"
"옆에 누워서 팔베개 해달라고요..."
"갑자기 무슨..."
"그러니까요... 한번만 해줘요... 아프니까 괜히 서러워서 그래요..."
"참나..."
혜주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난 마지못해(?) 작은 싱글 침대에 눕는다...그리고 혜주의 머리 밑에 손을 밀어 넣어 팔베개를 해준다.
내 팔에 느껴지는 혜주의 목덜미에는 많은 양의 땀이 젖어 있었다... 몸에서 열을 내고 있는 건 병균들과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로 알고 있다... 지금 몸이 많이 힘들긴 한가 보다.
"좋~~다..."
"...정말 괜찮아? 너 지금 땀도 많이 나..."
"큭... 저요... 열 39도 넘게 나도 고층빌딩에서 도배 보조했다니까요... 이정도 열은 암것도 아녜요..."
"..."
"음~~~ 아저씬 담배냄새가 은은할 때가 아저씨 다와서 더 좋기도 한데...그래도 몸에 안 좋으니까 끊어야 되요..."
"...알았어..."
"그리고... 한번만 만나요... 같이 만나요..."
"응?"
"아저씨 엄마요..."
"너!..."
몸을 세우려하는데... 혜주가 머리에 힘을 주며 내 품에 안기듯 기댄다...
애를 쓰며 날 붙잡으려는 듯 혜주가 낑낑대며 내게 안긴 것이다... 상체를 일으키려던 나는 혜주가 걱정이 되어 체념하고 다시 눕게 된다...
"휴~...힘도 없구먼...어딜 도망갈라고..."
"참나..."
"저... 이제 아저씨 못 놔드려요!!"
"...누가 놓으래?"
"진짜에요...낮에 동생들한테도 다 얘기했어요. 동생들하고 얼마나 울었는지...너무 울었더니 그동안 충전해둔 힘이 다 풀려서 감기 걸렸나봐요..."
"혜주야..."
"제가 동생들한테 사진 보여줬거든요!! 그랬더니... 아저씨 잘 생겼다고 울 막내가...큭큭."
"..."
"둘째는... 저보고 갑자기 무슨 결혼이냐고 막 뭐라고 했지만...제가 행복한 미소 보여줬더니... 뭐라고 하다가 결국 자기한테 꼭 인사시키라고... 만날 어린 줄로만 알았더니... 어느새 다 컸더라고요..."
"넌 어린애 아니고?"
"큭큭... 그런가?...그런 것보다...둘이서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이 너무 아위였던데... 끝까지 눈물 안보이려고 아저씨 생각만 한 거 알아요?"
"..."
"막내는 눈치 못 챘는데... 둘째 기훈이가...내 눈 보면서 인상 쓰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고것이 이제 좀 컸다나...누나 걱정까지 하고...아마... 작은아빠가 나쁜 얘길 했나봐요... 둘째가 자기들 버린거 아니냐고... 계속 물어봤어요...절대 안 믿었다고... 작은아빠하고 무슨일이 생긴거 같아서 많이 걱정했다고...저.정말...너무 불쌍해요...동생들이 불쌍해서 정말로 아저씨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아저씨가 있는데...울 동생들은 아무도 없잖아요... "
혜주의 목소리는 힘에 겨운지 조금씩 숨을 몰아쉬며 조곤조곤 내 귀에 속삭이듯 중얼거리고 있다.
아마도 잠이 들려는지...내 팔에 전해지는 혜주의 머리무게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약기운과 아주 조금씩 내려가는 열에 몸이 이제야 지쳤다는 걸 알았나 보다...눈가에 고인 눈물을 내 옷에 훔치며 애써 감정을 추스리는 혜주는 다시 조용히 중얼거린다...
혜주의 중얼거림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 이어진다.
"제가... 기훈 이한테 아저씨 멋진 모습 얘기 했더니... 꼭 보고 싶다고..."
"보면 돼지... 뭐가 문제야?!"
"글쵸... 보면 되죠... 빨리 보여주고 안심시켜야지... 그 작은 것들이 지 누나라고 제 걱정을 얼마나 하던지...풋~...아저씨 꼭 제가 보살핌을 받는 기분 알아요?"
"..."
"많이 컸어요...정말로...겨우 몇 개월 만에 본건데...에휴... 작은아빠한테 저 때문에 많이 괴롭힘을 당하는 게 분명한데... 내색도 안하고..."
"이제 데려올 텐데... 무슨 걱정이야?"
"글쵸?...데려올 수 있겠죠?..."
"그럼~!..."
"근데... 헤어지면서... 막내가 막 울었어요..."
"..."
"막내가...울면서 저보고 같이 작은아빠네 가자고...저보고 같이 살자고 그러는데... 눈물 참느라...얼마나 주먹을 세게 쥐었는지..."
"그럼 더 있다 오지... 왜 내 형님은 만나니?"
"아저씨는... 몰라요...동생들 늦게 들어가면 작은아빠가 의심한단 말이에요...그럼 동생들 또 한동안 고생할거고... 저라고 더 있고 싶지 않겠어요..."
"..."
"헤어질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데... 제가 말했었죠... 전 행복해지면 안 된다고...제 동생들 고생하는데... 제가 어떻게 행복해지냐고..."
혜주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진다...
이제는 약에 완전히 취했는지 아까보다도 더 속삭이듯 혼잣말로...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중얼거리듯 얘기를 한다...
그런 혜주의 중얼거림은 내 눈가에 눈물을 짓게 만든다... 내 팔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데도...너무도 가볍고... 애처로운 혜주인데...자신의 아픔은 아픔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고통마저도 동생들 생각으로 잊고 살고 있는 혜주였기에...조금씩 내게 체중을 더 실으며 내 몸에 밀착을 하는 혜주였기에 나는 조용히 혜주의 말을 듣고만 있다.
"그래서... 아저씨랑 사랑해도...무서워요...두렵고요...내 행복은... 죄잖아요...동생들은 고생하는데... 혼자 행복해지면..."
"그런 생각하지 말라니까...혜주가 지금까지 고생한 거 생각하면... 이건 당연한 거지...왜 그렇게 생각해..."
"아저씨..."
"응??? 왜?"
"저요... 지금은 그렇지만 난중에 꼭 정식으로 결혼식 할 거예요...아저씨랑... 제 동생들이랑...그리고 아저씨네 가족하고요... 그때...아저씨 엄마도 같이 있으면...제일 행복할거 같아요... 제 엄마하고 아빠는 이제 없잖아요... 아저씨 엄마라도... 계셔준다면 친엄마처럼 같이 웃어주고 울어줄 사람이 생긴다면...그래서 아저씨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었어요... 울 엄마처럼...엄마라고 부르면서 결혼식도 하고...신혼여행도 가고... 아이도 낳아서 엄마하고 웃고 있는 아저씨랑 나랑...동생들이랑...아주버님...이...랑..."
말을 하던 혜주가 천천히 세근거리며 잠이 든다...
나는 목이 매여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 채... 코를 조심스럽게 훌쩍였다...
단 한번도... 혜주가 내 행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자신의 어려운 생활에서도 내 생각을 이렇게까지 해주는 줄은...정말로 몰랐기에...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또 삼키게 된다.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얘길 한 혜주였지만... 그건 꼭 나와 함께...그리고 내 가족들과 함께 나눠야만 진정한 행복이라는 듯 잠에 빠져들기 바로 전까지 중얼거리며 얘길 하는 혜주였기에 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내 팔에 기대어 잠에 빠진 혜주는 너무도 아름다운 미소를 띤 채... 눈가에 눈물이 고여 흐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혜주의 머리에서 손을 빼어내 바로 눕히곤 이제 미지근해 진 수건을 들고 물에 다시 담근다... 여전히 누운 채 눈가에 눈물을 고이고 있는 혜주의 얼굴을 보며 떨리는 손으로 수건의 물을 짠다...
이마에 다시 수건을 얹혀주고 미지근해진 물이 담긴 바가지를 들고 방문을 열었을 때... 방문 앞에 오렌지 주스를 들고 서 있는 형수를 보게 되었다.
혜주의 말을 다 들었는지 형수의 볼에서 눈물이 타고 흘러 턱에서 이슬을 맺히며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나오자...형수가 조용히 문을 닫아준다...그리곤 내 손에 들려 있는 바가지를 건네받고는 조용히 내게 속삭인다.
"도련님...동서 울리면 저한테 죽을 줄 알아..."
형수는 말을 끝내곤 나를 다시 방으로 밀어 넣듯 힘을 주곤... 걸음을 옮긴다...
당연히 내가 혜주를 울릴 이유가 없었기에...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거실로 향한다... 훌쩍이며 이내 화장실에서 나오던 형수가 거실에 나와 있는 날 노려본다...
나는 형님이 앉아 있는 소파로 향해 옆에 앉으며 길게 한숨을 쉰다...
"제수씬 좀 괜찮아졌냐?"
"예..."
"감기가 심하게 걸렸나보다..."
"예...이제 막 잠들었어요."
"저녁 어떻게 할래?,, 제수씨 깨울래?"
"아뇨. 오늘 많이 힘들었나 봐요...그것보다 형님..."
"응?"
"저 어머님 만나볼게요..."
"뭐??...진짜?"
"예...한번 만나보기라도 할게요...용서가 될지 안 될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볼게요..."
"그...그래... 정말 잘 생각했다..."
"..."
자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형수의 시선에 익숙해지지 못한 나는 어색해하며 다시 혜주가 누워있는 방으로 향한다. 뒤에서 연신 웃으며 부르는 형님을 뒤로하고 방에 들어온 난 곤히 자고 있는 혜주의 옆에 앉아서 천천히 손을 올려 땀으로 젖어있는 혜주의 이마에 얹는다. 이마에 얹어진 손의 무게에 잠시 찡그리던 혜주가 배시시 눈을 떠 날 확인하듯 바라보곤 다시 눈을 감고는 표도 안 나는 미소를 입가에 지어줬다... 방금 내가 형과 형수에게 한 말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어주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이마에 손을 얹고 있던 나는 긴장하며 운전했던 오늘의 피로가 이제야 밀려오는 듯 하품을 했고, 방금 전 내가 누워있었던 혜주의 옆에 다시 눕곤 혜주의 머리 아래로 손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어 다시 팔베개를 해준다...그리고 잠이 들었다...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혜주 옆에서 오랜만에 깊게 잠이 든 나다...
눈을 뜨게 된 건 다음날 오전 11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팔에 마비가 걸린 듯 저림증상때문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이제는 열이 다 내렸는지 혜주가 송아지처럼 큰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났으면...깨우지..."
"헤헤헤헤..."
"응? 왜 웃어?"
"그냥요..."
"기분이 좋아 보여..."
"예... 너무 좋은 꿈을 꿨어요..."
"꿈?"
"...아저씨랑 결혼식 올리는데... 울 엄마 아빠가 막 기뻐해주시면서 안아주셨어요..."
"혜주 부모님이?"
"예... 꼭 살아계신것처럼...옆에서 정말로 기쁘게 웃어주시는데... 꿈같지가 않아서 한참동안 아저씨만 봤어요..."
"..."
"저기 아저씨... 어제는 정말 죄송했어요... 근데... 제 말 좀 들어보세요..."
"..."
"제가요...꿈이 하나 있는데...그게..."
"알아..."
"예?"
"어제 네가 약기운에 다 얘기 했어...그리고 네 말대로 한번 만나나 보려고...용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만나본다고 믿지는 건 없으니까..."
"아...저씨..."
"..."
"정말이죠? 정말 만나 보실 거죠?"
혜주가 벌떡 상체를 일으키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날 내려 보며 확인을 받으려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목이 많이 좋아졌었는데... 지금은 또 다시 약간의 비음과 함께 쇳소리가 섞여 나오는 혜주의 목소리에 마음이 아파온다... 정작 본인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내 말을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듯 연신 물어보기만 했지만...
"그렇다니까... 형님한테는 이미 얘기 해놨어..."
"잘 됐다...정말 잘됐어요..."
혜주가 웃으며 눈물을 글썽인다...
"참나... 넌 이제부터 장혜주가 아니고 장꼭지다..."
"으.응??"
"수도꼭지에 꼭지라고... 이 못난아... 만날 울기만 하냐..."
"피~...제가 언제 맨날 울었어요..."
"허~... 기쁠 때도 울고... 슬플 때도 울고...안 울기는... 만날 울더만..."
"피~~~"
입을 삐죽이며 베게로 내 배를 내려쳤다...
"윽..."
"엄살은...후후...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내 생각이냐? 네 생각이지..."
"...피~... 부부는 일심동체잖아요."
"큭... 일심동체...혜주야..."
나는 싱글싱글 웃고 있는 혜주의 얼굴에 손을 올려 볼을 어루만진다... 내 손이 닿자 혜주가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우려 내 손을 어깨와 턱으로 지그시 누른다. 내 손을 자신이 어루만지듯 행동하는 혜주의 모습에 어찌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천천히 혜주의 얼굴을 만지던 손을 목 뒤로 옮겨선 서서히 내게 당긴다. 내 손에 이끌려 혜주가 내 위에 눕 듯 쓰러졌고... 혜주의 이마에 뽀뽀를 하게 된 나다... 그리고 천천히 혜주의 입으로 내 입을 포개려 할 때... 혜주가 얼굴을 들어 약간 거부를 했다.
"응?"
"이...이빨 닦고 올게요..."
"나 냄새나?"
"아뇨... 저...저요..."
"큭큭...무슨 냄새가 난다고...그리고 어차피 쌤쌤이잖아..."
"쌤?...흡..."
그대로 손을 더 당겨 다가온 혜주의 입술을 내 입술로 덮고는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혜주의 목뒤에 있던 손을 등으로 옮겨 안고는 침대에 누운 채 키스를 시작한다...
부드럽고 열로 인해 평소와 달리 약간은 건조해진 혜주의 입술을 적시며 천천히 키스를 하는데... 내 입술의 움직임에 이제는 서툴게 혜주도 입술을 움직인다...
약간 입술을 벌려선 내 입과 호흡을 맞추는...혜주의 행동은 가뜩이나 요즘 건재한 내 하반신의 물건을 충분히 달아오르게 만들었고... 이내 혜주의 사타구니아래에 깔려 있던 물건이 크게 발기하며 혜주의 몸무게로 인한 기분 좋은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흠칫 놀란 혜주가 움직이던 입술을 멈췄고, 감은 눈썹을 파르르 떨기 시작한다...
난... 혜주를 더 꼭 끌어안는다... 비록 지금 이 장소에서 혜주와 더 이상의 진도를 나갈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기분 좋은 감촉에 내 몸이 더 혜주를 원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에 조심스럽지만... 대담하게 혜주를 꼭 안았다... 잠시 멈칫하던 혜주가 다시 입술을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내 반응을 도와준다...
한참동안의 키스를 끝으로 혜주는 고개를 들며 또 길게 숨을 몰아쉰다... 아직도 키스할 때의 호흡법을 익히지 못한 듯 상기된 얼굴로 날 내려 보며 호흡을 약간씩 가다듬는 혜주의 행동에 미소 짓게 되는 나다... 시선을 쉽게 마주치지 못하는 혜주가 엉뚱하게 내 하반신으로 시선을 옮기곤 또 엉뚱한 질문을 한다.
"아...아파요?"
"조금..."
"어떻게 해..."
"괜찮아..."
"..."
혜주가...
상기된 볼에 송아지처럼 맑고 티 없는 큰 눈망울을 하고선 갑자기 내 사타구니 위에 대담하게 손을 얹었다...
깜짝 놀란...난 당황하며 혜주를 바라보게 된다... 비록 옷을 입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혜주의 손의 감촉을 그대로 내 물건에 느끼며 나도 모르게 깊숙이 침대의 쿠션을 죽이며 엉덩이를 빼게 된다...
"?...혜...혜주야..."
"호~...해줄 수도 없고..."
"뭐??"
"아저씨 엄살 부릴 때... '호~' 해달라고 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근데요..."
"..."
"왜... 이건 움직여요?"
"무. 뭐가?"
"가만히 있는데... 혼자서 조금씩 움직이고..."
"그...그게..."
내 물건위에 손을 얹고 전혀 움직임 없이 가만히 대고 있는 혜주였기에 내 벌떡이는 자지의 고동을 여과 없이 그대로 느끼나 보다...그리고 뭐가 그리 궁금한지... 준비도 안 된 나에게 여지없이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상기된 표정에도 눈에는 호기심을 가득 담고는 질문을 하는 혜주였기에... 오히려 내가 당황하게 된다...
"이상해요..."
"으. 응?"
"이거요... 혼자 움직이고...평소에는 이렇게 안...안 커지는 거 같은데..."
"동생 있으니까... 많이 보지 않았어?"
"봤죠... 그런데... 걔네들은 작았는데... 이건..."
"크..."
"여자만 보면 막 아무 때나 커지는 거예요?"
"여자만... 아니야!!..."
"흠~~..."
가만히 신기한 듯 바라보는 혜주의 시선에 괜한 보상심리가 일어난다...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지금 내 물건을 만지고 있는 한참어린 혜주에게 주도권을 뺏긴 듯 한 남자의 자존심에...나도 뭔가를 해야 하는 거 아닌지...
그렇다고 지금 누워 있는 형 집에서 이 이상의 대담한 행동을 하기란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하반신에 전해지는 감촉에 모든 걸 잊고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옆으로 올려 내 몸에 기대고 있는 혜주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처음으로 터치를 하는...혜주의 가슴은 생각대로 탄력적인 빵빵함과 더불어 너무도 부드럽게 느껴진다... 물론 혜주가 놀란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흑..."
한손에 겨우 형태만 잡힌 큰 혜주의 가슴에... 난 속으로 놀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혜주의 가슴을 천천히 주물러 본다...
그렇게 대담하게 내가 행동하자 혜주가... 내 물건위에 얹었던 손을 때곤... 내 손목을 잡아 거부를 한다...
"싫어?"
"그...그게...좀 창피해요..."
"창피해?"
"...예."
"아니... 내 중요한 건 만지면서...이게 창피해?"
"주...중요한건 아는데..."
"진짜 부드럽다..."
"그...그만 해요..."
"조금만... 조금만 더 만지면 안 돼?"
"..."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혜주가 인상을 쓴다... 별로 세게 쥔 것도 아닌데... 혜주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어색한 남자의 손길에 당황하기도,,놀랍기도 한 듯...결국 눈을 감고는 내게 얼굴을 기댄다...
떨리는 숨결을 내게 들키기 싫은가보다...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는 분명히 홍당무가 되어 있을 얼굴로 떨리는 숨결을 뱉어내는 듯 더 고개를 숨긴다...
손에 잡고 있는 혜주의 가슴속에서 터질 듯 울리는 심장의 고동이 내 손에 그대로 전해졌다...
꼭... 나까지 감전이 될 듯 한 혜주의 심장 고동에... 난 조심스럽게 손을 때어 냈다...
하지만 혜주는 여전히 내 품속에 얼굴을 묻은 채 좀처럼 얼굴을 들지 못한다... 귀엽게 조금씩 내 품에 점점 더 몸을 파고든다... 앙증맞게 손에 주먹을 쥐어 내 가슴에 올려놓고는 통통 치듯... 그만 보라고 때린다...
"후~~... 가슴 만지는데도 이렇게 힘들어서야...이러다가...영영 너랑은 아무것도 못하겠다..."
"..."
"그만 떨어져... 또 만지고 싶어지잖아..."
"..."
서둘러... 혜주가 내 품에서 떨어진다...
"큭...그렇게 싫었어?"
"...아...니요."
"아니?...그럼 좋았어?"
"뭐...뭐라고요?!!..."
'퍽!~~'
"흑...그렇다고 때리냐?!!..."
"진짜 못됐어..."
"큭큭큭..."
"몰라요... 얼른 일어나요...아주버님 기다리시겠어요..."
"아차~~ 여기 울 집 아니지..."
"빨리요... "
"크크...네 얼굴이나 진정시키셔... 그러고 나가면 단번에 우리 뽀뽀 했어요라고 광고하는 거다..."
"지...진짜요?"
"응...크크..."
일어나 걸어 나가는 내 등 뒤로 혜주는 서둘러 일어나 책상위에 있는 거울을 집어 들고는 연신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리곤...날 흘겨본다...
거실로 나가니 이미 형님은 형수에게 어머니한테 다녀온다고 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간 후였다...
물을 한잔 들이킨 나는 주방에서 우리를 위해 아침겸 점심을 준비하는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무심히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또 무심히 형수에게 질문을 한다.
"형수...가까워요?"
"응? 뭐가?"
"어머님 집이요..."
"...오산에 계셔..."
"가깝네요..."
"응... 사 년 전에 이사 오셨어... 애아빠가 모시고 싶어 했는데,... 도저히 면목이 없다고 아직도 고집을 부리시네..."
"형수는요? 졸지에 시어머님 모셔야 하는 입장이 돼 버렸잖아요... 기분 나쁘지 않으세요?"
"예? 호호호호호... 역시 저 생각해주시는 건 도련님밖에 없네..."
"..."
"그래도... 어머님이시잖아요...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머님이니 어쩌겠어..."
"...전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은데..."
"도련님도 만나 봐요... 많이 고생하셔서...늙으셨대요... 저야 처음 뵈었으니 모르겠지만... 애아빠한테는 그게 가슴이 가장 많이 아팠다나봐요..."
"..."
"어머... 동서 일어났어? 몸은 좀 어때?"
"예,,, 감사합니다..."
"내가 뭘 했다고... 도련님이 얼마나 끔찍이 간호하던지...호호호"
"..."
"어머... 아직도 열 있어? 얼굴이 아직도 빨가네..."
"아...아니에요... 열 다 내렸어요..."
"근데..."
혜주는 아직도 얼굴을 붉히고 있다. 방에서의 나와의 행동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지...혜주의 얼굴이 좀 진정이 되어 나왔나 본데... 날 보더니 다시 빨개졌나보다... 얼굴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내 옆에 앉은 혜주는 그것보라는 듯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른다.
이미 눈치를 챘는지 형수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내가 뭘?... 지가 티는 다 내면서..."
"제가 뭘요..."
"뭐긴... 얼굴에 완전히 다 써놓고 있구만..."
"예??"(혜주가 황급히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나와 깔깔대고 있는 형수를 번갈아 쳐다본다.)
"이 봐라...쯧..."
"지...진짜 짓궂어..."
"헐..."
한참을 혜주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웃고 있는데 마침 형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혜주를 보며 내겐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걸어와 소파에 앉는다.
"몸은 좀 괜찮아요?"
"예...근데...아...아주버님 말 놓으세요."
"그럴까? 하하하하 사실 내 아들하고 몇 살차이 안 나는데... 꼬박꼬박 존댓말하려니..."
"..."
"그러고 보니 진짜 몇 살 차이 안 나네..."
"그...그래도 제가 더 많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누가 뭐라고 했나? 제수씨야 이제 민호 와이프 될 사람인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
"그렇구나... 너랑 승민이랑은 세살차인가?"
"그렇지...하하하하하"
"고등학교 다닐 때... 승민이 보고 신기했는데... 너랑 별반 다를 게 없구나...
"피~...제가 더 많다니까요..."
"세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아저...여보까지 자꾸 애 취급하려고 하면 저 화낼 거예요!"
"뭐?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기저귀차고 있을 때... 전 유치원 다녔어...요..."
"큭큭... 알았어... 그만하자."
"...진짜."
"잘됐네... 재주씨도 일어났으니까...지금 말하는 게 좋을 거 같다...민호야... 어머님 오늘 만날래?"
"예? 오늘이요?"
"그래... 이왕 말 나온 김에... 어머님도 널 얼마나 그리워하시는데..."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만날 필요는..."
"옙!!... 여보랑 여기까지 왔는데... 어머님은 어디계세요?"
나대신 당당하게 대답하는 혜주였기에 내 의사는 형님에게 묵살 된다...
"그럴래? 그렇지 않아도... 지금 밖에 있는 내 차에서 기다리시는데..."
"예? 아니... 무슨 말도 없이 이렇게 모시고 오면 어떻게 해요?"
"나도... 기쁜 마음에 전화로 말씀드리기도 뭐해서 가서 얘길 했더니... 어머님이 당장 보고 싶다고... 몇 년이냐...어머님이 얼마나 너한테 죄스럽게..."
형님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혜주가 벌떡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정말로 자신의 엄마라도 모시러 가려는지 혜주가 단숨에 뛰어 나갔기에 미처 말리지도 못한다...
그리고... 내 생각과는 달리...아니 그 세월동안 고생했어야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난... 초라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의...등이 굽은 모습의 어머니를 바랐는데...
정작 혜주의 손에 이끌려 머뭇거리며 들어온 여성은 50대 후반의...내 기억이 맞는다면 60초반이어야 할 어머닌 50대 후반의 외모에 깔끔한 하늘색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런 어머님의 모습에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기 시작했기에... 혜주로 인해 생겨났던 미소는 금세 사라지게 된다...
"어머니 여기 앉으세요..."
"으...응...그래."
"뭐해... 인사드려라..."
"..."
가볍게 목례만 하게 된다... 차마... 혜주처럼 바로 옆에 앉아 연신 손을 잡아 줄만큼 친숙하게도...그리고 다정다감이라는 단어도 떠올리지 못하는... 목석이 되어 그저 가벼운 목례만 하며 천천히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본다...
고생이라고는 정말로 한적 없어 보이는...어머님의 모습에 적지 않은 실망감과 함께... 역시나 우리를 버릴 만 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으며 바라보던 시선은 곳 노려보듯 인상을 쓰게 되었다... 그게 또 형님에게는 못마땅하게 보이나 보다...헛기침을 하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애써 날 변호한다...
"어머니... 민호가 그동안 혼자서 외로움을 많이 타서... 낯설어서 그래요..."
"아니다...내 죄가 천근인데... 민호 반응이 당연한 거지..."
"당연하죠..."
무덤덤하게 난 뱉어내듯 말을 했다... 내가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담담하게 말을 하는 어머니라는 사람의 모습에 실증감과 함께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근 삼십년 만에 만난 어머니라는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던,,, 지금은 버린 예전의 사진과 그리 크게 달라진 모습이 아니었기에... 내가 바라던 고통스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갔을...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했을 어머니의 변한 모습과는 너무도 괴리감을 느꼈기에 무의식적으로 말을 뱉어내게 되었다...
"호의호식하고 잘 사셨나 보네요..."
"민호야!!"
"..."
"왜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어머님 옷보고 그러는 거야? 너 보러 오신다고 애써 아껴두신 옷 입고 온 거 모르냐?!!"
"그래요...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 넘었네요..."
"민호야..."
"아저씨...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의 옆에서 계속해서 손을 잡아주고 있던 혜주가 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가만히 있던 입을 연다...
마음을 알고 상황도 알고 있는 혜주의 행동이 당연할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혜주가 괜히 불만스러웠기에 모든 원인제공자인 혜주에게 화살을 돌렸다...
"넌 뭐가 좋다고 거기 앉아 있어?...이리로 와!"
"..."
"민호야...그만해라."
"형님 왜요? 제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삼십년 가까이 가져온 마음을 형님처럼 부침개 뒤집듯 쉽게 바꿀 순 없어요...혜주의 생각 때문에 한번 만나보려고 한 거지 결정은 나중에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역시 아니었나봅니다. 차라리 모르고 지냈으면 가슴속에 미화되어 버린 어머니의 존재를 측은하게라도 느꼈을 겁니다. 이렇게 잘 살고 계신 줄 알았다면... 혜주의 주제넘은 생각을 진작 혼이라도 냈을 겁니다."
"...민호야."
"그래요... 어머님이라고는 불러들이죠. 근데요. 저한테 자식 된 도리같은 건 기대하지 마세요... 지금처럼 사셔도 충분히 잘 사실 거 같네요."
"아저씨!"
갑작스럽게 쇳소리가 섞인 혜주의 호통어린 고함에 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날 바라보던 눈에 더 많은 원망을 담고는 내 옆으로 다가와 서서는...조용히 말을 한다.
"어머니잖아요... 얘기라도 들어보고... 그리고 화를 내세요..."
"얘기? 너도 웃기다... 마음대로 일을 벌이더니...이제는 뭘 안다고 나한테 무슨 얘기까지 들어보라고 하는 거니?."
"알았어요. 제가 다 잘못했으니까...어머님 얘기만이라도 듣고 화를 내세요..."
"그래... 알면 됐다...너 정말로 주제넘은 짓한 거야...그리고 어머님을 봐라!... 어디 고생을 해보신 얼굴이니?...우리가...아니 형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했을 리가 없잖아?!. 남들이 손가락질할 때 남자한테 미쳐서 우리를 버리고 간 사람이다. 지금도 그 놈하고 같이 사시나?...아니죠? 이미 다른 남자로 갈아 탔을 게 뻔하지... 아들도 다 버리고 도망가듯 버리고 가셨는데... 그 남자라고 지금까지 같이 붙어 있었겠어??그럼 혹시 다른 남자하고 새로 눈 맞으..."
'짝!!!!!'
얼굴에 강한 충격과 함께... 내 고개가 반쯤 돌아가게 된다...
난 형이 내 따귀를 때린 줄 알았다... 당연히 맞아도 싼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기에 사실 언제 맞아도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동안 참았던 격분에 나도 모르게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아니... 이정도의 폭언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내게 정당성을 애써 부연하며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비수를 수도 없이 꽂고 있었고,, 그것이 잘 못된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라도 편히 살았을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내 복수라는 생각에 더 심한 말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진행 중이었는데...
고개를 돌려 형을 보는데... 형도 놀란 표정으로 혜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어머니도 혜주의 등을 보며 따귀 소리에 커진 눈으로 놀라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눈물을 한없이 쏟아내고 내 앞에 서 있는 혜주를 난 그제야 올려다보게 된다.
손이 아픈지... 자신의 손을 쥐고는... 날 눈물을 흘리며 내려다보는 혜주의 모습에... 내 따귀를 때린 게 혜주란 걸 알게 되었다...
"이...이게 무슨 짓이야!!"
'..."
"너 미쳤어!?"
"아저씨... 진짜 나빠요..."
"뭐가!!...내가 왜 나쁜데!!"
"어머니한테 어떻게 그래요?!... 어머니가...아무리 그랬어도... 어떻게 그러냐고요!"
"... 우릴 버린 사람이야!...지금 이렇게 같은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역겨우...ㅓ..."
"흑...흑..."
혜주의 따귀는 없어지만. 굽히지 않고 얘기하는 날 보며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방금 전 혜주의 손이 매운 것도 있었지만... 날 때린 손에 의해 가슴에 울려 퍼진... 혜주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날 왜 이렇게 원망하는지 알고 있었기에...차마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혜주를 바라보게 된다...
"살아계시잖아요...원망하려면 계속 만나면 되잖아요. 아저씰 왜 버렸냐고...원망하세요!...이렇게 심한 말로 사람 가슴 찢어 놓지 말고 왜 버려야만 했는지... 만나서 원망하시고 알아 가시면 되잖아요...그리고 용서하면 되잖아요. 용서할 수 있는 엄마가 살아계신 걸 고맙게 생각하면 안 돼요?"
"원망? 남자가 좋아서 우릴 버린 건데, 그리고 저렇게 잘 먹고 잘사는데 무슨 용서를 한단 말이냐!..."
"옷만 보지 말라고요...아저씬... 왜 겉모습만 봐요? 아저씨도 속물이에요? 어머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곱게 차려 입고 나오셨는지 모르시겠어요? 손이라도 한번 만져보세요... 전 저런 고생이라는 단어가 묻어 있는 손 많이 만져봤고 겪어 봤어요...그리고 겉모습도...어머님 손에 반지나...목걸이 같은 액세서리가 있어요? 없잖아요..."
그제야... 혜주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난 어머님의 겉치레가 아닌 손과 얼굴을 보게 되었다...
혜주의 말에 한눈에 보기에도 어머님의 숨기는 손은 거칠어 보였다... 정말로 옷차림에 비해 어느 액세서리도 하나 걸치고 있지 않는 어머님의 모습은...
"왜?...왜!! 제가 사랑하는 아저씨답지 않게 사람 모습만 보고 결정부터 하냐고요... 얘기도 안 나눠보고...흑...흑~~~"
"...알았어... 알았으니까... 울지 마."
"지...진짜... 너무 해요..."
혜주가 흘리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이 와중에도 어머니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곤 어제 잠을 잤던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버린다... 거실에 앉아 있는 우리 셋의 분위기는 침울 하다기 보단... 혜주의 말에 감동을 받은 듯... 아니 내 자신이 정말로 속물이 되어버린듯 한 생각이 들어 쉽게 침묵을 깨지 못하고 있는다.
"어머님은... 지금 시장 다니셔... 내가 모신다고 해도... 네가 용서하기 전에는 차마 나한테도 못 돌아오겠다고 하셨어..."
"..."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끝까지 말을 못했는데... 민호야... 어머님 그렇게 나가시고 정말로 단 한 번도 발 뻗고 주무신 적 없으시단다... 나가신지 일주일 만에 집에 오셨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는 죽은 사람이라고... 더 이상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셨대... 지금까지 쭉... 혼자서 악착같이 돈만 모으시고... 단 한 번도 아니... 지금 입고 계신 옷만,,, 우리 만날 때 입고 나오시려고 산 것 외에는 사치하신적도 없으셔..."
"..."
"제수씨 얘기는 대충 네 형수한테 들었다... 아마... 같은 처지로 느껴서 저렇게 널 원망하는걸 꺼야..."
"저보다도 더 혜주를 잘 아시네요..."
"민호야..."
"알겠습니다...어머님도 고생하셨다는 거...죄책감에 심하게 시달리셨다는 거 알았으니까...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래...어머니도... 울고 계시지만 말고..."
"아니요... 형님 저 이만 올라가 볼게요... 오늘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일을 겪은 거 같아서... 생각할 장소가 필요하네요..."
"..."
"그럼...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나는 인사와 함께 일어나 혜주가 들어간 방문을 열고 혜주를 보게 된다...
아직도 울고 있는지... 등을 돌린 채 혜주가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나보다도... 날 더 걱정하는 혜주라는 생각에 미안함과 함께 사랑을 더 느끼며... 혜주에게 다가가 등부터 안아준다...
"놔...놔요...훌쩍,..."
"미안해... 서울에 올라가자..."
"예? 아저씨!... 진짜 너무..."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도 생각 좀하게...지금 당장 어머닐 어떻게 웃으면서 볼 수 있겠니... 우선 올라가자... 나 너무 힘들다..."
"..."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려 혜주가 날 바라본다... 발갛게 달아오른 내 뺨을 본 혜주가... 손을 올려 어루만진다...
"마. 많이 아팠죠..."
"응...아프더라."
"죄송해요..."
"아니야... 네 가슴이 더 아플 텐데...철없이 굴어서 미안..."
"..."
내 마음을 아는지 혜주가 몸을 세웠고,, 방문을 열고 나와 신발을 신는 나와 달리 혜주는 다시 어머니에게 다가가 포옹을 해드린다...그리곤 연신 손을 잡고는 뭐라고 속삭이듯 얘길한 혜주에 의해 잠시 신발을 신고는 서 있게 되었다... 형에게 혜주가 환대(?)를 받으며 나온 후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간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혜주는 창밖의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둔 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다...
"안 아파?"
"예?"
"손... 조금 부었는데..."
"아파요..."
"많이 아파?"
"아뇨... 참을 만 해요..."
"어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세게 때리냐..."
"아저씨 잘못이에요..."
"근데 넌 심대리때도 그렇고...얼굴이랑 다르게 너무 폭력적인 거 아니니?."
"맞아도 싼 사람은 맞아야 정신 차려요."
"무. 뭐?"
"사랑의 매라고 들어봤어요? 고칠 수 있는 사람한테만 전 폭력행사해요..."
"그러다가 큰일 나...심대리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고소감이야..."
"피~~ 고소하시던가..."
"큭..."
서울에 도착한 나는 혜주를 집에 데려다주고 차를 돌려주기 위해 다시 운전석에 앉는다. 출발을 해 10m도 안가서 차를 멈추고 가만히 앉아 어머님과 혜주를 생각하며 담배를 입에 무는데...혜주가 두리번거리며 집에서 나온다... 손을 부여잡고는 집에서 나온 혜주는 큰길 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잡고 있어 대칭된 혜주의 손이 많이 부어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 혜주를 쫓아가는데... 큰길 바로 앞에 있는 정형외과로 들어가는 혜주를 볼 수 있었다.
"혜주야..."
"깜짝이야...무...뭐에요?, 차 돌려준다고...안 갔어요?"
"너야 말로... 뭐냐?!.,.,여긴 왜 왔어?"
"그...그냥 감기약 좀 타려고..."(혜주가 따귀를 때릴 때 사용한 손을 숨기며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한다...)
"줘봐..."
"예?"
"손 줘보라고... "
"..."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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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들어와!!!!"
"시...싫어요!..."
"어허... 환자가 무슨 말이 많냐?!!"
"그래도 싫어요...충분히 혼자 닦을 수 있는데...아저씨가 이상한거죠!!"
"참나... 선생님 말 못 들었냐? 물 닿게 하지 말라는 말씀!"
"시. 싫어요..."
"야!! 내가 무슨 변탠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