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 사랑...variety-3 (13/19)

13. 사랑...variety-3

"생각해봤어?"

"..."

혜주가 나무 숟가락으로 죽을 저으며 고개를 돌려 내 물음에 갑자기 무슨 말인지 궁금함을 가득 품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물론 갑작스러운 내 질문이었지만... 나는 이렇게 절실함을 품은 채 조심스러워하는데 혜주는 까맣게 잊고 있는 듯해서 약간은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내 표정을 살피며 혜주는 아까전의 얘기를 다시 꺼낸다.

"오,빠라고 불러요?"

"응?? 오빠??"

오빠...

꿈에도 그리던 호칭인데...

"에이~ 그냥 아저씨 할래요... 아저씨만 아저씨로 하고... 삼구 아저씨는...삼구...아저씨로..."

도대체 차이가 뭔지...

다시 한 번 오빠라는 단어로 날 불러준다면 기분이 날아갈듯 좋아지겠지만, 우선 혜주의 각오를 들어야 변호사와 상담을 하던 미팅을 하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어렵게 사심을 떨치고 혜주에게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고 혜주야... 결혼 말이야 동생들 찾아오려면 그게 가장 확실 할 거 같아..."

"..."

"그거 놔두고 여기 좀 앉아봐..."

"아.안되요... 안 저으면 다 눌어붙어요..."

"... 지금 죽이 문제야?"

"...예."

"..."

어쩔 수 없었다.

혜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죽이 다 끓기를 난 기다릴 수밖에는 없었고 그런 내 조바심이 가득한 몸짓을 혜주도 알고 있는지 죽을 다 끓이고는 냄비에서 사기그릇으로 덜어 담고는 내 앞에 와서 아까와 같이 무릎을 꿇고 앉는다...

"...무릎은 왜 꿇어... 벌 받는 것도 아니고..."

"..."

그제야 혜주가 무릎을 세워서는 팔로 안고 예쁜 엉덩이를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날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무릎을 둘러싸고 있는 손을 보며 연신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뭐 혜주의 버릇인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상관하지 않고 다시 진지하게 혜주에게 말을 시작 했다.

"정말로 싫다면... 다른 방법을 알아보긴 할 텐데...이미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다 찾아본 거 같아...정말 싫다며.?..."

"아니...예.요..."

"응?"

"싫다는 게 아니고...저 때문에 아저씨 곤란한 거 아니에요?"

"곤란?? 내가?"

내 말대로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목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리듯 말을 끝낸 혜주의 말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곤란하다는 건지...

솔직히... 결혼만 해준다면...혜주를 매일 업고 다녀도 시원찮을 텐데 말이다...

"내가 왜?"

"...결혼을 저 때문에 연극으로..."

"연극?...무슨 소리야 그게...혹시 지금 내가 싫은데 네 사정이 불쌍한 것 때문에 결혼하는 걸로 보이니?"

"...그건 아닌데요..."

"그럼? 내가 왜 곤란해?!! 난 너랑 결혼만 할 수 있다...하여튼..."

"있다면요?"

볼이 빨개진 채 고개를 들어 내 대답을 원하는 혜주의 귀여운 눈망울에... 멋진 대사를 생각해 내야 하는데 막상 혜주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자 입이 쉽사리 떨어지질 않는다.

살이라도 붙여서 얘기를 한다면... 아마 혜주에게 거짓으로 느껴질 테고,, 그렇다고 내가 말 주변이 뛰어난 언변의 마술사도 아니니 말로 혜주를 감동을 주지도 못 할테니...

그냥 솔직해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할 수 있다면...어차피 너 때문에 한번 버린 목숨 이였지만,, 똑같이 또 버릴 수 있다고..."

"또!!"

쇳소리로... 크게 말하는 혜주의 꾸짖음과 같은 말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제 앞에서 또 한 번 죽는다는 얘기 해봐요!...결혼이고 이혼이고... 아무것도 안해줄테니까!"

한 층 더 날카롭게 내 귀를 아프게 할 정도의 혜주의 큰말소리는 지금 혜주가 얼마나 화를 내고 있는지 그리고 내게 여지없이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잡고 있던 무릎에서 손을 풀고는 가지런히 다리를 모아 옆으로 포개고는 자신의 목을 잡는다...

역시 목에 무리가 간 듯 잠시 얼굴을 찡그린다...

"미안...그래도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

"..."

목을 잡은 채 눈을 올려 날 흘겨보는 혜주는 당장이라도 또 소리를 치려다가 아픈지 손으로 목을 감싸며 참는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기에 나는 혜주에게 노트를 가져와 혜주 앞에 내려놓았고, 노트를 본 혜주는 다시 한 번 내게 눈을 흘기고는 필기를 시작했다.

-아저씨가 죽는다고 하면 전 다시는 못 일어설 거 같아서 화가 나요...

"...미안해."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말 입에도 담지 마세요!

"알았어..."

"그럼... 어떻게 할까? 변호사가 자료 보낸 거 보니까... 어느 정도 확인은 다 끝난 거 같은데...그리고... 난 오히려 혜주한테 짐만 주는 거 같아서 그런 거지... 연극 같은 거 아니야... 솔직히 우리 둘을 놓고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누가 아까운지... 100이면 100...전부 네 편들걸..."

-아닐걸요...아저씨가 얼마나 심성이 곱고 착한데...

"내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

황당한 혜주의 글에... 웃게 된다.

심성이 곱고... 착하다니...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건지...혜주는 내 웃음에 오히려 나보다 더 황당하다는 듯 멀뚱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날 그렇게 봤어?"

"..."

"크크... 난 혜주한테만 그런 건데... 다른 사람은 아마 무신경에 개인주의에...이기주의...거기에 무관심까지 겸비한..."

"..."

"혜주한테만 그런 거야."

"..."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혜주가 날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곤 상을 차리러 일어나려는 듯 몸을 움직였기에 난 내 목적을 위해 황급히 입을 연다.

"혜...혜주야!..."

"..."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말을 끝내고 밥을 먹던가, 나이대로는 소화도 안 되겠다."

"..."

"싫어?,,싫으면 그냥 두고..."

"아니요..."

나지막한 혜주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아니요'라는 혜주의 말이 나와의 서류상 결혼이 아니라는 건지... 아니면 싫냐고 물어보는 내 질문에 아니라는 대답을 하는 건지 금방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어보려는데 혜주가 부끄러운 듯 휙 몸을 돌려 종종걸음으로 주방 옆에 세워둔 밥상을 들어 발들을 꺼낸다.

혜주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나는 목소리를 높여 혜주에게 다시 묻게 된다. 정확한 혜주의 의사를 알아야만... 잠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혜주가 거절한다면 그 이유만으로 또 잠을 못 이루겠지만 말이다...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

상의 다리를 빼던 혜주가 고개를 내가 있는 거실로 향하며... 입술을 삐죽거린다...

한 번에 못 알아들은 내게 원망 섞인 눈빛과 찡그림으로 대답 대신 대답을 하곤 상을 마저 편다.

"아! 답답해!!...싫다는 거야?!"

"후~~~~~"

긴 한숨...

상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잠시 팔짱을 끼고 날 흘겨본다...

아마도... 혜주는 내가 일부러 그러는 줄 아나보다... 정말로 난 확실히 듣고 싶어서 그런 건데...

다시 천천히 걸에 내 앞에 다리를 옆으로 해 앉은 혜주는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쑥스럽다는 감정과 함께 확신이 가득찬 눈빛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약간의 원망서린 감정이 뒤섞인 채 날 바라보는 혜주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반...반지는요?"

"응??"

"저... 이래 뵈도 스물둘 꽃처년데...평생 남...남자친구도 한명 없었는데...이거 결혼 프러포즈 아녜요?"

"..."

"그럼... 은반지라도 하나 드밀면서 말씀하셔야죠...피~~~ 눈치 없게..."

"바...반지!!...아!!! 미...미안... 난...그냥,...혹시나...아니 그게..."

"됐어욧!"

벌떡 일어나 다시 상으로 가는 혜주의 뒷모습에...

잠시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하니 혜주만을 바라보게 된다. 주위의 사물들이 전부 혜주로 인해 흐려지는 듯... 뿌옇게 보이며 혜주의 모습만이 내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며 주방으로 걸어간다...

눈물이 내 눈에 맺힌다. 황홀하고 기쁨이 담긴 눈물이 잠시 눈가를 적신다.

비록 키스를 한 사이라고는 해도,,아직 한 번도 혜주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사용해 본적도 없는데... 혜주의 입에서 지금 내 귀에 들려온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내 가슴을 멈추게 할 만큼 확실했고, 명확하게 들려왔다...

내가 걱정이 너무 많았나보다...혜주의 긍정어린 답을 듣게 되자... 조리던 마음이 풀어지며 긴장이 풀렸던 게 분명하다...

나는 서둘러 지갑을 들고는 밥상을 차리는 혜주의 손을 낚아챘다.

".왜 요??"

"가자!"

"어.어딜...?"

"나가자!"

혜주는 죽이 식을까봐 걱정을 하는지 내 손을 잠시 뿌리치고 주방으로 돌아가 렙이라도 씌우려했지만 난 힘을 줬고, 끌려오듯 따라오다 서게 된 혜주는 신발도 어렵게 신게 된다.

무작정 혜주의 손을 잡고는 집을 나와 번화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나다. 물론 혜주가 연신 죽이 식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건 두말할 필요 없었고, 그런 혜주의 귀여운 투정이 내 발걸음을 더 빠르게 만든다.

한참을 혜주의 손을 잡고 헤맸고, 겨우 내 눈에 발견된 가게로 난 혜주를 이끌고 무작정 들어간다.

혜주는 얼떨결에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반짝이는 화사한 물건들로 가득 차있는 가게 안의 인테리어에 발에 힘을 줘 멈춰 섰다.

이미 우리 둘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있었기에 혜주의 반항은 다가온 매장안의 점원의 시선에 의해 멈추게 된다...

우리를 쳐다보며... 다가오는 중년을 훌쩍 넘긴 여성점원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바래고 헤진 혜주의 분홍색 추리닝...거기에 상의는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혜주의 복장은 이런 고급 주얼리샵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긴 하다...

물론 내 추리닝도 마찬가지고,,

그제야 난 혜주의 손을 놓고 약간은 거북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점원에게 다가간다.

"어떻게 오셨나요?"

"어떻게 오긴요 반지 좀 사러 왔죠."

"예? 조카...분 선물이신가요?"

"조카요? 아니요 제 와이프 될 사람 결혼 예물 좀 보러 왔습니다."

"예?..."

나와 혜주를 번갈아 쳐다보는 점원의 시선을 뒤로 한다. 내가 생각해도 도둑놈 같은 심보와 면도도 제대로 안한 나이 들어 보이는 내 인상에 이미 여길 오면서 여러 번 생각한 주위의 시선이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점원의 시선을 무시하고 난 진열대 안에 있는 반지들을 고르기 시작했고, 그 중 혜주에게 어울리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여러 개 박힌 반지가 놓인 진열대 위의 유리를 두드리며 묻는다.

"이거 꺼내주세요."

"예? 이거 비싼데..."

"알았으니까 꺼내달라고요."

"예..."

장갑을 낀 손으로 점원은 조심스럽게 검은색 세무 받침에 놓여있는 한 쌍의 커플링을 꺼냈으나 선뜻 내게 내놓질 못한다.

나는 잡아채듯 그 케이스채로 받아 유심히 들여다본다...정말로 비싸 보이는... 다이아몬드가 족히 20개는 박혀 있을 듯 보이는 작은 여자반지와 중앙에 큼지막한 다이아가 하나 박혀있는 반지가 내 마음에 쏙 든다...

꼭... 나와 혜주를 말해주는... 여러 가지 의미로 마음에 드는 반지였기에 지갑을 꺼내며 점원에게 물어본다.

"이거 얼마에요?"

"...세트로 1120만원이요."

"예. 계산해주세요."

"예??"

"예?!!!"

점원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내 뒤에서 들려오는 큰 쇳소리가 섞여 주얼리샵안에 울려 펴졌고,, 황급히 내게 달려들듯 뛰어온 혜주가 내 손에 들려 있는 지갑을 낚아채선 자신의 가슴에 숨기듯 양손으로 감춘다.

"놀래라... 왜?!"

".하. 하지 마요..."

"뭐가?!"

"제...제가 잘못했어요...하지 마요..."

"뭘 잘못해... 지금 내 맘 같아선 여기 있는 거 다 사주고 싶구만!."

"아. 알았어요... 정말 잘못했다고요..."

"참나... 진짜 기뻐서 그런 거라니까!... "

"..."

이번엔 혜주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내 행동은...

정말로 기쁘고 가슴 벅차 설령 내게 무리일지 모를 금액의 반지라도 혜주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다...아니... 이 반지가 꼭 우리를 위해 준비된 반지라는 생각에 엄청난 가격에도 이미 눈이 뒤집힌 채 무작정 계산부터 하려 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저씨... 잘못했다고요..."

그러나... 혜주는 내가 오기를 부리는 걸로 보이나 보다...

자신의 진심을 장난이라는 행동으로 돌려 표현한 혜주였지만, 그 장난조차 내가 진지하게 받아 드릴 거라는 걸 몰랐던 혜주였기에, 반지의 금액에 겁을 먹은 혜주는 결국 울먹이며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아..."

이제야... 난 혜주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혜주가 어떤 아인지,...혜주란 존재를 잠시 잊고는 내 욕심과 고집으로 혜주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반지를 진열장 위에 올려놓고 몸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혜주에게 다가간다.

"미안...내 욕심만 앞세웠다...정말 미안하니까... 울지 마..."

"...정말... 못됐어..."

"..."

중얼거리듯 고개를 숙인 채 혜주가 혼잣말을 한다.

가슴에 비수를 꽂는 혜주의 말에...난 더 당황스럽고, 걱정이 밀려온다.

"진짜!! 진짜 미안해...프러포즈가 처음이고 결혼도 처음이라서...아니...그러니까 그 결혼이라는 게...한 번도 안 해봐서 중요한 반지도 잊고,...미안."

",..."

"혜주야... 울지 마... 말했잖아... 네가 울면 난 더 슬퍼지고..."

내 애원에 혜주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든다...

그세 눈망울에 한가득 눈물을 담은 채 혜주가 날 바라보더니... 이내 흘겨본다.

"이렇게 예쁜 눈에 눈물 담지 말라니까... 정말 미안...그.,럼 우리 그냥 집에 갈까?"

혜주가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원한 답이 아닌데... 혜주가 원하는 걸 할 수 밖에 없는 나다...

이런 건 몰래 준비하고 미리 사둔 반지를 깜짝이벤트로 건네줬어야 하는데... 너무 성급하고 지나친 내 행동을 반성하고 원망한다. 애써...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정중히 점원에게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는 나다...혜주도... 내 옆에 바짝 서서는 자신도 나와 함께 사과를 하듯 나보다 더 크게...그리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사과를 한다.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가게 안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닭살 돛아나는 연예소설같은 장면에 점원이 크게 웃는가 보다...

나와 혜주는 허리를 들어 멍하니 점원을 바라본다.

"아가씨... 이렇게 남자분이 용기 냈는데. 그냥 가면 어떻게 해요... 이리로 와봐요. 아가씨한테 딱 어울리는 걸로 골라줄게요."

"..."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혜주는 내 옆에 서서 손을 잡고는 얼른 가자는 듯 손을 연신 당겼지만 난 이대로 나가기엔 체면을 떠나 너무 아쉽다는 생각에 점원의 말에 맞장구를 치게 된다.

"예? 울 혜주가 비싼 건...싫.어...해서,..."

"큭큭...알았다고요...그냥 이리로 와보라니까..."

진열장을 따라 옆으로 몇 걸음 옮긴 점원은 진열장에서 금반지 한 쌍을 꺼내 진열대 위에 올려놓는다.

14K인 듯 은은한 금색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굵은 반지 하나를 꺼낸다.

혜주가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점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연신 다가오라는 손짓을 하며 방금 전 가족케이스에 있던 반지와는 많이 초라해 보이는 노란색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반지를 빼내어 혜주에게 보여준다.

하나의 반지인 줄 알았는데 약간은 굵기가 다르게 두개가 분리되는 약간은 특이한 금반지로 민무늬에 중앙에만 작은 큐빅이 달려 있었고 그 큐빅의 위아래가 결합되어지며 하트가 만들어지는 형태였다.

결코 화려하거나 예뻐 보이질 않는 반지였기에 나는 계속해서 진열장 위에 방금 내려놓은 그 다이아몬드 반지에만 시선이 가게 되었다...

"어. 얼마에요?"

"이거 쌍으로 해서 7만 7천원이에요. 아가씨한테는 이게 딱 일거 같은데."

"..."

연신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분리를 했다가는 다시 연결을 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던 혜주가... 나를 한번 쳐다본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가 맞긴 한데, 7만 7천원이라는 가격도 부담이 되는지 나에게 두었던 시선을 점원에게 옮겼다가 다시 반지를 향한다.

뭔가를 머뭇거리며 쉽게 말을 하지 못하던 혜주가 허리에 차고 있던 추리닝 상의를 빼어내선 입고는 안쪽구석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려하는 듯 손을 추리닝 안쪽으로 옮겨 뒤지기 시작한다. 점원의 눈빛에는 향기와도 같은 그리움이 묻혀있는 채,, 그런 혜주의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고만 있었기에 호기심에 나도 옆으로 다가가 혜주의 추리닝 안쪽을 훔쳐본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추리닝 안쪽에 언제 꿰매났는지 보이는 작은 하얀색 천으로 만들어놓은 꺼내기도 힘들어 보이는 작은 비밀주머니속에서 돈을 꺼내는 혜주의 모습에... 신기하게 바라만 보게 된 나다.

혜주의 손이 옷 속에서 나왔고, 그 손에는 꼬깃꼬깃 소중하게 접어두었던 만 원짜리 5장이 있었다.

"저. 저기 아줌마... 지금 저한테 5만원밖에 없는데요...나중에 갚으러 와도 되요?"

"..."

"혜주야... 내가 낼게... 무슨 외상을..."

혜주가 날 잠깐 고개를 돌려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젓고는 정말로 자신이 사고 싶다는 눈빛을 하며 다시 시선을 점원에게 옮긴다.

"...그래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만 원을 덥석 점원에게 건네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만지작거리는 반지를 주먹으로 꽉 쥔 채 정말로 잘 됐다는 듯 나에게도 미소를 지어준다.

혜주를 처음 본 점원은 그런 모습에 화를 내기는커녕 웃음을 지으며 5만원을 받고는 이내 아주 작은 쇼핑백에 케이스를 담아서 혜주에게 건네줬고, 연신 인사를 여러 번 한 혜주는 가게에서 나와 바로 앞에서 두개를 분리해선... 큰 걸 내게 끼워준다.

"근데... 무슨 돈이야? 그렇게 소중하게 숨겨두고..."

"최후의 보류요..."

최후의...안 맞을 법도 한데... 내 손에 딱 맞은 반지를 보며 모양과 무늬에 조금은 낯 뜨거워졌지만... 혜주가 내 손을 너무도 자랑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기에 내 마음도 기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곤 자신의 손에 반지를 끼려는 듯 왼 손을 올려 약지를 세운다.

"잠깐만... 반지는 남자가 끼워주는거지..."

"..."

난 혜주의 손에서 반지를 뺏어선 혜주의 왼손을 잡고 들고 있는 반지를 끼워주기 시작한다.

혜주의 손에도 딱 맞게 귀여운 반지가 약지를 채우고 있게 된다.

혜주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 그런 나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가게 앞에서 난 혜주의 손을 든 채 혜주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하는 혜주다.

"아저씨..."

"응?"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

"같이 하는 거래요. 결혼은..."

"당연한 거지..."

"아뇨...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그리고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같이 있는 거래요... 전... 이 말이 너무 좋아요."

"..."

결혼식장을 수도 없이 다녔던 나였기에,... 주례의 이 장황한 연설은 항상 지루했고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메뉴만 걱정하던 나였는데, 혜주의 입에서 나온 몇 번이고 듣게 된 얘기는 혜주가 결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기대감과 함께 꿈을 꿨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자 미안함이 밀려왔다.

"미안... 제대로 결혼식부터 올리는 게 순서인데..."

"..."(고개를 또 세차게 흔든다.)

"..."

"그게 아니고요... 이 반지 하나에 서로가 연결 되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래요. 신기하죠...이런 걸로 상대방을 자기 사람처럼 만들 수 있다니..."

"비싸지도 않은데..."

"또!..."

잠시 눈을 흘기는... 혜주는 돈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가격보다는 의미에 소중함을 두고 있다는 걸 잠시 잊었던 나였기에 다시 혜주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

"아저씨는 꼭 그러더라..."

"미안..."

"얼른 밥먹으로 가요... 죽 다 식겠어요."

"그래... 가자..."

"아~!!..."

"왜?"

"바...반지를 교환하면... 영화에서는 뽀뽀하던데..."

"..."

가게 앞에서 혜주의 황당한 말에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요 쪼매난게 어디서 본건 많아가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혜주를 너무도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을 때...

혜주가 대담하게 까치발로 키를 높이며 내 멱살을 잡듯 당기며 내게 가벼운 입맞춤의 키스를 한다. 이번은 그제와 달리 고통도 없이 부드럽게 혜주의 촉촉한 입술이 내 입술을 살짝 덮으며 적셔줬다...

아마도,... 혜주에겐 이 반지만큼 의미를 담은 물건이 세상에는 없나보다... 단순한 아이들 커플링정도밖에는 안 될 이 반지가... 정말로 혜주에겐 결혼반지 못지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듯,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존재하며 손의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 짧은 입맞춤을 아쉬움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끝을 내는 혜주를 바라보는데... 혜주는 서둘러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주머니 두 분 이서 우리를 보며 손가락질하는 것을 본 혜주가... 먼저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녀의 뒷모습에는 창피함이 가득 묻어 발걸음이 빠르다는 걸 느끼는 나다.

나도 서둘러 혜주를 뒤쫓아 가게 되었다.

혜주와 나란히 집으로 향하며 걸어가는 동안, 가면서도 연신 자신의 손을 들어 반지를 확인하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던 혜주가 슬그머니 내 왼손에 손을 내어 잡는다.

깍지를 기며 내 손을 따뜻하게 적시는 혜주의 온기는 걸어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도 아쉽게 느껴질 만큼 날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내 손에 껴 있는 반지를 확인하듯 깍지 낀 손을 장난치듯 조금씩 움직이며 힘을 줘보기도 문지르기도 하는데, 너무도 앙증맞은 손에 귀여움과 함께 혜주의 기분이 내게 전해진다.

집에 도착한 나는 아직도 혜주의 행동에 여운이 남은 채 다시 밥을 차리는 혜주의 모습에 취해 앉아 있었고, 밥상을 들고 내 앞에 온 혜주가 내 시선에 얼른 밥이나 먹으라는 듯 숟가락을 밀어 댔기에 어쩔 수 없이 시선을 거두고 혜주가 직접 만들어준 죽을 먹기 시작한다.

내가 숟가락을 들기 전엔 항상 날 바라보고 있는 혜주의 시선은... 내가 입에 숟가락을 넣고서야 떨어져 자신도 밥을 먹었기에 난 서둘러 한 숟가락을 비웠고, 역시 그제야 혜주가 숟가락을 든다.

부끄러움과 묘한 향기와도 같은 붕 뜬 기분에 숟가락만 연신 움직이며 막상 단 한마디도 오가지 않는 식사시간은 생각보다 나쁘진 않다.

숟가락이 상에 놓이는 소리와 그릇을 긁는 마찰음까지도 꼭 음악처럼 내 귀에 들려왔기에 굳이 입을 땔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밥을 다 먹은 혜주는 잠시 배를 만지며 내 식사가 모자라지는 않는지 내 눈치를 살핀다.

"배불러."

",..."

"근데 혜주야... 그 주례사가 좋아?"

"..."

문득 내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의 주례내용이 물론 좋아한다는 혜주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더 알고 싶어 묻게 된다.

"누구한테다 다 똑같이 나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요."

"응?"

"저도...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행복하게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

"그리고. 좋지 않아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같이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거 말이에요."

"그렇긴 한데..."

"항상 같이 있어준다는 거잖아요. 영원토록...아저씬 넘 무드 없어..."

"무드??,,하하하하하하하하하"

"피... 아! 아저씨 수박 드실래요?"

"갑자기 웬 수박??"

"앞집 아줌마가 귀한 수박이 있다고 해서 아까 잠깐 갔을 때 챙겨 주셨어요."

혜주는 급히 상을 무르고는 작은 쟁반에 수박을 들고 나온다.

수박...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작은 조각이 달랑 두개 놓여 있었다. 아마... 앞집 슈퍼 아줌마가 그 자리에서 하우스 수박을 잘라 먹으라고 건네준 걸 가져온 게 분명해 보였다.

"수박 좋아해? 사러 갈까?"

"여름 되면 엄청 싸지는데 뭐 하러 지금 사요... 맛만 봐요!"

"..."

"그리고 옷 다 다려놨으니까. 내일 모레 출근할 때 꼭 다려놓은거 입고 가요. 맨날 입는 등 쪽 구겨진 거 입지 말고..."

"응? 어딜?,,,아! 벌써 23일이구나..."

눈웃음으로 수박을 입에 문 채 내게 정신 차리라는 듯 미소를 보내는 혜주에 의해 벌써 병가가 내일모레면 끝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는 나다...

"아!... 나... 회사 그만 둘까? 병원에서 퇴원하고 곧바로 회사를 나가는 것도,...그리고 굳이 회사를..."

"떽!!"

"..."

어르신처럼 고함을 지르며 내게 훈계를 시작한 혜주다.

"복에 겨운 소리하지 말고 일해욧!... 걸어 다닐 수 있고, 정신도 멀쩡하구만... 아저씨 40도까지 열 오르면서 고층건물에서 도배해 본적 있어요? 진짜 죽을 거 같아도 돈 받을 시간 되면 다시 힘이 나는 기분 알아요?!"

"그래도...나 중환자였는데..."

"철없는 말 하지 말고 제 말대로 내일모레 출근할 때 다려놓은 양복하고 와이셔츠 입고 나가요."

"..."

"..."

혜주의 훈계에...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아니 겪어본 적 없는 수많은 고생을 했을 혜주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그렇지만 생각과는 달리 뽀료퉁한 얼굴로 혜주를 바라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혜주 앞에서 얼마나 더 나약해지는 내 자신을 느끼며 나도 반항을 얼굴로 해본다.

수박을 다 먹은 혜주가 그런 내 표정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잠시 시선을 맞춘다.

"어휴...하옇튼...쪽~"

쟁반을 들고는 일어나던 혜주가 바라보고 있는 내게 가볍게 허리를 숙여 가벼운 입맞춤을 해주곤 다시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한다.

앉은 채 기습 뽀뽀를 당한 나였기에 멍하니 혜주의 뒷모습만 바라보았고, 고개도 돌리지도 않고 혜주는 설거지를 시작하며 내게 무심하게 엄마처럼 말을 한다.

"됐죠?! 그러니까 투정부리지 말고 회사 잘 다녀욧!"

"큭..."

"근데... 우리 결혼하면...밤에 잘 땐..."

내 말에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멈춘다.

고개를 숙인 채 내 성급한 말에 혜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내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었지만,, 이렇게 가벼운 뽀뽀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나였기에 보통의 20대 남자처럼 투정을 부리며 호기심에 가득 찬 채 혜주의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다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혜주는 못들은 척 다시 설거지를 시작한다...

한 번 더 말을 하고 싶은 나였지만,, 그건 내 자신만의 욕심일거라는 생각과 아직 준비되지 않은 혜주라는 생각이 교차하며 애써 시선을 돌려 텔레비전을 켜 팔을 괴고 눕는다.

물론 머릿속에 텔레비전의 화면속 내용이 들어 올린 없었지만 말이다.

설거지를 하곤 내게 수건을 건네며 씻으라는 말을 하곤 혜주가 내게서 조금 떨어진 벽에 기대며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다.

약간은... 어색한 거리와 분위기로 방금 전의 내 말이 실수였다는 걸 깨달으며 나도 애써 평소와 다름없이 발걸음을 옮겨 반바지와 반팔 런닝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 씻고... 혜주가 들어갔다. 그리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건을 머리에 두른 혜주는 내 눈치를 살피며 방으로 문을 닫고 들어간다.

이미 혜주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에 펴둔 이불이었기에 나는 그대로 눕고는 눈을 감는다.

'너무 앞서지 말자!... 혜주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을 세뇌하듯 머릿속에 몇 번이고 반복하며 눈을 감는다.

구수한 냄새에 코를 벌렁거리며 안 떠지는 눈을 어렵게 떠본다.

미역국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해독작용에 좋다는 미역국도 먹으라는 의사의 권유를 기억하게 만드는 냄새는 일반 미역국보다는 조금은 짭짤한 맛이 냄새에 배여 있다...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어 주방을 본다...

귀엽게 차려 입은... 혜주는 내가 사준 청바지와 흰색 티를 가볍게 매칭시켜 입고는 그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분홍색과 딸기무늬가 어울려 있는 처음 보는 앞치마가 내 눈에 담긴다. 벌써 다 끓였는지 한 숟가락 건저 '후후~'연신 불며 작은 입술에 넣는...

미묘한 표정으로 입에 넣고는 갑자기 생각 난 듯 간장을 한 숟가락 덜어 넣고는 다시 입에 넣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담는다. 그리고 날 깨우려는 듯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몸을 돌렸을 때... 우리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일어났어요?"

아직은 어색한 쇳소리가 나지막한 목소리에 섞여 있었지만,, 어제 일찍부터 잠에 든 우리였었던 게 혜주의 몸의 피로도 많이 풀었는지 어제보다는 훨씬 듣기 좋았다...

"응... 벌써 일어났어?"

"벌써는... 지금 8시 넘었어요... 저 늦었으니까... 이거 먹고 물에만 담가줘요..."

"응..."

'벌써 밥상을 다 차려놨구나...'

미역국을 그릇에 담아 내려놓더니 내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곤 내 엉덩이를 토닥이며 깔고 앉아 있는 이불에서 비켜서라고 다독인다... 나보다 11살이나 어린 여자가 말이다...크...

그래도 기분은 좋다...

먼지라도 날릴까봐 이불을 조심스럽게 개더니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가방에 책을 정리하곤 내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현관문을 나선다...

나가는 혜주의 가방을 쥐고 있는 왼손에는 어제 나와 나눠 낀 반지가 여전히 껴져있었다...

오전은 빈둥빈둥...

우선 준비된 서류에는 혜주의 사인만 받고 구청에 가서 신고만 하면 되는 간단한 절차만이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몇 번이고 확인을 하며 오전을 보낸다... 그리고 변호사와의 간단한 통화를 끝내고 샤워라도 하려고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이 시간에 전화 올 데라곤 보미, 삼구정도인데...

역시 삼구였다.

"어디냐? 왜 안 들어와?"

[나? 공항.]

"엥? 공항?"

[삼일만 있다가 돌아간다고 했잖아!]

"아...그랬나?"

[이 새끼는 하옇튼...야! 그리고 보미 씨랑 같이 일본에 들어가니까. 일주일동안 가게 잘 지켜라!]

"응?? 보미는 왜?"

[혜주가 얘기 안했냐?]

"그게 무슨 소리야?"

[크크크크... 혜주한테 물어봐라!...그럼 수고하고.]

"야!! 그렇게 갑자기 데려가면 당장 속옷 모델은 누굴 시키라고 그러는 건데?!!..."

[미친놈!.,. 니 마누라 시키던가!. 혜주가 마른 것처럼 보여도 사실 볼륨 짱 일거다. 함보고 싶긴한데. 크크...하여튼 니 마누라 생겼는데 모델 걱정은 왜 하는데!!]

"무.뭐?!! 우...우리 혜주를 뭘 시키라고?!!"

[울 혜주?,,,,몰라!! 알아서 해 새끼야!!...뚜.뚜~~,뚜~~~]

내말도 듣지 않고 자기말만 하곤 끊어버린...이미 끊어진 핸드폰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게 된다...

그새 둘이 눈이 마졌나?,,,보미의 난잡한 생활을 삼구가 모를 리 없는데...하긴 누가 누굴 탓하겠냐만은... 당장 가게를 어쩌란 건지...

그렇게 한동안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울린 벨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혜주다... 지금 점심시간인가보다...

"여, 여보세요?"

[왜 놀래요?]

"아니야...에휴... 정신없게 만드네..."

[왜요?]

"그럴 일이 있어... 밥 먹었어?"

[아뇨...그것보다... 아저씨...]

"응? 왜?"

[저...저기요.]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그게...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요?]

"저녁? 오늘은 외식할까?"

[...저기...]

"혜주답지 않게 왜 이리 뜸을 들일까?! 뭔데?"

[그게요... 수이하고...친구들이...]

"응? 수이가 왜?"

[이 결혼 반대라고...]

"무. 뭐?!!!!!"

갑작스러운 수이의 반대라는 말에 놀라게 된 나다...

물론 수이에게 한마디의 양해...근데 이런걸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건지 잠시 생각해보고,, 그래도 수이에겐 그 정도는 당연한 의리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역시 수이에게도 미리 얘기를 해줘야 했었는데... 잠시 수이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그래서? 수이가 뭐래?"

[저녁에... 오랜만에 만나서 재판을 연다고...]

"재...재판?? 큭... 그래서 죄목이 뭐라는데?"

[그게...]

"크크... 알았으니까... 학교 앞으로 가면 되는 거지?"

[예...]

"알았어..."

혜주의 사정을 뻔히 알고, 거기에 혜주하고의 일로 내 편이라는 수이의 말을 들었던 나다.

분명히 진심어린 반대가 아닌 심술을 부리는 게 확실하다는 생각에 우선 몸을 움직여 최대한 멋지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나다.

수이 혼자만이라고 하면 그냥 이대로라도 괜찮겠지만, 혜주의 말에서 친한 친구들이라는 대목으로 아직 졸업하지 않은 4학년생들의 예전 친구들이 분명이 같이 나올 거라는 생각에 나는 옷 방에 들어가 양복들을 고르기 시작한다.

캐주얼틱한 것보다는 차라리 나이에 맞는 세련된 양복이 먹혀 들 거라는 생각에 이리저리 옷을 고르며 넘기는데 문득 다크블루색 양복에 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예전에 입사할 때 사두고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안 입어본...

옷을 정하고는 나는 서둘러 이발소를 찾는다... 면도와.,,.이발을 하고 곧바로 옷을 챙겨 입고는 혜주가 다니는 이여대로 향하게 된다.

늦어 택시를 타고 정문에 도착했을 때... 이미 혜주 빼고 세 명의 여자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세 명이나 더 있는 걸 보게 된 나는 택시에서 내리질 못하고 잠시 앉아 있는데...

수이가 날 발견하곤 손을 흔들며 날 부른다...

어쩔 수 없이 택시에서 내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차도를 건넜고... 역시 수줍은 듯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혜주를 뒤로하고 세 명의 여자들에게 인사를 하게 된다.

다행인건... 내가 다니는 은행이라는 직장 덕에 여자를 여자로 돈을 돈으로 보지 않는 버릇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거의 셋이서 같이 합창을 하듯 인사를 하는... 이미 이 세 명의 여자들한테 내 기가 눌리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아저씨..."

"응... 미안 늦었지?"

"아니요...오늘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근데 아저씨! 어떻게 저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벌써 결혼이에요?!!!"

"미...미안...너무 경황이 없어서..."

"참나... 아무리 경황이 없다고 해도...어쩜 그럴 수 있는 건지...하여튼 우리 다 삐졌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오케이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오늘은 적금 깨자..."

"진짜죠?!!!! 가자 얘들아!!!"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여자 아이가 한명 있으면 쑥스러워하고,, 두 명 있으면 신기해하고,, 세 명은 모르겠고 네 명이 있으면,, 아줌마 화에 더 대담해 진다는 걸 말이다...

수이가 나와 혜주를 이끌고 들어간 곳은 고급 중화요리 집이다... 세트메뉴만... 존재하는 메뉴판을 내게 드미는 수이였고, 그걸 낚아채는 혜주다.

서로의 기싸움이...날 어색하게 웃음 짓게 만들었다.

혜주가...메뉴판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내가 봐도... 한 끼 식사로는 좀 과한 가장 싼 메뉴가 12만 원짜리 A세트메뉴다...

"수,,수이야... 우리 저기 돈까스집 가자... 거기 맛있다고 칭찬 많이 했잖아...너도 좋아..."

"어허!!~ 이것이 벌써 지 서방 지갑사정 양해하기 시작하네... 얘들아! 이년 주리를 틀어라!!~"

"수이야!"

정말로 혜주 옆에 앉아 있던 한 아이가 혜주의 팔을 잡기까지 한다.

꺅꺅거리며 손을 내젓는...역시 스물두 살끼리는 이러고 노는가 보다...

나는 메뉴판을 혜주의 손에서 빼들고는 손을 들어 점원을 부른다.

"여기 C세트로 오인분 주세요."

"꺄앗~~~~~아저씨 최고당~!!"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환호성...과는 달리 혜주가 내 허벅지를 꼬집어서 기뻐할 수만은 없는 나다.

서둘러 내손에 들려 있는 메뉴판을 뺏어서는 C세트의 가격을 확인한 혜주가 서둘러 다시 점원을 부르려다가 옆의 아가씨한테 저지를 당해 어쩔 수 없이 그냥 앉아 있게 된다. 티격태격하며 혜주와 옆의 아가씨가 다투고 있을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수이가 내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창피하다는 생각에 손을 테이블 아래로 천천히 옮기는데...쉬가 웃는다.

"풋~.,.크크..."

"..."

"아저씨 고마워요."

"으.응?? 뭐가?"

"우리 혜주 정말로 사랑해줘서요..."

"...고맙긴... 내가 훨씬 고맙지..."

"얘기는 대충 들었어요... 정말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죠?"

"..."

비록 옆 아이와 떠들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 혜주가 있는데 너무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수이에게 선뜻 대답하질 못하는 나다...당연히 사랑하니까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건데... 왜 그 쉬운걸 쉽게 얘길 못하는 나인지.

묵묵히 수이를 쳐다보고 있자 수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혜주한테 시선을 옮긴다.

혜주에게 ... 이런 친구가 있다는 걸 하늘에게 감사하게 되는 나다...

회전 테이블 위를 차례로 채워나가는 요리에 여자들은 신이 난 듯 환호성까지 지르며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혜주도...처음에는 아이들을 원망하듯 바라보다가는 점차 비워지는 그릇들을 보고는 아까운 듯 입에 우겨넣듯 음식을 비워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혜주의 이런 모습도 귀여워 보인다... 항상 남을 챙기며 남에게 희생만 하던 혜주가 지금은 친구들과 어울려 또래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장난도 치며 밥을 먹는 모습이...신선하면서도 너무 잘 어울려 보인다...

문득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던 혜주가 묵묵히 얘기를 들으며 음식을 먹고 있는 날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어준다.

그리곤 전채 요리로 먼저 나와 각자의 접시에서 거의 비워진 삭스핀의 남은 조각을 혜주는 안 먹고 있었는지 아이들의 시선을 살피곤 내게 덜어주며 미소를 지어준다.

이게 무슨 요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맛이 있다는 이유로 내게 주려고 남겨둔 게 분명해 보인다...

들킬까봐 서둘러 친구들에게 시선을 옮기는 혜주를 잠시 붙잡게 된다.

아까 전화통화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혜주의 목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어졌기도 한 나다.

"혹시... 삼구가 무슨 말 있었어?"

"삼구 아저씨요? 아뇨?"

"아니... 갑자기 보미를 왜 일본에 데려간 건지...그러면 우리 매장 모델은 어떻게 하라고..."

"..."

무엇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혜주의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어제...삼구 아저씨가 귓속말로 보미언니 만나러 간다고..."

"응? 보미를 만나러?"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야한 거 같아서 창피했어요..."

"무슨 말?"

"..."

"뭐라고 했는데?"

"오늘도 뽕따러 간다고..."

"뽕?...이 새끼..."

"..."

"아냐... 나쁜 말이니까 알려고 하지 마라..."

"근데요... 그럼 보미 언니 없으면 모델 또 구할 거예요?"

"글쎄... 그래야 되지 않을까?"

"...싫어요..."

"응? 뭐가?"

"아저씨가 다른 여자 몸 보는 거..."

"..."

"..."

답은 뻔했지만... 선뜻 누가 먼저 말을 꺼내냐가 문제였다... 물론... 남에게 혜주의 몸을 보여주는 건 정말 싫고 저번에 찍은 사진도 아직 내 컴퓨터 깊숙한 폴더 안에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게 다였지만... 나도 다른 여자를 찍으며 혜주에게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았기에 눈치만 살피게 된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다고해도 그걸 올릴 수 있을지도... 내 자신이 용납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어색해진 우리 분위기를 먼저 깬 건 수이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벌써 질투 나게 사랑싸움이냐며 우리를 연신 놀리기 시작한 수이였기에...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하게 된다.

아쉽지만... 혜주의 고집으로 식당 이상의 만남을 가질 수 없었다. 수이만 우리 집으로 향하게 되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식당에서 나와 각자의 길로 향했다.

뭐가 그리 재미난지... 택시 뒷자리에 앉아 잇는 수이와 혜주는 입을 다물지를 모른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 알았으면 그냥 편하게 입고 나올걸...이라는 생각으로 아쉬워하며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수이와 혜주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한참을 얘기꽃을 피우던 둘은 택시가 이미 집골목 진입로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계속 얘기를 하고 있었기에 내가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수다를 떠는...왜 여자들이 입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얘기를 하는지 절실하게 느끼는 상황이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수이가 말도 없이 갑자기 슈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나온 수이의 손에는 맥주와 안주...그리고 다른 손에는 휴지 한봉다리가 들려 있었다.

"그건 뭐야?"

"아저씨는... ...집들이겸 신혼집인데... 그래도 휴지라도 하나 가져다 줘야 잘 살죠...이게 일이 잘 술술 잘 풀리라고 휴지를 선물하는 거래요..."

"뭐? 하하하하하하"

혜주가 수이가 사온 맥주와 안주를 상에 놓고는 불편한 듯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맥주를 따던 수이가 일어나 예고도 없이 혜주가 들어간 방문을 연다.

"꺅!~~~~"

방안에서 들려오는 혜주의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일부러... 수이가 문을 느릿하게 닫는지...문이 천천히 닫힌다.

그 문사이로 혜주의 속옷차림을 보게 된다... 분홍색 앙증맞고 작은 팬티와...그리고 탐스럽고 새하얀 혜주의 커다란 두 가슴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팬티와 같은 색의 브래지어가 혜주의 몸에서 내 눈을 때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이 닫히는 그 짧은 시간동안... 혜주와 눈이 마주쳤고, 혜주는 눈을 감으며 몸을 가리듯 쪼그려 앉아 버렸다...

닫힌 문 뒤에서 들려오는 수이를 향한 혜주의 꾸중이...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렸어도 닫힌 문으로 혜주의 몸이 투과 되여 보이는 듯 잔상이 내 눈동자의 상에 맺혀있어 계속해서 문만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수이가 나오는데 수이도 청바지가 불편했는지 저번에 본 혜주의 짧은 반바지를 빌려 입고 나온다.

혜주는...

매일 즐겨 입는 분홍색 추리닝 바지와 그나마 윗도리는 새로 사서 처음 입는 흰색 티를 입고 나온다...

브래지어의 마감선이 그대로 티 위에 돌출이 되는 모습이... 얼굴과 나이는 저렇게 앳된데... 어떻게 저런 몸매를 가지고 있는 건지...

고개를 숙이고 고민 아닌 고민을 하는 내 귀에 수이의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주의 귀여운 협박에 난 수이 편을 들게 된다.

"어휴... 계집애는 이미 결혼까지 한 사이라면서...뭘 내외한다고 저렇게..."

"너!... 밤 길 조용히 해..."

"하하하하... 고맙다 수이야! 정말 고마워!"

"예?...호호호호호호호. 저 잘했죠!! 호호호"

"크크...그래..."

"씨... 둘 다 저승사자가 다가오는걸. 모르는구나..."

한참을 웃고 있는...

그러데 맥주를 두 잔이나 연신 비운 수이와 달리 이제는 거품이 다 사라져 싱겁게까지 보이는 맥주잔을 그대로 앞에 두고 쪼그리고 앉아 얘기를 하고 있는 혜주를 발견하게 된 나다.

"근데 혜주야... 넌 술 안 마셔?"

"엇!! 아저씨 혜주 주사 몰라요?"

"혜주가... 주사가 있어??"

"허~~ 유명한데... 진짜 한 번도 못 봤어요?"

"하. 하지마... 나 술 안 마셔... 목도 안 좋은데..."

"얘는~~ 너 한잔만 마시면 취하잖아! 이거 사기 결혼이야... 주사 있는 것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거 모르냐?!"

"무...무슨 말도 안 돼..."

"진짜라니까!! 그쵸 아저씨~?!"

윙크를 하며 내게 짜고 치는 고스톱을 원하는 수이였기에 나도 긍정을 하게 된다...사실 혜주가 주사가 있다는 말에 정말로 한번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진짜야? 그럼 주사 있는 여자랑 나 결혼하려는 거야?"

"그렇죠... 얼마나 심한데요... 맥주 한잔만 마셔도...아마 결혼하고 나서 후회할지도 몰라요..."

"내...내가 언제... 넌 귀엽다고 했잖아?!..."

"그거야...너 무안 안 주려고 그런 거지..."

",.,,,,,"

"어차피 한잔쯤은 목에도 괜찮잖아... 마셔봐! 여기 아저씨랑 나밖에 더 있냐?!! 그리고 아저씨도 알아야지...크크"

",,,,,,채...책임 져라...난 몰라..."

"크크크크"

맥주를 단숨에 한잔 들이킨다...

망설임도 없이 그냥 앞에 놓여 있는 김빠진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 혜주는 몇 분이 지나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른 거라곤 점점 숙여지는 고개를 제외하곤 전혀 달라진 것 없는 혜주였다.

"응? 뭐야? 주사도 없구만..."

"크크...아저씨 저 갈게요... 찐한 밤 보내세요... 저도 혜주 술마신 거 딱 한번밖에 못 봐서...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오늘 음식 값하고 혜주 사랑 해주시는거에 대한 보답으로도 넘치고 넘칠 거예요! 그럼 수고(?)하세요!!"

"뭐? 찌...찐한 밤? 그게 무슨 소리야?"

"하하하...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예요!. 저 아저씨 편 인거 아시죠!!"

수이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더니 집을 빠져 나갔다...

단 둘만이 남겨져 있는 거실에서 혜주는 여전히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아니...

숙인 고개를 조금씩 앞뒤로 움직인다...

얼굴을 쳐다보니... 이미 얼굴은 홍당무와 사과를 넘어 난로가 되어 있었다...

맥주 한잔인데... 몸속에 알코올 분해 능력이 제로인 듯 혜주는 빨개진 볼을 하곤 고개를 들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며 날 바라본다.

"괘. 괜찮아?"

"후우~~~~~~~~"

"혜주야?"

"아저씨... 왜 사람들은 이런 걸 마시는 걸까요?"

"으. 응??"

"이 거요... 술 말이에요... 어지럽기만 하고... 하나~~두 기분 안 좋은데...크크..."

말과는 달리 귀엽게 미소 짓는, 내 눈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참 이상해... 술...담배 뭐가 좋다고...휴후~~~"

연신 숨을 어렵게 내쉬는 혜주였기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럽다... 이미 혜주는 자신의 주량을 한참 넘은 듯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 같은 말까지 반복한다.

"수...술...담배가 좋아요? 이런 게 뭐가 좋다고...후~~"

"크크크크크크크크크..."

"엇!~~ 아저씨...웃었당..."

"울 혜주 진짜 귀엽네..."

"피~~...구엽긴!!...아저씨가 더 구여버요~~"

"응?? 나?"

"그럼요!~ 얼마나 구여븐데...아~~ 근데 나만 덥나..."

연신 반팔 흰색 티의 목 부위를 잡아당기며 정말로 땀까지 흘리고 있는 혜주다.

이런 주사를... 부릴 줄은 전혀 예상 못하고 있었는데... 혜주는 자꾸 티의 목을 잡아 아래로 내렸기에 몸까지 붉어져 모아진 가슴골 사이로 땀이 맺혀있는 것까지 내 눈에 보이게 된다. 너무도 하얗고 브래지어로 형태까지 잘 모아진 혜주의 가슴골은 보고 있는 내 시선을 또다시 돌릴 수 없도록 만들 만큼 섹시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

"안 더워요?...씨~ 나만 더운가..."

"서...선풍기라도 꺼낼까?"

"웅~~"

"응... 잠깐만..."

당장 사고라도 칠거 같은 분위기에... 나는 작은방으로 황급히 일어나 움직이게 된다... 옷걸이 밑에 넣어뒀던 선풍기를 꺼내선 커버를 벗겨 깨끗한지 확인하고 난후 거실로 들고 나온다.

나오며 혜주를 보는데...

바지를 벗어 던진 채... 그 앙증맞고 귀여운 분홍색의 팬티만을 하반신에 걸치고 양반다리로 앉아 있는 혜주를 보게 되었다...다행히(?) 아직 티는 벗지 않고... 가장 더운 바지만 벗은 모양이다.

바닥에 선풍기를 내려놓고...혜주의 모습에 얼이 빠진 채 가만히 서있는 난...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아랫도리에 힘을 주지 않기 위해 그대로 혜주의 모습이 아닌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게 된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욕구와 본능을 억제하는 게 이렇게 힘이 든 일인지...

하필 술을 먹고 저렇게 앉아 있는 혜주라니 말이다... 첫...경험이 될지 모르는 거사를 기억이 날지도 안날지도 모르는 다음 날 아침에 깨닫게 될 혜주를 생각하며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하는 나의 노력에도,, 혜주는 선풍기를 발견하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낑낑대며 움직여 와서는 콘센트도 꽂지 않아 작동하지 않는 선풍기의 버튼을 연신 누르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우씨... 야! 선풍기!!! 반항하지 말라고!!"

"...혜주야..."

"엥... 그래도 이것이~~"

우선 콘센트를 꽂아주자... 그제야 돌아가는 날개를 보곤 얼굴을 바짝 선풍기의 머리에 가져다 된다.

세차게 나오는 바람에 혜주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기 시작했고, 시원한 듯 혜주는 더 바짝 다가선다. 내 바로 앞에서 팬티만을 입고 양반다리로 앉아 선풍기를 부여잡고 있던 혜주가 갑자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아아아아아아아~~~~~~~~~~~~~~"

"..."

나도 어린 때 해봤던... 선풍기 날개에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가 울리는 현상을 신기하게 느꼈던,...그 장난을 혜주는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서 선풍기의 머리를 부여잡고는 하고 앉아 있다.

뭐가 재밌는지... 혼자 킥킥대며 또...바람을 불어넣기를 반복하는 혜주였기에... 나는 안전망이 없는 선풍기 날개에 혹여나 상처라도 입을까봐 혜주의 뒤로 돌아 어깨를 잡고 당긴다.

"그러다가 큰일 나... 조금 떨어져."

"훗... 아저씨도 해봐요...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알았으니까... 조금만 떨어져서..."

"피~~~"

겨우 선풍기에서 혜주를 때어놓고는 상을 앞에 두고,,,혜주의 정면이 아닌 주방을 바라보며 앉는다.

계속 보고 있게 되면...결국 난 혜주를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괜히 돌려 앉아 맥주를 벌컥거리며 마시기 시작한다...

그런 나를 가만히 날 바라보던 혜주가... 입을 연다.

"아저씨..."

"응?"

"정말로... 저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은 거죠?"

"..."

혜주의 눈을 바라보게 된다...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어느새 혜주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져 있다... 나를 바라보던 혜주는 잠시 눈을 감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향한 채 벽에 기댄다.

여전히 양반다리로 앉아 있어 혜주의 탄탄하면서도 얇은 허벅지와 교차한 종아리의 라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다시 시선을 돌리게 되었지만... 혜주의 걱정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기에 굳이 바라볼 필요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걱정마... 우선 동생들 일부터 해결하고 나서... 그 다음에... 정식으로 다시 프러포즈 할 테니까... 너무 걱정이나...혹시나 내가 무슨 짓...무슨 짓 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아니요..."

"..."

"너무 고마워서... 감사해서요... 아저씨가... 저번에 심청이 얘기 했잖아요..."

",..."

"솔직히 그땐 아저씨가 절 구해주는 게 아니고 돈으로 사려는 건 아닌지...그런 생각도 했었는데요... 이젠 정말 아녜요..."

"...정말 그런 거 아니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나였고, 다시 고개를 숙여 날 바라보던 혜주가 귀엽게 미소를 지어준다...

"심청이라면... 아마 울면서 물에 빠진 게 아닐 거예요... 어린 자신이 아빠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렇게...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빠라도 살릴 수 있는 심청 이였다면 웃으면서 물에 빠졌을 거예요."

"말도 안 돼!... 차라리 노력해서 돈을 벌고, 행복하게 같이 살면 되는 거지... 내가 말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난 그 심청전은 뿌리부터 잘못 된 거라고 생각해!..."

"피... 그럼 더 이상 동화가 아니잖아요..."

"..."

"후~~ 근데요... 술이란 게 자꾸 눈을 감게 만드는 거 같아요..."

말을 하면서... 스르륵~~ 벽을 따라 바닥으로 천천히 쓰러지는 혜주를 보고만 있게 된다. 빨리 가서 부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혜주의 부드럽게 쓰러지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기다는 생각을 하며 끝까지 바라보게 된 나다...

바닥에 머리를 맞대고 옆으로 누운 혜주는 길게 숨을 내쉬더니... 이내 잠에 빠진 듯 세근 거리기 시작한다.

사실... 저녁엔 혜주에게 혼인신고서에 사인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낀 나는 우선 쌔근대며 누워있는 혜주의 앞으로 걸어간다...

최대한 하반신에 시선을 안두기 위해 노력하며 혜주의 머리 밑으로 손을 밀어 넣고는... 멈칫하게 된다... 허벅지 아래로 손을 넣어야 하는데... 혜주의 허벅지에 감히 내가 손을 대도 되는 건지... 망설이다가... 결국 눈을 감고 밀어 넣는다. 탄탄하게 보였던 혜주의 허벅지살은 너무도 부드럽다...

하얀 살결과 어울리게 미끄러지듯 내 손이 허벅지 아래로 밀려들어가게 된다.

혜주를 번쩍 들어올린다...이렇게 가벼울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혜주를 들어 올리는데 허리에 무리도 없이 단번에 안아 올리게 된다.

그리곤 혜주의 방으로 걸어가게 된다. 천천히... 혹여나 혜주가 깰까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데... 발이 문틀에 부딪히며 혜주가 약간 눈을 뜬다...

"씨...아프잖아요..."

"응...미안."

날 올려다보는 혜주는 귀엽게 투정을 부리곤... 축 늘어졌던 손을 올려 내 목을 감는다...

취중에도 힘을 실어 감아왔기에 혜주의 상체가 내 몸에 밀착이 되며... 참고 있는 본능의 자물쇠가 끊어지기 일보직전으로 그 자리에 멈추게 되었다...

혜주를 내려놓는 순간... 아마도 난 짐승이 되어버릴거라는 생각에... 그대로 안고 서 있다.

애써... 모든 감각을 차단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고마워...사랑해요..."

내게 안긴 채... 혜주의 감은 눈에 눈물이 흘러나와 내 가슴을 적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혜주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은... 짐승으로 변해가는 날 오히려 진정시키며 죄책감과 함께 기쁨이라는 감정으로 혜주를 내려 보게 만들었다. 역시 눈가에 눈물이 고인 혜주는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랑이라는 단어를 번갈아 중얼거리듯 조금씩 입을 움직여 아주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천천히 혜주를 침대에 내려놓고,,, 이제는 잠에 빠져들었는지 중얼거림이 멈춘 혜주의 세근거리는 소리만 들으며 침대 옆에 앉아 있게 된다.

부드럽고 긴 생머리를 천천히 음미하듯 만지며 쓰다듬으니... 혜주가 약간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기분이 좋은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계속 만져달라는 듯 머리를 내 손에 기대며 약간의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날 향해 눕는다.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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