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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랑...variety-2 (12/19)

12... 사랑...variety-2

나도 혜주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당장이라도 심대리의 따귀를 날릴 줄 알았다.

그러나... 혜주는 손을 올리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는 심대리의 담배를 물고 있는 얼굴을 노려본다...그리곤 심대리의 옆에 주저앉듯 의자에 앉는다...

손을 뻗어선 심대리가 물고 있던 담배를 낚아채 뺏더니... 그대로 입에 문다...혜주가 이런 버릇없는 행동을 할 줄은 전혀 예상못했던 나였고... 아니... 버릇없는 행동은 아닐지도 모른다... 혜주에게는 이런 심대리의 행동조차 인간으로...엄마로 보이지 않을지도 몰랏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담배를 단숨에 있는 힘껏 빨아 마시는...

"켁...컥컥...콜록~~쿨럭~~콜럭...우...우웩..."

힘껏 한숨 들이키자마자 오바이트까지... 기침을 하면서도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그리곤 다시 빨아 마신 후... 또 기침과 구역질을 반복한다.

그러나 심대리는 태연하게 또 하나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고, 그걸 본 혜주는 또 다시 심대리의 입에서 담배를 빼내어선... 한 번에 두개피를 함께 입에 물고는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말리려 다가가자... 혜주는 연신 기침을하며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내게 손을 뻗어 오지 말라고 행동 한다.

심대리는 또 하나의 다른 담배를 꺼내 입에 물려다가... 혜주가 그것마저 뺏으려는 듯 손을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걸 보곤... 이내 다시 집어넣고는 천천히 흡연실에서 걸어 나간다.

심대리의 담배를 통째로 뺏으려하는 혜주였지만 기침을 연시 하며 쉽게 일어나질 못한다...

결국 담배를 재떨이에 끄려고 일어나다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했기에 내가 부축을 한다...

"지금 뭐하는 거야..."

"콜록...켁...아저씨도 꼭 담배 끊어요..."

"뭐,.?...난 왜?"

"켁켁...이런 거 왜 펴요... 폐가 다 썩겠구만..."

"..."

"우선 여기서 나가요... 어지러워서 도저히 안 되겠어요..."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내가 혜주를 부축하며 약간은 우스운 모습으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야외 식수대에서 연신 입을 행구며...뱉어내기를 반복하던 혜주가 겨우 진정이 되는지 병원으로 들어가 로비의 벤치에 앉는다...

그리곤...심대리에게 느꼈을 분노로 괜히 날 노려본다...

"왜?"

"아저씨도 나빠요..."

"..."

"정신이 있는거에요? 일산화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

"미안..."

"다시 담배피면 뽀뽀 안해줄거예요..."

"으.응?? 그럼 또 해줄 거야?"

"...몰라요!"

"큭..."

"아저씨... 근데 심대리님 담배 원래 폈어요?"

"아닐걸... 처음 보는 모습인데..."

벤치에 앉아 있는 혜주의 옆에 앉아 생각을 해본다.

역시 평소 심대리의 행동으로 봤을 때 담배를 핀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내게 커피를 퇴근전이나 출근했을 때 한잔을 가져다주던 심대리의 몸에선 담배냄새를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배운지 별로 안 됐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혜주에게 확답을 한다.

"안 폈어... 아마 최근에 배운건껄야..."

",...아기한테 안 좋을 텐데..."

"그만 말해... 지금 네 목이 더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여자가 쇠끓는 소리로 얘기를 계속 하냐?!"

"..."

생각에 잠겨 있던 혜주가 내 말을 듣고는...

골을 낸다... 입술을 귀엽게 찡그리며 내 옆구리를 꼬집으려다 말고 손을 내린다... 내 바로 옆에서 작고 긴 손가락을 보이며 손을 들었을 때...솔직히 꼬집어 주길 바랐는데...나는 혜주의 손을 보다가 눈을 보게 되었다. 시선이... 병원의 입구를 향하고 있었고 거기에 보미와 삼구가 들어오고 있었다.

날 보며 큰 목소리로 보미가 로비사람들에게 다 들으라는 듯 인사 대신 말을 했다.

"어!...자기 몸 좀 괜찮아졌어?!! 죽을 뻔 했다고 하더니..."

"..."

"뭐에요! 삼구오빠 어디서 뻥을!!"

"하하하하하하하하"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내게 오던 보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보미를 바라보는데...

"오호!~~~ 뭐야...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으.응?? 무슨 일이라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날 쳐다보고 있는 혜주 얼굴이 갑자기 빨간 사과처럼 변하니까 물어보는 거지!"

"응??"

그제야 난 혜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잘 익은 사과처럼... 혜주의 얼굴은 빨갛다 못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황급히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가리는 혜주였지만... 집요한 보미 년은 쉽게 물러나질 않고 꼬치꼬치 물어보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 둘이 벌써 한 거야? 그것도 병원에서??"

"아...아니에요!!"

"응?? 그럼?"

"아,,아무것도 아니에요...그, 그냥,..."

"그냥은~~!... 딱 보니까 어제 썸씽이 있었구먼... 요 계집애... 순진한 줄 알았더니 환자를!!..."

"어...언니!!"

"큭큭큭..."

"하하하하~.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웃으면서 내가 보미를 말려본다. 너무 짖궂은 보미라는걸 뻔히 알고 있는 나였기에 순진한 혜주를 위해 편을 들어주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엉뚱하게 혜주의 화살이 나에게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다. 아니... 화살이라기보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내 말이 혜주를 삐지게 했나보다... 단지 난 보미를 말리며 혜주를 도와주려고 한 것뿐인데...

"아...무 일도 아니었어요?"

"...으. 응??"

"어제 일은 아저씨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아...아니... 내 말은...보미가 자꾸..."

"헐...대박... 뭐야! 진짜 어제 무슨 일이 있긴 했구나?!"

보미가 정말로 놀라며 나와 혜주를 번갈아 본다...

혜주는 보미의 시선을 신경도 쓰지 않고 날 똑바로 바라보며 진실한 답을 원하는 듯 큰 눈동자를 깜빡거리기 일쑤였다.

이 상황을 재밌다 는 듯 뒤에서 쳐다보고 있는 삼구는... 이미 내 아군이 아니였다. 도움을 청하는 내 시선도 무시하며 단지 구경꾼으로서 나와 혜주 사이를 구경하는데 관심을 쏟고 있다...

야속한 놈...

"어쩌다가... 혜...혜주의 입술을..."

더 이상의 오해를 걷어버리기 위해 우선 말을 꺼내긴 했는데...더 이상 무슨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대놓고 어제 침대에서 죽다 살아온 주제에 혜주의 첫 키스를 뺏었다! 라고 광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그렇다고 가만히 있다면 혜주가 단단히 삐질 거 같다는 생각에 말을 뱉어놓고는 수습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다...

"헛!! 뽀뽀...아니지... 키스했어?!! 둘이서 키스 한 거야?!!"

"..."

"목소리가 너무 크다 보미야..."

보미의 말에 혜주는 시선을 걷으며 다시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서... 왜 따지는 거냐고...'

여자의 마음이란...아니 혜주의 마음이란 가끔가다 날 황당하게도...가슴 아리게도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수다스러운 보미가 혜주의 옆에 바짝 다가와 앉으며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뽀뽀만 한 거야? 다른건?? 와!~ 너 생각보다 대담하다... 환자한테 키스를 하다니...아니지...저 인간이 헌거겠지?... 울 순진한 혜주가...그런데 어땠어? 나야 저 인간하..."

나는 서둘러 보미의 입을 막아야 했다.

계속 얘기를 하는 보미는 분명히 나와의 관계를 설명하듯 얘기할게 뻔했고, 혜주에게 가뜩이나 바람둥이로 찍힌 상황해서 얘기를 이어간들 하나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보미야!...혜주 이제 겨우 말하기 시작했는데... 말 많이 하지 말라고 하더라, 의사가!..."

"아! 맞다... 혜주야... 얘기 들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참나... 실어증이라는 거 알아보니까 고치기도 어렵다고 하던데... 저 인간이 약이 된 거네..."

"자꾸... 저 인간 이 인간 할래?!"

"크크... 내 말이 틀렸나?...하여튼 개똥도 약으로 쓸데가 있다고 하더니..."

"무. 뭐?!!"

"큭큭큭..."

우리의 장난 섞인 대화에 혜주가 빨개진 얼굴을 부여잡은 양손사이로 미소를 지으며 웃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혜주가 삐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 보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 자기 어디가게?"

"병실에... 근데 너 자꾸 자기라고 부를래?"

"뭐라!! 참나...이제 임자 나타났다는 거냐?!!"

"그. 그게 아니고... 솔직히 혜주가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참나... 혜주야!... 네가 민호오빠 자기라고 부르는 게 싫어?"

"예!,,"

혜주가 당돌하게 단 한마디로 딱 잘라버린다... 나도 놀랐고, 보미는 더 당황한듯 혜주를 바라보며 입만 뻐금거린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겨우 말을 잇는 혜주가 고시다...

"지...진짜?! 내가 민호오빠를..."

"큭큭... 아니에요. 언니한테 자기라고 불리는 게 아저씨다워서 좋아요...민호오빠라고 부르니까 더 어색해요..."

"그치?!!! 맞지!! 놀랬잖아!!"

"하하하하..."

"참나..."

나는 입맛을 다시게 된다... 혜주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딘지 2% 부족한 여운을 남기고 다 함께 병실로 향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걸음 중에 문득 보미의 복장에 혜주가 물이라도 들까봐 괜한 딴죽을 걸게 되는 나였다.

"근데... 문병 오는 사람이 옷이 그게 뭐냐?"

"응? 뭐가?"

"치마는 왜 그렇게 짧아?! 거기에 목은 깊게 파였고... 쯧쯧..."

"참나... 먼 상관이래... 이제 남의 물건이..."

"나...남?..."

"그럼?! 나랑 또..."

"보...보미야!!"

본전도 못 건지고 서둘러 보미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런데...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자... 보미가 그 뾰족한 하이힐의 뒷굽으로 슬리퍼를 신고 있는 내 발등을 밟았다. 환자니까... 세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짜 많이 아팠다.

"악..."

"텟!~우~ 짜다... 손도 안 씻었지?!! 그리고 내가 무슨 말만 하려면 왜 말을 막는 건데!."

"나... 환자야... 아프잖아..."

"내가 못할 말 하는 것도 아니고...안되겠다... 혜주가 너무 순진하니까 자기가 과민반응 하는 거야!... 내가 적당히 물들여 줄께..."

"...뭐?!!"

정말로 끔찍한!...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보미에게 발등을 잡은 채 적자니 당황하며 화를 내려 하는데... 이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자라는 생각에 섣불리 말을 이어하지 못한다.

보미는 알다시피 성에 관해서는 너무 개방적이고, 거기에 문란하기까지 한...

그런 보미에게 혜주가 색이 든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사건은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혜주의 손을 잡고는 내 뒤로 숨겨버렸다.

"허!... 진짜 대박이다... 자기가 혜주 보호자냐?! 그러고 보니 잘 어울리네... 아빠처럼..."

"큭큭큭큭~~"

혜주가 내 등 뒤에서 웃는다...

"아. 아빠는 누가 누구 아빠야!..."

"왜?! 찔리냐?! 찔리겠지... 띠 동갑 여자 아이한테..."

"찔리긴...어휴... 말을 말자..."

"자기가 먼저 말을 꺼냈으면서... 아!! 혜주야 너 클럽 안 가봤지?! 나이트는?"

보미가 날 밀치며 내게 복수라도 하 듯 혜주에게 더 강하게 말을 한다 ...

혜주는 당황하며 잠시 날 바라보곤 보미에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대신 행동으로 말을 했다.

"쯧쯧쯧... 이렇게... 예쁜데... 혜주야 나랑 같이 클럽가자! 나도 너 덕 좀 보게,,, 말 나온 김에 오늘 갈까?"

"예??"

"음~ 옷이 좀 구리긴 하네...어!... 구리다기 보다는... 왜 이런걸 입고 다니냐?...다 헤졌잖아. 자기가 옷도 안 사줘??"

"..."

수줍게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을 잠시 확인하듯 바라본 혜주는 보미를 다시 바라보며 많은 의미가 담긴 듯 보이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젓는다.

나도 궁금했다... 옷을 그리 많이 사줬는데도... 평소에도 왜 굳이 저 추리닝을 고집하는지 말이다. 목이 아픈 혜주였지만 나도 이유를 묻게 된다.

"그래!... 혜주야 그건 버리자... 손목도 다 헤졌고,, 색도 좀 바랬잖아..."

날 보며 방금 전보다 더 고개를 크게 젓는...

"아저씨!... 이거 아저씨가 사준 거예요..."

"알아... 그래도 그렇게 색 바랜걸 입는 건... 내가 싫어서 그런 건데..."

"이거..."

말을 망설이며 이어가지 못하는 혜주의 얼굴을 우리 셋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부 쳐다보게 된다. 나야 그렇지만...왜 삼구까지 정말로 궁금해 하는 건지...

보미는 이 옷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정말로 궁금한 듯 혜주를 더 뚫어져라 쳐다보게 된다... 혜주가 가슴에 새겨져 있는, 이제는 낡아 페인팅도 군데군데 벗겨진 글씨를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자신의 속을 알아주지 못하는 나를 조금은 원망이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다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혜주가 날 밀치듯 비켜서 나가버렸다.

혜주가 삐졌다는 건 알겠는데... 왜 삐졌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혜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킥킥대며 보미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찌르며 놀린다.

"킥킥... 자기 이제 큰일 났다!. 저거 무슨 의미 있는 선물해준거 아니야?"

"아닌데...그냥 시장에서..."

'여자가 얼마나 섬세한데... 특히 혜주처럼 불쌍하게 자란 애는 하찮은 선물에도 다 의미를 담아둔단 말이야..."

"아냐!,...의미는 무슨... 그냥 시장에서 2만 원짜리 사준 건데..."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니까!...나야 다이아같은게 좋긴 하지만...큭...얼른 가서 풀어줘..."

혜주는 복도 끝 화장실로 향했기에 나도 뒤따라가게 된다. 보미와 삼구는 병실로 들어갔고 난 지금 화장실 바로 앞 복도에 기대어 혜주를 기다린다.

손을 씻었는지 양팔을 들어 흔들며 물기를 털어내고 나오던 혜주가 날 발견하고는 서둘러 뒷짐을 진다. 벽에 기댄 채 혜주의 행동하나하나를 놓치기 싫다는 듯 빤히 바라보게 된 날 발견한 혜주가 화장실 입구에서 그대로 멈칫 서 있다가 뒷짐을 진 채 내가 걸어온다...

"들어가자."

"... 아저씨..."

"응?"

고개를 돌려 병실로 들어가려는데...

혜주가 내 환자복의 끝단을 잡고 멈추게 한다.

"왜?"

"이 옷... 정말로 그냥 시장에서 보이 길래 사온 거예요?"

"옷? 그 추리닝?"

"...예."

"그...그렇다니까..."

"정말로 아무 의미 없이?"

"의미..."

의미라...

몇 개를 고르다가 색과 함께 가슴에 새겨진 글씨가 마음에 들어 무작정 구입하긴 한 건데... 혜주는 그럼 이 옷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한 변명거리를 찾아보지만... 마땅히 의미까지 부여 할 내 자신이 아니었던 지난 시간이었기에 혜주에게 선뜻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구나..."

쉰 목소리로...

혜주가 말을 끝내고는 날 지나쳐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

안타까운... 내 미숙함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잠시 복도에 서 있던 난 혜주의 뒤를 쫓아 병실로 들어가게 된다. 내 침대위에 보미가 걸터앉아서는... 이제 들어온 혜주에게 사탕발림으로 혜주를 놀리기 시작한 듯 혜주가 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여기서 한거야?"

"..."

"오!~~ 울 혜주 화끈한데... 혜주야... 저 인간 야한 거 무지 좋아하거든... 조심해라!"

",,,,"

내가 황급히 보미의 입을 막기 위해 병실로 들어가려던 걸 삼구가 내게 다가와 잠시 날 붙잡았다.

보미의 입을 막아야 되는데... 삼구의 조금은 진지한 표정에 어쩔 수 없이 복도의 의자에 앉게 되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깔깔거리며 보미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 들려와 마음을 급하게 만들어 안절부절 못하고 앉아 있는 내게 삼구가 편지봉투하나를 건넨다.

"이거 뭐냐?"

"뜯어보기 뭐해서 오늘 오전에 등기로 온 거 그냥 가져왔는데. 너 무슨 변호사랑 거래 하냐?"

"거래?? 아!! 줘봐!"

나는 서둘러 삼구의 손에서 두툼한 봉투를 낚아채선 열어본다.

'김정민 변호사사무실' 혜주 몰래 알아보며 진행하는 일이 이제서야 답이 왔나보다.

"뭔데?"

"혜주 일..."

"혜주?? 너 뒷조사 했냐?"

"아냐! 인마... 그냥 알아볼게 있어서 그렇지..."

"뭐?! 너 진짜 미쳤구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비밀스럽게 변호사까지 사서 뭘 알아보는 건데?!"

"..."

봉투 안에서 나온 여러 장의 서류를 천천히 훑어보며 삼구의 말을 씹고 있자. 삼구가 거칠게 내 손에 들려 있는 봉투를 빼앗아 갔다. 갑자기 이놈이 왜 이렇게 오버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장난칠 기분이 아니었기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삼구에게 편지를 돌려달라는 독촉을 한다.

"내 놔!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이게 뒷 조...사...응... 형제/자매 간 친권소송 판례?... 무...뭐야 이거?"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라니까... 얼른 줘."

내 말에도 삼구는 계속해서 내용을 훑어보고는 병실 입구를 잠시 쳐다보더니 내게 시선을 옮긴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

"혜주한테는 비밀로 하고...꼭 이다..."

"나야 뭐 굳이 말할 필요까지 있겠느냐만은... 이런 거 본인이 직접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혜주 민번하고 다 아니까...지금은 전부 자세히 알아보고... 철저히 대비만 해두고 있어... 괜히 기대심 줬다가 잘못되면...혜주 힘들어할까봐..."

"근데... 혜주가 부양능력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서류 보니까 두 명 다 미성년이던데..."

"나... 혜주랑 결...혼 할 거다..."

"무. 뭐?!!! 지, 진짜?!!! "

"응..."

"진짜!!!!!"

갑자기 입구에서 숨어 있던 보미가 튀어 나오며 '꺅꺅' 거린다...

깜짝 놀란 나와 삼구였지만... 언제부터 안에서 듣고 있었던 건지... 나와 삼구의 얘기를 다 들었는지 손을 안으로 뻗어 혜주를 잡아 당겨 복도로 나오게 한다...

나...날...

쳐다보는 얼굴이 빨개져 또 다시 빨간 사과가 되어버린 혜주의 시선에는 당혹감과 함께... 황당함...그리고 기대감(?)... 하여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표정이 담긴 채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내 고백과도 같은 둘만의 대화를 다 까발려지듯 둘이 듣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기에...

나도 얼굴이 같이 빨개졌다...

"보. 보미야!...혜주야 그게 아니고... 내 말은..."

설명을 하게 된다면...내가 혜주 몰래 벌였던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차마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혜주가 주춤거리며 몸을 돌리려 했다... 이 행동은 분명히 또 도망 가려한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나는 힘든 몸을 황급히 움직여 혜주의 손을 잡아챘다...

보미가... 놀란 한편 조롱을 한다...

"꺄~~~~ 와! 자기 멋지다... 참나... 나한테 혜주한테 하듯 반만 했어도... 당장 결혼해 줄 텐데..."

"넌 좀 조용히 해라...혜주 놀랐잖아!"

"놀라긴... 혜주 입구부터 자기 목소리 듣고는 화끈 거리는 얼굴 가린다고 얼마나 손이 바삐 움직이던지...근데... 싫지만은 않은지 미소가!~~~ 큭큭"

"..."

"혜주야...그게 아니고...어휴... 이걸 모라고 해야 하나..."

"..."

고개를 돌린 채 날 쳐다보지도 않던 혜주가... 작은 손등으로 작은 자신의 입을 가리곤 천천히 날 바라본다...

막상... 바로 앞에서 혜주의 얼굴을 보게 되니 내 입은 더 때기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느끼며 우선 혜주를 이끌고 삼구가 앉아 있는 의자로 이끌어 앉혔다.

"내가 결혼이라는 말을 꺼낸 건...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오해하지 말고..."

"사...정이요?"

"응...그러니까. 괜히 걱정하지 말고 내가 널 어떻게 한다는게 아니라니까..."

"걱정...제가 걱정해야 되는 거예요?"

"으.응??"

"아저씨는...개인 사정 때문에 결혼해요?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 그게 아니고..."

"그럼... 어제 저하고 한 뽀뽀도 사정 때문에 한 거예요?!"

내가 변명하는 것이 못마땅스러운지 눈망울이 흔들리는 혜주의 곧은 시선에... 차마 계속해서 혜주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보미도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잠시 입을 다물었고, 혜주는 문 뒤에서 기대하던 생각과는 달리 내 변명에 꼭 자신을 내가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눈물을 '꾹' 참으며 날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도저히... 혜주에게 더 이상의 숨김이나 거짓을 이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삼구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를 잡아 채 혜주에게 건넨다...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바라보던 혜주가...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한다...

빨개졌던 얼굴은 여전히 상태를 유지했지만... 혜주의 표정이 놀라움과 함께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서류를 보다가 날 바라본다...

여전히 쉰 쇳소리를 내면서... 내게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이게 뭐에요?"

"...그냥... 좀 알아봤어..."

"어. 언제요?"

"집에서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만 많이 하게 되더라고..."

서류를 들고 있는 혜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조금씩... 눈에 고이던 눈물이... 서류에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거... 해도 당장 동생들이랑 같이 살수 없는 거 잘 알아요... 그래도 고마워요 아저씨...그때 형사아저씨가 친권이 뭐라고 해서 막막했는데..."

"어휴... 어차피 다 까발려진 거..."

"..."

혜주의 감격스러워하던 표정이 현실을 직시했는지 점차 평소의 어딘지 모를 어둠을 담고 있는 얼굴로 돌아가기 시작했기에...

나는 모든 걸 얘기하게 된다. 혜주의 감격에 취한 표정을 본 직후라서 그런 진 모르겠지만... 다시 변해가는 혜주의 표정에 안타까움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기에 삼구와 보미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요 근래 혜주를 위해 내가 준비 했던 모든 일을 얘기하게 된다.

"내 오피스텔 옆에 방이 두 달 후에 만기된데... 우선 계약금 걸어놨어... 일이 잘 안된다면 계약금 날릴 생각을 하고 있긴 한데...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울 혜주가 어떤 아인데...잘 안 될 리가 없지..."

"예??"

"변호사랑 통화했는데... 네가 능력만 된다면 충분히 승소할 가능성이 높고, 거기에 거처까지 마련되어 있으면 더 확실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물론 대학생인 네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어렵게 유지하고 있다는 걸 사실 그대로 말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서류상으로라도 우리가 결혼한 걸로 되어있다면... 서류상으로 만!! 꼭 결혼한다는 게 아니고... 서류상으로 그렇게 남아 있다면 내가 능력이 되니까... 부양능력도 충분하고 네 친족에 대한 더 이상의 의견제시도 힘들 거라고 하더라고,...근데..."

"..."

혜주의 표정이 못내 진지하고 심각했다.

물론 혜주의 얼굴에 담긴 많은 생각을 나도 알 수 있었다...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제 겨우 스물 둘인데...

나 같은 노땅 아저씨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꼭 심청이처럼 자기 가족 살리려고 몸버리라는 거밖에는 더 되겠냐는 생각이 들어 말을 하던 나도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난... 정말로 혜주와 사랑을 나누고 싶고...거기에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변호사의 편법에 대한 방법을 설명 들으며 편법이 아닌 진심으로 수만번...수천만번 해봤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강압적이고 외퉁수적인 상황은 나도 껄끄럽고... 무엇보다 혜주에게 미안해 졌기에...이건 말 그대로 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는 강요가 아니겠냔 말이다...

더군다나... 어제 혜주의 첫 키스를 빼앗은...나 인데... 오늘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날 망설이게 만들었다.

잠시 혜주의 표정을 살피며 머뭇거리는 날 빤히 쳐다보는 혜주의 시선에 용기를 낸다.

"물론... 호적상에 남기는 하지만... 혜주 이제 겨우 스물둘이잖아... 동생들 학교만 졸업하면... 정말로... 내...내가 마음에 안 들면 서류상으로 이...이혼...하면 되는 거고..."

"이. 이혼이요??"

"응...결혼을 한 것처럼 서류가 만들어질 거라서... 이혼도...서류상으로는 남을 거야... 그래서 쉽게 얘기를 하지 못했어..."

"..."

"무...물론... 결혼이라는 게 얼마나 성스럽고...존귀한 단어인지는 알고 있고,, 무엇보다 혜주의 의사가...그리고 요즘은 이혼하는 커플도 많아져서 흠도 안 된데..."

"..."

혜주의 표정에 많은 갈등과 고뇌가 담겨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찌 보면 내 어이없는 결혼과...그리고 이혼이라는 말에 황당해 할 수도 있는데... 그만큼 혜주는 절박했나보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보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럼...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한 게 동생들 때문이었어?"

"..."

"응... 울 혜주 고생 정말 많았어... 그러니까 이제 행복...해 질 때도 됐잖아..."

"그럼... 자기는 혜주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동정심 때문에 결혼까지 생각한 거고?"

"아니야!!!!!!!!!!!!! 내가 무슨 어린애냐?!! 내 성격 몰라?!!!! 사랑하지도 않는데 귀찮게 이런거 다 조사하고 계약하고...결...혼..."

열변을 토하며 보미의 얼굴에 띤 미소를 보게 된 난...

'...낚였다'

내 얼굴이... 보미의 미소를 보게 된 후 창피함에 혜주보다 더 빨개진다...일산화탄소 중독 때보다... 더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먹먹해지는 듯 느꼈다... 11살 차이의 혜주 앞에서... 서른세 살의 내가 속내를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내 모습에 스스로 창피함을 느끼며 입을 닫은 채 혜주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오!~~~ 자기... 언제부터 그렇게 대담해졌냐!! 야! 장혜주... 결정 났네... 이렇게 지극정성인데... 결혼 안 해주면 또 자살 어쩌고 지롤 하겠네..."

"예?...!!"

내 말에 놀라며 날 바라보고 있었던 혜주가 보미의 말에 자신도 당황하게 된다...

나와 같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게 되는 혜주다... 아니... 나와는 다르게... 이제는 귀까지 빨개진 혜주는 무릎위에 얹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다...

차마... 혜주에게 프러포즈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내 눈은 혜주의 손만 보였다...

"크크크... 그럼 나머지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하고... 삼구오빠 우리 밥 먹으러 가요."

"그래..."

삼구가 동조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근데...

이놈이 일어나면서 내 정강이를 후려쳤다.

"윽..."

"행복한 새끼... 에잇!"

보미를 따라 가는 삼구...둘은 연신 웃으면서 뒤돌아 앉아 있는 우리를 훔쳐본다...

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난 조심스럽게 혜주에게 말을 이어갔다.

"아. 안되겠지... 아무리 서류상이라도..."

한참을 가만히 있던 혜주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을 한다.

"아저씨..."

"으...응?"

"자꾸 왜 서류상이라고 말을 해요?"

"그...그거야..."

"너한테 부담 주는 거 같고...거기에...진짜 이제 겨우 스물 둘이잖아... 나 같은 중년 변태가 감히 순수한 혜주한테 할 말이 따로 있지...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풋..."

고개를 숙인 채... 내 말을 듣던 혜주가 어깨를 들썩인다...

혹시 울고 있는 건가...라는 내 생각은... 들썩이는 어깨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심각한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니...

"큭큭...진짜 변태예요? 아저씨?"

"아. 아니!...그 건 아닌데..."

"하긴... 우리가 결혼하면 도둑분이라고 말을 듣겠네요..."

"크.,,..."

"근데..."

'우리가 결혼하면...' 별다른 의미없이 얘기했겠지만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다...

'우리' 아저씨와 혜주가 아닌 '우리'라는 자기와 타인을 통틀어 지칭하는 이 단순한 단어가... 혜주의 작고 귀여운 입에서 나오게 되자 전혀 달리 들리는 나였다...

웃음을 참던 혜주는 진정을 되찾으며 이제는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아까와는 달리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혜주의 시선은 너무 올곧아서 나 같은 겁쟁이가 똑바로 쳐다보기엔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만들 정도로 큰 눈망울에 잡티 하나 없다...

"아저씨 마음은 너무 감사한데요...근데요... 동생들은 제가 돈 모아서 준비한 방에 데려올 거예요..."

"뭐...? 언제?!! 십 년 후에? 그때면 이미 그 동생들 다 성인이야!... 집에서 다 나올 수 있다고... 지금 둘째가 고1이던데...지금이 가장 중요한때라고..."

"..."

현실을 깨우쳐 줄 필요가 있었기에... 난 조금은 직설적으로 말을 이어간다.

혜주의 고집을 꺾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걸 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갚아! 보자~... 지금 등록금에... 방값까지 하면... 3년은 내 밑에서 꼬박 일해야 겠네... 무보수로..."

"..."

"다. 당연히 생활비랑... 동생들...그리고 네 학비는...계속 빌려줄게... 그럼 4년이 조금...아니 5년은 넘게 내 밑에서 일해야겠지만..."

"..."

"그...그것도 내키지 않으면... 그...그냥... 서류상 와이프한테 투자했다고 치면 되지... 그런 거 있잖아 전도유망한 와이프 유학까지 보내는...그 뭐냐... 노후를 위해 투자하는 남...남편..."

"..."

"아...아니 꼭 내가 정말로 나중에 너한테 뭘 바라는 게 아니고... 마. 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

침묵으로 일괄하는 혜주였기에... 나는 횡설수설하며 끝내 혜주에게 약속하듯 서류상 결혼 후의 일을 못 박아 둔다...

"그...리고... 네 생활에 일절 관여 안 할게...저번처럼 어처구니없게 질...질투나 하는 일도 없을 거고...네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좋아하는 사람이..."

그러나 그 이후의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다.

생각하기도 싫은 얘기와...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서류상의 결혼이라고 해도 이런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겠냔 말이다...

혜주에게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선 말을 끝내야 하는데...

내가 머뭇거리며... 말을 계속 잇지 못하고 있을 때... 날 바라보는 혜주의 입에서 뜻밖의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바보..."

"..."

정말 바보처럼... 혜주의 바보라는 말에 어리버리 멍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다...

뭐라고... 말을 이어해야 하는데... 내가 왜 바보냐고...부정이라도 해야 하는데, 날 빤히 쳐다보고 있는 혜주의 직설적인 시선에 내던 용기가 깡그리 사라진다. 가만히... 혜주의 눈동자만 바라보는데...

혜주가 내 얼굴을 향해 천천히지만.,...정말로 순식간인 듯 느껴지는 긴 시간을 거쳐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눈을 감고는 내 입술을 가볍게 부딪치는 혜주의 입술은... 어색함과 혜주의 잘못된 다가오는 속도로 인해... 서로의 이빨이 각자의 입술 안에서 부딪히며 입술에 기분 좋은 고통을 유발했다...

자신도 느낀 통증에 깜짝 놀란 혜주가 황급히 얼굴을 때고는...손으로 입을 가린다...

다시 점점 빨개지는...당황하던 나는 혜주의 얼굴에 보며 아픈 입술도 잊은 채... 웃게 된다...미소라기 보단...폭소를 참으며 혜주의 쑥스럽지만 과감한 행동에도 웃음을 참지 못한 나였고 그런 나를 정말로 어렵게 낸 용기를 창피라는 단어로 바꿔 느끼고 있는지 얼굴이 빨개진 채...계속해서 웃고 있는 날 귀엽게 흘겨본다...

"씨~... 처...처처음이라서 그런거예...요... 웃지마요!"

"큭큭큭..."

"씨~~ 웃지 말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씨..."

귀엽게 '씨~'를 연발하던 혜주가 일어나선 병실로 도망가듯 종종걸음으로 황급히 들어가 모습을 감춰버렸다...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 혜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문득... 결과가 좋지 않다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혜주의 기분에 애써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알아야 할 건 아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병실로 쫓아 들어간다...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예쁜 얼굴의 큰 눈망울에 참고있던 눈물을 글썽이면서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혜주를 보게 된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침대에 노우며 혜주의 손을 훔쳐본다. 혜주의 손에 들려 있는 항상 만지작거리는 양말을 보게 되었다...구멍 난...검은색 양말의 모습에... 통장을 또 보고 있는 건지 궁금해진 나는 좀 더 고개를 들어 내려 보게 되었다...

내 시선을 의식한 혜주가... 애써 담담하게 여전히 양말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게요... 울 아빠 거예요..."

"..."

"아저씨도... 왜 통장을 이런 양말에 넣고 다니냐는 생각했었죠?"

"...응. 솔직히 좀..."

"수이도 처음엔 냄새나는 양말에 왜 소중한 통장을 넣고 다니냐고 했는데요...막...챙겨서 도망 나오는데 급하게 달랑 한쪽만 신은 양말이 이거더라고요... 우리 양말서랍에 같이 있었던,, 그래서... 통장이 없을 땐...그러니까 처음 아빠랑 엄마 묻어주기 전에는 여기에 가루 넣고다니다 보니까...어느새 제 부적이 됐어요."

"그랬구나..."

"예...근데...알바비 입금하고 나서 잠깐 여기에서 빼놨다가... 작...그 사람한테 뺏겼고요..."

"...근데 혜주야..."

"..."

"아까 그 서류 말이야...사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 변호사말대로...확률이 높을 뿐이지... 해봐야 아는 게 민사라고 하더라...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혜주가 날 보면서 고개를 크게 젓는다.

양말을 꼭 쥐면서 다 알고 있다는 듯 날 본다... 확실하게 말을 해줘야 하는데... 혜주의 이런 표정을 보면서는 도저히 말을 잇지 못하겠기에 나는 잠시 혜주의 손에 쥐어진 검은색 헤진 양말을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신경 써주신것만도 고마워요..."

"..."

혜주는 기대에 부풀었을 게 당연한데도...내게 이렇게 말을 한다.

"아저씨... 저 무작정 도망치듯 서울 오고 나서 요즘이 정말 사람하고 사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아요..."

"사람?..."

"사람 같은 사람이요..."

"...응..."

"그래서...이런 행복은 혼자 느끼면 안될거 같아서 심대리님도 도와주고 싶어요...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잖아요..."

"혜주야... 그건 아닐 거야..."

"예?"

"심대리는...우리가 안 보이는 게 좋을 거 같은데...자꾸 모습 보여주면서... 하옇튼 그렇지 않을까?... 심대리 혼자서 극복하는 게...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을 거 같고..."

"..."

"혜주 네가 계속해서 심대리를 돌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그리고 여기 병원 선생님한테 말해놓으려고, 상담이라도 받을 수 있게 말이야..."

"...상담..."

"응...그러니까... 더 이상 목 혹사시키지 말고... 혜주 넌 우리일이나 신경 써... 아니... 내 간호에 신경을 더 써라..."

"피~..."

입을 삐쭉 내밀며 내 어른스럽게 논리적인 말에 호응 아닌 호응을 해주는 혜주의 모습에... 삐쭉 내민 저 작고 귀여운 입술에 다시 한 번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변태일까?...

나도 모르게 시선을 혜주의 내민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혜주의 볼이 조금씩...

"?.왜...요?..."

"휴~... 나 진짜 이러다가 병나겠다..."

"?..."

"아무리 봐도... 혜주랑 결혼하면 나 질투장이에... 맨날 혜주 괴롭..."

"..."

날 흘겨보는 혜주...

내 얘기에 눈을 흘겨보면서도...결혼이라는 단어에도 부정을 보이지 않는 혜주였기에... 조금은 용기를 내어 말을 이어갔다...

"근데... 나 싫어하는...건... 아니지?"

"..."

"아무리 서류상이라고...근데 이렇게 강조하니까 더 이상하다."

"조금요..."

"응?..."

가만히 내 말만 듣던 혜주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조금'이라는 혜주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이번엔 내가 입을 열지 못하고 앉아 있다. 조금이란 게... 서류상을 강조한 내 대목에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너무 강조하니까 오히려 믿음이 가질 않는다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려 입을 여는데 내 담당의가 들어온다... 그의 뒤에 삼구와 보미도 같이 따라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밖에서 우리 얘기를 엿듣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우연히 같이 들어오는 건지 잠시 삼구를 보며 생각하는데 의사가 내 입을 벌려 목을 확인한다.

행운인지 어색한 불행인지...

입원한지 이틀 만에...퇴원해도 좋다는 판정을 받게 되었고, 잠시 짐을 챙기는 동안 혜주는 의사와 얘기를 하곤 약 30분 동안 우리를 기다리게 한다... 아마도 나처럼 퇴원 준비를 하고 있을 심대리를 만나러 다녀온 듯 약간은 심각한 표정의 얼굴을 하곤 병실로 들어와 다시 어색한 웃음으로 내 퇴원을 돕는다.

삼구의 부축(굳이 날 혜주와 떨어트리기 위해 부축을 해준다.)을 받으며 보미가 끌고 온 낯선 차에 몸을 실고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보미 차였지만... 뽑은 지 이틀 만에 왼쪽 범퍼를 해 먹고는 집에 주차해놓은걸 삼구가 끌고 왔다는 말에 잠시 웃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데...

이틀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거실이 난장판이다...

혜주는 예상했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고는 삼구와 신발장 옆에 세워두고는 서둘러 정리를 시작한다. 삼구의 만행인 걸 뻔히 알았지만, 나도 삼구 혼자 집에 놔둔 경험이 여러 번이기에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다만 혜주가 애써 청소한걸 이렇게 어지럽혀 다시 혜주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팔꿈치로 삼구의 옆구리를 때렸고, 머리를 긁적이며 그런 내 행동에 반항을 하지 않았다.

청소를 마친 혜주는 그제야 안방...그러니까 혜주가 자고, 머무는 곳으로 들어갔다...

"악!!"

혜주의 비명소리에 놀라 방문을 여는데...

옷장이 다 열려있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속옷과... 그리고 꺼내진 수건이 침대위에 널브러져 있다...

"무, 뭐야? 강도야??"

"..."

서둘러 통장부터 찾는 혜주...그리고 문지방에 서 있는 내 등 뒤에서 고개만 빼꼼히 올려 쳐다보던 삼구가 말을 한다.

"아!...미...미안... 수건 찾느라...원래 저기 있었는데... 안보여서..."

"...아저씨!!!"

삼구를 노려보는 눈빛은 나를 흘겨...아니 째려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혜주다. 정말로 변태를 쳐다보는 혜주의 눈빛에 삼구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내가 뭐!! 참나... 난 진짜 수건 찾으려고 서랍을 열었는데... 아니... 삐쩍 꼬라가지고 무슨 가슴만 있냐!! 뭔 브라가 그리 커!!"

"...아...아저씨... 저 아저씨 좀 혼내줘요!..."

"으.응?? 무...뭐? 삼구? 왜? 저 놈 원래 막 뒤지...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변명거리가 안되잖아!!"

"변명은 무슨...그리고 혜주 너 의사 말 못 들었어!! 당분간 셧터 마우스라잖아!! 셔터 마우쓰!!"

"..."

잠시... 삼구의 의견에 동조했다... 허리는 잘록 한데... 저번에 쇼핑몰에서 혜주의 사이즈를 재어주던 점원은 C컵 브라만 내게 보여줬기에... 그리고 어제 침대에서의 첫 키스에서 정말 살짝 이지만 팔을 최대한 세웠는데도 팔에 느껴진 감촉은... 아!~~ 또 생각나려고 한다...

"어휴...진짜 아저씨 친구만 아니면 콱 신고 해버리는건데..."

"신고하던가!! 내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그럼? 네가 뭐 할 건데! 우리 혜주 속옷이나 들쳐본 주제에 말은!..."

"에잇!! 드러버서... 그래 잘 먹고 잘살아라... 참나!! 나 나가서 잘난다!!"

"아...아저씨... 어디가요..."

"왜? 신고한다며!"

"그...그냥 하는 소리죠... 조금 있으면 저녁 드셔야..."

삼구를 붙잡으며 혜주가 말을 하는데... 삼구가 손을 입에 대곤 혜주에게 귓속말을 속삭인다...

무슨 말인지... 혜주의 얼굴이 빨갛게 변해가며 삼구의 옷을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낄낄대며 혜주에게 손 인사까지 하곤 삼구가 우리 둘만 남겨놓고는 집에서 나간다.

얼굴이 빨개진 혜주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옷 정리를 시작했고,, 나는 그런 혜주를 보고 있기도 민망해서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을 켜게 된다. 잠시 동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어느새 정리를 다 했는지 금세 방에서 나온 혜주가 내 뒤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내 머리맡에 속삭이듯 얘기를 한다.

허리를 들며 고개를 돌려 혜주를 바라보게 된 나는 잠시 분홍색 추리닝의 약간 벌려진 지퍼 틈으로 혜주의 모아진 가슴골을 바라보게 되었고, 내 얼굴을 내려 보던 혜주가 내 시선을 쫓아 옮기어 자신의 가슴을 바라본다...

흰색 반팔 티를 안에 입고 있었지만 역시 숨길 수 없는 볼륨감에 모아지는 큰 두개의 볼륨은...

황급히 지퍼를 목까진 올리곤 벌떡 일어선 혜주는 삼구를 노려보던 시선과는 달리 날 흘겨본다...

"벼...변태..."

"으... 아...아니...난..."

"왕... 변...태..."

"..."

"저녁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봤는데... 어딜 봐욧..."

"...응??"

"저녁이요!..."

"아!...아...아무거나..."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거든요...영양죽,호박죽,미음...켁...켁..."

말을 하던 혜주가 목이 아픈지 손으로 감싸 쥔다...

인상을 찡그리며... 조금은 익숙해진 쇳소리를 끊고는 연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혹시나... 또 피라도 나올까봐 난 서둘러 바로 앉아 기침을 하며 입을 막은 손을 바라보게 되었다.

잠시동안 탁한 기침을 뱉어낸 혜주가...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잠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시선을 맞춰준다...

"괜찮아?"

"..."

고개를 끄덕이는 혜주는 손을 내렸고, 다행히 피는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내 걱정이 담긴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목에 무리를 많이 한 혜주였기에 행여나 피아노의 맑은 소리와도 같은 혜주의 목소리를 다시는 못 들을 수 있을 거 같았기에 시선을 그런 거둘 수가 없었다.

"정말 괜찮아요..."

"괜찮긴... 이제부터 말하지 마... 그러다가 진짜 목 망가져..."

"...이상해요?"

"조금... 예전에 혜주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혜주가 귀엽게 입술을 꾹 다물고는 지퍼를 채우듯 일직선으로 집게손가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채우는 시늉을 한다...

그리곤 약간의 고개를 기웃거리며 미소지어준다...나에게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눈웃음으로...

"별로 밥 생각이 없는데... 우리 뭐 시켜 먹을까?"

"..."

입을 벌리려던 혜주가...다시 닫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곤 혜주표 전용노트를 꺼내와 선 글을 적기 시작했다.

-안 돼요! 양양죽 끓여 줄 테니 암말하지 말고 드세요!!!!

"크..."

날 거실에 남겨두곤 혜주는 물에 쌀을 풀어 불리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눕게 되었다. 뉴스를 보며 팔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있는데... 혜주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선 내 머리 아래로 손을 넣는다.

"응?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혜주는 손에 들고 온 귀이개를 들어 내게 보여준다...

"무. 뭐하게? 귀 파려고?"

고개를 젓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선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탁탁' 치며 내 머리를 얹으라는 듯 시늉을 한다.

그리곤 노트에 미리 적어놓은 글을 내게 보여준다.

-아저씨 아까 병원에서 귓밥이 막 분노하듯 어깨로 떨어진 거 모르시죠!

"귀...귓밥?? 아. 아니야!!... 난 내가 팔 테니까."

고개를 젓고는 내 귀를 잡고 잡아당기는... 일어나려던 나는 귀를 잡힌 채...억지로(?) 혜주의 여자치고는 약간은 딴딴한 무릎베개를 밸 수 있었다...

조용히 내 귀를 들여다보는 혜주는 감탄을 하며 살살 간지르듯 귓구멍에 귀이개를 넣어 파내기 시작했다. 평생처음...타인이 내 귀청소를 해주는 경험을 하게 된 나는 어색하고 창피함을 느끼게 되면서도... 은근하게 느껴지는 시원함과 함께 혜주의 허벅지의 느낌을 만끽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귀를 파주는 행위가 이렇게 사람을 무방비로 만드는지는 정말로 몰랐기에 혜주의 손놀림에 나도 모르게 미소도, 그리고 약간 찡그림도 얼굴에 드러내게 된다.

혜주는 익숙하게 내 귀청소를 하며 연신 구멍 속에 귀이개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고, 이런 상황에 삼구의 생각이 갑자기 나는 내 자신으로 웃음 짓게 되었다.

아마도 그놈은 음담패설로 이 부드럽고 안락한 분위기를 섹스럽게 바꿀 거라는 생각에 웃음 짓자, 혜주가 의아한 듯 날 내려다본다...

"아...아냐... 간지러워서..."

'피식~'

혜주의 콧방귀소리를 느끼며 기분 좋게 다시 눈을 감는데...

문제가 여기서 생길 줄은 전혀 예상 못한 나다. 한쪽을 다 팠는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린 혜주를 고개 돌려 보는데 손을 허공에 대고 원을 그리며 나보고 뒤집으라는 시늉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180도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는데...

내 정면에... 혜주의 신비롭고 정말로,,,, 갖고 싶은 허벅지 중심의 추리닝부분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아무 생각 없이 다시 혜주는 내 돌려진 귀를 파기 시작했지만, 방금 전 느끼던 부드러움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조금만 움직이면... 머리를 조금만 앞으로 나가면 바로 혜주의 사타구니 속으로 얼굴을 묻을 수 있을 거라는 야한 생각에... 침을 삼키며 눈을 감지 못하고 있는데... 혜주는 눈치도 못 채곤 계속해서 귀를 파고 있다...

얼굴이...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아주 미세하게...정말로 혜주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mm단위로 전진을 한다... 향기라도 맡고 싶다는 솔직한 내 심정으로...

콧구멍을 벌렁대며...변태처럼 혜주의 무릎위에서 애벌레 기어가듯 머리를 떨며 움직이는데...

'짝!~~'

혜주의 손이 내 어깨를 때렸다...

난 깜짝 놀라... 내 행동을 눈치 챘을 거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욕망에 굴복한 후회와... 반성을 하며 처분을 바라듯 혜주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데...

"간지러...조금만 파면 끝나니까 가만히 있어요..."

순진한 혜주는 내 움직임이 귀를 파서 간지럼에 그런 줄 알았나보다...

안도를 하며... 다시 눈을 뜬다...

그리곤 다시 감았다...

보고 있으려면... 다시 저 신비로운 꽃향기를 쫓아 날아드는 벌처럼 머리를 처박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눈을 감은 채... 아까 생각했던 말을 시작했다...

내 머릿속의 망상과 상상을 지우기 위해 말이다.

"근데... 삼구도 아저씨고,, 나도 아저씨면...호칭 좀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귀를 파던 혜주가 다 팠는지 손가락으로 마무리를 해주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그대로 내 머리에 손을 얹고는 가만히 있었기에 난 계속해서 혜주의 무릎베개를 할 수 있었다.

말이 없는 혜주였기에 나는 낑낑대며 머리를 움직여 바로 눕는다... 원래 본 목적이 다 끝난 지금 혜주에게서 떨어져 옆으로 눕던가 앉아야 했겠지만,, 아쉬움에 아무렇지 않은 듯 혜주의 무릎 위에서 머리를 바로 눕히는데 성공했다...

약간 들어 올린 고개로 편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그래도 이런 내 자세로 인해 혜주의 가슴 아래 언저리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잠시 내 행동에 간지러운 듯 내 머리에 얹은 손을 누르며 웃음을 참은 혜주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약간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는 혜주였기에...혜주의 가슴이 바로 내 얼굴 정면 위에 있게 된다...

"..."

남자가 여자의 무릎베개에 왜!!...환장하는지...비록 혜주가 고개를 들고 벽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어 얼굴을 보진 못하지만,, 그게 오히려 내겐 행운이다... 한참을 생각해도... 왜 답을 못 내는지...그냥 오빠라고 불러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애써 생각을 접으며 우선 낮에 있었던 일로 화재를 돌리는 나다.

"아까... 심대리 만나고 온 거야?"

"...예."

그제야 대답을 한다.

"왜? 만나지 말라니까... 우리 때문에 더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만나서 뭐라고 했어?...아!,,아니다 말하지 말라고 해놓고는 내가 말을 거네..."

"아니에요..."

혜주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얘기를 한다... 속삭이듯 얘기를 하는 혜주의 목소리는 훨씬 부드럽게 들려온다...비록 예전의 피아노 선율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그나마 쇳소리가 많이 줄어든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왔다. 혜주도 이런 목소리에 목이 덜 아픈지... 잠시 목을 잡고는 말을 이어갔다.

"언니보고,, 꼭 살라고 하고 왔어요... 의사한테 심리치료도 부탁드렸고요..."

"아! 그래서 아까 의사하고 얘기한 거야?"

"...예..."

"그렇구나...근데 그렇게 오지랖이 넓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내말대로 그냥 무시하며...?..."

갑자기 내 코를 꼬집듯 잡는 혜주는 고개를 숙여 내게 훈계하듯 눈을 좁게 만들어 흘기며 내려다본다...

근데 말이다... 여자의 무릎베개를 하고 있는 형태에서 고개까지 숙여 아래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면...그 큰 가슴이 어떻게 되겠냔 말이다... 반쯤... 내 얼굴을 가리는...

그제야 자신의 행동과...결정적으로 정말로 황홀함에 취한 내 표정에...나 자신도 느끼는 변태적인 표정을 본 혜주가 황급히 내 머리를 밀어 버린다...

'쿵~'

"윽!..."

"헉..."

고개가 꺾여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내 머리는 쿵 소리를 내며 바닥과 부딪히게 되었고, 놀란 혜주가 내 머리를 다시 감싸 잡고는 뒤통수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아프다...참나 병 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아예 '호~'라도 해주지..."

"호~~~"

"허...하하하하하"

정말로 어루만지던 뒤통수에 '호~'를 해준 혜주는 다시 바닥에 내 머리를 살포시 내려놓고는 작은 미소와 귀여운 눈흘김으로 쑥스러운 듯 일어나 주방으로 가선 불려놓은 쌀을 냄비에 옮겨 담고 불을 킨다.

이런 행복은... 아마 남자라면 정말로 부러워 할... 아니 한번은 꼭 느껴보고 싶은 소꿉장난과도 같은 사랑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서른세 살의 난 다시 팔로 머리를 괴고는 나이에 안맞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혜주의 옆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혜주는 가스불 앞에서 죽을 젓다말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더운지 잠시 냄비에 긴 나무 숟가락을 걸쳐놓고는 추리닝 상의의 지퍼에 손을 올려 내리기 시작한다. 중간까지 내리던 혜주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날 힐끔 쳐다본다... 훔쳐보던 시선을 황급히 돌려 텔레비젼으로 옮긴 나였고, 잠시 망설이던 혜주는 지퍼를 끝까지 내려 벗고는 마땅히 걸어놓을 곳이 없자 자신의 허리춤에 옷의 팔을 둘러 묶고는 다시 나무 숟가락으로 죽을 젓기 시작한다.

오른손으로 한참을 젓던 혜주가 흑설탕과 김가루를 꺼내기 위해 손을 바꿔 잡았고. 휘두르듯 젓는 숟가락으로 인해 큰 반팔티의 소매 아랫부분으로 혜주의 너무도 하얀 살결과 함께 브래지어의 라인이 몰래 훔쳐보고 있는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평소 혜주가 즐겨 입는 파스텔색의 브래지어가 아니다... 검은색의 밑라인과 회색의 윗라인이 묘하게 대칭되며 은근히 섹시하게 옆라인을 이루고 있는...

그러고보니... 왜 병원에서 단 한번도 추리닝 상의를 안벗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는 나다. 아마도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을때 삼구로 인해 황급히 익숙한 분홍색 추리닝을 입으며 속옷도 대충 아무거나 집어 들었나 보다. 약간은 두꺼운 면 반팔티였지만... 흰색의 티에 브래지어가 비췰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서둘러 입고 나온게 분명했다.

팔을 들어 저을때마다 조금씩 보이는 광채라도 내뿜고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틈새로 보이는 브래지어의 자태에... 나는 곧바로 혜주를 부른다...

"혜주야..."

혜주의 모습을 더이상 보고 있다가는...

애써 딴생각을 하며 시선을 거두려던 나는 정말로 서류만이라도 좋으니...아직 혜주의 의사를 제대로 못들은 나였기에 혜주를 내 사람으로 당장 만들고 싶다는 조바심에 낮에 말하던 결혼에 대해 성급하게 얘기를 꺼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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