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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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김...김대리... "

"예?..."

"너무 좋았어... 아~~ 나 이러다가 김대리 없으면 못살 거 같아... 어떡해요..."

숨을 몰아쉬며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땀이 마르기 시작한 내 등을 아직도 미세하게 숨을 헐떡이며 바라보던 유과장이 날 부른다.

알몸인 채로 이불을 덮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는... 빨개져 홍조를 띄고 있는 얼굴로 방금 전 격렬했던 섹스로 인한 여흥이 아직도 남아있는 채로... 내 허리를 연신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김대리... 사정 못했지? 혼자 좋았던 거 같아서 미안하게...왜 그래요? 내 몸에 만족 못했어요? 제 파트너는 감도 좋다고 몇 번이나 했는데..."

유과장 말대로 끝내 난 사정을 못했다.

유과장이 몸서리를 치며 오르가즘에 도달해선 잠시 실신까지 했을 정도로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음란하고 격정적인 섹스를 했는데도... 난 사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두 시간 전... 유과장과 가볍게 시작한 바에서의 음주는 날 조롱하는 듯 한 유과장의 도발에 의해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많이 굶주린 상태였고, 혜주로 인해 여자에 대한 불신이 쌓인 상황에서 유과장의 도발에 난 일부러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2시간 전...

나와 유과장은 유과장이 잘 알고 자주 간다는 BAR로 날 안내했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왔다.

조용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칵테일 한잔도 비싸 보일 거 같은 바에서의 유과장의 만남은 예상대로 시작부터 삐걱대기 시작한다.

"정말 다른 짓은 안한 거예요?"

"뭐가요?"

"심대리 한 테요. 한 몸 희생해서 회사를 위해 일 할 스타일은 절대 아닌데. 그럼 가볍게 몸으로??"

"... 몸이라뇨?"

"후후. 그냥요. 심대리가 사표를 내면서 연신 배를 잡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결혼이라도 약속했나요?"

"유과장님!"

"어멋... 화도 낼 줄 아시네."

"사람한테 농담 좀 가려서 하시죠."

"예?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나요? 비리를 저지른 일개 직원한테."

"유과장님한테는 일개 직원일지 모르지만. 저랑은 몇 년째 같이 일했고, 사정...개인 사정이 있는 여직원 입니다."

"사정이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것까진 알 필요 없으시잖아요... 일은 해결 됐으니까요."

"김대리님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

말을 하던 유과장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팔을 턱에 괴곤 노골적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본다.

사람의 버릇과 행동이란 가지각색이라고 하더니. 난 사람의 얼굴을 저렇게 대놓고 쳐다보는 걸 싫어한다. 그만큼 친분이 있는 사람도 없었고, 혜주처럼 보면 볼수록 끌리는 여자도 없었기에 굳이 쳐다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유과장은 언제나 사람을 대할 땐 항상 저렇게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듯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게 내가 유과장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일거다...

"자신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여자가 남자 얼굴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기 어렵지 않나요?"

"예?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

"제가 여자로 보이긴 하시나요?"

"그럼요."

"다행이내요. 전 또... 절 괴물처럼 생각하고 계신 줄 알았는데."

"괴물이라..."

"... 참나.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시기 에요?"

"글쎄요. 사람은 전부 내면에 괴물을 지니고 있지 않나요. 저도..."

"왜요? 김대리님은 아무 생각 없이 사시는 거 같은데."

"... 그랬죠..."

"그랬다...그럼 요즘은 고민이 있나 보내요?"

"제 사생활 입니다..."

"참나. 무슨 배우도 아니고. 하긴 란제리 사장님씩이나 되시니..."

"..."

"그런데. 저번에 저한테 하신 말이요. 정말인가요?"

"뭐가요?"

"일반 란제리 모델보다 제 몸매가 더 훌륭하다는 말이요."

"... 예..."

"혹시 아줌마 모델들 쓰세요? 사진보니까... 몸매가 정말 예쁘던데."

"만든 몸이니까요. 전 만든 몸은 별로 좋아하질 않습니다."

"...만든 몸이라면?..."

"그런 게 있어요..."

"하옇튼 제가 그 모델들보다 뒤 떨어지진 않는다는 말이죠?"

"그게 뭐가 중요하죠? 어차피 상관없는 제 의견인데..."

"상관이 없긴요... 김대리님은 남자 아닌가요?."

"뜻밖이내요... 유과장님은 남자 시선같은건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저도. 여자인걸요."

"..."

날 유혹하는 듯 한 유과장의 말에 괜한 오해를 할 거 같다는 생각에 이 시간을 끝내야 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요즘 삶이 힘들어 죽겠는데. 이 득 될 거 없는 여자와 같이 있기도 싫었고 말이다. 내가 꺼내놓고 한대도 피지 않은 담배를 들어 양복에 집어넣으려고 했을 때, 유과장이 담배를 하나 달라는 듯 내게 손을 내민다.

잠깐,,, 고민하게 되었다. 여자가 담배를 피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유과장의 행동에 섣불리 담배를 내 놓았다가 또 괜한 오해를 일으킬까봐 잠시 주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과장은 확실히 담배를 달라는 손동작을 내게 한다.

집어넣으려던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유과장에게 건네주었고, 라이터를 테이블에서 밀어 준다.

"후~~~ 김대리님도 담배 피는 여자 싫어하시나요?"

"별로요... 제가 담배를 피는데 누구한테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고..."

"진짜 개인주의시내요."

"그게 왜 개인주의죠? 오히려 남녀평등 아닌가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내 여자 아니니까, 담배를 피건 말건 상관없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

"뭐. 저도 상관없지만...그런데... 정말로 진급할 생각 없으세요?"

"예? 왜요?"

"저 돌아가면 과장자리 비잖아요. 본사로 돌아가면서 추천해드리고 갈 수 있을 텐데."

"필요 없습니다. 지금이 전 더 편해요."

"참나. 다른 사람들은 진급하려고 눈에 불을 켜는데. 진짜 특이하시네요."

"..."

"혹시... 잠자리에서도 그렇게 우유부단하세요?"

"예??"

갑작스러운 유과장의 말에 마시려고 들던 맥주병을 놓칠 뻔했다. 이건 자존심이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과장님은 모든 게 쉬우신가요?"

"뭐가요?"

"잠자리라뇨. 제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세요?"

"글쎄요. 그냥 김대리님이라면 아무 말을 해도 새어나갈 거 같지 않아서요."

"..."

"아니에요?"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 얘기하는 거 싫어합니다."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한번 할까요?"

"예??"

"솔직히 요즘 거리도 그렇고 일 때문에 파트너를 근 한 달 동안 만나질 못했더니 땡기기도 하고요."

"..."

"왜요? 자신 없으세요?"

"그 자신이라는 게 뭐죠?"

"예?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글쎄요. 남자들 그런 거 많잖아요. 자격지심이나. 자기비하나. 또 남들하고 비교해보기도 하고..."

"결혼을 못하신 겁니까? 안하신 겁니까?"

"꼭. 남자들은 섹스 얘기 나오면 결혼부터 말하더라... 그래서 김대리님은 어느 쪽인데요?"

"아무 쪽도 아닙니다. 그냥 남들만큼은 되나보더군요."

"그 말은... 김대리님도 소문처럼 골방에서 혼자 해결하신다는 건 아닌가보네요?"

"..."

"결혼도 안했고, 여자 친구도 없다고 하셨으니... 가죠. 시간 버리지 말고."

"..."

테이블위에 익숙한 듯 돈을 올려놓고는 가방을 챙겨 유과장이 걸어 나간다. 아마도 유과장은 남자에 대한 환상이 없는 것인 듯 보였고, 너무 닳고 닳은 여자라고 하기엔 행동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묻어 있었기에 차라리 남자를 정복하는 재미를 가진 여자처럼 보였다.

내겐 탈출구가 필요했지만. 이런 것은 아니었기에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혜주가 나로 인해 상처입고 떠나간 지금. 이걸 기회라고 여자를 바로 안기에는 난 너무 책임의식이 강한 편이었다. 내가 나오질 않자 돌아온 유과장의 말만 없었다면. 난 그냥 그대로 계속 앉아 있었을 것이다.

앉아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무는데. 유과장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곤 내 입에 물려 있는 담배를 낚아채듯 가져가 다시 깊게 빨아드리며 얘기를 했다.

"왜요? 겁나요? 혹시 문제 있어서 여자 친구 못 사귀는 거예요?"

"..."

"그런 거라면 말씀하세요. 조용히 물러가 드릴게요."

"아닙니다. 가시죠."

보미와도 그랬지만...

유과장은 보미보다도 더 내 몸에 만족하며 신음을 뱉어냈다. 아마도 보미의 말대로 내 자지의 좀 다른 기울어짐이 여자들에게는 황홀감을 선물하는 듯 느껴졌다.

모텔에 들어서자 유과장은 먼저 씻지도 않고 날 범하듯 덮쳐왔고, 보미로 인해 단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유과장에게 고스란히 당했을 것이다. 이런데서 보미의 도움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정도로... 나는 능숙하게 유과장의 격렬한 몸짓을 흘려보내 듯 오히려 유도하는 행동으로 어느새 유과장이 내 밑에 깔리는 형태가 되어 침대에 눕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평소대로라면 이런 상태에서 금세 발기해 여자의 구멍을 찾았을 내 자지가... 쉽게 발기도. 반응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결국 난 유과장의 몸을 입과 손으로 충분히 달궈놓고서야 반응을 시작했고, 이런 내 행동은 오히려 유과장에게 애태움으로 전해져 내 물건을 꺼내놓자마자 유과장이 침을 삼키며 바라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유과장의 몸은 훌륭했다. 30대 초반의 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단련되어 있었다. 혜주만큼은 아니었지만 잘 잡힌 가슴과 함께 잘 어울리는 허리라인과 무엇보다 풍만한 엉덩이는 30대의 많은 경험을 말해주고 있는 듯 보였다. 유과장의 보지 또한 보미만큼 맛있는 정도의 명기로 여겨질 만큼 많은 남자들을 경험한 듯... 내 물건을 쉽게 받아들였고, 내 리듬에 능숙하게 허리를 움직여 즐기기 시작했다.

도중에 유과장의 성격대로 여성상의체위로 바뀌기도 했지만. 그게 오히려 내 자지의 크기유지에 방해를 한다는 생각에 몇 분 안 되어 다시 체위를 바꿨고, 난 격렬하게 허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벌써 사정을 했어야 하는 타이밍이 지났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유과장이 성적인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충분히 아름다운 몸매에 저돌적이기까지 한 몸짓은 남자의 쾌감을 잘 이끌어낼 여자였지만... 난 쉽게 쾌감을 느낄 수 없었다.

끝내. 내 격렬한 몸짓에 유과장이 먼저 널브러지듯 경련을 하며 한 번의 오르가즘을 느끼게 되었고, 아직 사정전인 난...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였기에 유과장은 그대로 쾌감을 거듭해서 이어가며 작게 떨던 몸을 손까지 뻗으며 날 감싸 안고는 액체를 분출하듯 침대를 적시곤 기절하듯 쓰러진다.그런 유과장으로 인해... 난 사정을 하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었다...

아마도...

혜주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아니. 혜주의 영향 때문이다... 비록 상대는 다르지만 욕구불만으로 인한 그토록 원하던 여자와의 성관계였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머릿속 깊은 어딘가에서 사정을 허락하지 않는 듯 느껴졌다.

난... 조강지처를 버리고 바람을 피울 위인이 되지 못한듯하다. 날 떠난 혜주였지만...내가 쫓아낸 혜주였지만... 내 마음속엔 언제부턴가 혜주가 자리 잡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혜주는 나대신 젊은... 자신 또래의 친구에게 첫 경험을 선물했고, 그것도 그 선물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공간에서 했다는 충격을 곱새기며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피기 시작했다.

"근데... 이정도면 여자가 달라붙어도 진작 달라 붙었을 텐데... 왜 여친 없어요?"

"...글쎄요..."

"혹시 그것도 성격이에요?"

"아마도요..."

"혹시 사랑을 두려워해요?"

"사랑이요?. 유과장님은요? 왜 결혼안하세요?"

"저야 혼기를 놓쳤죠... 그렇다고 저같이 일에 매진하는 스타일도 아니잖아요..."

"저희 이런 얘기 그만하죠."

"...정말로 사생활이 철저하신건가... 아니면 숨기는 게 많은 건가?"

"전자 쪽으로 생각하세요... 그것보다."

나는 다시 한 번 유과장의 몸을 향해 다가갔다.

혜주를 더 이상 가슴속에 묻어두며 살기엔... 난 나이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한 듯 날 바라보는 유과장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천천히 다시 유과장의 입구부터 자극시키기 시작한다. 사정을 해야만 한다...

더 이상 한참 어린 혜주의 품에서, 그리고 이제는 혜주의 빈 공간으로 어리광을 부릴 수 없는 나였기에 혜주의 기억을 잊으려 남자로서 최저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기 시작했다.

오르가즘을 두 번이나 느낀 유과장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선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정말 말대로 오랜만에 회포를 풀어서인지 코까지 골고 있다... 하지만. 난 끝내 사정을 하지 못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지루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정도 하지 못하고 벌떡이던 자지도 작아지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는 유과장을 남겨두고... 난 그대로 모텔을 빠져나오게 된다...

술이 고팠다...

그대로 집이 아닌 매장 근처의 야외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긴 난 오뎅국물 달랑 하나 시켜놓고 소주를 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이런 공허함은... 차라리 혜주를 붙잡는 게 괴로움이 덜 할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만. 아마 지금쯤 혜주는 그 남자친구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비록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도... 남녀 간의 사랑이라면 어떠한 형태로도 일은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로맨티스적인...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소주병이 한 병에서 두병으로, 세병으로 이어졌고, 내 주량을 한참 넘어선 다섯 병째를 마시던 나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싱겁게 웃고는 돈을 지불한다.

잔돈도 받지 않고 비틀거리며 매장으로 향했다.

혜주가 사라진 적막함마저 느껴지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은지 벌써 며칠째 인지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퇴근하고 매장보다 집으로 먼저가선... 꺼진 불을 확인하고 이뤄지지 않는 작은 기대감을 접으며 집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매장으로 와서 잠을 자기 일쑤였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매장의 문을 여는데... 분명히 잠겨 있어야 할 매장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취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혜주가...

나는 서둘러 문을 열고 불을 켰고, 소파에 이불을 덮고 있는 여자의 형체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어렵게... 발걸음을 때어 천천히 걸어간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천천히 손을 올려 이불을 잡았다...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사람의 형체를 이루고 있는 이불을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옆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혜...혜주야..."

긴 머리카락을 보게 된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갈구하던 이름을 뱉어내게 되었다...

"음~... 자...자기 뭐하다가 이제 오냐?!"

보미였다...

이불을 젖히고 처음 모습을 봤을 때... 난 정말로 혜주인줄 알았다... 하지만... 혜주와는 전혀 다른 음성이 들려왔고,, 혜주로 보였던 얼굴은 금세 보미로 바뀌어 있었다.

"크크크..."

기대함이 많으면 실망도 많다고 하던가...그 짧은 찰나에 내 공허함은 가슴을 뚫듯 구멍을 냈고,,,이제야 몸에 힘이 빠져서... 나는 그대로 웃으며 주저앉게 된다...

"참나... 자~~알 한다... 그 년이지? 술 먹고 들어와서 날 그년 이름으로 부르냐?!!"

"여긴... 웬일이야?"

"자기 오늘 수요일이야!!. 너무한 거 아니야? 전화라도 주던가..."

"벌써 수요일인가?"

"그래!! 자기 무슨 일 있어? 또 그년하고 무슨 일 있는 거야?"

"그년이라고 부르지 좀 말아라...왜 그년이냐..."

"뭐?? 기가 막혀서..."

"뭐가..."

"심미오은 누구야?! 어떤 사인데"

"심대리? 심대리는 왜?"

"그 여자도 아까 한참을 기다리다가 집에 돌아갔어!... 정신 좀 차려..."

"..."

"이 남자 저 남자 만난다고 나 욕했으면서, 자기 너무한 거 아니야?"

"크크...그러게... 내가 왜 이러냐..."

"참나... 지금 누구한테 묻는 건데?"

"..."

"어휴~~ 술 냄새... 또 어디서 이렇게 푸고 온 거야!?"

날 부축하던 보미는 내 몸에 배어 있는 술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며 날 소파에 어렵게 앉힌다. 보미의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한다... 술김에... 아직 풀지 못한 욕구를 보미에게 풀려는 듯 날 부축하는 보미의 허리를 잡아채어 당기며 보미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억지로 키스를 하던 날 밀어 뿌리치고는 보미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귀싸대기라도 날아올 줄 알았는데...

"자기... 정말 최저에...폐인이다. 인생 끝났냐?!! 왜 이러는데?!!"

"..."

"내가 아무리 막나가도. 자기처럼 추잡한 짓은 안 해!! 얼른 잠이나 퍼자!"

보미는 말을 하며... 이불을 던져주곤 나가버렸다.

추잡한 짓...

이런 추잡한 짓을 더 이상 하진 않았지만...내 생활이 엉망인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런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마지못해 회사를 나갔고. 마지못해 일을 했다... 상부의 눈초리는 심대리건으로 인해 관대할 정도로 고맙게도 잠시 날 나둬 줬다... 그러나 그런 배려 심마저 내가 어떤 놈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알바 생을 한명 더 두고 거의 보미에게 일을 맡기다시피 했고, 고맙게도 보미는 투덜대면서도 인터넷쇼핑몰을 잘 이끌어나갔다...

미운정도 정이라고 했던가?,. 연신 정신 차리라며 날 구박하고 때리는 보미였지만 알바생과 그럭저럭 매출을 이어나가는 보미가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한 달째 되던 날... 유과장이 본사로 복귀하게 된다.

그렇게 모텔에서 유과장을 내버려 두고 나 혼자 나온 것에 대해 매너 없다는 소리를 연신 들었지만... 꾸중과 함께 그 후로도 유과장의 유혹은 계속 이어진 건 두말할 필요 없었다. 그 한 번의 아니... 두 번의 섹스가 유과장에겐 무척 만족스러웠는지 주말의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내게 문자를 보내기 일쑤였지만... 허무한 섹스만큼 사람을 공허하게 만드는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였기에... 차마 답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스스로 내적으로도 두려워하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만약 한 번 더 섹스를 했는데도 사정을 못한다면, 아마 난 무너질 거 같다는 생각에 무서워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고 찌질한지... 요즘 처음 깨닫고 있는 중이다...

매일 저녁잠도 자지 않고 술만 먹어서인지...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날 거의 매일 지켜보는 보미가 느낄 정도로 수척해진 얼굴과 더불어 내 몸무게도 많이 빠졌다... 이게 무슨 사춘기도 아니고... 사랑앓이에 몸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지... 나도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사건은... 보미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촬영을 위해 세트를 준비하고 사진기를 들어 보미 앞에 섰는데... 보미가 꼭 사신처럼 보인다는 말에 허탈한 미소를 짓던 내 시야가 어지럽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잠시의 현기증이 덮쳐왔고... 내 부업의 밥줄인 사진기까지 땅에 떨어트린 나는 어렵게 의자를 잡으며 손으로 몸을 지탱해보지만... 이내 바닥이 내 눈 바로 앞에 보여지게 되었다.

현기증에 의한 실신은 처음이었다...

점차 시야가 어두워지며 모든 소리가 내 귀에서 차단된 듯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적막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내 눈을 가린 듯,,아니 강렬한 빛에 의해 홍채가 마비된 듯 앞이 보이질 않게 되었다. 그리고 중력의 힘은 내 머리부터 잡아당기듯 땅으로 내 몸을 쓰러지게 했고, 가슴과 턱부터 충격이 전해진다... 그러나 아픔은 없었다.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멀리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가 귀에 멍하게 울릴 뿐... 고통도 없이 그냥 바닥에 마주하여 쓰러질 뿐이었다... 몸을 보호하듯 고통으로부터 신경을 차단하는 몸의 기능은 오히려 쓰러지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걸 처음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갑자기 의식을 잃었을 때... 그 행해지는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것만큼 끔직한 건 없을 것이다...

잠깐 눈을 떴을 때... 낯선 하얀색 조명이 시선을 더 어지럽혔고, 팔에 꽂혀있는 거추장스럽고 이질감 느껴지는 바늘에 약간의 통증이 전해졌다.

그리고...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말 오랜만에 약에 취했는지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말소리에 눈을 잠깐씩 뜨게 된 나는 심대리를 보게 되었고, 보미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감긴 눈은 잠시 후의 또 다른 목소리에 떠진다.

유과장이다... 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유과장의 시선도 귀찮게 느껴졌기에... 또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혜주가 나타났다... 꿈이 분명하다...

따뜻한 바람에 나풀거리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고생은 다 잊었다는 듯 밝은 얼굴로 내게 양팔을 벌려 안아달라고 말을 한다... 꼭 천사가 날 부르는 것처럼 들려왔기에...

나는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꼭 단편영화처럼 사람들의 모습을 회상하듯 프레임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스쳐지나 보낸 난 매일 듣던 것이 아닌 낯선 목소리에 눈을 뜬다...

수이다...혜주의 친구 수이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아까 꿈속에서 내 앞에 나타난 혜주가 현실인줄 착각하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역시 내 환상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수이는 미소도 없이 날 쳐다보고만 있다. 오히려 원망 섞인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만 있는다...

난 그제야 힘겹게 정신을 차리려 노력 했다...혜주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수이기 때문이다...

"여긴 어떻게 왔어...?"

"보미 언니가 연락해서요..."

"어... 일어났네... 참나 혜주년 친구 오니까 일어났구나..."

수이가 보미를 한번 노려본다. 보미는 혀를 낼름거리며 웃고는 내 얼굴을 닦아주려는지 수건을 적셔 온 모양이다...

얼마나 잤는지... 머리가 멍하다.

"얼마나 잔거야?"

"글쎄. 날짜만으로는 이틀째인데..."

"이틀?? 근데... 수이씨한테는 왜 전화한 거야...수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고??"

"몰라서 물어? 참나. 자기 핸드폰 전화번호에 달랑 6개 저장돼있던데... 그중 여자는 나 빼고 수이 씨밖에 없고,,, 혹시 혜주라는 여자 아는가? 해서 수이씨 한태 전화했다... 기절해서 작정한 듯 계속 혜주 이름만 부르더구먼. 자기 이제 큰일이다. 심미오라는 여자하고... 그 뭐냐... 하옇튼... 과장아줌마 앞에서 혜주 연발해서 둘 다 얼굴 빨개져서 돌아갔어..."

"그랬구나..."

"그랬구나?? 참나... 자기 심미오랑 무슨 사이야? 과장아줌마는 피식 웃고 갔지만... 심미오는 울기까지 하던데..."

"..."

"왜 이제서 혜주를 찾는데요?"

보미의 말을 듣던 수이가 갑자기 날 원망하듯 쳐다보던 입을 땠다... 그리고 그제서야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불쌍해서가 아닌...보미의 말을 듣고 복잡한 내 여자관계에 친구 혜주가 불쌍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다...

농담을 하던 보미도 수이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잠시 머뭇거리곤 수건을 들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혜주... 잘 지내?"

"못 지내면요? 어쩔 건데요?"

"..."

"아저씨는 아저씨 생각만하죠?! 혜주가 무슨 생각으로 아저씨 집에서 나왔는지. 얼마나 힘들어 했고, 그리고 어떤 기분으로 죽어갔는지..."

"...주.,죽다니?"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잊고 사세요... 이.말 해드리러 왔어요. 괜히 죽은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지금처럼 아저씨 삶 살라고요..."

"...수...수이야... 그게 무슨 말이니? 혜주가 죽긴 왜 죽어?? 나랑 헤어진 지 이제 겨우 50일밖에 안됐는데...응?? 거짓말이지? 걱정마 나 그냥 과로 때문에 입원한 거야... 혜주가 보고 싶긴 해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런데 왜 혜주가 죽어..."

"..."

"야!... 말 좀 하라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으.윽..."

소리를 지르자... 머리가 더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다... 몸을 일으키던 나는 그대로 다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고... 심하게 고동치는 심장소리와 떨리는 손을 애써 주먹을 쥐며 어렵게 고개를 들어 다시 수이를 쳐다보게 된다.

그제야... 수이가 나와 같이 많이 수척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대로 앉아 날 보던 수이는 이젠 눈물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화장시켜서 혜주가 좋아하는 바닷가에 뿌려 줬으니까... 아마 행복할거에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아저씨 삶 사세요... 저도 아직 믿기 어렵지만... 사람이 죽어도 배는 고프고... 잠은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 전 더 이상 혜주 생각나서 아저씨 못 보겠어요..."

수이가 말을 끝내고 도망가듯 병실을 나간다...당장 쫓아가 잡고 수이를 싶었다...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내 마음도... 이 빌어먹을 몸뚱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는 움직여주질 않는다... 수이가 나가고 밖에서 기다리던 보미가 들어온다... 보미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이미 수이에게 전해 들었었는지 어렵게 말을 한다...

"어휴... 정말로 죽었구나... 처음에 찾아왔을 때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설마 했는데... 사람인생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

"자기야... 이럴 때일수록 힘내...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지만... 아니다... 괜히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자기야?? 자기야?"

보미의 말을 듣던 중... 나는 또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충격과 함께... 두통으로 인해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중얼거리며 들리는 모든 소리가 이제는 다 귀찮았기에 그냥 눈을 감은 채 일어나질 않았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는지...이제는 잠이 오지도 않는다... 눈을 떴을 땐. 병실마저 캄캄하다...

보미도 집에 간 듯... 혼자 덩그러니 병실에 남아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비상벨 조명과 비상구를 표시하는 바랜 사람이 뛰어가는 형상이 나보고 같이 가지고 말을 하는 듯 보인다.

정말로 저렇게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혜주가 보고 싶었다... 내가 왜 이렇게 혜주 때문에 고생을 하고있는건지...혜주에게서 그 이유를 듣고 싶어진다.

이제는 혜주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가만히 비상구의 사람형상의 그림을 보며 정신이 나간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내가 왜 이렇게 힘이 들어야 되는지 혜주한테 따지면 되는구나...

혜주를 만나고 혜주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이렇게 날 고생시킨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이렇게 간단한걸...??

왜 이제서야 깨달은 건지...

내가 생각해도 정말 난 미련했다...크큭...

'이렇게 간단할걸... 뭐가 그렇게 어려운건지... '

중얼거리며 나는 잠시 두리번거려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날 도와주듯 지금 내가 누워있는 병실 안 환경은 간단한 방법을 말해주고 있었다.

팔에 꽂혀있는 링거의 주사 바늘이 보였고, 튜브가 보였다. 손을 뻗어 링거액의 튜브 부분을 뽑아 바닥에 떨어트렸다. 역시... 생각대로 들어오던 주사액대신에 역류하는 내 피가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가슴이 잠시 떨리긴 했지만 생각 외로 편안해 진다...

죽음이라는 게... 평소 생각처럼 두렵지 않게 느껴졌다...

조금씩... 몸에 오한이 찾아오는걸 느끼기 시작했지만...

이제 곧 혜주의 품에 안기면 따뜻해 질것이 분명했기에... 참을 만 했다. 아니 참을 수 있었다... 잠을 그렇게 많이 잤는데... 또 눈이 서서히 감긴다...

실실 웃으면서... 혜주를 찾으려는지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머리맡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말로만 듣던 천사들의 종소리였구나... 그럼 혜주를 찾아야 하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정신이 혼미해진다...

삐~삐~삐~삐~~~~~

=========================

귀가 시끄럽다...

누가 날 부르는데...

"야!! 김민호!!! 이게 진짜 죽을려고..."

보미는... 천당까지 날 쫓아왔나 보다...참나... 정말 이 여자랑은 생각보다 질긴 인연이구나... 그럼 혜주는?? 아 저기 있다... 왜 우냐... 바보처럼...

엉??,... 옆에 수미도 있네... '

침침한 눈에 힘을 줘 집중을 했고 그제야...내가 아직 안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혜주의 우는 모습을 보며 저기 서있는 혜주가 살아 있는 게 맞는다면...난 죽지 않은 걸 정말로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혜주가 저기 서서 울고 있었지만... 정말 신에게 감사를 하게 된다...

"자기야... 여기 혜주 왔어... 자기가 그렇게 보고 싶다고 쫓아갔던 혜주 왔다고... 이게 무슨 짓이야..."

"..."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입을 땔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자기 바보냐? 진짜 죽으려면 이 바이탈체크기 뺏어야지... 나 죽으니까 구하러 와라~~하고 광고하냐?"

'아!~~...저게 날 살렸구나...'

보미는 말을 하고는 의사를 불러온다. 방안에서 잔잔하게 훌쩍이는 혜주의 울음소리가 오히려 내게 힘을 준다...

한참이 지나서 온 의사는 나를 보며 혀를 찼고,,혈압과 심박을 재고는 잠시 내 눈에 펜형 라이트를 비춰 확인한다...

"김민호씨. 병원에서 자살했다고 소문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

"담당의가 저라는건 알고 계시냔 말입니다..."

"죄...죄송합니다."

"지금 죄송하다는 말로 끝날 줄 아세요? 당장이라도 손하고 발 다 속박벨트로 묶어 놓고 싶은 거... 저기 예쁜 아가씨가 사정을 하도 간절하게 해서 놔두고 있는 겁니다. 지금 김민호씨 상태 많이 안 좋아요!. 알코올성 지방간에 수치도 정상에서 전부 오버됐단 말입니다. 하루에 몇 시간 주무셨어요? 거의 잠도 안 주무셨죠? 그러다가 정말 영원히 잠들 수 있다는 거 모르세요?

하긴... 죽으려는 사람한테 이런 말 하는 저도 웃기지만... 하옇튼 여기 보호자 분들 중에서 한분은 꼭 대기해주세요. 아니면 저희로서는 묶어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서 있는 세여자중에 유독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혜주를 바라보며 꼬집어 내듯 얘기를 하곤 나갔다.

혜주가...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난 정말로 온 힘을 다해 몸을 세우려고 노력했다.

혜주 앞에서 이런 창피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고, 이 나이에 자살소동이라니...

손이 떨리는지 가슴에 밀착한 손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고는 내게 천천히 다가온다. 혜주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듯 나는 혜주의 발부터 확인했고,내 앞까지 당도한 혜주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충혈된 혜주의 눈은 눈물을 흘리며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부여잡고 있는 손을 푼다... 내 손을 잡아주려는 줄 알고... 난 천천히 손을 올리는데...

혜주가 내 따귀를 소리 나게 때렸다...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랬고,, 나도 놀랬다...

한 달 반만에...혜주와 처음 만나서... 따귀를 맞았다... 그것도 수혈까지 받고 있는 환자인 나를...가차 없이 있는 힘껏 세게 따귀를 날렸다.

"야! 이...이년이 왜 우리 자기 때리고 지랄이야!!"

"으윽윽!!"

혜주는 아직도 말을 못하나보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노려보며 혜주의 손을 잡은 보미인데도... 혜주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울며 오히려 보미를 꾸짖는 듯 울부짖었다...

꾸짖는 게 분명했다. 비록 말은 못했지만... 내 귀엔 혜주의 말소리가 보미에게 왜 날 제대로 지키지 못했냐는 꾸짖는 소리로 들려왔다. 그리곤 다시 날 노려본다... 자신도 말을 못하는 게 답답한지...가슴을 연신 두드리며 울기를 반복한다...

서럽게 어버버소리를 하면서 천천히 내 가슴과 자신의 가슴을 번갈아 두드리며... 혜주의 손을 잡아야 하는데... 죄인처럼 나는 그저 혜주의 원망을 듣고만 있다.

"죄송해요..."

뒤에 있던 수이가 고개를 숙인 채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말을 한다... 물론 나겠지만... 꿈에 그리던 혜주가 앞에 있었기에 수이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혜주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고, 이내 자신이 시켰다는 듯 자신을 가리키며 계속 고개를 젓고 있다.

"괘...괜찮아... 내가 바보 같았지 뭐."

"어엉응..."

"아냐... 정말 내가 미안해... 나이 먹고 질투나 하고... 혜주가 또래 남친이 있다고 해도. 혜주인데... 괜히 질투 때문에 그랬어... 정말 미안해..."

"어??" (혜주의 눈물을 흘리던 눈이 이게 무슨 말이냐는 듯 동그랗게 커져서 의아한 듯 날 쳐다본다.)

"괜찮아. 이제 나 다 해탈했다... 사람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면 많이 변한다고 하잖아...이제 다 괜찮아...그냥..."

"엉어!!"

"응?? 나 다 봤어... 오해는 무슨..."

"어어응!!!"

"아니라니... 뭐가 아니야..."

"으엉!!!!!!!!!"

"남친이 아니라고?? 그럼 그때 같이 웃으면서 즐겁게 집에 갔던 남자는 누군데??..."

"어윽~!!!!!"

혜주는 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린다...

그때 갑자기 수이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근데... 저기... 둘이 지금 대화하는 거 맞아요?"

"응?? 뭐가?"

"아니... 혜주 말 다 이해하는거에요?"

"뭐가? 그럼 혜주가 말을 하..."

"참나...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난..." (보미가 기가 차다는 듯 옆에서 한마디를 던진다...)

초능력이 생긴 건가...무슨 말도 안 되는... 이상했지만... 혜주의 어버버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듯 느껴졌고, 내 대답에 혜주도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이어나갔으니...아마 혜주의 벙어리음을 내가 이해한 게 맞는거 같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 혜주의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다면... 모든 사건의 발단인 그 날의 상황이 서로간의 오해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 분명했기에.

"혜주야 그럼 그 남자는 누구야?..."

"어어엉...어엉어어..."(혜주가 병실 창밖의 산 쪽을 힘주어 가리킨다. 그리곤 허공의 네모난 모양의 사각형을 그리며 젓가락질을 하는 흉내를 낸다.)

"동미장?? 거기... 할머니 아들?..."

"엉어" (손을 저으며 한층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한다. 그리곤 다시 네모난 모양을 그리는...)

"손주??...보자기...아!! 그 나눠 들었던 보자기속에 동미장 할머니가 싸준 반찬이 들어있었다고?"

"엉!!!!" (혜주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냐 이 상황은... 자기야... 그럼 지금 단지 오해 때문에 일어난 질투로... 참나... 이... 미친놈!!"

".,..."

"아고... 내가 미쳐!! 난 또 무슨... 진짜 어이없다... 나 갈래!...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자기 나중에 몸 낫고 나서... 나 좀 보자..."

보미가 한숨을 쉬며 당장이라도 날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눈빛을 거두며 병실을 나갔고,,

아직도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던 수이도 혜주와 같이 가려다가 혜주의 눈빛을 보고는 혼자 집으로 향해 병실을 비워준다... 이 인실에 혼자 독방처럼 쓰고 있던 나였기에... 병실 안에는 나와 혜주만 남게 되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진다... 아니 난 혜주를 바라봤고, 혜주는 날 바라보다가... 이내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내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너무도 많은 말을 주고 받은 듯 느껴졌다.

그날의 피에 대한 것은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니... 더이상 상관없었다... 혜주가 비록 처녀가 아니더라도...그게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남자친구가 아닌 하룻밤의 실수일지라도 혜주는 혜주고, 혜주일 수밖에 없다는 걸 죽자는 결심을 가졌던 순간 절실히 느꼈으니까 말이다...

얼굴을 더 보고 싶은데... 혜주가 고개를 숙였기에 보이질 않았다... 다시 한 번 링거에서 떨어지는 액체를 확인해본다... 혹시 이게 꿈은 아닌지... 아니면 환상은 아닌지 확인을 해보고 다시 혜주를 바라봐도... 혜주가 그 자리에서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을 뻗어 혜주에게 가까이 힘겹게 이동했을 때... 혜주가 내 손이 움직이는걸 숙인 고개로 바라봤는지 자신의 손을 침대위로 올려 잡아준다.

혜주의 고운 손이...

한 달반이 지난 지금 날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전처럼 너무도 거칠어져 있다...가늘고 얇은 손가락이 전부 부르트고 갈라졌는지 잡은 내손에 전해지는 혜주의 부드러움은 더 이상 없었다.

손을 돌려 혜주의 손바닥을 보게 된다... 순간 혜주가 창피함을 느꼈는지 얼른 손을 뺐지만... 난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반찬고까지 붙어 있는 혜주의 손을 말이다... 정말로 미안해지고 내 우유부단과 질투라는 감정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만난다면 꼭 혜주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담아두었던 설득을 시작했다.

"혜주야... 다시 돌아와... 이제 다시는 너 그렇게 내 쫓듯 내보내지 않을게..."

"..."

혜주가 많은 말을 하고 싶은지 메고 있던 가방에서 내가 처음 전해줬던 검은 노트 대신 전보다 작아진 여학생에게 제법 어울리는 노트를 꺼내 글을 적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볼펜 굴러가는 소리에 혜주가 내 앞에 있다는 걸 현실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노트위에서 놀고 있는 혜주의 손을 지켜본다...정말로 돈이 많이 되는 힘든 일만 골라서 한 듯... 손에 상처가 더 많아 졌다. 아직 딱지도 다 없어지지 않은 상처도 보인다...

애처롭게 혜주의 손을 보고 있는데. 글을 다 적었는지 내게 노트를 내민다... 받은 노트 겉면에... 수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그럼 그렇지...

나는 피식 웃고는 혜주가 적은 페이지를 다시 들쳐봤다.

-안 돼요. 저 지금 일하는 곳에서 인기 많아요. 그 대신 아저씨 다 낳을 때까지 매일 저녁마다 편의점 알바 하러 갈 때 잠깐씩 들릴게요.

"편의점... 너 지금 아르바이트 몇 개나 하는데?"

내 말에 대답대신 미소를 짓는다. 잔잔하면서도 자신의 힘든 처지를 숨기려할 때 꼭 보여주는 혜주의 미소는 메마른 내 감정에 뭔가 '찡~'하게 만드는 결코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그런 복잡한 의미로 전해진다... 내 불쌍한 혜주를 바라보는 눈빛이 자신에게 계속 쏠려 있다는 게 이내 부끄러운지... 다시 서둘러 가방을 뒤진다...

양...말... 너무도 익숙한 혜주의 보물인 검은색 양말을 꺼낸다... 그리곤 주섬주섬 양말 안에서 어렵게 통장을 꺼낸다.

새로 만든 지 얼마 안돼 보이는 통장을 꺼내서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내게 자랑하듯 넘겨준다... 통장 안에는 개설한지 불과 20일도 안된 날짜가 찍혀 있었고, 거기에 140만원이라는 큰 금액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계좌 이체 이력이 없었다. 돈을 입금 받은 날 의례 동생들에게 일부를 보내는 혜주였는데... 달랑 20일전의 거래내역이 한건이다.

"왜 동생한테 돈을 안 보냈어?"

무심한 내 질문에... 혜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혜주의 표정으로... 까맣게 잊고 있던 작은 아빠의 소행과... 그로 인해 더 이상 동생들에게 돈을 보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난 괜한 질문으로 또 혜주를 괴롭히는 거 같아... 서둘러 사과를 하며 화제를 돌렸다.

"미...미안... 근데 이렇게 돈 벌면 금세 방값 나오겠네... 얼른 동생들 데려올 수 있겠다."

내 말에도... 혜주의 표정은 쉽게 풀리질 않는다...

잊기에는 너무 큰 상처였기에 삼자인 나로선 아무리 아픔을 공유하려고 노력해도,, 혜주의 아픔의 십분지 일도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건 당연했다.

"혜주야... 돈 빨리 벌려면 다시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게 좋지 않을까?"

이내 표정을 바꾸려는지 잠시 고개를 가로 젓고는 혜주가 날 바라본다.

"내가 혜주 일하는 곳에 같이 찾아가서 다 사과드릴게... 혜주가 얼마나 일 잘하는지는 나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고용주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거든... 그러니까 다시 돌아와 주면 안될까? 내 행동이 100% 잘못한 것도 알고 있으니까... 혜주야 내가 이번에 정말 반성도 많이 하고,, 후회도..."

내가 생각해도 구구절절... 무슨 스물두 살 처녀한테 프러포즈하듯 애원하는 것처럼 들렸기에... 말하던 도중에 혜주의 표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혜주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분명히 내 잘못이 맞고,, 내가 했던 행동을 알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날 욕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난 혜주의 표정 하나하나의 변화를 살피며 지금처럼 횡설수설대신에 좀 더 진심을 담아서 혜주에게 얘기를 다시 이어가기 시작한다.

"나... 너 죽었다는 말 듣고,, 정말 후회하고 고통스러웠어,, 너 만나러 가서 사과하려고 했고,

솔직히... 난 네가 정말 답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답답한 인간은 나였던 거 같더라고... 그러니까... 예전처럼 다시 나한테 아침밥 차려주고..."

혜주가 내 시선을 그대로 응시하듯 쳐다보더니 잠시 고개를 숙인다...

다시 아프게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혜주를 이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말을 덧붙이려 한다.

"아...아니면... 내가 매장에서 자고... 넌 지...집에서..."

내 말에 혜주가 고개를 들어 날 째려본다. 역시 이건 아니었나보다... 나는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저 올곧은 시선을 보게 될 땐... 정말로 중범죄자가 된 듯 한없이 작아진다. 11살 차이라는 숫자는 이럴 때만은 소용없이 느껴지게 만드는 혜주의 눈망울이다...

혜주가 갑자기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킨다.,

부드럽고... 볼록하고,,,탐스럽고,, 이 세상의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가슴만이 내 눈에 들어온다...

혜주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는 다시 내 손을 내려놓는다. 그리곤,.,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문구를 한 번 더 가리킨다...

LOVE...

그러고 보니 이 깨끗하지만 벌써 팔밑단이 해진 분홍색 추리닝은 내가 사준 옷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사랑'... 그럼 혜주도 날 사랑한다는 말인가??

날 너무 진지하게 바라보던 혜주는... 노트를 들어 글을 적기 시작한다... 혜주의 움직이는 손이 정말로 슬로우모션처럼... 길게 느껴졌고, 굴러가는 볼펜심의 회전까지도 내 눈에 보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일초가... 일분처럼 아니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 짧은 시간의 흐름이 혜주의 글을 보고 싶다는 내 커다란 욕망을 말해주는 듯 했다.

정말로... 날 혜주가 사랑해 준다면...

-알았어요. 제 마음도... 아저씨 옆에서 더 있고 싶다고 말하는 거 같아요. 대신!... 약속해요.

마음...LOVE라는 단어가 아닌 자신의 심장을 가리킨 거라는 걸... 알게 된 나는 또 자신의 음란함이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했고, 애써 숨기려 노력해본다.

방금 전 글보다 더 빠르게 휘갈기듯 자신의 감정을 실어 한참동안 글을 쓴 혜주는 다시 내게 노트를 건넸다.

-다시는... 목숨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아저씨 정말 바보에요?!. 저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아저씨가 왜 죽으려고 해요? 다시 이렇게 멍청한 짓 하면 다시는 아저씨 안볼거에요.

죽으면 어차피 못볼텐데...라고 말을 하려던 나는 혜주의 너무도 진지한 눈빛에 압도당해 어렵게 고개만 끄덕이게 된다. 혜주의 순수함에서 묻어나오는 카리스마는... 아무리 조폭이라도, 아무리 살인자라도 혜주의 말을 순순히 듣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할 말이 다 끝났는지,, 날 바로 눕히며 이불을 덮어준다.

혜주는 그대로 날 눕히곤 일어나 병실 문을 나가려고 했고, 나는 혹시나 지금 알바를 가려는 줄로 착각했기에 혜주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가...가지마...나... 아직 아파..."

사춘기를 지낸 이후... 아니 어머니가 날 떠나고 나 후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꾀병이라는 걸 부려본다. 지금까지 난 누구에게도 의지해본적 없었다. 아니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 환경자체가 내가 폐쇄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을 형성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갔고, 그게 삶에 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혜주를 만나기 전에는 말이다.

그랬던 내가... 나보다도 한참 어린 혜주를 보며 응석부리듯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니... 아마 보미나 은행직원들이 보게 된다면... 비아냥거림과 조롱이 섞인 말로 날 나무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혜주를 이대로 보내기는 정말 싫었다... 그리고 어지럽고 메스껍고.머리까지 정말 아프긴 하다...

"으으응!"(혜주가 손을 모아 빨래 짜는 시늉을 한다...)

"아!~... 아...아... "

얼굴이 새빨개졌다...

혜주의 행동은 아마도 수건을 빨아온다는 걸 말하는 듯 했고, 난 방금 전 내가 뱉어낸 말에 창피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갔다. 그런 날 바라보던 혜주가 막... 웃기 시작했다...

혜주가 웃어주니까... 기분이 너무 좋다...

단지 웃어주는데... 모든 아픔이 사라지는 듯 느껴진다... 눈을 감고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에 정말로 모든 신에게 감사를 하고 있는데 내 얼굴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수건의 촉촉한 물기가 내게 전해졌고 미끄러지듯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한다, 눈을 뜨기가 싫어지면서 병원에서 이대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얼굴을 한참을 닦아주던 수건이 턱선을 따라 어루만지듯 이어졌고, 곧 목으로 향한다. 목을 따라 쇄골이 모이는 곳까지 정성스럽게 닦고 있는 혜주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던 나는 방금 전까지 봤으면서 또 보고 싶다는 생각에 눈을 떴고, 입을 다물고 묵묵히 수건을 움직이는 혜주의 야무진 얼굴을 보게 되었다. 얼굴을 닦던 수건은 곧 내 손을 들어 손가락사이까지 닦아주며 팔꿈치까지 어루만지듯 연신 약간의 힘을 주어 닦아준다. 수건이... 조금 지저분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매장에서 지저분한 바닥에 쓰러지기 전까지... 제대로 목욕다운 목욕을 하지 못했다... 혜주가 양손을 다 닦았는지... 몸을 일으켜선... 내 다리 쪽으로 이동한다...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혜주의 이불을 젖히는 행동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발까지... 닦아주려는 혜주였다...

서둘러 힘을줘 다리를 오므리며 침대에서 누운 채 양반다리로 이불속으로 발을 감추자... 혜주가 멍하니 내 사라진 다리를 쳐다보더니 시선을 내 얼굴을 바라본다.

"으응응!!"

"돼...됐어... 발은 나중에 내가 씻을게."

"응!!!!!"

"아니라니까... 젊은 처녀가 지저분하게 왜 남자 발을 씻겨주냐..."

"음~~,,,"

혜주가 노트를 집어 든다...

-지저분하니까 닦아야죠!

"아...아니 내가 닦는다고..."

-누가 닦으면 어때요. 힘도 없으면서.

"그...그게...근데 넌 어린 처녀가 빼는 것도 없고, 막 아줌마처럼 들이대냐..."

-처녀가 밥먹여줘요?, 그리고 아줌마가 어때서요? 아저씨는 아줌마한테서 안 태어났어요? 모든 엄마가 아줌만데...

"아무리 그래도 발은 내가 닦을게..."

-저 돼지껍데기 씻기는 알바도 했어요. 물로 씻어도 똥도 묻어 있는 거 다 일일이 손으로 제거하는데... 이게 뭐가 대수라고.

"대. 돼지 껍데기?"

-아저씨도 술안주로 즐겨 먹을 거 아니에요? 잔말하지 말고 발 내놔요.

"..."

-저 갈까요?

"아...아니야...

창피함을 무릅쓰고 발을 천천히 빼내는데... 혜주가 우악스럽게 잡아 당겨선 내 지저분한 발을 닦아주기 시작한다. 이럴 땐... 스물두 살의 꽃다운 나이로는 믿어지지가 않는데... 이런 왕 같은 호사스러움을 내가 느껴도 되는 건지...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혜주는 얼굴에 인상도 쓰지 않고 내 발을 깨끗이 닦기 시작한다. 혜주의 거친 손이 내 발을 간지르며 잠깐잠깐 날 움찔하게 만들었지만, 아무 상관없다는 듯 혜주는 내 발을 씻기는데만 전념한다. 많이 지저분했는지... 한참을 닦아주고 있다.

어느새 이불을 마저 덮어주고는 수건을 다시 빨려는지 들고 병실을 나선다... 혹시나 해서 혜주의 수건을 들고 있는 손을 보게 되었다... 글로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오염된 수건...아니 이제는 걸레 같은 수건을 검지와 엄지로 정말 걸레처럼 들고가는건 아닌가...하는... 사실 나도 청소를 하고 바닥을 닦은 걸레는 손이 지저분해질까봐 방금 말한 것처럼 집게손가락을 만들어 화장실에 던져놓는게 일이었는데... 혜주는 그 수건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나갔다...

아마도 천성일 것이다.

남을 생각하고 남의 오물은 자기에겐 오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천성적으로 남의 작은 아픔까지도 무의식중에 신경 쓰는... 그런 생활이 몸에 배어 있는 혜주가 분명했다. 아니면 자신의 환경이 오물마저도 일부로 받아들여 씻겨내는 그런 여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혜주의 그런 현실이 날 또 가슴 아프게 한다.

혜주가 돌아와서는 나에게 자라는 시늉을 하고는 간의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편다. '커뮤니케이션 이론학'...생소한 책에 멀뚱히 혜주를 쳐다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난 혜주에 관한 자질구레한건 하나도 모르고 있었구나...

"혜주야..."

"..."

"너 전공이 뭐니?"

혜주가 날 바라보던 시선을 노트로 옮겨 간단하게 글을 적는다.

-신방과요.

"신방?? 신문방송학과?

"..."(고개를 끄덕인다.)

"기자되고 싶어?

-예,

"혜주는 아나운서가 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싫어요. 전 전쟁이나 환경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병마와 기아로 고생하는 어린이가 많은 어려운 나라에 가서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자...

글을 쓰던 혜주가 글을 잇지 못하고 '기자'의 마지막 글자에서 힘을 주어 멈춰 섰다.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는 나였기에... 잠시 혜주의 눈이 흔들렸다는 걸 모른 채 해준다.

"그렇구나...혜주답다고 해야 하나..."

"..."(날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준다...)

"그럼 학교는 졸업해야지..."

"..."

책으로 옮기던 시선을 다시 내게 향하며... 잠시 원망 섞인 눈으로 날 바라본다... 말을 하면서 예상했던,...혜주의 반응이었다.

"나 혜주한테 바라는 게 있는데... 들어줄래?"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책으로 내렸다. 상관없었다. 혜주였기에 이런 반응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당연한 반응이었다.)

"2년만 다니면 된다고 했지? 그 2년 내가 투자할게...물론 월급도 주고. 보통 학교가 끝나면 놀고 싶은 것도 많고 어울리고 싶은 친구들도 많겠지만 월급을 받는 만큼 일을 해야하는 건 당연하고...그리고 이자까지 받을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내 제안에 혜주가 놀리지 말라는 듯 날 쳐다본다...그리곤,... 다시 날 흘겨본다...아니 흘겨보는 게 아니다 날 정말 못 믿겠다는 표정과 그만 부담 주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모든 대가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혜주였기에...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는 여자가 된 듯 보였다. 어린나이에 너무 세상에 대해서 나쁜 것만 배운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혜주에게 나쁜걸 가르친 건 다름 아닌 나와 같은 어른들이 분명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침대 옆 작은 사물함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건다.

내 행동에 혜주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지만 이번엔 내가 상관없다는 듯 혜주의 시선을 피하며 전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나야 수이야..."

[왜요? 혜주 일하러 간데요?]

"아니... 혜주 옆에서 나 간호해준데."

[안자요? 어제도 밤 꼬박 샜을 건데...]

"응...그랬구나..."

[근데 왜요?]

"수이야 내일 학교가지?"

[예...]

"혜주 복학준비 좀 해줄래?"

[예???... 보...복학이요?]

"응... 듣기로는 이번학기 놓치면 퇴학처리 된다고 했던 거 같은데..."

혜주가 벌떡 일어나 화를 내며 내 손에 들려 있는 전화기를 뺏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도 예상한 일이다...나는 남은 힘을 다 짜내어 혜주보다 먼저 반대편으로 전화기를 들어 손을 멀리 뻗었고, 그로 인해 내 왼팔에 꽂혀 있던 바늘이 거칠게 빠지며 상처가 생겨 피가 좀 많이 흐르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출혈에 고통을 느끼고 있는 나보다 혜주가 훨씬 놀라선 어버버 소리를 내며 손으로 내 팔을 감싸곤 지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그런 건 상관없었다... 한번 죽기로 마음먹었던 내가 아니던가... 이정도 고통과 이정도 출혈에... 놀라지도 않고 난 계속 통화를 이어나간다.

"미안... 혜주가 좀 방해를 해서..."

[혜주 있어요? 바꿔주세요... 혜주도 허락한거에요? 혜주가 허락할리가 없는데...]

"혜주 이제 내 친동생하려고... 오빠로서 당연히 동생 학교 보내려는 건데 누구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니?"

[오...오빠요?]

"아...아빠도 좋고...그래도 이왕이면 오빠가... 하옇튼... 내일 좀 알아봐줘...꼭!!... 알겠지?"

[혜주한테...]

"수이야... 나 또 몰래 링거 뽑을까? 이제는 바이탈기 꺼야 하는 것도 알았는데..."

[아...알았어요...]

"고마워..."

[근데 아저씨...]

"응?"

[거짓말해서 정말 죄송해요... 그렇게 충격 받으실 줄은 몰랐어요...아저씨 집에서 혜주 그렇게 나오고 정말 한동안...]

"수이야... 고마워..."

[...예... 그럼 쉬세요...]

더 듣지 않아도 수이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에 말을 막았다...통화를 끝내고 그제야 혜주를 바라본다... 내 팔을 너무 세게 잡고 있었기에...출혈은 멈췄는데 피가 안 통하는지 잡고 있는 아래로 흑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혜주는 내 팔을 양손으로 부여잡고는 날 바라보는 시선에 원망과 창피함 거기에 자괴감까지 뒤섞여 공종하고 있는... 말로는 표현 못할 감정을 보내고 있었다...아니 그렇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건 큰 눈망울에 눈물이 서서히 고이기 시작했기에 충분히 내게 전해질 수 있었다... 난 혜주의 자존심을 건들며 내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혜주니까... 혜주여서 난 이런 행동을 하게 된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이 방법이 정말로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영원히 혜주를 못 볼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혜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 이상 우유부단에 아무 결정도 못하는 그런 남자로 혜주에게 보여지기 싫었다... 이런 결심은 아마도... 죽음을 경험해 본 후라서 너무 변한 내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왕 밀어붙이는 거 난 더욱 세게 나가기로 한다...

"혜주야... 내일 나 퇴원하고 장 좀 보자... 살게 너무 많아..."

"..."(혜주가 세차게 고개를 숙인 채 가로젓는다...)

"그럼 나 혼자 퇴원해서 장보다가 쓰러져서 또 실려 오지 뭐..."

"..."

"아니면 네가 감시하던가..."

"..."

"같이 가는 거다...그리고...팔 좀 놔줄래... 피가 안통해서... 괴사 일으킬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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