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동거 (6/19)

6. 동거

내 오피스텔은 방2개에 욕실1개...그리고 거실로 이뤄진 15평짜리 작은 사이즈의 다세대 건물 중 하나다.

귀찮아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청소를 하다 보니 평소의 집안은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의 참담함을 그리고 있을 적이 많다...특히... 금, 토요일에는 그 절정의 끝을 보여준다.

아무리 서둘러 치우긴 했지만... 여기저기 보이는 흔적들로 인해 지금 거실에 앉아 있는 내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내와야 하는데... 내 집에 차나 음료수가 있을 리 없다... 커피 같은 경우도... 집 앞 슈퍼에 있는 자판기에서 오다가다 꺼내 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평소 일요일 이 시간에 내 생활의 시간표대로라면 난 지금도 방안에서 뒹굴고 있어야 한다.

그런 내 집에 난생처음 친구 삼구가 아닌 사람이 들어와 앉아 있다는 것이 정말로 어색하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것도 여자 둘이니 할 말이 있겠냐 만은...

"사장님..."

"...예?"

"이런 거 파시는 거예요?"

"..."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수이가 가을이 다 지나가는 지금도 치워지지 않은 선풍기에 깔려있던 무엇인가를 꺼내 내게 들어 보여준다...

속옷...아니...일체형 바디 스타킹이다. 새코롬한 망사로 이뤄져 남자들을 위해 친절하게 밑까지 트여있는 좀 굵은 데니아(원단을 이루고 있는 실의 두께)수로 다른 바디스타킹처럼 형태가 무엇인지 모를 수축되어 있는 것이 대다수인데... 이건 그렇지 않았다.

"와... 이런 것도 있구나..."

"저...저기..."

신기한 듯... 손에 들고 늘려보기도 하고 짖굳게 혜주에게 대보기도 하는 수이의 행동에 손을 뻗어 낚아 챈 나는 얼른 바지의 뒷주머니에 스타킹을 구겨 넣었다.

혜주가 내 얘기를 했다고 하더니... 내가 부업으로 하는 란제리 인터넷샵도 전부 자세히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놀라기는 커녕 신기해했으니 말이다. 사실 내 집에 이성의 손님이 온 적이 없었기에 이후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멀뚱히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혜주는 생각에 잠겨 있듯 가만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고, 혜주의 얼굴은 붓기가 빠지긴 했지만 아직도 호빵맨처럼 양 볼이 부어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눈이 또 흔들리려 했을 때... 수이가 고맙게 말을 이어갔다. 수아도 장난까지 치며 혜주의 기분을 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근데... 여기 따뜻한 물은 잘 나와요?"

"예...예?? 예..."

"죄송한데 새 수건은 있죠?"

"수건이요? 있어요... 있을거에요... 잠시 만요..."

방안에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다행히 수건이 한 장 남아 있었고, 수이에게 건네준다. 거실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는데 수이가 날 몰아붙이듯 톡 쏜다.

"아니... 수건 가져다 줬으면 뻔 한 건데. 왜 거기 다시 앉아요?"

"...예?"

"지금 욕실에 가서 우리 혜주 목욕시키려고 한다고요... 눈치가 없는 건지..."

"아!. 죄...죄송합니다..."

나는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어디가세요..."

"예?... 모...목욕하신다고 하셔서..."

"방에 들어가 계시면 되죠..."

"예?...아. 아닙니다... 그냥 담배한대 피고 오죠..."

내 집이었지만 목욕이라는 단어를 빌미로 집에서 쫓겨났다...

예전의 나라면 절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황당하지도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물론 그 짧았던 삼일동안 혜주의 나신과도 같은 반 알몸을 본적이 있고 내 컴퓨터 가장 깊숙한 곳에 아직도 혜주의 아름답고 섹시한 란제리 모델로서의 사진이 보물처럼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혜주가 목욕을 한다고 했을 때... 왠지 그 공간을

피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나오게 된 나다. 담배를 물고... 내 오피스텔의 창문을 바라보며 갑자기 혜주의 알몸이 생각났지만... 이내 부은 얼굴이 겹쳐져 고개를 젓게 되었다.

세 개비를 피고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슈퍼로 들어가 음료수와 먹을 만한 먹거리들을 골라서 챙겼고, 과일도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들로 몇 개 골랐다.

봉지를 들고 도착한 집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곤 남들에게 피해 주기 싫은 내 버릇으로 번호키를 무음으로 작동해 문을 열었기에 문을 열리기전까지 내가 왔는지 인기척을 못 느꼈을 집안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번호키의 '삐리리~'음과 동시에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혜주가...수건으로 가슴을 가린 채...욕실 문에 반쯤 몸을 걸쳐선 얼굴만 빼꼼히 내놓고 옷방을 보고 있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 아저씨는 옷도 없냐...혜주야... 추리닝이라도 줄까?"

수이가 내 옷 중 혜주에게 입힐만할 걸 찾고 있는지 혜주가 바라보던 옷장이 있는 건넌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주는 아직도 그제의 기억이 남아 있는지 굳어진 채 날 쳐다보고만 있다.

순간 나도 몸이 굳어졌다...

남자의 본능이라고 했던가... 이 와중에 혜주의 너무도 잘빠진 다리의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올라가며 훑어보듯 감상을 했고,. 이어서 수건으로 가려진 탐스러운 혜주의 가슴과는 대조적인 너무도 얇은 허리와 갈비뼈들을 보았다. 그리고 혜주의 부운 얼굴에 시선이 다달했을 때...흔들리는 눈망울과... 혜주의 맺히기 시작한 눈물을 볼 수 있었기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쿵!!'

번호키의 열림 버튼을 누르고... 몸을 밀었는데... 한 타임 늦은 번호키의 작동으로 머리부터 철문에 그대로 박았고, 큰 소리가 났다.

창피함과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이마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누,,누구세요?"

수이가 방에서 뛰어나왔고,,문 앞에 얼굴을 맞대고 쪼그려 앉아 있는 날 발견하곤 놀란 듯 하다... 그런데... 혜주가 긴장이 풀렸는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분명했다. 나는 이마를 짚고 쪼그려 앉은 채 천천히 고개만 돌려 집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 혜주가 날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미소가 너무도 그리웠는데... 저 미소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혜주의 모습을 보며 다시 머리를 문에 소리 나게 찧기를 한 번 더 반복했다... 내 오버에도 혜주는 정말로 웃어 주고 있다. 억지로 웃음을 찾으려는 듯 혜주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계속 웃어준다...

비록 머리가 아팠지만...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 건 어쩔 수 없었다...

기가차다는 듯 우리를 쳐다보던 수이가...혜주가 웃고 있는 모습에 '피식' 한숨과도 같은 웃음을 뱉어내곤 이내 혜주를 끌고 욕실로 걸어 들어가 버린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제야 얼굴이 빨개지며 창피함을 나타내는 나다...

어색하게... 봉지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그제야 깨끗한 접시나 컵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며 설거지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자꾸... 혜주의 방금 전 알몸이 생각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으로 변해야 할 게 너무 많았기에 쉽게 무엇부터 바꿀지 결정하지 못했고, 결정할 수 도 없었다... 결정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힘든 건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혜주와 수이가 나온다.

혜주가... 내 잠옷으로 즐겨 입는 긴 남색 추리닝 바지와 목이 늘어난 흰색 티를 입고서 나온다... 어깨가 보일정도로 늘어난 티의 목 부분이 어색한지... 연신 옷을 뒤로 당기고 있었으며 바지는 발가락까지 다 가려선 바닥을 쓸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손이 멈췄다... 비록 안어울리는 내 옷을 입고 있는 혜주의 모습이...정말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갈망하게 만들 정도로 귀엽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저기 아저씨..."

"으...응??"

"옷이 이런 거밖에 없어요? 평상복은 보이지도 않던데..."

"평상복이요?"

"예. 전부 양복밖에는 없던데요..."

"아... "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운동도 하지 않는 나에게 그리고... 여친도 없는 나에게 멋을 내는 평상복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그러다보니 잘 입지도 않던 옷을 전부 헌옷 수거함에 가져다 버린지도 꽤 오래전 얘기다... 괜히 혜주에게 미안해진다. 불청객과도 같은 혜주였지만 정작 허름한 면티에 내 긴 바지를 입고 있는 혜주의 모습이 조금 안쓰럽게 보였다.

그러나 혜주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수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가방을 끌어와 안에 있던 노트를 꺼내선 엎드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장... 옷을 몇 벌 사와야 갰다... 엎드린 혜주로 내 큰 면티가 흘러내려 가슴골이 보였기에 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열심히 뭔가를 적은 혜주가 내게 노트를 밀어 냈다.

-아니에요. 이것만 빌려주셔도 감사해요.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요? 이런 얼굴로 당장 알바구하기는 힘들고, 혹시 매장에서 잡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노트를 보고 혜주를 보게 된다.

벌써 일을 찾는 혜주가 대견하다기보단... 미련하게 보인다.

겨우 삼일도 안 지났는데 그런 큰일을 당한 혜주가... 의사가 내게 말했다. 영양실조 초기에 몸이 성한 곳이 없다고... 그런 몸으로 일을 말하는 혜주가 답답해 보인다.

"글쎄.,. 지금 매장에 다른 직원 고용했는데..."

"..."(날 쳐다보던 혜주는 다시 노트를 끌고가선 필기를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할지 뻔했기에 단칼에 잘라버린다.)

"잡일도 할 게 없잖아... 아무리 일이 많아졌어도...저번에 일했으니 알겠지만... 거기 낮에 놀기만 할 텐데 뭐 하러 사람을 쓰냐?"

"너무해요 아저씨!!"

생각지도 않은 수이의 공격에 당황한다. 듣고 있던 수이가 날 노려보며 불쌍한 혜주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날 훈계하려는 듯 입을 놀린다.

"원래 혜주가 매장 알바1호생이라면서요...그럼 나중에 온 그 사람을 자르고 혜주를 써야죠!"

"혜주를?"

"예!! 그게 당연하거 아니에요?"

"혜주를 다시 란제리 모델로 고용해서 쓰라고요?"

"...그...그거야..."

"아까 봤던 그런 속옷 입고 사진 찍는 건대요...얘기 들으셨을 거 아니에요... 아픈 혜주를 그런 거 시켜도 되요?"

"..."

혜주가 수이의 손을 잡고는 날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도 수이도 알고 있었기에 멍하니 혜주를 쳐다보게 된다. 혜주는 우리의 멍한 표정에 조금은 어색한지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에 글을 적는다.

-저 할게요. 모델이나 잡부나 아무거나 시켜주시면 할게요.

"혜주야...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 몸조리부터 하고 나중에 얘기하자...응?"

내 말에 다시 고개를 저으며 필기를 한다.

-저 조금 있으면 얼굴 붓기 빠져요. 그리고 모자이크한다면서요. 얼굴 부어 있어도 괜찮아요, 여기서 지내게 해주신 거 감사드려요. 대신 청소하고 빨래도 할게요, 매장도 다 깨끗이 치우고 모델도 할 테니까. 대신 저번에 준다고 하셨던 월급 주세요.'

더 이상 더 절실해질 수 없는 혜주였나 보다.

혜주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작은 아빠라는 놈에게 뺏긴 돈을 이제는 찾을 수 없을 거라는 것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엔 지금처럼이라면 늦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수이도 알고 있었기에 혜주를 선뜻 말리지도 못하고 그냥 쳐다보고 있다. 무너지기 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다시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듯 보여졌다.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는 오뚝이와도 같은 혜주의 모습에 내 지난날들이 창피하게 느껴졌고, 그런 혜주였기에 내 호의나 배품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럼... 낮에만 일하는 걸로 하자. 모델은 나중에 더 생각하고 나서 결정하고 그렇지 않아도 요즘 주문이 너무 많아져서 정식 직원이 필요했는데 널 정식직원으로 채용할게. 집안일도 도와준다면 모델 안 해도 월 200줄께? 그럼 됐지?"

"진짜요? 혜주야 정말 잘됐다...그럼 너 무리하지 않아도..."

"단!! 일과 후에는 다른 아르바이트 금지야...그거 허락한다는 조건에 월200에 채용할게..."

수이의 말을 자르며 조건을 걸었다. 일과 시간이후의 남은 시간에 혜주는 분명히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여자다... 솔직히 청소하고 물건 체크만 하면 되는 직원에게 한달에 200만원이라는 월급은, 돈에서만은 철저한 혜주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기에 집안일을 도우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잠시 고민을 하 듯 혜주가 볼펜을 입에 물고는 조금씩 씹기 시작했다.

혜주의 첫 번째 버릇을 발견했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인 혜주가 예전과 달리 생각에 빠지거나...고민을 할 때면 볼펜을 씹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 모습도 귀엽게 느껴졌다.

내 말에 날 똑바로 바라보던 혜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됐다...

"그럼 여기 먹을 거 사왔으니까... 좀 먹어... 난 매장에 좀 다녀올게."

"예? 혼자서요?"

"그럼 혼자 서죠... 근데. 수이씨 혜주한테는 반말하고 수이씨한테는 존댓말 하니까 좀 헷갈리네요..."

"저한테도 반말하세요... 우리 혜주 기둥서방님이 되셨는데..."

"예?? 기...기둥..."

"아얏! 아파 이 지지배야..."

혜주가 수이의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혜주의 손등을 때리곤 허벅지를 연신 문지르던 수이가 이번엔 날 째려보며 얘기를 이어갔다.

"근데 우리 혜주 처녀인건 아시죠?!!"

"...예??"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하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 다행히 처녀성은 지킬 수 있었다는 거..."

"..."

"하옇튼 혜주한테 이상한 짓 하면... 진짜 고소할거니까... 아니지... 고소 가지고는 성에 안차지..."

처녀성...물론 의심한적 없었던 혜주였지만...그래도 정말 처녀일 줄은 몰랐다. 여자나이 스물둘에 혼자서 객지생활을 1년동안 했는데... 거기다가 혜주의 얼굴과 몸매에 처녀성이라니... 난 강간을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에 집중했지 처녀성이라는 단어에 대해선 사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니 놀랄 일이었다.

문득 생각난 혜주의 남자친구에 대해서 묻게 된다.

"아...아니... 저기 예전에 우리 매장에서 일할 때... 오래 사귄 남자친구 있다고..."

"예?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

갑자기 웃기 시작한 수이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본다... 혜주도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 아저씨 진짜 좋은 사람이구나..."

"예??"

"안심하고 이제 집에 갈 수 있겠다...쿡쿡쿡..."

"..."

"남자 친구야 많죠!. 동네 꼬맹이들도 있고, 하숙집 아저씨들도 있고... 오래된 진짜 남자친구만 없다는게 문제죠... 혜주가 자꾸 찝쩍대는 사장들이 하도 많아서 매일 써먹는 레퍼토리에요... 한번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호호호호..."

"..."

"여자 친구도 있다면서요... 어떻게 그런 말을 믿어요?"

"여...여자 친구 없어..."

"예?? 그럼 혜주가 말했던 그 매장안에서의 여자는요?"

"...매장 다녀올께..."

달리 대답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섹스파트너라는 단어를 여기서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혜주도 궁금한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본다...

두 여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잠시 앉아 있던 나는 옛날 버릇이 튀어나왔다.

몸을 일으키며 옷도 안 갈아입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 나가 서둘러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문을 열었을 때 수이가 따라 나왔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날 세운다.

"아저씨."

"예...응??"

"혜주한테 정말 아무 짓도 않할거죠?"

"...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그건 약속할게..."

"아니에요... 아저씨 어제 프러포즈 하는 거 보고... 믿기로 했어요..."

그때의 남사스러운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얼굴이 빨개졌다... 진짜...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응급실안의 풍격이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어졌다. 내 빨개진 얼굴을 재밌다는듯 바라보던 수이가 다시 말을 시작한다. 그때는 너무도 많은 사건이 일어난 하루였기에 정말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충동적인 모습에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혜주의 부은 얼굴을 봤을 때... 이미 난 내가 아니었던게 분명했다...

"근데... 혜주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내요... 아저씨에 대해서 말할 때 뭐 이런 변태 중년이 있나 했는데... 덧붙여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혜주가 이해가 안 갔거든요..."

"...변태..."

"딱 이잖아요. 속옷 좋아해서 일까지 하고...거기다가 여자 끌어드리고... 정말 변태의 표본으로 들리던데..."

"... 할만 다했으면 혜주한테 가지...혼자 있으면 무서울 텐데..."

"예?? 호호호호호호... 근데 지금 매장이라고 하셨는데... 그 속옷 가게에요?"

"...속옷 가게가 아니고!... 그냥 인터넷... 어휴~,... 다녀올게..."

"호호호호호... 옙! 다녀오세요~~ 구경좀 시켜주세요.나중에 저도 놀러 갈게요."

등 뒤로 들려오는 수이의 농담섞인 목소리가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아마도 혜주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면 저런 당돌한 여대생이 되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저렇게 당동하진 않고 오히려 요조숙녀가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주는 남에게 신세지는 것도... 폐를 끼치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성격이 수이와 같이 막 말을 내뱉기 보다는 속을 삼키는 스타일로 커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에서 혜주의 불행한 상황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나는 매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며칠 전 갔던 경찰서로 택시를 잡아타고 이동했다. 형사들이니 일요일에도 일을 할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두 번째지만... 도저히 이 삭막함에는 적응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때와 달리 철망 안에는 두 명의 남자가 누워 자고 있었고, 책상들에서 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정작 그 형사가 눈에 보이질 않았다... 나는 그가 앉아 있던 책상으로 향해 잠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오셨죠?"

경찰서에 도착해서 두 번째 받은 질문이다. 입구에서 경찰제복을 입고 있는 젊은 친구에게 첫 번째로 받았고, 두 번째는 머리가 짧은 조폭이 더 잘 어울려 보이는 노스페스잠바를 입고 있는 남자가 날 부르며 질문을 한다.

"이 자리에 계시는 형사분 좀 만나 뵈러 왔는데요."

"구형사 지금 어디 갔지? 출동 아닌데... 아! 저기 오네요..."

조폭형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화장실을 다녀오는지 손을 닦고 걸어오는 그 구형사라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어!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예... 앉으시죠...아니다... 나가시죠. 거기 앉으면 이상하게 죄다 범죄자로 보여서..."

",,,,,예."

구형사가 안내하는 휴게실로 이동한다.

"장혜주씨 건 때문에 오셨죠?"

"예... 그 놈은 어떻게 됐나요? 감옥에 갔나요?"

"죄송합니다... 상해죄를 적용한다고 해도 친족 간의..."

"설마 벌써 풀려난 건 아니죠?"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말이 안 되죠... 지금 혜주가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풀려 날 수 가 있단 말입니까..."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정작 피해자가 선처를 요구하는데..."

"서...선처요??"

"장혜주씨가 노트에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시는데... 저희가 어떻게 하겠습니다..."

"무...무슨 말도 안 되는..."

"저도 속이 타는데... 아마 장혜주씨한테는 그 동생들이 족쇄가 되는가 봅니다... 저도 동민장에 가서 좀 더 알아보니까. 정말 착하고 성실한 아이던데... 그 때려죽일 놈한테...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전치 2주 나왔잖아요. 얼굴이 팅팅 부었는데... 그게 왜 죄가 없어요?"

"누가 죄가 없다고 했습니까... 친족 간의 폭력에 피해자가 합의 봤다고 하는데... 불개입이라도 손을 쓰려고 했다니까요..."

"..."

"장혜주씨는 좀 괜찮아 지셨나요? 제가 갔을 땐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시던데..."

"그런 아이에요... 자기 약한 모습 안보이려고 눈물 참는..."

",..."

"그럼 돈은요?"

"그건 더 알아보고 있습니다. 저도 혜주씨가 불쌍해서 알아보니까 하루 18시간정도를 일한적도 있으시더군요..."

"18시간..."

"예... 그거 알고 나니까... 그 사람이 뺐어간 돈은 찾아 주고 싶어서 지금 알아보고 있습니다."

"..."

"근데 손은 좀 어떠세요?"

내 손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며 형사가 인사치례를 한다...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갈게요."

"그리고 이게 제 명함인데요. 혹시 그 작은 아빠란 사람이 행패를 부리거나 찾아오면 곧바로 저한테 연락 주세요. 괜한 분노로 사고 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감사를 느끼지도 않았지만... 우선 그렇게 대답을 했다...맥없이 경찰서를 나온 난 매장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혜주를 보고 싶었지만...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때 혜주를 볼 수 없었다. 안고 있다고 어느 하나 해결되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난 매장에 도착해 힘없이 의자에 앉아 담배부터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멍하니 이 어처구니없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문득 폭주하고 있을 주문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한다... 220건...삼일동안 내 인터넷 매장에 접수된 주문이다...

일도 하기 싫어지는 저 220개라는 숫자에... 한숨부터 나온다... 접수된 주문 건을 열어보는데...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주문이 보미가 입고 카메라로 찍어 올려놓은 제품들이었다...

10장... 20장... 택배지에 주소를 적는데... 결국 볼펜을 던져버리게 된다... 이게 무슨 짓인지... 내가 왜 일을 시작했는지 후회가 됐지만... 이내 내일부터 혜주가 여기서 일을 할 거라는 생각에 다시 볼펜을 잡고 택배지에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보미가 오늘 올리는 없고... 혜주였다...들어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혜주는 미소를 지어준다... 그런데 수이가 보이질 않는다. 여길 왔다는 건 분명히 수이도 같이 왔을 텐데... 잠시 기다려봐도 수이가 들어오질 않는다... 그제야 혜주의 손에 내 야구모자가 들려 있는걸 볼 수 있었다. 혜주는 잠시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는 상자에 당황한 듯 멍하니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곤 나를 보며 한숨을 쉰다... 저 한숨이... 날 창피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내게 천천히 다가온다... 발목까지 몇 번이고 접은 듯 보이는 내 추리닝과 아예 옷핀으로 늘어난 목을 줄여 끼운 좀 우스운 모습의 옷태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내게 다가와선 내 옆자리에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볼펜을 찾은 혜주는 프린트 되어 있는 주소록 중 뒤에서 몇 장을 꺼내 말도 없이 택배지에 적기 시작했다.

꼭 머슴애처럼 입고 있는 옷이 웃겼지만... 혜주의 긴 생머리가 상처받은 얼굴인데도 여자로서의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다. 고개를 돌려야 하는데... 고개를 돌려 택배지에 일을 해야 하는데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콕!콕'

혜주가 책상위에 있는 종이를 볼펜으로 두드렸다. 그제야 혜주가 종이에 글을 적고 나에게 내민 것을 볼 수 있었다.

-일해요!!

"큭... 여긴 왜 왔어..."

-수이 보내고... 방청소 하는데...

"청소??"

-도저히 속옷 때문에...

"아!!"

종이에 글을 적는 혜주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가 없었다... 한 번에 몰아서 하는 빨래로... 수북이 쌓여 있을 내 팬티가 떠올랐다.

"그...그냥 나두지... 왜 청소를 하냐..."

-수이 보내고 나니까... 멍하니 있기도 그래서요.

"어휴..."

-근데 진짜 주문 많아졌어요.

"응... 귀찮아 죽겠어..."

-또!!!!!!!-

"응?"

-진짜 아저씨 그러면 안 돼요.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

내가 말이 없어지자 혜주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열심히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는 글씨가 어린 여자아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보였기에... 주문 물품번호를 찾아 사진을 가끔 띄워 나오는 익숙한 야한 속옷들이 어색해진다... 혜주는 상관없다는 듯 일에 열중했다. 아무리 남과 엮이는게 싫은 나였지만... 이런 혜주를 보고 있자니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혜주야... 너 왜 고소 안 해?"

"..."

혜주가 볼펜을 잡고 있던 손이 약간 떨리는걸 볼 수 있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난 혜주대신에 고소를 해주고 싶었다. 돈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아둔 돈이 꽤 됐고, 이정도면 충분히 싸워볼만하다는 생각을 했고 잘 하면 지금 호적이 바뀐 동생까지도 혜주의 품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볼펜을 쥐고 있던 혜주가 손에 힘을 주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소하면요... 내 동생들은 어떻게 해요?

"데려 와야지!! 그건 내가 도와줄게. 내가 비록 네 눈에는 변태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능력은 좀 있어."

-민사래요... 민사 재판은 변호사비가 얼만지 아세요? 그리고 데려와서요? 어디서 살아요? 같이 살 돈은 어디서 구해요? 작은아빠...가 가져간 그 돈 찾을 수 있데요?

'작은아빠'라는 글자에서 볼펜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눌러 쓴 혜주의 글씨를 보며 가슴이 아파왔다...

그리고...혜주는 스물두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그 다음의 다음까지 생각하고 있는 혜주는... 내가 대답도 준비하기 전에 글씨를 이어 쓰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도와준다고요? 얼마나 도와줄 건데요? 절 돈으로 사실건가요?

"..."

-제가 얼마나 되죠?

"아...아니야!! 그깟 종이 쪼가리로 널 어떻게 산다고... 그런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었어..."

혜주가 날 똑바로 쳐다본다...

혜주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창피함에 몸이 작아지는 듯 느껴진다... 순수하면서도...한 점의 부끄러움 없는 저 맑은 눈동자가 나뿐만이 아닌,, 병패한 삶에 찌든 어른들을 거짓말도 허세도 부리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 혜주였기에 지금 쓰고 있는 글의 내용이 날 더 가슴아프게 했다...

자신의 가격을 내게 물어보는 혜주는... 순수하면서 착한 본성을 지녔으면서도 돈이라는 현실세계의 독에 대해서 이미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스물두살의 너무도 조숙해 질수 밖에 없는 어린애였다...

-지금도...

혜주가 글을 적다 날 쳐다본다.

-너무 고마워요.

이어 적은 고맙다는 말은 손님들에게 의례 은행에서 듣는 말이지만 혜주의 입을 통한 말이 아닌...단지 종이에 적힌 글씨를 보게 된 나는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택배지를 채우며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죽기보다 더 싫었던 주소적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이 택배지가 고맙게 느껴진다.

혜주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주문량이 많아지고 나서 편해진 게 하나 있다. 예전이라면 별로 안 되는 물건을 직접 들고 편의점으로 아침 일찍 걸어갔어야 하지만... 이제는 많은 수량으로 인해 택배기사가 저녁마다 찾아왔기에 그냥 매장에 앉아 있으면 되는 편함으로 주문이 들어와도 그나마 늦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다른 이유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굳이 작은 방에서 잠을 자겠다는 혜주였지만 쌓여있는 내 물건들과 옷가지들로 어린아이라도 쪽잠을 잘 판인 작은방에 어떻게 혜주를 재울 수 있겠냔 말이다. 그래서 안방을 내 줬다. 아니 내 침대를 내줬다... 단 한 번도 어느 누구에게도 내준 적 없는 침대를 술 먹고 삼구가 내 집에서 잠을 자고 갈 때에도 절대 양보한 적 없는 내 소중한 공간이었지만 혜주를 위해서라면 매트리스 커버까지 손수 먼지를 털어줘도 아깝지 않았다.

뜬눈으로 잠도 못자고 있던 나는 핸드폰의 폴더를 열어 시간을 확인해 본다... 벌써 새벽2시다...

"휴... 이게 뭐냐..."

물이라도 마실 생각으로 일어났고. 냉장고로 걸어간다... 생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혜주가 누워 있을 안방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발걸음이 혜주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옮겨졌다...

바로 혜주가 자고 있는 방문 앞에 서서 귀를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혹시 코는 고는 게 아닌지... 고르게 숨은 쉬고 있는 게 아닌지... 괜한 걱정을 하며 온 정신을 귀에 집중하게 되었다.

갑자기... 문이 열렸고...깜짝 놀라 말못하는 사람처럼 뻐금대고 있는데 혜주가 눈을 비비며 날 빤히 쳐다본다.

저 늘어난 흰색 티는 옷핀을 제거했는지... 한쪽 어깨를 다 드러내 브래지어의 끈이 보였다... 헐렁한... 바지도 고무줄을 이중으로 묶었지만... 흘러내려 혜주의 골반에 걸려 있는 듯 보였다.

왠지 말을 하지도 않고 날 빤히 쳐다보는데...그제야 말을 못하는 혜주라는 걸 깨닫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헛소리를 입밖으로 뱉어내기 시작하는 나다...

"아...아니 난... 그냥 불편하지는 않은지...혹시 코는 고는지 걱정돼서..."

혜주는 날 빤히 쳐다보더니... 날 스쳐지나가듯 그냥 냉장고로 향한다... 길게 늘어트린 내 추리닝 바지를 발로 같이 밟으며 질질 끌고 가듯 걸어간 혜주가 냉장고를 열고는 내가 방금 입을 대고 먹었던 생수통을 꺼낸다... 그리곤 아무 망설임 없이 입을 대고 시원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내 큰 티를 입고 있는 혜주의 몸이 냉장고의 불빛에 투과대어 티속으로 라인이 그대로 그려진다... 잘록한 허리에 안 어울리는 풍만한 가슴이...

나도 모르게 침을 크게 삼키게 되었다... 주책없게 이게 무슨...

여자의 나신이라면 보미를 통해서 지겹도록 봤는데...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는데 혜주가 내 침 삼키는 소리를 들었는지... 날 의아한 듯 쳐다보다가... 갑자기 내게 다가온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혜주에게 들릴까봐... 나도 모르게 숨까지 참게 되었다...

바로 앞에 다가온 혜주가... 내게 생수통을 넘긴다... 내 침넘김이... 목이 마른 줄 알았나보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든 생수를 마시게 되었고. 혜주는 또 그대로 나를 지나 방으로 들어간다...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 무슨 사춘기 애도 아니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는 눕고는 애써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새벽3시가 지났을 때... 방안에서 끙끙대는 혜수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이게 무슨 소린가 생각하며 기어가선 혜주가 잠들어 있는 방에 또 귀를 가져다 댔다.

혜주의 신음소리가 분명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고... 땀을 흘리며 이불을 움켜잡고는 잔뜩 겁에 질려 몸을 떨며 자고 있는 혜주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조심스럽게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기어가선... 혜주의 손을 잡아줬다...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날 버리고 간 어머니가 날 떠나기 전에 악몽을 꾸는 내게 해주던 방법이다.

혜주가 내 손을 느끼며 처음에는 움찔거리더니... 조금씩 혜주의 손에서 전해지던 떨림이 멎어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진심으로 걱정을 하며 손을 잡아주면 그 마음이 닿는다는 어머니의 몇 안되는 내 기억속의 말을 어렵게 떠올리며 혜주의 악몽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며 손을 잡아주고 있었고,, 혜주가 숨을 편히 쉬기 시작했다... 이제 손을 놓으려고 했을 때... 혜주의 눈이 가늘게 떠져선 날 확인하 듯 바라봤다...혹시나 날 치한으로 오인할까 걱정했지만, 날 확인한 혜주가 내게 짧은 미소를 지어주곤 다시 눈을 감는다...

결국 한 숨도 못 잔 나는 6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슈퍼에서 사온 계란과 빵으로 토스트를 굽기 위해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있는데 방문이 열린다. 혜주가 나와선 날 쳐다보고 있다.

"미안... 나 때문에 깼지?"

"..."(혜주가 고개를 저으며 하품을 한다. 하품하는 모습까지 저렇게 귀여울까...)

내 몸 가까이 눈을 비비며 다가와서는 내가 들고 있는 프라이팬을 쳐다본다...

"아... 일찍 일어난 김에 토스트나 해주려고... 배고프지?"

가만히 날 쳐다보던 혜주가...갑자기 내 옷을 잡고는 끌어당겼기에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왜...왜 이래... "

"으응!!"(또 고개를 젓고는 가스레인지를 꺼버린다...)

"왜?"

"으으응!!"

"뭐??"

갑자기 혜주가 두리번거리더니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난 혜주의 행동을 지켜보고 서있는다. 내 작은 밥통을 꺼내 올려놓더니 쌀을 붓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가 지켜보는 건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쌀을 씻기 시작한다.

"혜주야... 나 아침 원래 안 먹어... 그냥 빵이면 되는데..."

"어어!!!"

"응?"

"으응!!"

날 약간 흘겨보며 밥솥의 쌀을 가리키곤 먹는 시늉을 한다...그리곤 양 팔을 위로 번쩍 들어 기지개를 편다... 그런 혜주의 행동이 너무 귀엽게 보이긴 했지만... 도통 뜻을 모르겠기에 계속 쳐다보고만 있으니 혜주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곤 노트를 가져와서는 글을 적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은 아침에 밥 먹어야 힘을 쓰죠!!

"아~~~~그래도 난 아침은..."

-바꿔요!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 그냥 차려드리는 밥이나 드세요!!

강한 느낌표 두개를 그리듯 쓰고는 노트에 볼펜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날 또 흘겨본다... 어쩔 수 없이 난 물러나 앉았다... 혜주는 흥얼거리며 밥을 안치고는 그대로 프라이팬을 데우곤 계란을 깨 넣었다.

잠시 고민하며 냉장고를 열고는 먹다 남은 김치를 꺼내 도마에 올려놓고는 칼질을 시작한다... 칼이 도마에 부딫히는 소리가 흥겹게 들리기까지 했다. 악몽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 내 앞에서 태평하게 요리를 하고 있는다... 아니... 꼭 잊으려는 듯 내 앞에서는 밝게 행동하고 있다...

내 기억이 형성되고 나서 난생처음 여자가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제 날 도와준 기억에서도 사라진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난 누구보다 행복감을 느꼈고, 혜주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내 코를 즐겁게 해주고 있는데 혜주가 날 흔들어 깨웠다.

언제 잠이 든 건지... 깜짝 놀라 깬 나는 이미 상에 다 차려놓은 접시를 보게 되었다. 주먹밥처럼 동그랗게 만들어진 납작한 김치볶음을 보게 되었다. 계란도 작게 뭉개져 들어가 있었고 양도 그리 많지 않은 보기에도 맛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란 국도 눈에 들어왔다... 조촐하면서도 호사스러운 아침식사를 하게 된 나는 먹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입에서 맴도는 볶음밥알이 맛있다고 느끼며 금세 접시를 비워 버렸다.

입맛을 다시며 혜주를 보니 눈을 깜빡이며 날 쳐다본다. 너무 급하게 먹었나...아니면 게걸스럽게?...

혜주가 '쿡쿡'거리며 자신의 접시에서 크게 한 숟가락 떠서는 내게 건네준다... 그것도 금세 비워버렸다... 내가 이렇게 식탐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

출근을 하기 위해 문을 나서며 혜주에게 몇 번이고 당부를 한다.

절대 문열어주지 말고!

다른데 나가지 말고!

매장에는 일찍 갈 필요 없으니 12시쯤에 나가고!!

사실 매장에 내 보내기 싫었지만... 그게 더 혜주에게 부담감을 준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늦게 내보내려는 내 속셈이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등을 밀고는 내게 자신의 손목에 손가락을 가리켜 늦었다는 시늉을 하는 혜주였기에 마지못해 출근을 하게 되었다...

월차를 냈고 손목에 붕대를 하고 출근한 나를 직원들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엔 멍도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이상하게 혜주 앞에서는 감성도 풍부하다 못해 넘쳤고, 결정도 너무 쉽게 내린 나였지만 회사에서는 달랐다. 지금까지의 우유부단한 내 직장 내 생활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게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된 나였는데... 거의 끝날 무렵에 유과장이 날 부른다...

"예?"

"무슨 일 있었나요?"

"아니요."

"근데 손하고 얼굴 왜 그래요?"

"아!... 괜히 시비가 붙어서요..."

"...그래서 쉬는 동안 생각은 해보셨나요?"

"죄송합니다... 지금 집에 중요한 일이 생겨서요... 아직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예? 무슨 일이요?"

"개인사정이라서요..."

"... 알겠습니다... 어차피 상처나 낳아야 시작해도 할 수 있겠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몸조리 잘하세요."

"예...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퇴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급하게 가방을 챙겨서 은행을 나갔고. 서둘러 지하철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옷가게들이 즐비한 쇼윈도 거리를 보게 되었다.

항상 지나가는 길인데... 한 번도 유심히 본적 없는 그런 가게들이었는데... 보는 옷들마다 전부 혜주에게 잘 어울려 보인다. 시계를 보니 아직 6시가 조금 넘었다... 어차피 혜주가 매장 일은 똑부러지게 다 해놨을거고... 7시 되면 집으로 갈 테니... 아예 집으로 가는게 좋을 듯 느껴졌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은행 앞까지 걸어간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가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자 옷들이 많을 줄은... 보는 것마다 전부 다 어울릴 거라는 생각에 오히려 쉽게 결정을 짓지 못하게 된다.

유명한 메이커의 매장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혜주의 화난 얼굴이 생각났기에... 나오게 된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는 떠리 상품 방출... 이라는 간판이 적힌 가게 앞에 서 있게 되었다.

가격대가 1~2만 원대의... 여자 옷을 사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이게 비싼 건지 싼 건지도 모르고 떠리 상품이라는 간판에 현혹되어 그냥 들어가 버렸다.

우선 편한 추리닝을 고르기 시작했다. 분위기 봐서 더 사주면 되니까... 한 벌씩 고르자는 생각에 그중에서도 가장 예뻐 보이는 옷들로 손이 가기 시작한다.

펑퍼짐한 것들보다는... 조금은 타이트해 보이는... 내 눈에 분홍색의 조금은 좁아 보이는 통의 추리닝이 들어왔다. 가슴에 크게 LOVE라고 적혀 있는... 난 보자마자 이걸로 결정하고는 우선 옷을 챙기게 되었다. 그리고 청바지와 티... 간단히 입을 수 있는 긴팔 후드 티도 하나 골라 계산을 마쳤다.

쇼핑백을 들고 왠지 모를 미소를 지으며 지하철을 향하는데...

내 눈에 여자 속옷가게가 들어왔다...그리고 혜주의 속옷이 생각났다... 허름해서 밑단이 다 닳은... 내 매장의 속옷들을 입히기에는... 나는 두 눈을 꽉 감고 그냥 들어갔고... 의외로 사람들이 있는 매장 안에 얼음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그때 점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서는 웃으며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아...안녕하세요..."

"선물하시게요?"

"예...예..."

"부인분꺼죠?"

"...예..."

"음...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예??"

"부인분 쓰리사이즈요."

"쓰리..."

"예... 모르세요?"

"..."

"저랑 비교해서 말씀하셔도 되요. 어느 정도 되세요?"

"..."

"괜찮아요.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예... 키. 키는 좀 작고요... 그러니까... 한 160정도는 될 거에요."

"호호호호... 키는 필요 없고요. 가슴은 어느 정도에요? 저보다 커요?"

내 앞에서 가슴을 내밀며 보여주는 여자직원의 태도에 내 얼굴이 빨개졌다.

"비...비슷한데... 허리가 많이 얇아요..."

"예?? 흠... 44인치 입으시나요?"

"아마...이...이 정도는 될 거에요."

손을 동그랗게 만들어 대충 여직원에게 보여주자... 부럽다는 듯 내 손을 쳐다본다... 그리곤 뒤돌아가서 두 세트의 검정과 빨강의 화려한 속옷을 가져와 보여준다.

"이...이런 거 말고... 좀...그러니까 대학생들이 입는..."

"예?? 대학생이요?"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여자의 시선이었지만... 사실을 말한 것뿐이니...같은 동종업계의 사람하고 대화를 하는 나였지만 그래도 얼굴은 더 빨개진다...

"잠시 만요..."

점원이 가져오는 속옷 중 가장 무난해 보이는 것들로 두 세트를 사곤 도망가듯 가게를 나온다. 하지만 내 손에 들려 있는 쇼핑백과 비닐봉지의 무게를 느끼자 이내 부끄럽다는 생각은 사라졌고, 기뻐할 혜주의 얼굴로 머릿속이 꽉 차기 시작했다.

뛰어가듯 계단을 올라간 난 오피스텔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역시 내 코를 즐겁게 하는 음식 냄새가 먼저 날 반긴다. 문소리에 혜주가 고개를 빼곰 빼고는 날 쳐다본다... 웃어주는 미소가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다시 요리에 열중하는 혜주의 모습에 서둘러 구두를 벗게 되었다.

혜주는 여전히 내 티와 추리닝 바지를 걷어 올려 입고 있었다. 오늘의 저녁은 수제비였다. 그러고 보니... 음식 살돈도 안주고 주방 일을 맡겼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잠시 양복도 벗지 않고 물끄러미 혜주를 바라보는데. 혜주가 숟가락으로 간을 보다 말고 날 쳐다본다. 머쓱해진 난 곧 방으로 들어가 추리닝으로 갈아입는다.

잠시 혜주의 선물을 지금 줄 건인지 밥 먹고 줄지를 고민하며 손에 들고 방에 서 있을 때... 밥이 다 됐는지 문을 열고 날 쳐다본다.

그리곤 내 손에 들려 잇는 한 아름의 봉지와 쇼핑백을 궁금한 듯 쳐다본다...

어차피 욕도 빨리 먹는 게 좋다고... 나는 돌아가려는 혜주를 불러 세웠다.

"혜주야..."

고개들 돌려 날 쳐다본다.

"이거 몇 개 사왔는데. 입으라고..."

혜주가 가만히 날 쳐다보다가 화가 났는지 눈을 흘기며 그대로 가스레인지로 돌아가 버렸다... 이 정도는 각오한 일이었기에 난 서둘러 쫓아가 혜주의 손을 잡았다.

"어른이 얘기 하는데!!"

갑자기 잡힌 손에... 혜주가 깜짝 놀랐는지 놀란 눈으로 잡힌 손에 떨림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너무 성급했다... 아직 그 사건에 대한 충격이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그러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손을 이끌고 혜주를 거실에 앉히곤 마주 보고 앉았다.

혜주는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지 앉은 채 내게 잡혔던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곤 어깨를 약간 움츠리곤 내게 보여주진 않지만 여전히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는듯 보였다.

"미안... 놀랐다면 미안해..."

"..."

"근데 너 아직도 나 못 믿니? 내가 네 작은 아빠랑 같은 놈으로 보여?"

"으응응!!"

혜주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든다...

"내가 변태 같겠지만... 넌 끝까지 안 건드릴 거야... 그건 약속할게... 그리고... 이건 널 위해서 산게 아니야..."

내말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본다.

"너 지금 입고 있는 옷 봐라... 그렇게 다 벌어진 티 사이로 가슴 다 보인다... 아무리 나라도... 너 그러고 있으면...나도 남자거든..."

내 말에 당황하며 조심스럽게 옷핀으로 고정한 목둘레를 더 여민다.

"그것 봐... 너도 신경 쓰이지? 그러니까...저거 입어... 그리고! 저거 시장에서 떠리로 5천 원씩에 파는 거니까 부담같은건 안 가져도 된다. 같은 집에 사는 아저씨...아니...아...아빠 같은 사람이 딸같이 생각하는 아이한테 이런 선물도 못해주냐..."

끝까지 하기 싫었던 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단어 만큼 혜주를 안심시킬 수 있는 단어는 세상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 단어를 사용한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혜주가 날 쳐다보며... 정말로 아빠를 찾으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렵게 우리 사이에 놓아둔 물건들을 손으로 잡아든다... 그리곤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일어나선 손으로 얼른 밥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아침보다 더 맑은 미소로 날 쳐다보곤...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저 미소가 있는 지금이 꿈이라면... 정말로 깨고 싶지 않았고... 영원히 잠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저녁시간이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는 혜주의 뒷모습을 보던 난 텔레비전으로 어렵게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잠시 텔레비전을 같이 본 혜주와 난 가끔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텔레비전을 향한다.

혜주가 방에 들어간 후 이불을 펼쳐 눕게 되었다...

누워 진짜 꿈이 아닌지 볼을 꼬집어 본다...아프다...그러다가 아까 생각했던 식대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들고 노크를 하며 문을 열었다.

갑자기 혜주가 무엇인가를 뒤로 숨기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분명히 등 뒤에 숨긴 손에는 내가 사준 분홍색 추리닝 상의가 들려 있는걸 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그게 창피한지... 벌개진 얼굴로 혜주가 날 또 흘겨본다... 저렇게 입어보고 싶은걸 밥먹고 텔레비전 보는 동안 어떻게 참았을까...침대 위에 이리저리 놓여있는 옷들이 날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문을 열고 서있는데... 혜주가 잰걸음으로 와서는 문을 소리 나게 닫아 버렸다...

역시 혜주도 스물둘의 꾸밀 줄 아는 처녀였다... 단지 절실하게 자신의 희생을 강요당한 삶으로 인해... 모든 걸 포기한 채 살아갔을 뿐... 누구보다도 귀엽고 아름다운 혜주도 역시 또래 여자처럼 예쁜 옷에 흥분할 줄 아는 여자란 게 날 안심하게 한다...

만약... 혜주와 결혼만 할 수 있다면 내 영혼도 팔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깨닫게 된다. 이렇게 순진하고 착한 혜주가 바로 앞에서 다른 여자와 뒹군 날 사랑 해줄 리도 없었고, 11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혜주를 맡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녀가 받은 상처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지울 수 있도록 나만이라도 사랑해 주기로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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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거의 다 낳았을 무렵 혜주도 예전의 곱고 앙증맞은 얼굴로 빠르게 회복이 되었다. 역시 젊음이 좋긴 좋은가 보다... 나보다 훨씬 심하게 부었던 얼굴이 이제는 거의 티도 안나니 말이다. 혜주는 요 며칠 동안 내가 사준 분홍색 추리닝만 입고 다닌다. LOVE라는 단어가 정말 마음에 드는지 나와 지내고나서 혜주의 두 번째 버릇이 생겼다.

가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땐 가슴부위에 그 반짝이며 꺼칠한 LOVE라는 글자를 쓰다듬기 시작한다. 위치기... 좀 거시기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이상하게 볼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훔쳐보게만 된다.

내 선택은 탁월했다... 약간 좁은 통의 추리닝은 혜주의 몸에 딱 들어맞았고, 잘록한 허리와 볼륨감 죽이는 가슴과 엉덩이를 어느 모델보다도 아름답게 추리닝을 맵시있게 소화했다.

근데... 보면 볼수록 자꾸 야릇한 생각이 스믈스믈 몰라온다... 애써 잡생각에 빠져들때가 많았다...

일주일동안 혜주도 많은 안정을 찾았고, 이제는 무의식적인 나와의 접촉에 더 이상 몸을 떨거나 도망가지도 않았다. 원래 스스럼없는 예전의 혜주로 그렇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게 오히려 내겐 악이 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색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우리의 가까운 사이인데... 정작 저 탐스럽고 앵두 같은 입술에 입술을 포갤 수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볼륨감이 솟아오른 만지면 손이 녹아버릴 듯 한 가슴도 훔쳐보게만 된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으려다가도... 여기에 혜주의 엉덩이가... 머리를 저으며 무슨 변태 같은 생각이냐는 생각이 들어 자책하게 된다.

결국 혜주로 인한 근 3개월간의 금욕생활은 서서히 날 미치게 만들기 시작한다... 괜한 짜증을 내려다가도 혜주의 얼굴을 보면 그냥 참는... 남자의 욕구불만이 얼마나 무서운지...

돌아온 수요일에 오늘도 여지없이 지금 나는 보미와 란제리 사진을 찍고 있다. 저번 주엔 혜주를 봐야한다는 일념으로 촬영을 미뤘는데... 업뎃이 느리다고 삼구에게 한 소리 듣고 어쩔 수 없이 혜주에게는 말도 못하고 보미의 야한 몸짓을 보며 촬영 시작했다... 가죽으로 이뤄진 긴 부츠에 아주 짧은 교복처럼 생긴 코스프래 복장이다. 이게 왜 속옷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 보내준 제품 중 이런 코스프래 옷이 은근히 인기가 있었다. 하긴 저렇게 배꼽이 훤히 보이고 허리를 숙이면 엉덩이 속까지 다 보일 뻔뻔한 교복을 빙자한 천 쪼가리를 입고 밖을 도저히 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속옷이 맞긴 한가보다...

촬영을 계속하며 보미의 음란한 포즈에 심취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는 욕구불만의 난... 오랜 금욕생활로 이미 꼴려서 커진 자지를 허벅지를 움직여 보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미가 누군데... 포즈를 취하면서도 보미의 시선은 내 사타구니 속에 꽂혀 있었다. 약간 내리 깐 보미의 시선이 뇌쇄적인 몸짓으로만 생각하던 난 그 시선의 중심에 내 하반신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도저히 계속 이성적으로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잠깐!... 좀 쉬자..."

나는 몸을 돌려 곧바로 테이블 의자에 앉고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한대 꺼내 피기 시작했다. 차라리 딸딸이라도 칠 수 있었으면...혜주가 있는 곳에서 그러긴 싫었고 할수도 없었다, 퇴근 후에는 혜주가 보고 싶어 매장엔 확인만하고 집에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일이 허다했으니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담배를 피며 그냥 혜주의 귀여운 행동을 생각하기로 한다. 그럼 줄어들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근데 보미가 도와주질 않는다... 가만히 날 지켜보던 보미가...내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가슴 밑 부분이 보이는 교복상의를 잡고 흔들기도 하고... 짧은 체크무늬 치마를 살짝살짝 들어 올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던 보미가 내 앞에 섰다. 갑자기 상의를 끌어올려 저 인조인간 가슴위에 걸쳐놓는다... 훤히 보이는 보미의 미사일 유두... 작아지던 자지가... 다시 벌떡인다...

"아궁... 울 자기 많이 참았구나~~"

"시끄럽고 저기 앉아서 좀 쉬라고..."

"시끄럽긴~~ 자기야~~~ 내가 오랜만에 행복하게 해줄게..."

내 무릎위에 다리를 천천히 벌리고 앉는 보미의 행동에 치마가 벌어지며 거의 끈으로 이뤄진 하얀색 레이스팬티가 훤히 보인다. 나도 모를 무의식적인 침 삼킴... 혜주를 생각하면 당장 보미를 떨어트려야 하는데... 내 사타구니에 바짝 엉덩이를 붙이곤 천천히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양손으로 가뜩이나 솟아오른 가슴을 잡고 모으는 보미의

바로 눈앞의 보미 모습이... 내 이성을 본능이 막기 시작했다... 조금씩 옷 위로 자지를 밀착하며 보미의 부드러운 허벅지 사이의 굴곡진 틈으로 문지르는데... 단지 문지르는데 사정을 하려고 한다...

내 손이... 천천히 보미의 허리를 잡으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바지를 벗고 저 끈과 같은 팬티를 젖혀 쑤셔 넣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기 시작했고, 나는 보미가 양손으로 모아 앞에서 흔들고 있는 유방의 꼭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달콤하고...커다란 포도방울의 껍지을 벗겨내듯 이빨을 세워 깨물며 혀를 굴린다.

조금씩 유두가 커지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가슴을 손을 놓고 내 머리를 잡기 시작한 보미는 천천히 입을 벌려 내 혀의 감촉에 부드러운 신음소리를 뱉어낸다.

그런데 엉덩이를 흔들며 날 더 자극시키던 보미의 행동이 갑자기 멈췄다...갑자기 신음소리도 멈춘 보미였기에 고개를 들어 올려 보는데... 보미가 출입구 쪽을 놀란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고개를 돌려 입구를 향했고... 혜주를 보게 된다...

내가 사준 LOVE라는 글짜가 크게 적혀 있는 분홍색 추리닝을 입고 있는 혜주를...보게 되었다.

입구에 서서... 한손으로 입을 막고는 너무나 커진 눈동자로 나와 보미를 쳐다보고 있는... 혜주는 천천히 들고 온 비닐봉지를 떨려보이는 손으로 책상에 내려놓고는 로봇 같은 빳빳한 걸음걸이로 입구로 돌아가 나가버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혜주의 빠른 발소리...

방해꾼이 사라지자 보미는 다시 엉덩이를 흔들었지만... 난 충격에... 자지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멍하니 혜주가 사라진 입구를 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곤 아직도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보미를 밀다시피 떨어트린 후 책상위에 놓여있는 비닐봉지를 연다...

도시락 통안의 샌드위치와... 커피가 들어 있는 듯 보이는 보온병이 있었다. 그리고 혜주가 나와 대화를 할 때 사용하는 노트와 볼펜이 놓여 있었다...

"자기야~~~~"

"아씨!! 조용 좀 해!!"

"..."

내 고함소리에 황당하다는 듯 날 쳐다보는 보미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방금 혜주의 표정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기에 보미의 째려봄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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