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213화 (213/221)

< 『해외편 - 213』 >

『해외편 - 213』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붓고도 LA 다저스 때문에 지구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지만, 역시 돈의 힘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걸 끝까지 보여주듯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대승을 거두며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올 수 있었다.

내셔널리그 승률 1위를 차지한 LA 다저스로서는 와일드카드를 따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숙명과도 같은 디비전 시리즈를 준비해야만 했다.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의 새로운 라이벌 매치가 생겼다며 떠들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열기가 과도할 정도로 치솟고 있었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은 10월 8일에 다저 스타디움에서 펼쳐진다.

더불어 내셔널스 파크에서는 워싱턴 내셔널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도 열린다.

하루 전인 오늘은.

-오스카 맥스! 또 다시 역전 투런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양키 스타디움을 침묵으로 빠트리는 역전 투런 홈런! 오늘 경기 두 번째 홈런을 터트리며 에인절스의 승리를 이끕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고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 LA 에인절스는 뉴욕에서 벌어진 양키스와의 디비전 1차전에서 9회 초, 오스카 맥스의 투런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올 시즌 오스카 맥스가 완전히 펄펄 날아다니는 걸 보면 로키스에서 엄청나게 속이 쓰릴 거야?”

“그렇겠지. 올 시즌 오스카를 이적시키고 데리고 온 조슈 엘바가 중간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 당하면서 변변하게 활약을 하지 못했으니 오스카가 그립겠지.”

“이런 거 보면 참 재밌단 말이야. 한 물 갔다는 평가를 받아 미련 없이 버린 오스카 맥스는 펄펄 날았고, 이제 막 전성기를 향해 폭주하던 조슈 엘바는 시즌 초기부터 부진하더니 중간에 시즌 아웃까지 당해버리고. 이래서 야구가 참 재밌어. 흐흐흐!”

형수가 웃으며 아몬드를 한 움큼 집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아드득 소리와 함께 형수의 입속에서 무참하게 부서지는 아몬드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TV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작년까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뛰었던 오스카 맥스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결국은 LA 에인절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올해 34살의 오스카 맥스를 영입했을 때만 하더라도 에인절스 팬들은 크게 반겨하질 않았다. 이미 기량이 떨어진 오스카 맥스보다 더 좋은 외야 자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던 조슈 엘바를 잡지 못한 에인절스 구단을 향한 팬들의 비난은 대단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면서부터 오스카 맥스는 자신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라도 됐다는 듯 연일 맹타를 휘둘러댔고, 결국 3할의 타율과 21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2028년 에인절스 최고의 계약 선수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런 오스카 맥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2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끝내 1차전 승리의 최고 수훈 선수가 되었다.

“디트로이트 경기도 끝났네. 예상대로 디트로이트가 오클랜드를 이기면서 1차전을 가져갔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형수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홈 구장인 코메리카 파크(Comerica Park)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 팀은 뉴욕 양키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LA 에인절스였다. 비록, 전문가들의 예상과 다르게 양키스가 에인절스에게 1차전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아직 4번이나 경기가 남아 있었기에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섣부르게 예측할 수 없었다.

나와 형수에게 중요한 건 하나다.

어느 구단이 승리를 가져가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경기를 치르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길 희망할 뿐이다.

“마지막까지 피터지게 싸워서 너덜너덜해져서 월드 시리즈에 올라와라. 흐흐흐!”

형수의 말에 나 역시 웃고 말았다.

TV에서는 내일 벌어질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에 대한 프리뷰가 시작되고 있었다.

“푸하하하하하!”

TV를 보던 형수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전문가와 기자들은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디비전 1차전의 승리 팀을 만장일치로 LA 다저스를 꼽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과 기자들은 LA 다저스의 승리를 선택함에 있어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이유, 바로 내가 선발 투수로 등판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샌디에이고 감독이면 과감하게 선발 로테이션을 완전히 꼬아버린다. 어차피 이길 확률이 떨어지는 경기에 에이스를 왜 등판시켜? 안 그렇냐?”

형수의 물음에 나는 웃고 말았다.

냉정하게 따져서 단기 승부에만 초점을 맞춰서 3승만을 고집하겠다면 형수의 생각이 딱히 틀린 건 아니다.

효율성에서는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바꿔버리면서까지 승리를 고집한다면 감독의 명성과 선수들에 대한 신뢰감을 대폭 잃을 수밖에 없어진다.

특히, 로테이션이 바뀐 선발 투수의 자존심은 어디서도 회복할 수 없다.

메이저리그 스타급 선수들의 자존심과 명예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팀 승리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버린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형수의 생각이 현실로 변했다.

“뭐, 뭐야?”

경기 시작 4시간 전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선발 투수 변경을 알려왔다.

1선발 투수이자, 에이스인 맥스 프리드가 허리 통증으로 불가피하게 선발 투수를 변경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덕분에 오늘 LA 다저스 타자들은 5선발 투수인 그렉 오도밀을 상대해야만 했다.

허리 통증?

그럴 수는 있다.

투수의 몸은 무척이나 예민하니까.

하지만,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팀 에이스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에이스 맞대결을 피하라는 구단과 감독의 압력이 있었는지, 맥스 프리드가 직접 날 피하겠다고 한 건지, 정말 갑작스런 허리 통증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선발 투수 변경 통보는 여러 가지로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었다.

또한 경기가 끝나면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 만한 일이었다.

“정말 허리 통증일까? 내가 생각 했을 때는 전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뭔가 찝찝한 기분인데, 이거 나만 그런 거냐? 흐흐흐.”

말을 하는 형수의 표정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모르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나 역시 후자 쪽에 조금 더 무게를 줬다.

“어쨌든 오늘 생각보다 맥 빠진 경기가 될 것 같다.”

“월드 시리즈 우승을 향한 중요한 첫 경기니까 상대 팀이 어떻게 나오든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경기를 하면 돼.”

내 말에 형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맥스 프리드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오늘 경기 승리가 더 쉽게 생각 드는 건 사실이잖아.”

형수의 말에 딱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LA 다저스를 상대로 평균자책점이 2.79인 맥스 프리드와 한 경기일 뿐이라고 하지만 4이닝 6실점으로 강판 당한 기억이 있는 그렉 오도밀을 비교할 순 없다.

“맞다. 그런데 도대체 15일에는 어딜 가는 건데? 최소한 어딜 가는 거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아냐? 응? 어딘데? 어디 가는 건데?”

송종섭 결혼식에 간다고 하면 형수가 뭐라고 할까?

뻔히 예상되는 모습에 나는 끝까지 침묵하기로 했다.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타선은 화려하다.

내셔널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최강의 타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1번 타자 마누엘 마고부터 시작해서 올 시즌 2번 타자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크리스찬 그림즈, 알렉스 잭슨, 바이런 벅스턴, 도미닉 스미스, 칼럼 레니, 윌리 아다메스, 오스틴 헤지스까지 만만한 타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여기에 언제든 대타로 기용될 수 있는 타자들까지 생각한다면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고의 득점력을 자랑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공격력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딱!

‘먹혔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3번 타자 알렉스 잭슨의 타구가 좌익수의 글러브에 들어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명백한 실투였다.

실투율이 메이저리그 최하위에 기록되어 있는 나지만, 실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실투를 던졌을 때, 과연 타자가 그걸 놓치지 않느냐인데 다행이라면 나 같은 경우에는 실투조차 구위가 뛰어나다는 평가 때문인지 장타가 많이 나오질 않았다. 물론, 중심 타자들을 상대로 집중력 있게 공을 던지기에 실투가 나온다 하더라도 하위 타선에서 대부분 이뤄져서 홈런을 맞질 않았던 거다.

하지만, 방금 공은 굉장히 위험했다.

한 가운데로 몰린 컷 패스트볼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알렉스 잭슨의 타격이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타구가 먹혀서 날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익수가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나야 했을 정도로 멀리 날아갔으니 제대로 맞았다면 1회부터 홈런을 허용할 뻔 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괜찮아?”

마운드를 내려온 내게 형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짧은 물음 속에 꽤 여러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디비전이라는 큰 경기에 긴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가장 컸다.

“걱정할 것 없어. 단순 실투니까.”

“그렇지? 하긴, 경기 전까지 컨디션 좋았으니까…….”

말끝을 흐리면서도 형수는 내 눈치를 살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서 외투를 걸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월드 시리즈 우승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큰 시점이었다.

디비전 1차전에서 월드 시리즈를 말한다는 게 성급할 순 있지만, 어쨌든 첫 스타트를 얼마나 잘 끊어주느냐가 중요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게레로 감독부터 시작해서 코치진, 선수들까지도 모두 은연중에 느끼고 있는 긴장감이 상당했다.

경기 직전까지 나와 실없는 소리를 해댄 형수마저도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긴장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후우우우.”

이럴 때 에이스로서 굳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보여줘서 모두가 신뢰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긴장하는 거야?”

트라웃이 내 옆에 앉으며 그렇게 물었다.

“긴장되기 보다는 뭐랄까…….”

명확하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말을 흐리니 트라웃이 빙긋 웃었다.

“메이저리그 2년 차 루키에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의지를 하고 있으니 그 부담감이 적지 않겠지. 너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지금 네가 무슨 심정일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

다른 누구도 아닌 트라웃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올 시즌 너로 인해 다저스가 지구 1위를 할 수 있었어. 만약, 네가 없었다면 분명 파드리스에게 1위 자리를 뺐겼을 거야. 이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 겸손해 할 필요 없어. 그러니까 오늘 경기에서도 왜 우리가 파드리스를 누르고 지구 1위를 할 수 있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줘. 긴장할 것도 없고, 타자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어. 마운드 위에 누가 서 있는지, 어째서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투수가 되었는지 실력으로 증명하면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지?”

트라웃의 말에 내가 희미하게 웃고는 대꾸했다.

“평소처럼 던지라는 말을 참 길게도 돌려서 말하네요. 트라웃이 더 긴장하고 있는 걸 그렇게 티 내지 않아도 되요.”

“뭐?”

내 대꾸에 트라웃은 잠시 멍하니 날 바라보다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거 한 방 제대로 먹었는데!”

트라웃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더그아웃의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내가 고백 하나 하자면… 나 오늘 화장실을 스무 번이나 갔다 왔어. 이건 비밀이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알겠지?”

아주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을 하고 트라웃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시즌, 그리고 마지막 월드 시리즈.

무엇을 하든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게 되는 트라웃이었기에 그의 긴장감이 다른 그 어떤 때보다도 더 클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팀의 리더로서 태연한 척, 다른 선수들을 격려하며 힘을 주려고 하고 있으니 그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그리고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선배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내년에 재계약이 되면 좋겠는데.’

쉽진 않겠지만, 다저스 구단에서 올 시즌 트라웃의 리더쉽을 충분히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악!

“와우!”

내가 트라웃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이 큼지막한 타구가 시원스럽게 외야를 향해 뻗어 나갔다.

대형 홈런을 터트린 사람은 코리 시거였다.

1회 말, 2아웃 상황에서 선제 솔로 홈런을 날린 코리 시거였지만, 기쁜 표정이 하나도 없이 묵묵하게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코리 시거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말을 자제하고 있었다.

팀의 고참 선수로 분위기를 잡기보단 스스로의 감정을 극한으로까지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LA 다저스 선수들 중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가장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코리 시거라는 사실을.

모두가 간절하게 원하는 월드 시리즈 진출의 첫 걸음.

‘확실하게 스타트를 끊자.’

1회의 실투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그리며 남은 이닝 완벽하기 투구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 『해외편 - 213』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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