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212』 >
『해외편 - 212』
우리가 이런 악수를 나눌 사이였던가?
생각은 잠깐이었고 곧바로 손을 내밀어 송종섭과 악수를 나눴다.
어떤 사이였던 간에 악수 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이어진 침묵.
잠시 우리 둘 사이에 어떠한 말도 없었다.
나도 그렇고 나를 기다린 송종섭 역시도 악수와 첫 마디를 나눈 이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무겁던 분위기를 깨트린 건 송종섭이었다.
“씨발 새끼. 넌 옛정도 없냐?”
거칠게 툭 내뱉는 말투였지만, 예전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무슨 옛정? 우리가 그런 걸 나눌 만한 사이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그렇네.”
내 대꾸에 송종섭이 픽픽 웃었다.
“시간 좀 되냐?”
오늘 선발 투수였기에 내일 경기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고, 내일과 모레까지 밀워키 브루어스와 경기를 치러야 했기에 급할 건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송종섭이 곧바로 말했다.
“경기장 밖에 싸고 괜찮은 단골 피자집이 있는데 한 판 쏠 테니까 가자.”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는 송종섭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저 녀석과 할 말이 있나 싶었지만, 이제 와서 뒤로 빼기에도 그렇고 나는 할 말이 없어도 녀석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기에 따라 움직였다.
송종섭이 안내한 단골 피자집은 경기장 바로 코앞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마한 가게였다.
테이블이라고 해봐야 고작 3개가 전부였기에 수입의 원천은 테이크 아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헤이~ 제리!”
가게로 들어서자 퉁퉁한 흑인 남자가 송종섭을 반겼다.
송종섭은 간단하게 손인사만 하고는 제 집에 온 것마냥 비어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 마이 갓!”
흑인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는 가게가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를 내질렀다.
호들갑스럽게 날 향해 다가오더니 차지혁이 맞냐고 빠르게 물었고,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았기에 가벼운 미소와 함께 대답을 해주었다.
몇 마디의 말과 악수를 해주고 나서야 송종섭의 맞은 편에 앉을 수 있었다.
“역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는 다르네.”
이건 비아냥거리기 위해 한 말이 분명했다.
형수였다면 대번에 버럭 소리를 내질렀겠지?
“그래서? 부러워?”
내 대꾸에 송종섭이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씨발 존나게 부럽다.”
그렇게 대꾸한 송종섭은 고개를 돌리고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피자! 플리즈!”
주방에서 알겠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대꾸가 나왔고, 송종섭은 입에 붙은 듯 ‘씨발’이라는 욕을 연신 내뱉으며 흑인 남자를 향해 구시렁거렸다.
그런 송종섭을 바라보다 문득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너 영어 못하냐?”
내 물음에 송종섭이 아주 잠깐 표정이 경직됐다.
표정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미국에 온지 몇 년인데 아직도 영어를 제대로 못하다니.
“학교 자퇴하고 바로 미국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한국 놈이 한국말만 잘하면 그만이지. 영어는 지랄.”
“그럼 한국에 살아야지 왜 미국에 사는데? 꼴통새끼.”
나도 모르게 뒷말이 나왔고, 송종섭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킥킥 거렸다.
“샌님처럼 야구밖에 못하는 놈인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용건이 뭐야?”
내 물음에 송종섭의 시선이 가게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담배에 머물렀다.
“밖에서 한 대 피우고 오던지.”
송종섭이 고개를 저었다.
“끊었어. 앞으로 태어날 아……. 어쨌든 담배하고 술하고 다 끊었어.”
“결혼했어?”
“반쯤.”
다른 사람이었다면 누구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언제 했냐 등등 질문이 이어졌겠지만 송종섭에게는 굳이 그런 질문을 할 의미를 못 찾았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쩌다 사고가 난 건데…….”
지난 과거를 꺼내는 송종섭의 이야기를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도 한 일 년 정도는 정신 못 차리고 방황 좀 했지. 얼굴도 그때 생긴 거고. 그러다…….”
방황하던 송종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바로 잡아준 사람은 녀석의 외삼촌이자 한 때는 일석고등학교의 투수 코치였던 정해용이었다.
조카의 천재적인 재능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까지 포기하면서 송종섭을 끌어안은 사람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네가 한국 프로 무대에서 잘 나가는 꼴을 보니까 배알이 꼴리더라. 나보다 공도 느린 새끼가 강속구 투수네 어쩌네 하면서 떠들어대는 것들도 병신 같고, 네가 던지는 공도 제대로 못 치는 타자들도 전부 허접쓰레기들 같고…….”
말을 하며 킥킥 거리는 송종섭이었는데, 자기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부추기던 삼촌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난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놈이라고 생각했다. 내 또래에 나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놈을 한 명도 못 봤으니까 뭐 우쭐했던 거지. 중학교 때 감독이 그러더라. 너 같은 놈은 투수를 해선 안 된다고, 살인 무기나 던지는 놈은 절대 마운드에 올라서선 안 된다고. 그러다 일석고에서 너를 만났고, 네가 그랬지? 무법자라고, 나를 마운드에 올려 줄 감독은 없다고. 그렇지 않아도 나보다 공도 느린 네가 전국 최고니 어쩌니 하니 마음에 들지 않는데 중학교 감독과 같은 소리를 하니까 얼마나 기분이 더럽던지. 아마 삼촌이 코치로 있지 않았다면 야구부에서 쫓겨나더라도 네 얼굴에 주먹을 날렸을 거다.”
“누가 맞아 준대?”
“푸하하하하!”
송종섭이 진심으로 재밌다는 듯 커다랗게 웃었다.
그러는 사이 따끈따끈한 피자가 나왔다.
“척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단언하건데 밀워키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일 거라고 자부합니다!”
“먹어. 보기에는 후져 보여도 가격도 싸고 맛 하나는 정말 좋으니까.”
송종섭은 피자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말했다.
흑인 남자, 가게 주인이라며 자신을 더슨이라고 한 그의 말대로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말처럼 밀워키 최고의 피자일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더슨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 차올랐다.
배가 고팠던지 송종섭은 말없이 피자만 묵묵히 씹어댔다.
나 역시 경기 직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기에 천천히 피자를 먹었다.
“꺼억~! 이제야 좀 살겠네!”
피자를 깨끗하게 다 먹고 나자 송종섭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남아 있던 콜라를 들이켰다.
“덕분에 정말 맛있는 피자 먹었다.”
“맛있었다면 됐지 뭐.”
“그런데 정말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설마 나한테 네 과거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거야?”
내 말에 송종섭이 모자를 벗으며 땀으로 떡이 져버린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씨발, 머리가 길면 이럴 때는 정말 엿 같단 말이야.”
녀석이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자 대충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오늘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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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갔다 온 거야?”
호텔에 들어서자 형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아무런 말도 없이 송종섭과 이야기를 나누는 바람에 내가 없어진 줄 알고 클럽 하우스가 한 바탕 난리가 났다고 했다.
“종섭이 좀 만나고 왔어.”
“뭐! 누굴 만나?”
형수가 깜짝 놀라며 날 바라봤다.
“그 새끼가 왜? 무슨 해코지라도 했어?”
말과 함께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형수였다.
“왜? 싸움질이라도 했을까봐?”
“그럴 수도 있지! 종섭이 그 새끼가 어디 보통 놈이냐? 네가 무뎌서 그랬지, 그 새끼가 널 얼마나 잡아먹으려고 항상 벼르고 있었는지 알아? 오늘 그런 치욕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냐?”
“고맙다던데.”
옷을 벗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뭐? 뭐라고?”
형수의 목소리는 곧바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쏴아아아아-.
물줄기를 맞으며 종섭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진심이다. 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 네 입장에서는 무슨 지랄 같은 소리냐고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망가진 몸을 만들면서 악착같이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너였다. TV 속에서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널 보면서 반드시 내 손으로 부숴버리고 말겠다고 널 내 앞에 무릎 꿇리고 말겠다고 다짐하면서 버텼다.’
‘마이너리그를 거쳐서 메이저리그에 올라왔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있었는데… 씨발, 내 생각처럼 되질 않더라. 지금도 누구보다 빠른 공은 던질 수 있다 자신하는데 그 뿐이야. 네 말대로 내 뜻대로 컨트롤도 하지 못하는 공을 던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리고 쪽팔리지만… 그때 기억 때문인지 힘껏 공을 던질 수도 없겠더라.’
‘구속? 믿을지 모르겠지만 비공식적으로는 105마일까지 던져봤다. 씨발, 진짜라니까! 그런데 포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서… 어쨌든 그러다보니까 외야에서 힘껏 공을 던질 때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도 들고 있는 힘껏 공을 던질수록 모두가 환호를 해주니까 기분이 좋더라. 투수? 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이제 마운드에 올라가고 싶지도 않다. 그냥 맘 편하게 타자로 타석에 서서 투수가 던지는 공을 치는 게 더 편하고 좋아. 그리고… 투수를 두들겨 패는 기분도 들어서 짜릿하고 킥킥!’
‘고맙다. 이 말 하고 싶어서 보자고 했다. 네 입장에서는 황당하겠지만,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부수고 싶은 경쟁자였다. 뭐, 오늘은 개쪽이나 당하고 말았지만. 개새끼야! 그딴 엿 같은 표정 짓지마!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다음에 만나면 홈런을 때려버릴 테니까 긴장하고 있어! 알겠냐? 새끼! 쪼개기는.’
송종섭의 진심을 듣게 될 줄이야.
확실히 녀석은 내가 알고 있던, 내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던 녀석이 아니었다.
달라졌다.
피자 가게를 나와서 다시 한 번 악수를 했을 때에는 녀석의 손이 무척이나 거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배트를 휘두르며 노력을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만.
‘야! 차지혁! 너… 혹시 15일에 시간 되냐? 그때… 나 결혼하는데 시간 되면 와서 밥이라도 한 끼 하고 가던지.’
‘우리 와이프 존나 예쁘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네 여친보다 우리 와이프가 백배는 더 예쁘다. 사진 보여 줄까?’
‘이 새끼 표정 봐라? 완전 반한 표정인데? 그래도 이미 내꺼라고 확실하게 도장 쾅! 찍었다! 두 달 후면 아기도 태어나고. 너도 그렇겠지만, 훈련으로 힘들다가도 와이프 사진 보면 저절로 힘이 나더라. 꼭 성공해서 와이프랑 태어날 아기랑 같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거다. 그러니까 시간 되면 와서 축하나 해줘라.’
송종섭의 와이프.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하는 내내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던 녀석의 사랑하는 여자가 정혜영일 줄은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사람의 인연이 참 알 수 없다…….”
벌컥!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다! 종섭이 그 새끼가 왜 너한테 고맙다고 한 건데? 무슨 더러운 개수작을 부리려는 거 아니야? 도대체 왜 고맙다는데? 너 혹시 돈 빌려 줬냐?”
욕실로 들어 온 형수를 바라보며 한 가지를 다짐했다.
“15일에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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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년 메이저리그가 끝이 났다.
31전 28승 1패.
256이닝을 던졌고, 15실점으로 0.5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427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2년 연속 200이닝을 던지며 강철 같은 체력과 어깨를 자랑했고, 작년보다 더 낮아진 0.53의 평균자책점은 모두를 질리게 만들었으며, 427개의 탈삼진은 현대 야구 기록에서 최고로 평가를 받았던 놀란 라이언의 1973년 383개의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우며 ‘퍼펙트 K’라는 또 하나의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1886년 맷 킬로이가 기록한 513개의 탈삼진도 깨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사를 썼지만 솔직히 그 기록은 현대 야구에서는 불가능했다.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만장일치의 사이영상과 MVP를 예약했으며, 이 기록 또한 메이저리그 최초로 2년 연속 사이영상과 MVP를 수상하는 경이적인 선수라는 언론의 보도는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메이저리그에서의 두 번째 시즌은 끝이 났다.
하지만 끝나버린 시즌과는 별개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디비전 시리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팀은 재밌게도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극적으로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온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 『해외편 - 2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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