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211』 >
『해외편 - 211』
딱!
타구가 빠른 속도로 외야를 향해 날아갔다.
우익수의 머리위에서 뒤로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타구였기에 수준급 수비 실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결코 잡기 쉬운 공이 아니다.
“놓쳐라! 놓쳐라! 놓쳐라!”
형수는 주문이라도 외우는 마법사처럼 옆에서 떠들어댔다.
타구를 쫓아서 뒤로 달리던 송종섭은 급격하게 떨어지는 타구를 향해 힘껏 글러브를 뻗어봤지만, 글러브 끄트머리에 살짝 공이 맞으며 바닥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네깟 놈이 잡을 리가 없지!”
송종섭의 글러브에 타구가 맞고 떨어지는 순간 형수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하지만, 형수의 기쁨도 잠시.
송종섭이 아주 잠깐 공을 더듬는 사이 2루 베이스에 멈춰야 했을 크레이그 바렛이 3루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크레이브 바렛이 2루 베이스와 3루 베이스의 중간 지점에 도착했을 때, 송종섭이 3루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어어어어?”
형수의 벌어진 입만큼이나 눈동자도 급격하게 커졌다.
레이저 송구.
흔히들 말하는 외야수의 엄청난 송구가 송종섭의 어깨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웃!”
슬라이딩까지 해가며 크레이그 바렛이 베이스를 노렸지만, 간발의 차이로 송종섭의 송구가 3루수 윌리엄 그리피스의 글러브에 정확하게 들어가며 태그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우와아아아아아!
우익수 깊은 곳에서 3루까지 다이렉트로 날아온 멋진 송구에 밀워키 브루어스의 홈팬들은 기립박수를 쳐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송구 멋지네!”
미치 네이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렸고, 주변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직 한 사람, 형수만이 한국말로 개뽀록이 터졌다면서 저런 건 인정할 수 없다며 어깃장을 놨지만 관심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유니폼에 흙이 묻은 그대로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크레이그 바렛을 동료 선수들이 모두 잘했다며 격려해주었다.
“뒤통수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줄 알았어! 젠장! 다음부터는 뛰지 말아야겠어!”
크레이그 바렛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대부분의 선수들이 우익수 쪽으로 공이 날아가면 주루 플레이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걸 분명하게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발 빠른 크레이그 바렛마저 저렇게 잡혀버렸으니 웬만한 선수는 시도조차 해볼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크레이그 바렛이 아웃을 당하기는 했지만, 2루에 있던 던컨 카레라스는 무난하게 홈으로 들어오며 선취득점을 올렸다.
경기는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밀워키 브루어스의 선발 투수인 애덤 슈나이더는 리그 정상급의 투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3회까지는 완벽하게 LA 다저스 타선을 막아냈다. 그야 말로 호투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하지만, 타자가 한 바퀴 돌자 곧바로 선두 타자인 던컨 카레라스가 2루타를 터트렸고, 이어서 크레이그 바렛까지 2루타를 터트리며 타점을 올렸다.
주자가 없는 상황이 애덤 슈나이더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이미 그의 공이 완전히 눈에 익은 LA 다저스 타자들은 더 이상 쉽게 아웃 카운트를 헌납하지 않았다.
따악!
3번 타자인 코리 시거까지 안타를 치며 1루로 출루하자 곧바로 밀워키 브루어스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
템포를 끊어가겠다는 의미고, 혹시라도 흥분했을지 모를 애덤 슈나이더에게 시간을 주어 냉정함을 되찾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4번 타자 데니스 플린에게는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약간 높은 코스로 들어온 92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은 데니스 플린의 배트를 비껴가지 못했다.
따- 아악!
좌측 펜스를 완벽하게 넘겨버리는 투런 홈런이 터지자, 애덤 슈나이더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3회까지 호투를 보여주다 4회에 3실점을 하며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애덤 슈나이더의 모습은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메이저리그의 투수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마이크 트라웃과 형수의 안타로 또 다시 1점을 실점하고 나서야 애덤 슈나이더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던 4회가 지나갔다.
“삼구삼진! 알았지?”
4회 말, 수비를 하기 위해 마운드로 향하는 나에게 형수가 재빨리 다가와 그렇게 말했다.
1회부터 3회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이번 4회 말에는 다시 한 번 송종섭과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었다.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다.
메이저리그 2년 차에 불과한 나였지만, 어느 누구도 나를 갓 메이저리그에 적응한 햇병아리로 보지 않았다.
오늘 경기 전까지 27승을 올린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의 투수, LA 다저스 선배였던 클레이튼 커쇼의 뒤를 이어 지구 최강의 투수라 불리고 있는 슈퍼 에이스다.
타석으로 들어선 밀워키 브루어스의 1번 타자 제이슨 워커를 공 두 개로 땅볼 아웃 처리하고 다시 한 번 송종섭과의 대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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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게 떨리는 두 손을 새하얀 손이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그제야 가녀리게 떨리던 손이 안정을 되찾았다.
“혜영, 제리를 믿어봐.”
에바의 말에 정혜영은 누가 봐도 안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안다.
지금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는 절대 만만한 투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타석에 서 있는 송종섭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의 투수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한 때는 그 누구보다 열렬히 응원했던 투수다.
그러나 이제는 그토록 마음 깊이 응원했던 투수가 아닌 타자를 응원해야만 했다.
-몸 쪽 꽉 찬 스트라이크! 척의 패스트볼은 여전히 위력적으로 타자를 압박하고 있군요! 저런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과연 제리 송이 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제리 송은 굉장히 재능이 뛰어난 타자입니다. 밀워키 구단의 웨스먼 단장은 제리 송이 머지않은 미래에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웨스먼 단장의 유망주 평가는 솔직히 의문을 많이 남기지요. 하하하!
-그건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오늘 상대하고 있는 다저스의 포수 형수 장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다저스에게서 마리아 파헬슨이라는 초특급 내야 유망주를 데리고 올 때만 하더라도 모두가 다저스가 미쳤다고 했지만, 아시다시피 현재 파헬슨은 메이저리그 적응에 실패하며 극도의 타격 부진으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있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결과적으로는 현재 무섭도록 성장해서 척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는 형수 장은 이미 내년 시즌부터 다저스의 주전 포수로서 거의 확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니 웨스먼 단장으로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스윙! 제리 송의 배트가 위협적으로 휘둘러졌지만, 척의 컷 패스트볼을 맞추지는 못했군요!
-헛스윙을 한 제리 송의 표정이 분해보입니다. 인상이 무척이나 날카로운 제리 송이라 그런지 투수에게는 꽤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타자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거나, 위협적인 표정에 겁을 먹을 척이 아니죠. 제리 송은 분한 얼굴로 투수를 노려보는 것보다는 냉정하게 다음 공을 머릿속에 생각해서 타격을 해야만 이전 타석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을 거예요.
캐스터와 해설자들의 중계를 들으며 에바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이게 밀워키 브루어스 중계진인지, LA 다저스 중계진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타석에 선 타자가 송종섭이 아닌 밀워키 브루어스를 대표하는 타자였다면 분명 다른 식으로 말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에바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TV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정혜영을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에바의 시선이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다.
불룩하게 나와 있는 정혜영의 배.
임신 8개월.
아이의 아빠는 다른 누구도 아닌 현재 차지혁과 대결을 벌이고 있는 송종섭이다.
사나운 인상, 툭툭 내뱉는 시비조의 말투, 거칠고 과격한 행동.
처음 송종섭을 만났을 때, 에바는 정혜영이 어쩌다 저런 남자와 만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비록 짝사랑이라고 하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차지혁과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 사이는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 에바는 그저 정혜영의 선택이, 그녀의 사랑이 행복하기만을 진심으로 바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겉모습과 다르게 송종섭은 정혜영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비록 마이너리거였지만 넘치는 재능과 메이저리거가 되고자 하는 열정이 머지않아 성공을 할 것임이 분명해 보였기에 희망을 걸어 볼만했다.
정혜영의 바람과 헌신적인 내조 덕분인지 메이저리거가 된 송종섭은 재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가 바라던 투타 겸업의 선수는 되기 힘들었지만, 타자로서의 성공 가능성은 확실해보였다.
정혜영의 선택이 한 순간의 어리석음으로 빚어진 결과가 아니었고, 그녀가 불행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에바 역시도 송종섭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웃! 낮게 깔려 들어오는 101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에 제리 송 꼼짝도 못하고 루킹 삼진을 당하고 마는군요! 아쉽지만 다음 타석을 기대해봐야 할 것 같군요.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에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정혜영이 작은 한숨과 함께 힘을 풀었다.
“지혁 씨는 여전하네.”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하는 정혜영에게 에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너무 실망할 것 없어. 제리도 1, 2년 후에는 분명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테니까. 그것보다도 결혼 준비는 다 끝난 거야?”
“종섭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당장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우선은 삼촌분이랑 동료 선수 몇 명만 부르려고.”
결혼식이야 어차피 당사자들만 즐겁고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에바는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이 참석하지 않는 결혼식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겠냐마는 굳이 말을 꺼내 정혜영의 마음을 아프게 할 필요는 없었기에 에바는 필요한 게 있냐는 물음을 건넸다.
결혼과 출산, 어떻게 보면 여자에게는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었기에 에바는 최대한 많은 부분을 도와주고 신경을 써줄 생각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에바가 정혜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진심으로 혜영이 행복하길 바라고 있어. 그럴 수 있지?”
정혜영은 에바의 진심어린 말에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종섭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정말 행복하게 살자고 매일 같이 다짐하고 있어.”
말을 마치고 정혜영이 TV로 시선을 돌리니 마침 카메라가 외야 수비를 준비 중인 송종섭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우연찮은 만남을 계기로 그를 알게 된 정혜영은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송종섭을 응원하기 시작하면서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거친 말투와 표정이 무서웠지만, 그라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야구를 하는 모습에 점점 마음이 열리고 말았다. 물론, 차지혁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기 위해 더욱더 의도적으로 송종섭의 경기를 찾아다녔던 것도 사실이다.
그 점이 아직까지도 미안함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정혜영이었지만, 이제는 온전히 송종섭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 훗날에는 용서를 구하겠다 다짐하고 있었다.
-와우! 제리 송! 이전의 아쉬움을 충분히 만회할 만한 멋진 다이빙 캐치를 보여줬군요! 오늘 경기 최고의 수비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몸을 사리지 않고 다이빙을 하며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는 송종섭의 모습에 정혜영은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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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타석.
송종섭은 눈에서 불이라도 뿜어낼 것처럼 날 노려보고 있었다.
연타석 삼구삼진으로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가 되겠지만, 그런다고 봐줄 생각이나 설렁설렁 공을 던질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부웅!
초구부터 배트를 휘두르며 패스트볼을 노렸지만, 바깥쪽으로 살짝 빠져나가는 투심 패스트볼에 배트가 닿지 않았다.
몸 쪽 낮은 코스로 날아오는 공을 어떻게든 걷어보려 배트를 휘둘렀지만, 파울 타구를 만들어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 세 번째 공.
퍼어어어엉!
부웅-!
아주 오랜만에 던진 라이징 패스트볼이 깔끔하게 포수 미트에 박히면서 세 번째 삼구삼진을 재회의 마지막 선물로 안겨주었다.
타석에 서서 가만히 날 바라보던 송종섭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몸을 돌렸다.
형수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7회 말에도 밀워키 브루어스의 타자들을 상대로 완벽한 투구 내용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9회 말에도 선두 타자를 시작으로 마지막 9번 타자까지 완벽하게 잡아내며 시즌 두 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2028년 시즌 2번째 퍼펙트 게임을 시즌 마지막 선발 경기에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언제나 그렇듯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고 나자 1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진행됐다.
피곤하기만 한 인터뷰를 마치고 클럽 하우스로 돌아오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아직까지 유니폼을 갈아입지 않은 송종섭이 날 향해 손을 내밀었고, 나는 잠시 멈칫한 상태로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 『해외편 - 2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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