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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202화 (202/221)

< 『해외편 - 202』 >

『해외편 - 202』

“스트~ 라이크! 타자 아아아아웃!”

주심의 외침에 김성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으아아아아! 차지혁! 차지혁! 차지혁! 차지혁!”

목이 터져라 차지혁의 이름을 외쳤고, 동시에 또 다시 폭죽이 화려하게 터졌다.

사직 구장 전체가 매캐한 폭죽 냄새로 뒤덮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폭죽에 쏟아 붓는 걸까?

한 개그맨의 말처럼 한 순간의 눈요기를 위해 허공에 돈을 찢어발긴다고 생각하니 저게 무슨 헛짓거리인가 싶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대 의미 없는 폭죽이 아니었다.

“오늘 진짜 내 생에 최고의 날이다! 성우야! 경기 전에 더워 죽겠는데 야구장은 왜 오냐고 타박했던 날 용서해라! 넌 내 평생의 은인이다! 사랑한다!”

친구인 희도가 자신을 끌어안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결코 손에 들고 있는 맥주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는 절대 볼 수 없을 역사적인 현장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그 어떤 나라도 아닌 일본전!

한국인이라면 본능적으로 원수처럼 여기는 일본을 상대로 전설로나 남을 야구 경기를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으니 이건 평생의 영광이요, 두고두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넌 이 형만 믿고 따라다녀! 니깟 놈이 내가 아니었으면 이런 역사적인 경기를 어떻게 볼 수 있겠어?”

“맞아! 성우 네 말이 다 맞아! 오늘만큼은 네가 형이다! 성우 형!”

“큭큭큭! 오늘 흥분돼서 잠이나 오려나 모르겠네!”

“잠은 무슨! 오늘 같은 역사적인 날에는 밤새 달려줘야지!”

“하긴! 이런 기분을 그깟 잠으로 날려버릴 순 없지! 오늘 죽기 직전까지 마셔보자!”

성우와 희도가 그렇게 말을 하는 사이, 술이 거나하게 취한 50대 아저씨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차지혁! 일본 새끼들 싹 다 조져버려! 이십육 케이다! 이십육 케이!”

아저씨의 외침에 주변 관중들이 하나, 둘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십육 케이! 이십육 케이! 이십육 케이!”

성우와 희도도 어깨동무를 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십육 케이! 이십육 케이! 이십육 케이! 이십육 케이!”

부산 사직 구장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외침이 시작됐다.

그러는 사이 경기장 외곽에서는 다섯 명의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창우! 너 빨리빨리 안 움직여!”

“수창이! 한 눈 팔지 말고 똑바로 해! 그러다 사고 나면 뒤진단 말이야!”

“이 대리! 거기가 아니잖아! 이 새끼야! 너 정신 안 차릴래? 이 새끼들이 왜 이래! 사고 나면 니들 죽고 나도 죽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터진 폭죽의 잔재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폭죽으로 교체하는 남자들을 지휘하는 김 과장은 혹시라도 안전 사고가 발생할까 싶어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남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두 눈에 담고 있었지만, 김 과장을 비롯한 사원들은 땀만 뚝뚝 흘려대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김 과장! 준비 끝났어?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장 실장의 목소리였다.

-거의 다 끝나갑니다!

-벌써 투 스트라이크야! 뭐하는데 아직까지 교체를 안 했어! 니들 다 짤리고 싶어?

‘애비가 사장만 아니면 뭣도 아닌 새끼가!’

7살이나 어린 새파란 놈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김 과장의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마음만 같아서는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주고 사표를 면상에다 던져버리고 싶지만, 현실이 어디 그리 녹록하던가?

김 과장은 언제나 그렇듯 죄인처럼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금방 다 끝납니다!

-다 끝나갑니다? 이 새끼야! 삼진이잖아! 당장 터트려! 빨리!

장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김 과장의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이 대리가 교체가 끝났다는 말을 했다.

“과장님! 교체 완료했습니다!”

“터트려!”

“예?”

“당장 전부 터트리라고!”

김 과장의 말에 이 대리가 재빨리 스위치를 눌렀다.

이윽고 고막을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과 함께 폭죽들이 일시에 터지며 하늘로 솟구쳤다.

퍼엉! 펑펑펑! 펑펑펑! 퍼어엉!

남들은 코를 막을 정도로 화약 냄새가 심했지만, 매일 같이 화약 냄새를 달고 살아야 하는 이 대리와 사원들은 눈조차 찡그리지 않고 혹시라도 오발탄이 있나 싶어 눈에 불을 켜고 폭죽들을 바라봤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폭죽이 안전하게 터졌다.

“뭣들 해! 다시 새 걸로 다 교체해!”

김 과장의 말에 이 대리와 사원들은 다시 허겁지겁 움직여야만 했다.

-야! 김 과장! 이제 마지막이니까 재고 모조리 터트려버려!

-알겠습니다!

김 과장은 이 대리에게 가지고 온 폭죽을 모두 설치하라는 지시를 내려놓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이제 아웃카운트 하나면… 미친!”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

야구 게임에서도 나오지 못할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생각하니 김 과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일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일본을 상대로 퍼펙트 게임, 아니 그것보다 더 위대한 역사에 다시 나오지 못할 경기가 이제 단 한 명의 타자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이런 경기를 볼 수 없다니… 염병!”

이런 명장면을 눈앞에 두고도 볼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처량하다 생각하는 김 과장이었다.

@

마지막 타자.

타석에 들어선 이시모토 쇼케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라운드가 진동할 정도로 관중들의 광적인 외침에 이시모토 쇼케이의 얼굴은 흡사 죽은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이십칠 케이! 이십칠 케이! 이십칠 케이! 이십칠 케이!

설마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일이다.

한 경기에서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는 걸 어느 투수가 생각해봤겠는가?

퍼펙트 게임은 투수라면 한 번쯤 꿈꿔보고 생각을 할 만했지만, 퍼펙트 삼진 게임은 프로 투수라면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일일 것이다.

가능성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불가능한 일을 지금 내가 눈앞에 두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얼떨떨했고,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타석에 들어 서 있는 이시모토 쇼케이라고 다를까?

문제는 가볍게 흥분한 나와 다르게 이시모토 쇼케이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퍼펙트 삼진 게임을 깨트리겠다는 의지나 의욕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차서 로진백을 잔뜩 묻히고는 피처 플레이트에 발을 올렸다.

형수가 사인을 보내왔다.

검지 손가락 - 검지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 - 주먹 -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 새끼 손가락 두 번.

타자 몸 쪽으로 붙여서 신구종을 던지라는 의미다.

완벽하게 감을 잡았다.

더불어 최상의 컨디션 때문인지 제구도 80퍼센트 가까이 이뤄지고 있었다.

행운이었다.

흔한 말로 뭘 해도 되는 날.

바로 오늘은 내겐 그런 날이었다.

와인드업을 하고 곧바로 신구종을 던졌다.

쐐애애애애애액!

휘이익!

“힉!”

몸 쪽으로 예리하게 꺾이면서 파고 들어오는 무지막지한 강속구에 이시모토 쇼케이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퍼- 어어어엉!

“스트라이크!”

주심의 외침에 이시모토 쇼케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뭐라고!”

분명 자신을 맞출 것 같았던 빈볼이었다.

그러나 이시모토 쇼케이는 포수의 미트가 정확하게 몸 쪽 스트라이크 존 안에서 멈춰 있는 걸 확인하고는 얼이 빠진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럴 리가 없어! 바, 방금 공은 부, 분명…….”

‘칠 수 없는 공을 던지고 있어…….’

팀의 주장이자,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오자와 마코토 선배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처음이었다. 언제나 자신 만만하고 팀의 리더로서 항상 파이팅 넘치는 모습만 보여주었던 오자와 마코토 선배가 힘없이 축 처진 모습을 보인 것은.

그리고 다른 선배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불가항력.

한국 관중들의 거센 응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한국 관중들의 드센 응원 소리도 분명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동료 타자들을 완벽하게 짓눌렀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마운드에 서 있는 차지혁이었다.

‘이,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신이 있다면 신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이시모토 쇼케이였다.

그러는 사이 주심이 타석에 서라는 경고를 줬고, 이시모토 쇼케이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여 타격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날아오는 공을 끝까지 보겠다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온다!’

한 가운데를 향해 날아오는 강속구는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홈 플레이트까지 날아왔다.

무지막지하게 빠르고, 구위가 좋은 포심 패스트볼.

이전 타석에서 보여줬던 좌우 컨트롤은 전혀 하지 않고 한 가운데를 향해 던지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이시모토 쇼케이는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칠 수 있… 히이이익!’

공이 변했다.

홈 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갑작스럽게 꺾이면서 몸 쪽으로 달려드는 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칠 수 있다는 생각에 배트를 휘두르던 이시모토 쇼케이는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며 상체가 빠지는 스윙을 했고, 공은 포수 미트를 뚫고 나갈 것처럼 거친 파열음을 터트렸다.

퍼어- 어어엉!

“스윙!”

주심의 외침은 들리지도 않았다.

이시모토 쇼케이는 다시 한 번 얼이 빠진 얼굴로 포수 미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 마구?”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구질의 공이다.

아니, 공의 궤적은 슬라이더가 분명했다.

문제는 162km의 구속이다.

슬라이더를 162km로 던지는 투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투수는 존재할 수가 없다.

‘저, 저놈은 도대체 뭐야!’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차지혁을 바라보는 이시모토 쇼케이의 얼굴엔 이전 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과 경악, 공포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마지막 1구.

그리고 어정쩡하게 서서 헛스윙을 하곤 고개를 떨구는 이시모토 쇼케이.

포수 마스크와 미트를 내던지며 마운드로 달려오는 형수.

마찬가지로 글러브를 집어 던지면서 마운드로 달려오는 내외야수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껑충껑충 뛰며 더그아웃으로 뛰쳐나오는 백유홍 감독과 코치, 백업 선수들까지.

“…끝났다.”

경기가 끝났다는 확신이 들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떨림이 느껴지더니 이윽고 온 몸으로 휘몰아쳤다.

“지혁아!”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드는 형수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매달려 있었다.

와락!

나를 격하게 안으며 형수가 잘게 떨리는 음성으로 수고했다고, 정말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네 덕분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절대 없었을 거야. 고맙다, 형수야.”

내 말에 형수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고, 나 역시 처음으로 마운드 위에서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담담하게 받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차지혁 선수! 소감이 어떻습니까? 세계 야구 역사 최초로 퍼펙트 삼진 게임을 만들어냈는데 그 기분이 어떤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 스스로도 이런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혹시라도 이게 꿈이라고 말해주실 수 있는 분 계십니까?”

내 말에 인터뷰실에 모인 백 명이 넘는 기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일본전은 한국 대표팀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했던 경기였습니다.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중압감이 굉장히 컸을 텐데, 어떠셨습니까?

“모두들 아시겠지만, 오늘 경기 선발 투수는 본래 양동호 선배님이셨습니다. 갑작스럽게 새벽에 배탈이 나는 바람에 제가 대신해서 마운드에 올라가게 되었지만 부담감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일본 대표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 자만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제가 본래 어떤 경기에서든 부담감을 갖지 않으려고 의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간혹 일본 대표팀에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최대한 대답을 회피하면서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렸던 질문이 시작됐다.

-오늘 경기에서 차지혁 선수는 특이한 구종의 공을 던졌습니다. 슬라이더와 굉장히 유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맞습니까?

“기본적으로 슬라이더의 궤적을 따라가는 건 맞습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슬라이더인 것도 맞습니다.”

슬라이더라는 사실에 기자들의 손놀림이 무척이나 바빠졌다.

-슬라이더라고 하셨는데 슬라이더라고 하기엔 평균 구속이 무려 159km가 나왔습니다. 흔하게 알고 있는 고속 슬라이더와도 엄청난 구속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이걸 정말 슬라이더라고 불러야 하는 게 맞습니까?

“현재로서는 저만 던질 수 있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슬라이더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구종을 직접 개발했다는 뜻입니까?

새로운 구종의 개발.

이 질문이 나오고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질문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차지혁 선수가 이번 일본전을 통해 선보인 구종의 이름도 정하셨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다시 한 번 모두가 숨을 죽였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 하나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정했습니다.”

-신구종의 정확한 명칭이 무엇입니까?

나는 아주 또박또박 천천히 대답을 해주었다.

“제로백 슬라이더. 이게 제가 던지는 신구종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 『해외편 - 202』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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