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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94화 (194/221)

< 『해외편 - 194』 >

『해외편 - 194』

베스트 대 베스트.

쿠바 대 한국의 시합은 양 팀 모두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베스트 라인업이었다.

“쿠바 선발 명단 봤지?”

형수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가볍게 풀며 대답했다.

“봤어.”

“세르지오 발데즈가 1번이라니… 이건 정말 너무 의외지 않냐?”

“의외지.”

어제 경기에서 3타수 3안타를 터트린 세르지오 발데즈였다.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활약이 단순한 반짝 활약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증명하는 경기였다.

여기에 하나의 고의사구와 볼넷까지 더해서 5번 타석에 들어서서 모두 출루하는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인 세르지오 발데즈였다.

이런 타자를 중심 타선이 아닌 리드 오프로 내세운다?

다분히 오늘 경기 선발 투수인 날 노린 작전이다.

홈런 한 방을 제외하면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던 세르지오 발데즈였지만, 쿠바 대표팀 타자들 가운데 심리적으로 날 가장 많이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타자는 역시 세르지오 발데즈만한 선수가 없었다. 물론, 여기에 실력적으로도 손색이 없었으니 1번 타자라고 하지만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서며 날 압박하겠다는 의지인 건 분명했다.

그 외에도 쿠바 대표팀 중심 타선에는 각각 쿠바 리그 타격왕과 홈런왕이 3, 4번에 배치가 되어 있었으니 1번부터 6번까지의 타선의 무게감만 놓고 본다면 미국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늘 무조건 이기자.”

형수의 말에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는 상대가 누구든 무조건 승리해야만 하는 시합이다.

단 한 경기였지만, 대만 경기를 패배함으로써 이미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대표팀이었으니까.

“역시 우리 오빠라니까! 이 많은 관중들이 모두다 오빠 한 사람을 보기 위해 비싼 티켓을 구입한 거 아냐! 진짜 우리 오빠지만 너무 잘났다니까!”

지아는 그렇게 말을 하며 안젤라를 힐끔거렸다.

“그러고 보면 우리 오빠는 정말 멋진 남자라니까!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하고 강직하게 꼭 그 일만 하는 남자니까 진짜 남자라고 할 수 있지! 야구도 그렇고, 스폰서도 그렇고, 여자 친구도 그렇고! 안젤라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죠?”

“척이 멋진 남자가 아니었다면 내가 그를 사랑하겠어?”

안젤라의 대답에 기다렸다는 듯 지아가 활짝 웃었다.

“그렇죠! 우리 오빠니까 언니랑 어울릴 수 있는 거겠죠! 헤헤!”

“지아야, 요즘 들어 왜 그렇게 네 오빠 자랑을 그렇게 하는 거야? 예전에는 야구 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라고 그렇게 악담을 하더니? 야구만 하다가 혼자 죽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잖아? 그나마 야구라도 할 줄 아니까 사람들이 알아주는 거라면서?”

“어, 엄마는 내, 내가 언제! 우리 오빠처럼 멋지고 한결 같고, 착하고 좋은 남자가 또 어딨다고!”

말을 하는 지아의 얼굴은 이미 잘 익은 홍시처럼 아주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엄마는 왜 저렇게 눈치가 없는 거야! 저러다 안젤라 언니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면 어쩌려고!’

아무리 비교를 해도 자신이 오빠에게 안젤라는 너무나도 과분한 여자라는 결론을 얻은 지아는 그 이후 어떻게든 안젤라와 오빠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었다. 특히, 안젤라가 혹시라도 모르고 있었을 오빠의 매력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지아였다.

“오늘 경기 지혁이가 부담이 크겠어.”

아빠의 말에 지아가 왜 그러냐는 듯 물었다.

지아의 물음에 아빠는 어째서 오늘 경기가 한국 대표팀에게 중요한지 그것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나자 지아가 무슨 걱정이냐는 듯 대답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의 투수인 오빠인데 그깟 쿠바팀이 뭘 어쩌려고! 오빠는 분명 오늘 경기에서도 그 누구보다 가장 멋있게 공을 던지면서 한국 팀을 승리하게 만들 거라고 믿어요!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죠?”

안젤라는 지아의 물음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척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믿어.”

“역시! 언니는 남자 보는 눈이 있다니까! 헤헤!”

지아의 애교 섞인 웃음을 바라보며 안젤라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눈에 뻔히 보이는 지아의 행동이었으니까.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지아의 모습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안젤라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눈치를 살피는 게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오빠를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

다른 건 다 떠나서 안젤라는 지아에게서 그것 하나만 봤다.

기특하기도 했고, 저런 동생이 있는 차지혁이 부럽기도 했다.

더불어 자신이 소외될까 싶어 일부러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하는 차지혁 가족들의 배려가 너무나도 고맙고 따뜻한 안젤라였다.

출발 전까지만 하더라도 꽤 걱정을 했었던 안젤라로서는 자신의 걱정이 무의미했다는 걸 첫날부터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오랜만에 만끽하는 여유로운 생활에 모든 게 만족스러운 안젤라였지만,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메리 이모도 함께 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직은 이르지만, 언젠가는 꼭 다 같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길 기도하는 안젤라였다.

“경기 시작한다!”

지아의 외침에 안젤라가 마운드에 오르는 차지혁을 바라봤다.

‘척! 힘내요!’

두 손을 모으며 차지혁의 호투를 기원하는 안젤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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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대한한국 대 쿠바, 쿠바 대 대한민국의 경기를 중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쿠바의 선제공격으로 1회 초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쿠바의 타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번 타자 세르지오 발데즈, 2번 호세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3번 호아킨 알론소…….

-차지혁 선수 오늘 컨디션이 무척이나 좋아 보입니다. 오늘처럼 부담감이 큰 경기에도 저렇게 컨디션 조절을 잘 했다는 사실이 역시 세계 최고의 투수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오늘 경기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배수의 진을 치고 경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승리만을 목적으로 집중력 있는 경기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오늘 경기 대한민국으로서는 패배라는 걸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타석에 1번 타자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가 들어섰습니다. 오늘 솔직히 쿠바 타순은 의외이질 않았습니까? 나이는 어리지만 쿠바 대표팀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선수가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이고, 어제 경기에서도 3타수 3안타, 6타점을 쓸어 담으면서 중심 타자로서의 활약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만, 오늘 경기에서는 1번 타순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 올해 한국 나이로 18세로 무척이나 어린 선수입니다만, 실력적인 면에서는 나이가 무의미할 정도로 대단한 선수입니다. 실질적으로 쿠바 대표팀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 선수 중 한 명입니다. 무엇보다 많은 국내 팬들은 지난 7월에 있었던 챔피언스 리그에서 차지혁 선수를 상대로 홈런을 때렸던 걸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오늘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를 중심 타선이 아닌 1번에 배치시킨 이유는 지난 기억을 되새기며 차지혁 선수를 흔들어 놓겠다는 의도일 겁니다.

-당시 차지혁 선수가 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이후 타석에서는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를 했었으니 오늘 경기에서도 그런 좋은 흐름이 이어지길 기대해보겠습니다. 사인을 주고받은 차지혁 선수 초구를 던졌습니다. 스윙!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 초구를 노리고 풀스윙을 했습니다만, 87마일의 파워 커브에 완벽하게 속으면서 크게 헛스윙을 하고 말았습니다!

-방금 초구만 보더라도 차지혁 선수와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 사이에 두뇌 싸움이 아주 치열하게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차지혁 선수의 초구 비율을 살펴보면 무려 94%의 높은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며 타자와의 첫 대면에서 기선을 제압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점을 머릿속에 염두 해두고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는 초구부터 패스트볼을 노리고 스윙을 한 것 같습니다만, 차지혁 선수 마치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과감하게 파워 커브를 던짐으로써 유리하게 카운트를 가져갑니다.

-초구부터 두 선수의 수 싸움이 아주 재밌습니다! 오늘 경기 배터리를 이루고 있는 장형수 포수와 사인을 받은 차지혁 선수 두 번째 공을 던졌습니다. 스트라이크! 바깥쪽을 살짝 걸치고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입니다!

-바로 저겁니다! 타자 바깥쪽을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 세계에서 차지혁 선수만큼 저렇게 완벽한 컷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는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그렇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차지혁 선수의 저 컷 패스트볼은 타자에게 가장 까다로운 공으로 자리를 잡고 있죠!

-타석에서 한 발 물러나 장갑을 풀었다가 다시 조이는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의 표정이 복잡해보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초구부터 수 싸움에서 밀려버렸기에 이번 승부가 꽤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해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차지혁 선수가 결정구로 승부를 걸어올 것인지, 유인구를 던질 것인지 아마도 머릿속에 꽤 복잡할 겁니다.

-로진백을 손에 듬뿍 묻힌 차지혁 선수 포수의 사인을 받은 후 세 번째 공을 던집니다! 스윙!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 헛스윙 삼진으로 타석에서 물러나고 맙니다! 삼구삼진! 차지혁 선수 정말 멋진 투구로 쾌조의 스타트를 보여줍니다!

-기가 막히는 군요! 타자가 꼼짝없이 속을 수밖에 없는 체인지업입니다! 경기 시작에 앞서 차지혁 선수의 컨디션이 무척이나 좋아 보인다고 했는데 첫 번째 타자인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를 삼구삼진을 뽑아내며 오늘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사직 구장을 가득 채운 한국 팬들 차지혁 선수의 호투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열광적인 응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석에는 2번 타자 호세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들어섭니다. 이 선수도 조심해야 하는 선수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쿠바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군침을 흘리는 선수가 세 명이 있습니다. 앞선 타석에 나왔던 세르지오 발데즈 선수와 지금 타석에 들어선 호세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선수, 그리고 오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를 카를로스 올리베이라 선수입니다.

-호세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선수는 어떤 선수입니까?

-올해 한국 나이로 스물 한 살인 로드리게스 선수는 주포지션은 유격수입니다만, 2루, 3루, 심지어 1루까지도 모두 가능하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수비가 아주 좋은 선수입니다. 여기에 빠른 발, 강한 어깨와 뛰어난 선구안까지 모두 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파워도 좋은 편이고, 정확한 타격까지 갖췄기에 대형 내야수로서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소 다혈질적인 성격과 개인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소문이 있어 로드리게스 선수를 영입하는 구단으로서는 꽤 속을 썩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력적인 면에서는 흠잡을 부분이 없지만, 통제가 잘되지 않는 선수라는 뜻이군요. 하하하. 운동 선수들 중에는 저런 선수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저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지혁 선수의 초구가 로드리게스 선수의 몸 쪽으로 바짝 붙으면서 볼이 선언됐습니다.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나는 공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볼 컨트롤이 되지 않았을까요? 차지혁 선수답지 않은 볼이었습니다. 아, 이 공에 대해서 로드리게스 선수가 꽤 불만스럽게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차지혁 선수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초구부터 너무 위협구를 던졌다는 뜻일까요?

-아마도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타석에 섰을 때 초구부터 몸 쪽으로 위협구가 날아오면 타자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지요. 더군다나 다혈질적인 성격이 심한 로드리게스 선수이니 그 정도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차지혁 선수 공을 던졌습니다! 아! 이번에도 볼입니다! 조금 전보다 더 로드리게스 선수의 몸 쪽으로 붙는 공이었습니다. 타석에 선 로드리게스 선수 노골적으로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차지혁 선수를 노려봅니다.

-으음. 차지혁 선수의 컨디션으로 봤을 때, 갑작스럽게 제구력에 문제가 생겼을 리는 없고… 아마도 벤치에서 어떤 작전이 나오지 않았을까 예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 『해외편 - 194』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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