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92』 >
『해외편 - 192』
안젤라 관찰기.
[1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탈함에 경악했다.
지에이치 3편이 전 세계적으로 초대박을 치면서 그녀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지만, 그녀는 톱스타라는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소탈함으로 날 당황시켰다.
우선 명품이 하나도 없다.
들고 있는 가방, 입고 있는 옷, 시계, 구두까지 모든 게 명품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아직까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애초부터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건가?
놀라울 뿐! 그렇게 화려한 연예인의 삶을 살면서 평범한 또래의 여자들과 똑같은 옷과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혹시, 일부러 우리 가족을 속이기 위한 작전인가?
나 검소한 여자예요~ 이런 어필을 하려고?
저녁으로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김치까지 척척 올려가며 맛있게 칼국수 한 그릇을 먹는 모습을 보니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이 안 갔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걸 알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식사에만 열중하는 모습이… 꽤 굶었나?
잠을 자기 전에 살짝 물었다. 오빠의 어떤 부분이 좋냐고.
그랬더니 그녀의 대답은.
햄버거를 사줘서 좋단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2일]
의외로 부지런한 건가?
아니면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건가?
아침 여덟시가 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고 머리까지 말리고 가볍게 화장까지 끝낸 후에야 날 깨웠다.
깜짝 놀라서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니 내 얼굴에 눈곱이 보였다. 머리는 미친년마냥 다 헝클어져 있고… 어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늦게 잠을 잔 게 화근이다.
그런데 그녀는 시차 적응도 끝낸 건가?
아침부터 완전히 제대로 한 방 먹었다.
부산에 도착해서 오빠를 만났다.
아주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둘이 좋아 죽는다.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손깍지를 끼고 다니는 모습이 부, 부, 부러…우면 지는 건데!
사방팔방에서 사진을 찍어대고 귀찮게 따라다니는데도 두 사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빠도 그렇지만 그녀도 멘탈이 참 갑이다.
오빠가 팀 연습을 위해 떠나고 부모님과 함께 우리는 부산 관광을 시작했다.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내가 발이 아파서 관광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나는 더 신기했다.
생각 외로 체력도 좋아서 당황스럽네.
[3일]
틈이 없다.
3일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봤지만 좀처럼 틈이 보이질 않는다.
생각 외로 엄청난 강적이다.
사소한 실수조차 없다니!
엄마랑 아빠한테는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이제는 내가 친딸인지, 그녀가 친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못 먹는 음식도 없고, 귀찮게 따라붙는 날파리 같은 인간들이 무척이나 신경을 쓰이게 만들고 있었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묶음이 되어 사진 찍히는 내가 더 짜증이 날 정도다.
한국어를 생각보다 잘한다.
엄마와 함께 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꼼꼼하게 메모도 하고 녹음도 하면서 발음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꽤 오랜 시간 노력을 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이 모든 것들이 오빠를 위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처럼 이제 고작 3일이 지났을 뿐이다.
반드시 속내를 파헤치고…….
“후우…….”
한숨을 내쉬곤 머리를 꾹꾹 누르는 지아였다.
핸드폰으로 작성하던 다이어리 어플을 종료하며 침대에 누웠다.
3일 동안 계속해서 지켜본 안젤라는 단점이 없는 게 단점이었다.
인터넷에 퍼진 소문처럼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무척이나 활발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랑 아빠한테도 잘하고, 한국에 대한 문화도 잘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오빠를 정말 좋아하는 거 같기는 한데.”
부지런하고,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정말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스타가 맞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리고 얼굴은 또 왜 이렇게 예쁜 건지.
이제는 열등감조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너무 예뻐서 그냥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할까?
“가슴도…….”
지아는 슬쩍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곤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직 발육이 끝난 건 아니지만 주변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어찌되었든 안젤라 급은 될 수 없을 것이 확실했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몸매의 비율과 비교했을 때, 안젤라는 확실히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여자였다.
안젤라 정도의 여자라면 외모만으로도 대다수의 남자들이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아니, 안젤라와 함께 다니는 내내 모든 남자들의 눈이 몽롱하게 변하는 모습을 쉬지 않고 확인했으니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를 여자 친구로 뒀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야구라도 잘하니 다행이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어휴.”
자신의 오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안젤라와는 급이 달랐다.
세계적인 야구 선수가 됐으니 그나마 같이 어울릴 수나 있는 거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이건… 오빠가 더 부족한 게 많잖아?”
지아가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나더니 하나씩 생각을 했다.
우선 외모에서는 비교 자체가 굴욕일 정도로 안젤라의 압승이다.
눈부신 여신 옆에 달라붙은 한 마리의 유인원이라고 할까?
예전이라면 모를까, 유명세와 인지도를 따졌을 때에도 안젤라가 더 우위에 설 것이 분명했다.
야구라는 스포츠 종목에 한정된 오빠와 다르게 안젤라는 연예계라는 엄청난 포지션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경제력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오빠가 많은 돈을 벌어도 세계적인 스타의 수입을 따라가기 힘들다.
미친 척 하고 돈을 밝히면서 온갖 스폰서와 광고를 찍어대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이 부분에서도 안젤라가 오빠를 앞지를 가능성이 무척이나 컸다.
물론, 유명세와 인지도, 경제력은 예측일 뿐이다.
연예인라는 직업 특성상 잠깐 반짝이다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젤라가 그럴 가능성은 전무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앞으로 오빠가 안젤라에게 매달려야 할 판이다.
“도대체 내가 뭘 한 거지?”
지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엄청난 삽질을 하고 있었다는 걸.
“언니~ 안젤라 언니~!”
안젤라를 찾아 나서는 지아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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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선발은 양동호다.”
백유홍 감독의 말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미 10일 쿠바전에 선발로 등판할 것이라는 통보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4강을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나를 선발로 소모해야 했고, 그 상대는 당연히 쿠바가 될 수박에 없었다.
어쨌든 5승을 거둬야 안정적으로 4강에 합류할 수 있으니 백유홍 감독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었다.
“모두들 알고 있다시피 내일 대만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우리가 4강에 오르기 위해선 반드시 내일 경기에서 필승을 해야만 한다. 나는 우리 대표팀의 저력이라면 충분히 그 어떤 나라의 대표팀과 경기를 펼쳐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더불어 40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된 올림픽 경기다. 한국 최고의 프로 스포츠인 야구 대표팀이 4강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하는 망신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 이 점을 가슴에 새기고 내일 경기에 임해주길 바라겠다.”
백유홍 감독의 말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 스포츠인 야구 대표팀이 4강의 문턱도 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건 야구 선수로서 자긍심을 모조리 잃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쪽팔려서 얼굴 들고 다니기도 힘들어진다.
다행이라면 이러한 점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역시 모두 똑똑히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에 어떻게든 군대 면제를 받고자 하는 젊은 선수들의 투지는 대단했다.
그렇다고 나이 많은 베테랑 선배들의 투지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베테랑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망신스러울지 알기에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만큼이나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백유홍 감독의 말이 끝나고 주장인 이규환 선배가 선수들만 따로 불러서 파이팅을 다졌다.
내일 경기에 선발로 출장하는 선수들에게는 자신감과 사명감을 심어줬고, 대기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언제든 팀을 위해 출장할 수 있도록 컨디션을 조절하라는 당부를 했다.
팀 미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형수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거 은근히 긴장되고 떨리는데?”
형수의 말대로 나 역시 그러한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웬만해서는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내일 경기는 내가 뛰는 것도 아닌데 긴장되고 있었다.
군대 면제 때문에?
물론, 어느 정도 연관은 있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나와 형수처럼 어린 선수들은 아시안게임을 얼마든지 노려볼 수 있었기에 군 면제 해택이 전부는 아니었다.
‘국가대표.’
긴장감의 원인은 바로 국가대표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 부담감을 느끼게 만드는 거였다.
태극마크가 이렇게 무거운 건지 처음으로 알았다.
몇몇 선배들 중에서는 수차례나 국가대표로 활약을 해왔다.
이런 엄청난 중압감에 익숙해졌을까?
‘그럴 리가 없지.’
이건 익숙해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새삼 몇 번씩이나 국가대표팀에 승선해서 경기를 치른 선배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혁아, 우리 내일 이기겠지? 전력상으로 우리가 대만에게 밀릴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분명 이길 거야? 그렇지?”
전력상으로 분명 그렇다.
하지만, 야구라는 종목은 언제 어떻게 반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 중 하나였다.
그저 내일 경기가 잘 풀리기만을,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평소의 실력만 온전히 발휘하며 불운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띠링.
핸드폰 문자 알림을 확인하니 안젤라가 내일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가겠다고 알려왔다.
다행이라면 안젤라는 현재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부모님, 지아와 함께 부산 곳곳을 관광하거나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한국 여행에 잘 적응하고 있어서 놀라울 정도였다.
특히, 지아와의 사이가 어제부터 급격하게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지아는 안젤라를 잘 챙기는 척 말도 잘하고 어울리지 않게 상냥하게 대했지만, 한 번씩 묘한 눈길로 안젤라를 바라보던 게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안젤라 역시 그런 지아를 은근히 신경 쓰는 눈치였다.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걱정거리가 모두 해소되어 경기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내일 대만전에서 혹시라도 한국 대표팀이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지만.
‘상황에 따라선 모든 경기에 등판할 수 있게끔 불펜 투수로 보직을 변경하는 것도 감수해야겠지.’
선발 투수의 리듬을 맞춰온 내겐 굉장히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웬만해선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자칫 신체 리듬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위험성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경기에 불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갈 생각 또한 전혀 없었다.
정말 팀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면 그때만큼은 팀을 위해 언제든 공을 던질 생각이었다.
문득,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 누구보다 얼굴을 찌푸리며 싫어할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LA 다저스의 구단주와 단장, 감독들이다.
막대한 돈을 연봉으로 지급하며 날 애지중지 여겼던 그들이 국가대표라는 이유만으로 혹사를 당한다면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 문제를 두고 한국 대표팀과 날카로운 대립을 세울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없길 바라야지.”
“응? 뭐라고?”
내 중얼거림을 듣고 형수가 빤히 날 쳐다봤다.
“아냐. 그냥 혼잣말 한 거야.”
형수는 다시금 손에 들고 있던 쿠바 대표팀 데이터를 꼼꼼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른 때에는 몰라도 내가 선발로 등판할 때만큼은 나와 배터리를 이뤄야 하는 형수였기에 당연히 당장 예정된 쿠바전의 선수 데이터는 포수인 녀석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나 역시 쿠바 선수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 중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선수가 있었다.
‘세르지오 발데즈.’
세르지오 발데즈 역시 이번 올림픽에 쿠바 대표팀 선수로 한국에 와 있었다.
< 『해외편 - 19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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