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91화 (191/221)

< 『해외편 - 191』 >

『해외편 - 191』

이번 올림픽 야구 출전 국가는 우선 출전 자격을 얻은 한국(개최국), 일본(아시아 1위), 미국(아메리카 1위), 쿠바(아메리카 2위), 네덜란드(유럽 1위)와 올림픽 최종 예선 통과국 대만, 멕시코, 도미니카 공화국까지 총 8개국이었다.

8개국 풀리그 방식으로 간단하게 모든 나라와 한 번씩 경기를 치러서 상위 4팀을 선정, 4강전을 벌인다. 1위와 4위가 맞붙고, 2위와 3위가 맞붙어서 승자 결승 진출전으로 최종 우승팀을 가려낸다.

“미국, 일본, 쿠바 그리고 우리나라 대표팀까지 결국 4강전은 이렇게 되겠지?”

형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최강국은 역시 미국과 쿠바다.

미국의 경우 올림픽 엔트리 중 고작 열 명 정도 밖에 메이저리거가 포함되어 있질 않았지만, 나머지 선수들 역시 메이저리거였거나, 미래의 메이저리거가 될 확률이 무척이나 높은 특급 유망주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단연 세계 최강팀이라 부를 만했다.

쿠바 역시 만만찮다.

아메리카 올림픽 예선에서 미국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고 하지만 미국을 가장 위협하는 최대 경쟁 국가는 단연 쿠바를 꼽을 수밖에 없다. 특히, 쿠바의 경우 메이저리거는 단 한 명도 포함이 되어 있질 않았지만 타고난 야구 DNA 국가인만큼 어떤 활약을 할지 쉽게 예상을 할 수 없는 강팀이었다.

미국과 쿠바에 이어 4강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는 일본과 한국이다.

미국과 쿠바가 아메리카 최대 라이벌이라면, 일본과 한국은 아시아 최대 라이벌이다.

특히, 일본과 한국의 양국 관계는 스포츠와 맞물리면 말 그대로 혈전이 되어버렸기에 수준 차이로는 일본이 약간 앞서 있다고 하지만 막상 시합이 벌어지면 수준 차이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치열한 경기가 항상 벌어졌다.

특히, 일본의 경우 올림픽 야구팀만큼은 항상 최정예로 구성했기에 이번에도 메이저리거와 일본 프로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타 선수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렇다보니 일본은 항상 잠재적인 우승 후보 중 하나였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미국, 일본에 비교하면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객관적인 전력 비교를 해보면 분명 한 수, 혹은 그 이상 아래인 한국 대표팀이지만, 언제나 한국 대표팀은 끈끈한 조직력과 투지 넘치는 경기력으로 그 어떤 팀과도 승부를 쉽게 예상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니 미국이나 일본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유럽 최강국인 네덜란드는 프로 리그 출범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야구 열기가 뜨거운 나라 중 한 곳이었지만 아직까지도 전통적인 야구 강국들 틈바구니에서는 힘을 쓰기가 어려운 실정이라 4강에 대한 희망은 그리 높지 않았다.

대만, 멕시코, 도미니카 공화국의 경우에는 몇몇 특정 선수를 제외하면 엔트리에 포함된 모든 선수들의 평균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4강을 위협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팀도 무시할 순 없는 게 야구다.

특히, 한국팀의 경우 강팀과는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주다가도 약체라 평가받는 팀과 어이없을 정도의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매 경기마다 집중력 있는 승부욕을 발휘해야만 무사히 4강에 들 수가 있었다.

“어디 보자.”

형수는 경기 일정을 확인했다.

<제34회 부산 올림픽 야구 경기 일정표>

9일 : 한국 VS 대만.

10일 : 한국 VS 쿠바.

11일 : 한국 VS 네덜란드.

12일 : 한국 VS 멕시코.

13일 : 휴식.

14일 : 한국 VS 미국.

15일 : 한국 VS 일본.

16일 : 한국 VS 도미니카 공화국.

17일 : 휴식.

18일 : 1위 VS 4위, 2위 VS 3위.

19일 : 3위 결정전, 결승전.

“지혁이 네가 1선발이니까… 쿠바전에는 아마 널 선발로 내세우겠지?”

형수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야 모르지.”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상대에 따라서 널 18일이나 19일에는 마운드에 올려야 하니까 짧게 4일 휴식일을 준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9일부터 12일 중 하루를 넣어야 할 텐데 이왕이면 쿠바전에 널 등판시키지 않을까 싶은데… 일정 정말 마음에 안 들어! 9일, 14일에 미국, 일본, 쿠바 이 셋 중 두 나라만 걸렸어도 지혁이 네가 선발로 나서서 승리를 하면 1위도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한국 대표팀 경기 일정이 확정되는 순간 모두가 탄식을 내뱉었었다.

형수의 말처럼 최상의 시나리오는 내가 일본, 쿠바, 미국 중 두 나라를 잡으면서 1위를 노려보는 거였는데 현재 확정된 경기 일정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18일 혹은 19일을 위해서 나를 아껴둬야 한다면 지금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우선적으로 10일 쿠바전이 최상이었다.

4강에 들기 위해선 5승은 거둬야 한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대만, 네덜란드, 멕시코, 도미니카 공화국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니 첫 경기인 대만전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대만전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이 어그러진다.

한국팀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진다.

현재 한국 대표팀의 선발 투수는 나를 포함해서 유한석 선배, 양동호 선배(광주 피닉스), 공원준 선배(라쿠텐 골든 이글스), 민준후 선배(니혼햄 파이터스)로 결정이 된 상태였다.

백유홍 감독님이 따로 선발 투수들에 대한 우선 순위를 두진 않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나 - 양동호 선배 - 공원준 선배 - 민준후 선배 - 유한석 선배 순으로 차례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우선 순위 따윈 솔직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 누구든지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발 투수라고 반드시 6이닝, 7이닝을 던질 필요도 없었다.

야구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는 총 10명.

단기전이었기에 선발 투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의 투수들은 매 경기마다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도록 컨디션을 확실하게 조절하고 있어야만 했기에 선발 투수들의 부담이 시즌보다는 낮았다. 물론, 선발 투수가 당일 경기를 최대한 긴 이닝을 소화해주면 좋은 건 사실이지만.

형수와 함께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 화면에 뜬 발신자 이름은 안젤라.

스케줄 때문에 계획보다 하루가 늦었지만, 오늘 중으로 한국에 도착한다고 했던 안젤라였다.

“도착했어요?”

-지금 막 공항에서…….

말을 하던 안젤라의 음성이 다른 누군가의 음성 때문에 묻혀버렸다.

-오빠! 안젤라 언니는 내가 잘 데리고 부산으로 갈게!

맙소사.

안젤라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간 사람이 지아였을 줄이야.

-지아, 잠시만! 척! 지아와 함께 부산으로 갈게요. 부모님들도 함께 있으니 걱정할 것 없어요. 부산에서 만나요!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어져버렸다.

“안젤라야?”

형수의 물음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안젤라를 만나고 싶다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던 지아였다.

공항에서 안젤라와 어떻게 만났을지 쉽사리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젤라와 지아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성격적으로는 크게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지 않을 것 같기는 했지만, 지아가 워낙 말괄량이라서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잘 어울리겠지? 그래, 그럴 거야.’

몇 번이나 나 스스로를 위안시켜야만 했다.

@

지아는 무척이나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야구 외엔 다른 곳에 전혀 관심이 없는 오빠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에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마음까지 홀린 여자였다.

‘그 얼굴에 그런 성격라니.’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하나 같이 다 우호적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사고로 잃었음에도 밝고 활기찬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봉사 활동도 하고 있고, 모델 일을 하면서 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상냥하다는 주변의 평가는 너무 후했다.

‘절대 겉모습에 현혹돼선 안 돼!’

사람은 원래 그렇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처럼 지아는 그녀가 어린 시절 불우했던 삶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법을 배웠을 거라고 여겼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거니까!’

절대 나쁜 건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줄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스스로 무척이나 피곤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대가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지아는 생각했다.

지아는 부모님의 관심이 오빠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불만스러울 때가 있었다. 딱히 자신에게 오빠가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괜히 오빠가 밉게 보였던 때가 잠깐 있었다.

하지만, 절대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아니,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오빠를 미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알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오빠와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이 부모님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두려웠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오빠를 미워해선 안 된다고.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오빠와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지아는 꿈을 키웠다. 오빠가 운동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된다면 자신은 공부로 성공한 사람이 되겠다고.

단순히 공부만 잘해서는 안 되고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유명한 과학자가 된다면 오빠의 거대한 그늘을 떳떳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될 거라 확신했다.

그렇게 지아는 어렸을 때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형성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그녀 역시 비슷할 거라 생각하는 지아였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미모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그 미모만 믿고 우쭐함에 세상을 사는 여자들은 하수다. 지아 입장에서는 정말 멍청한 여자들이다. 반대로 미모로 호감을 사고 좋은 성격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여자들은 똑똑한 거다. 스스로를 아주 잘 포장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여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주변에 알리는 거다.

최소한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문제는 과연 오빠에게 어울리느냐다.

아무리 자신을 잘 포장하고 좋은 사람처럼 보여도 그 속내에 시커먼 야망이 가득 차 있다거나, 그럴 기미가 보이는 사람이라면 지아로서는 결사적으로 오빠와 그녀의 사이를 갈라놓을 생각이었다.

‘이건 우리 차씨 가문을 위한 일이야!’

여자의 적은 여자다.

잠시 어울려보면 지아는 분명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거라도 자신했다.

“저기 나왔다!”

엄마의 말에 지아는 먹잇감을 발견한 매처럼 그녀를 바라봤다.

하얀색 짧은 반바지에 마찬가지로 하얀 면티 위에 밝은 하늘색 계열의 얇은 재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수십 명의 사람들 중 유독 눈에 띄었다.

모델이라더니 역시 평범한 옷차림인데도 불구하고 화보의 한 장면처럼 눈부셨다.

‘으으… 외모는 진짜…….’

아주 오랜만에 지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열등감이 불쑥 치솟았다.

“맘!”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엄마에게 달려와 단숨에 안겼다.

‘어쭈? 어따대고 맘이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지아가 그녀를 노려봤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아빠와도 포옹을 하며 아주 친근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 정도면 순도 백퍼센트짜리 꼬리 아홉 개 달린 특급 불여시다!’

“지아?”

마지막으로 그녀가 지아를 바라보며 아주 밝게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눈부셔서 지아는 아주 잠시 눈을 찡그려야만 했다.

‘신은 왜 이렇게 불공평하게 사람을 만든 거야!’

신을 욕하면서도 지아 역시 최대한 밝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안젤라 언니! TV로 볼 때보다 훨씬 더 예쁜 것 같아요! 우리 오빠가 한 눈에 반할 만 한 것 같네요! 비행은 힘들지 않았어요? 무척이나 바쁘다고 하던데 이렇게 시간을 내줘서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밝은 미소 속에 지아는 안젤라의 모든 것을 모조리 파헤치고 말겠다는 의욕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 『해외편 - 191』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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