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89화 (189/221)

< 『해외편 - 189』 >

『해외편 - 189』

2회 연속 올스타 투표 1위.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올스타 팬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성하며 2년 연속 올스타에 뽑혔다. 하지만, 아쉽게도 올스타전에는 출전을 하지 못했다. 이틀 전, IBAF 챔피언스 리그 결승 3차전에서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었기에 올스타전에 출전을 할 수가 없었다.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과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팀의 대결은 아메리칸리그의 승리로 끝이 났다.

특히,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 뽑힌 마이크 테일러는 이날 연타석 홈런을 터트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MVP에도 선정됐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한다.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투수 쪽에서는 단연 나를 손꼽았고, 타자 쪽에서는 마이크 테일러를 지목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서른이 훌쩍 넘고도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는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지만, 언제나 팬들은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길 바라고 그들이 최대한 젊어서 오랜 시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해줬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나와 마이크 테일러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선수였다.

같은 년도에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했고, 나란히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리그 정상급의 투수와 타자로 자신의 능력을 뽐냈다. 거기에 2년차 징크스 따윈 없다는 듯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니 메이저리그 팬들 입장에서는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일부 팬들은 우리 두 사람이 같은 리그에서 수시로 맞대결을 벌이길 원하고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LA 다저스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마이크 테일러 역시도 수많은 이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토론토에 잔류한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이적에 대한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우리 두 사람이 같은 리그에서 질리도록 대결을 펼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스타전이 끝나고 29일, 메이저리그 후반기 일정이 시작됐다.

LA 다저스의 후반기 첫 번째 상대는 지구 1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챔피언스 리그에 참여하며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느껴야만 하는 다저스 선수들과 다르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들은 4주간의 긴 휴식 기간을 통해 전반기에 소모했던 체력을 완벽하게 충전할 수 있었다.

양 팀의 선발 투수는 나와 맥스 프리드였다.

전반기 13승을 거둔 맥스 프리드였기에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물론, 세부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팀 타선이 워낙 막강했기에 승수를 쌓을 수 있었던 경기가 3경기나 됐지만, 그렇다고 맥스 프리드가 난타를 당하고도 승리를 챙긴 경기는 없었기에 여전히 그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믿음직한 에이스였다.

경기 초반부터 맥스 프리드는 힘 있게 공을 던져댔다.

패스트볼 구속도 잘 나왔고, 변화구의 무브먼트도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경기 감각도 4주나 쉬었던 선수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뛰어났다.

1회부터 5회까지 다저스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맥스 프리드에게 끌려가며 단 하나의 안타만을 때려냈다.

“스윙! 타자 아웃!”

다저스 타자들만큼이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타자들 역시 5회까지 무기력한 모습으로 연신 등을 돌렸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 3차전이 있었던 21일 이후 어제까지 꾸준하게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한 나 역시 맥스 프리드에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를 이어갔다.

애초부터 오늘 경기가 팽팽한 투수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기에 딱히 놀라울 것도 없었다.

특히, 내 경우에는 오늘 경기와 다음 선발 경기가 있는 4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전을 끝으로 보름 이상 팀을 떠나 있어야 했기에 반드시 승리투수가 되고 말겠다는 의지가 무척이나 강한 상태였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라는 강적이 지구 1위를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에이스의 부재는 분명 치명타가 될 수 있었기에 떠나기 전, 그리고 돌아와서도 1승이라도 더 추가해야만 한다는 사명감마저도 들었다.

개인적인 승수를 쌓기 위함이 아닌 순수하게 팀을 위한 승리의 갈망인 거다.

“오늘 공 진짜 죽인다! 이대로 쭉 가자!”

형수의 말처럼 오늘 컨디션은 무척이나 좋았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강타자들을 상대로 5회까지 2개의 안타 밖에 맞질 않았으니까.

물론, 맥스 프리드에 비하면 피안타가 하나 더 많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해서 다저스의 타선과 파드리스의 타선이 갖고 있는 무게감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팽팽하던 투수전에서 첫 번째 기회는 LA 다저스에게 먼저 주어졌다.

5회까지 완벽에 가까운 피칭으로 다저스 타자들을 압도했던 맥스 프리드는 6회 초, 선두 타자 빌 맥카티에게 빗맞은 안타를 내주면서 두 번째 피안타를 허용했다.

잘 던진 커브가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며 빗맞은 안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자를 1루에 둔 상황에서 오늘 경기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나는 게레로 감독의 지시대로 착실하게 희생번트를 갖다 댔다.

맥스 프리드가 위협적인 몸 쪽 공을 던져가며 내 번트를 어떻게든 훼방놓으려고 했지만, 팀 승리에 대한 내 열의를 막을 순 없었다.

무사히 희생번트를 대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1번 타자 던컨 카레라스와 맥스 프리드의 세 번째 대결을 지켜봤다.

앞선 두 타석에서 삼진 하나와 내야 땅볼로 선두 타자로서의 역할을 전혀 해주지 못했던 던컨 카레라스는 독기와 오기로 가득 찬 얼굴로 맥스 프리드의 공을 상대했다. 그렇게 집중력을 발휘한 던컨 카레라스는 결국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을 얻어 1루로 진출했다.

1사 1, 2루 상황이었지만 2루 주자인 빌 맥카티의 발이 그렇게까지 빠른 편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2번 타자인 크레이그 바렛과의 상대 전적이 굉장히 앞서 있는 맥스 프리드로서는 크게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편안하게 투구를 한 결과 상대 전적이 말해주듯 크레이그 바렛에게 외야 뜬공을 얻어내며 아웃 카운트를 늘려갔다.

2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건 3번 타자 코리 시거.

전반기 0.314의 타율과 23개의 홈런으로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코리 시거는 맥스 프리드와의 상대 전적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코리 시거를 상대하는 맥스 프리드의 얼굴엔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승부는 5구, 바깥쪽 낮게 깔려 들어오는 패스트볼에서 갈렸다.

코리 시거는 욕심 부리지 않고 가볍게 스윙을 했고, 밀어친 타구가 1루수 키를 훌쩍 넘기면서 라인을 따라 외야 깊은 곳까지 굴러갔다.

발이 느린 빌 맥카티는 물론, 타격음이 터지자 질주를 시작한 던컨 카레라스까지 가까스로 홈에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2득점에 성공했다.

잘 던지고도 2실점을 해버린 맥스 프리드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는 건 당연했고, 평정심을 잃은 그의 공은 데니스 플린이라는 맹수와도 같은 타자에게 제대로 걸려 담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5회까지 완벽하게 공을 던지던 맥스 프리드가 한 순간에 몰락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발점이 빌 맥카티의 빗맞은 안타였기에 같은 투수로서 안됐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 역시 언제 저렇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바짝 세운 상태로 마운드에 올랐다.

신중하게 공을 던졌고, 그 결과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마운드를 다음 투수에게 넘겨주었다.

시즌 19승을 달성했으며, 이날 8이닝, 13탈삼진으로 시즌 180이닝과 300개의 탈삼진을 넘겼다. 또한,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기에 평균자책점이 0.62에서 0.59로 떨어지면서 2년차 징크스는커녕 종전 기록을 넘어서는 또 다른 전설의 기록이 달성되는 게 아니냐는 언론의 떠들썩한 기사들을 접해야만 했다.

후반기 첫 번째 시리즈이자,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3연전은 다저스의 막강 선발 트리오가 모두 호투를 벌이면서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시리즈 스윕을 가져올 수 있었다.

하루 휴식을 취한 후에 피츠버그 파이리츠 원정길에 올랐다.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스윕으로 3연승을 달리는 LA 다저스의 상승세는 피츠버그 원정 첫 번째 경기부터 꺾여버렸다.

타선은 나름대로 5득점을 하며 체면치레는 했지만, 선발 투수인 포스터 그리핀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과 비슷하게 경기 초반부터 대량 실점을 허용하면서 4회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4점차 패배를 당한 LA 다저스에게 언론과 팬들은 이날 패배의 원인인 포스터 그리핀의 선발 보직에 대한 의문을 드러냈다. 올 시즌부터 급격하게 하락한 기량과 성적은 포스터 그리핀을 날카롭게 비난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음날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5선발 나단 코스코는 자신 역시 포스터 그리핀과 처지가 비슷하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긴장한 모습으로 공을 던졌고, 결과는 6이닝 6실점이라는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시즌 후반기부터 확연하게 다저스 선발진의 약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2연패의 사슬을 끊기 위해 4일, 금요일에는 내가 선발로 등판했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한국으로 떠나야만 했다.

제34회 부산 올림픽이 개막을 했기 때문이다.

야구 국가대표팀에 뽑힌 나와 형수는 오늘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구단에서 마련해준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향한다.

구단 전용기는 마찬가지로 오늘 경기가 끝나는 즉시 신시내티 원정을 떠나야 하는 선수단이 이용해야 했기에 구단주의 특별 배려로 나와 형수 두 사람만을 위한 전세기가 마련된 셈이다.

“덕분에 편안하게 한국으로 가겠다. 흐흐.”

“그러니까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지.”

“당연한 소리! 깔끔하게 퍼펙트 게임 오케이?”

“퍼펙트든 뭐든 좋으니까 우선은 이기는데 집중하자.”

“그 소리는 퍼펙트 게임을 하겠다는 차지혁의 강렬한 의지처럼 들리는데? 좋았어! 오늘 또 하나의 컬렉션이 생기겠구나! 흐흐흐!”

형수의 새로운 취미가 시계 수집이었는데, 원칙은 절대 자기 돈으로 사지 말자였다.

그 말인 즉, 나와 함께 배터리를 맞추면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할 때마다 내가 선물로 주는 롤렉스 시계를 종류별로 모으겠다는 아주 야심차면서도 황당한 취미인 거다.

아쉽게도 이날 경기에서는 형수의 취미를 충족시켜 줄 수가 없었다.

7이닝 2실점.

너무 이기겠다는 마음가짐이 앞서서인지, 앞 두 경기에서 이미 연승을 내달리며 기세가 올라서인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타자들은 생각보다 집중력 있게 내 공을 공략했고 그 결과 각각 5회와 7회에 1실점씩 내주고 말았다.

비록, 7이닝 2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이미 6점을 뽑아낸 다저스 타자들로 인해 시즌 20승과 팀 승리에는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여기저기서 20승 달성 축하 인사를 해주었다.

“축하하네. 자네는 이미 올 시즌 내가 원하는 성적을 모두 달성해주었네. 그러니 마음에 어떠한 부담도 갖지 말고 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서 병역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겠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네가 깨끗하게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게 구단 입장에서도 더욱더 값진 일 아니겠나? 하하하.”

승리를 해서인지, 내가 정말 20승을 달성하며 게레로 감독의 구상대로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잘 해줘서인지 얼굴에서 웃음꽃이 가시질 않았다.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자네와 한국팀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팀 동료들과도 작별 인사를 하고 형수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지혁아,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 꼭 금메달 따서 우리 함께 병역 혜택 받도록 하자.”

“그래야지.”

형수와 함께 올림픽에서 우리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위협적인 나라가 어디일까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고, 비행 준비를 모두 마친 전세기를 타고 한국을 향해 힘찬 비행을 시작했다.

< 『해외편 - 189』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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