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87화 (187/221)

< 『해외편 - 187』 >

『해외편 - 187』

-삼진! LA 다저스의 선발 투수 차지혁 선수!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의 마지막 타자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며 완투승을 가져갑니다!

-차지혁 선수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8회 말부터 9회 말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고 무려 5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다저스의 승리를 완벽하게 지켰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로서 LA 다저스는 2승 1패 득실차 플러스 6점으로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와 동일하게 기록을 가져갔습니다만, 상대 전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경기 결과로 인해 가장 아쉬워 할 팀은 당연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되겠군요. 같은 승패를 나란히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득실차에서 1점이 부족하여 8강 진출이 좌절됐으니 말입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16강 B그룹의 모든 경기가 끝났다고 합니다. 조 1위는 예상대로 보스턴 레드삭스가 차지했고, 조 2위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LA 다저스의 8강 상대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결정되었습니다. 이틀의 휴식일을 갖고 13일 목요일, LA 다저스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로 다저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갖게 되어 있으니 시청자 여러분들의 많은 시청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캐스터 이욱제, 해설에 도영우 해설위원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8강을 진출한 LA 다저스는 13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8강 경기를 가졌다.

단판 승부로 이기면 4강에 진출하고 지면 떨어지는 중요한 경기였다.

게레로 감독은 존 로더키를 선발로 내세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딜런 아담스를 비롯해서 모든 투수들이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시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단 1구를 던지기 위해서라도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해야만 했다.

경기는 초반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타자들은 아주 끈질기게 타석에 임했고, 그 결과 존 로더키는 3회 초까지 오는 동안 무려 3실점이나 하고 말았다.

실점도 실점이지만, 3이닝 동안 던진 투구수가 86개였으니 최대 5이닝이 한계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다저스의 타자들 역시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피츠버그의 선발 투수를 연신 두드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1회 말부터 득점을 올리면서 3회 말이 끝났을 때에는 6점을 뽑아내며 승리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다.

예상대로 존 로더키는 5회까지만 마운드를 지키고 내려왔다.

투구수는 103개.

마운드를 내려온 존 로더키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을 보였다.

존 로더키가 내려온 마운드를 이어 받은 건 딜런 아담스였다.

4점으로 점수 차이가 벌어졌음에도 게레로 감독은 불펜 투수들만으로는 절대 안심을 할 수 없다는 듯 기용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투수를 선택했다.

마운드에 오른 딜런 아담스의 유니폼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선발 투수의 특성상 짧은 이닝 내에 몸이 풀리지 않았기에 불펜에서 3회부터 지속적으로 공을 던지며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어 놓은 거였다.

게레로 감독의 작전과 딜런 아담스의 팀을 위한 희생정신은 7이닝까지 무실점으로 확실하게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타선을 봉쇄했다.

8회에는 팀내 최고의 홀더인 알렉스 트레더웨이가 믿음대로 이닝을 묶었고, 9회에는 마무리 투수 샌디 펠런이 등판해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4강 진출을 철저하게 무너트렸다.

경기 결과 8대4.

LA 다저스의 4강 진출이 확정되었고, 16일 일요일에 상대하게 될 4강 상대는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를 격파한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너만 믿는다. 가자, 결승으로!”

형수가 나를 향해 그렇게 외쳤고, 보스턴 레드삭스 전에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올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는 시즌 11승의 제물이 되었던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기분 상으로는 크게 나쁜 점이 없었다.

5월 19일에 있었던 경기에서 8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자들을 꽁꽁 묶었고 당시 13개의 탈삼진까지 기록했었기에 자심감은 충분했다.

1회 말부터 보스턴 타자들을 상대로 힘껏 공을 던졌다.

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을 섞어가며 스트라이크 존을 날카롭게 공략하니 삼진 2개와 땅볼 하나로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했다.

2회에는 파워 커브, 3회에는 체인지업을 섞었고 결과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4회부터는 보스턴 타자들을 상대로 윽박지르는 투구를 가져갔다.

대충 타이밍을 맞췄다 싶었던 보스턴 타자들을 힘으로 짓누르는 투구로 인해 체력 소모가 커졌지만, 효과만큼은 아주 확실했다.

6회에는 패턴을 바꿨다.

살살 유인구를 던져가며 타자들의 배트를 끌어냈고 두 개의 단타를 허용했지만, 무실점으로 무사히 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

6회 말까지 무실점으로 내가 마운드를 지켜내는 사이 다저스 타자들은 3회와 6회에 각각 1점, 2점을 뽑아내며 승리에 크게 한 발 다가갔다.

7회에는 12to6커브로 타자들이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았고, 8회에는 투심 패스트볼을 이용해서 땅볼을 유도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장타를 허용하며 8회에 1실점을 하고 말았지만 이미 승부의 추는 완벽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8회 말 수비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니 게레로 감독이 수고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투구수나 체력적으로나 9회 말까지도 공을 던질 수 있었지만, 교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미 승부가 난 경기였기에 무리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최종 스코어는 1대7.

6점 차의 대승으로 LA 다저스는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다음날 벌어진 LA 에인절스와 샌프란시코 자이언츠의 준결승 경기는 LA 에인절스의 승리로 끝나며 LA 지역 전체의 축제로 이어졌다.

지역 라이벌인 다저스와 에인절스의 챔피언리그 결승은 굉장한 혈전이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대로 1차전부터 아주 팽팽하게 이뤄졌다.

양 팀 선발 투수들은 상대팀 타선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공을 던졌고, 타자들은 어떻게든 점수를 내기 위해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타격을 했다.

5회까지 팽팽하게 맞서던 승부의 추를 한쪽으로 기울인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다저스의 선발 투수 딜런 아담스였다.

5회 다저스의 공격은 상당히 뜨겁게 진행됐다.

선두 타자인 데니스 플린이 몸 쪽 공을 당겨 치면서 안타를 만들어내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에인절스의 선발 투수 핸리 샌더스는 트라웃을 상대로 볼넷까지 내주면서 무사 1, 2루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어진 빌 맥카티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잠깐 숨을 돌렸지만, 미치 네이가 행운의 내야 안타를 터트리면서 기어이 만루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1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건 루이스 토렌스였다.

8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삼진을 당하며 뜨거웠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절호의 기회를 잡고도 점수를 내지 못하면 오늘 경기가 무척이나 꼬일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게레로 감독으로서는 잘 던지고 있는 선발 투수 딜런 아담스 대신 대타를 기용할 수가 없었는지 그대로 타석을 이어갔다.

당연히 대타를 생각하고 있었던 핸리 샌더스는 의외로 9번 타자로 딜런 아담스가 타석에 서자 안도의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게레로 감독을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딜런 아담스가 잘 던지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도 5회였으니 형수나 다른 타자를 대타로 기용할 만도 했으니까.

그렇게 아쉬움 속에서 핸리 샌더스와 딜런 아담스의 투타 대결이 시작됐다.

핸리 샌더스는 초구부터 강력한 패스트볼을 던지며 딜런 아담스를 압박했다.

아직 체력이 충분한 5회였기에 핸리 샌더스의 패스트볼 구속은 97마일을 넘나들었다.

딜런 아담스 입장에서는 쉽게 칠만한 공이 절대 아니었고,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가 됐을 때 다저스 더그아웃의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포기했을 때, 2개의 유인구를 가까스로 참아낸 딜런 아담스가 5구로 던진 핸리 샌더스의 낮게 깔리는 포심 패스트볼을 그대로 쳐올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 가장 깊숙한 외야 펜스를 맞췄고, 투 아웃 상황이었기에 타격음이 터지는 순간 모든 주자들이 홈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3루 주자 데니스 플린에 이어서 2루 주자 마이크 트라웃이 홈으로 들어왔고, 1루 주자였던 미치 네이는 3루까지 달리면서 순식간에 경기장 분위기를 아주 뜨겁게 달궈버렸다.

2루타를 터트리고 양팔을 번쩍 들며 좋아하는 딜런 아담스를 향해 모든 선수들이 크게 박수를 쳐주었고, 다저스의 팬들 또한 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가장 만만한 선발 투수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은 핸리 샌더스의 제구가 흔들리는 건 당연한 결과.

따악!

던컨 카레라스의 타구가 우중간 담장을 넘기며 쓰리런홈런이 터졌고, 그렇게 승부에 확실한 도장을 찍었다.

IBAF 챔피언스 리그 결승 1차전은 LA 다저스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다저스의 클럽 하우스 분위기는 최고조를 찍었다.

“3차전까지 갈 것 없이 2차전에서 끝냈으면 한다.”

클럽 하우스에서 게레로 감독이 그렇게 말했다.

모든 선수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향했다.

“괜찮겠나?”

게레로 감독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해보겠습니다.”

등판일보다 하루가 앞당겨졌지만, 몸 상태는 충분히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LA 에인절스와의 결승 2차전의 날이 밝았다.

“깔끔하게 오늘 경기 끝내고 올스타전까지 푹 쉬자!”

“그래야지.”

“오늘은 내가 정말 제대로 한 방 칠 테니까 믿어봐.”

형수의 말에 가볍게 웃음을 흘리곤 경기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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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괜찮겠습니까?”

맥브라이드 단장은 살짝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게레로 감독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수 본인이 괜찮다고 했으니 믿고 맡겨볼 생각입니다.”

“분위기 상 어쩔 수 없이 대답한 것 아니겠습니까?”

게레로 감독이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지금까지 지켜봐온 척은 그렇게 무모한 선수가 아닙니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자신의 몸을 망칠 어리석은 선수가 아니니 단장님께서도 믿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차지혁이 어떤 선수인지 맥브라이드 단장도 잘 알고 있었기에 게레로 감독의 말에 수긍은 갔다. 하지만, 걱정이 가시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3일을 쉬었다.

로테이션 주기를 생각했을 때, 하루가 부족한 휴식이었다.

투수의 몸이 얼마나 예민한지 잘 알고 있는 맥브라이드 단장으로서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게레로 감독이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괜찮은 걸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맥브라이드 단장으로서도 무척이나 바라는 일이다.

11회 대회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LA 다저스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월드 시리즈 우승을 40년 동안이나 못하고 있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다저스였기에 챔피언스 리그에서까지 번번이 결승 진출도 못했기에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우승에 대한 저주가 씌였다고 불릴 정도였다.

그래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위해 차지혁이라는 슈퍼 에이스를 망칠 순 없었다.

현재 진행 중인 종신 계약이 성사되기만 한다면 차지혁으로 인해 앞으로 몇 번이나 우승을 노려볼지 생각만으로도 흐뭇했는데, 고작 한 번을 위해 그에게 부담을 준다?

‘절대 그럴 순 없지!’

더욱이 오늘 경기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내일 경기가 남아 있었다.

차라리 안정적으로 차지혁을 내일 경기에 선발로 등판하는 게 맥브라이드 단장으로서는 합리적이라 생각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패배한다 하더라도 내일이 남아 있으니 선발 투수를 교체하는 게 좋겠습니다.”

맥브라이드 단장의 말에 게레로 감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선수 기용에 대한 권한은 온전히 감독만의 권한이다.

아무리 단장이라 하더라도 선발 투수를 교체하라고 지시를 내릴 순 없었다.

“그렇게 할 순 없습니다.”

“게레로 감독님, 이건 성급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봐도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맥브라이드 단장의 말에 게레로 감독도 움찔했다.

감당하지 못한다.

레전드라 불리는 선수 시절을 보내고 좋은 커리어를 쌓고 있는 지금의 위치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지 모를 만큼 차지혁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오늘 경기에서 차지혁에게 문제라도 생긴다면?

끔찍했다.

상상만으로도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두려웠다.

걱정과 우려가 머릿속을 맴돌자 당당했던 자신감이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단장의 말대로 오늘 패한다 하더라도 내일이 있는데.’

어제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오늘 경기에서 에인절스에게 패배해서 분위기가 넘어가면 3차전에 대한 확신을 가져갈 수 없었기에 성급하게 차지혁을 2차전 선발로 올리겠다 결정을 내린 거다.

“개인적으로 전 감독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저스의 선수들을 아주 훌륭하게 이끌어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께서 앞으로도 다저스를 이끌어 나갔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걸 잃어버리셔야 되겠습니까?”

“…제가 성급했다는 걸 인정하겠습니다.”

“역시 감독님이십니다.”

맥브라이드 단장의 얼굴이 그제야 환하게 펴졌다.

< 『해외편 - 187』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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