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84』 >
『해외편 - 184』
이변은 없었다.
제11회 IBAF 챔피언스 리그는 누구나 예상이 가능했던 팀들이 32강을 무난하게 통과하며 16강에 진입했다.
LA 다저스가 속한 32강 C조에서는 모두의 예상대로 LA 다저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6일 16강 그룹 추첨이 이뤄졌다.
LA 다저스는 16강 A그룹에 포함됐다.
16강 A그룹에 속한 구단은 LA 다저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였다.
“32강 전력대로라면 소프트뱅크가 꼴찌에 가장 유력하고, 문제는 인디오스일 것 같은데.”
형수가 A그룹의 팀들의 전력을 비교했다.
나 역시 형수와 같은 생각이었다.
16강 그룹 추첨은 말 그대로 복불복이다.
재수가 없으면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모두 몰려서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일 수도 있고, 행운의 여신이 도움을 준다면 메이저리그 구단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지금까지 16강 그룹 추첨에서 메이저리그 구단끼리 같은 그룹에 속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한 팀만 같은 조에 속해 있다는 건 나름 운이 좋은 편이라고 봐야했다.
이번 대회 16강 D그룹의 경우 텍사스 레인저스, 워싱턴 내셔널스, 뉴욕 양키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까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모두 포함되어 죽음의 그룹으로 불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디오스가 우리 그룹 최고의 복병이 될 것 같단 말이야. 지혁이 네 생각도 그렇지?”
“절대 만만하게 볼 수가 없지.”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는 쿠바의 야구단이다.
쿠바의 경우 정식 프로 리그가 아닌 아마추어 리그였지만, 그 수준은 메이저리그 못지않다고 할 정도로 대단했다. 물론, 실제로는 트리플A 수준 정도라 보면 된다. 어쨌든 그런 수준 높은 리그로 인해 쿠바 선수들 또한 실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좋은 실력을 갖춘 쿠바 선수들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쿠바를 탈출해가며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던 거다.
하지만, 2021년부터는 쿠바 선수들도 자유롭게 세계 각지에서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다만, 쿠바 선수들의 경우 국가 소속 선수라는 틀 안에 갇혀 타국 리그 진출이 가능했는데 그 모든 협상을 주도하는 쪽이 바로 쿠바 정부였고, 거기서 발생하는 에이전시 수수료가 엄청났는데, 그 모든 지불을 영입 구단에서 해야만 했다.
여기에 각종 세금 명목으로 선수에게 뜯어가는 돈 역시도 막대해서 실질적으로 쿠바 선수가 타국 리그에 진출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손에 쥐는 돈은 20퍼센트가 겨우 될 정도였기에 흔하게들 쿠바 야구 선수들은 국가 수출품, 착취의 아이콘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내부 사정이야 어쨌든 쿠바 선수들의 잠재력과 실력만큼은 인정해줘야 했다.
그리고 그런 잠재력과 실력을 갖춘 괴물 선수 하나가 이번 대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세르지오 발데즈.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의 3루수인 세르지오 발데즈는 이번 대회 최고의 신성이다.
32강 3경기를 통해 타율 0.724과 홈런 2방을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32강 상대팀 중 메이저리그 구단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전에서 3타수 3안타, 1홈런을 터트린 건 모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집중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쿠바에서는 도대체 뭘 먹기에 야구를 그렇게 잘 하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하질 않냐? 나이 열여섯에 메이저리그 투수를 상대로 3타수 3안타에 홈런까지 날릴 줄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어?”
16세.
물론, 미국 나이로 16세였기에 한국 나이로는 생일이 지난 18세, 고등학교 2학년인 셈이다.
아주 오랜만에 쿠바산 초특급 유망주가 나왔다며 언론은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벌써부터 몇몇 구단들은 발 빠르게 세르지오 발데즈의 이적 영입에 뛰어들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쿠바 선수를 이적시키기 위해선 엄청난 추가 자금이 발생했기에 요 몇 년 동안은 쿠바 선수들에 대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영입이 소극적이었다.
금적적인 부분에서 구단의 피해가 너무 컸기에 일부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아예 담합까지 해가며 쿠바 선수들에 대한 이적 영입을 불가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쿠바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덕분에 작년부터 쿠바 정부에서도 에이전시 수수료 인하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2025년 드래프트 톱3였던 시몬 산체스를 뛰어넘는 잠재력을 가진 괴물, 세르지오 발데즈가 등장한 거다.
세르지오 발데즈가 16강 경기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을 치지 않는 이상 이번 대회 최고의 보물로 우뚝 설 건 자명한 일이었다.
“감독은 뭐라고 그래?”
“뭐가?”
“네 선발 일정 말이야. 디트로이트나 인디오스나 등판 일에는 딱히 관계없잖아.”
“아직까지는 별다른 말 없던데.”
“그래? 내일 경기 디트로이트랑 인디오스 경기 결과를 지켜보고 선택을 하려나?”
“그럴지도 모르지.”
16강 B그룹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속해 있다.
A그룹과 마찬가지로 복병처럼 알라사네스 데 그란마라는 쿠바 구단이 속해 있기는 했지만, 32강 경기에서 보여줬던 경기력은 8강 진출까지는 무리라는 의견이 다수였기에 실질적으로 8강 진출팀은 보스턴 레드삭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문제는 과연 어느 팀이 조 1위로 올라가느냐다.
8강 경기는 각 조의 1, 2위가 서로 교차해서 맞붙는다. 때문에 8강 대진표를 생각했을 때에도 LA 다저스 입장에서는 어느 팀과 맞붙는 것이 4강 진출에 도움이 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8강 경기를 위해 널 아껴둘 수도 있겠다. 선발 일정이 꼬이면 최악의 경우 4강전에 네가 마운드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챔피언스 리그의 최대 단점이다.
타자의 경우 매일 시합에 뛰는 게 가능하지만, 투수의 경우 회복기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간격 유지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감독으로서는 어느 경기를 선택해서 집중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타자처럼 선발 투수도 매일 같이 마운드에 오를 수 있거나, 대회 기간이 여유롭게 진행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감독들은 승률이 높은 선발 투수를 어느 경기에 등판시켜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투수의 경우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면 다시 기회가 오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항상 투수보다 타자들이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역대 챔피언스 리그 MVP는 모두 타자들이었다.
“이왕 16강 경기에 등판을 해야 한다면 개인적으로 나는 네가 인디오스 전에 등판했으면 좋겠다.”
“왜?”
“왜라니? 쿠바산 특급 천재를 삼진으로 찍어 누르는 한국산 특급 천재! 크으~ 이 얼마나 멋지냐? 그러니까 만약 인디오스 전에 등판하면 다른 건 몰라도 세르지오 발데즈만큼은 확실하게 짓밟아 버려라.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주라고.”
“여기서 한국인의 매운맛이 왜 나오는 건데?”
“내 말은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확실하게 증명하라는 거지 뭐. 흐흐흐!”
형수의 실없는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지만, 언론은 꽤 들떠있었고 나와 세르지오 발데즈의 대결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현실로 이어졌다.
16강 첫 번째 날 LA 다저스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의 경기 결과가 놀랍게도 인디오스의 승리로 끝나면서 A그룹의 전망이 완전히 엉망이 되고 말았다.
게레로 감독은 고민 끝에 16강 두 번째 경기에서 LA 다저스의 선발 투수들 가운데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딜런 아담스를 투입했다.
딜런 아담스는 게레로 감독의 기대대로 컨디션만큼이나 호투를 보이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타선을 8회까지 완벽하게 막아냈다.
문제는 다저스의 타자들 또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발 투수에게 완벽하게 봉쇄를 당했다는 점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발 투수는 작년까지 팀 동료이자, 에이스로 불렸던 필 맥카프리였다.
경기 결과는 1점차 패배.
완봉승을 가져간 필 맥카프리와 다르게 딜런 아담스는 한계 투구수로 인해 8회까지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으니 9회 다저스의 핵심 불펜 투수인 알렉스 트레더웨이가 디트로이트 타자들의 강공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은 1실점을 허용하며 경기가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며 2승으로 A그룹 1위로 치고 올라갔고, LA 다저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1승 1패를 나란히 기록했지만, 득실점 차이로 인해 LA 다저스가 2위를 간신히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순위 완전히 꼬여버렸다.”
형수가 A그룹 순위표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IBAF 챔피언스 리그 16강
1위.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 - 2승 (+9)
2위. LA 다저스 - 1승 1패 (+3)
3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1승 1패 (-1)
4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패 (-11)
순위표를 바라보는 나 역시 표정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우선적으로 8강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를 상대로 승리를 해야만 한다.
문제는 단순한 승리 이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다저스가 승리한다 하더라도 승패는 2승 1패.
오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패배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희박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결과적으로 세 팀이 모두 나란히 2승 1패를 기록하게 된다.
결국 순위를 결정짓게 되는 건 득실점 차이다.
‘인디오스가 너무 압도적이야.’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는 무려 +9점이다.
LA 다저스가 조 1위를 차지하려면 오늘 경기에서 최소 3점차 이상의 승리를 가져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5:3으로 승리를 한 팀이다.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투수진의 높이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더욱이 어제 경기에서 단 1점도 득점하지 못한 다저스 타자들의 컨디션을 놓고 봤을 때, 3점 이상을 득점한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오늘 경기에서 다저스가 승리해도 조 1위는 고사하고 조 3위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경기 결과가 관건이다.
‘6점 차 이상의 승리를 가져간다면…….’
최악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단숨에 2승 1패 +5점이 된다.
반대로 LA 다저스는 2점 차이로 승리를 한다 하더라도 상대전적에서 밀려 조 3위로 8강 진출이 실패된다.
다저스와 인디오스를 상대로 각각 4점, 7점차이로 패배한 소프트뱅크였으니 디트로이트에게 6점차 이상의 패배를 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다 버리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딱 하나다.
‘3점 차의 승리가 답이야.’
오늘 경기에서 무조건 인디오스 데 관타나모를 상대로 3점 이상의 승리를 따내는 것, 그것만이 LA 다저스의 8강 진출의 확실한 열쇠다.
“지혁아, 콜 왔다. 가자.”
형수의 말에 나는 모자를 고쳐쓰고 형수와 함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오늘 경기는 최소 8이닝, 할 수 있다면 완투까지 가야만 한다.
< 『해외편 - 18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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